극장 디오라마_환대의 장소 Theater Diorama_Place of Hospitality

이주용展 / LEEJUYONG / 李柱龍 / mixed media   2021_1228 ▶ 2022_0111

이주용_극장 디오라마_환대의 장소, 사물의 기념비_ Solvent print on LED backlit pannel, LED 라이트 패널(16작품), 커튼 설치_206×153cm, 206×310cm, 240×120cm, 160×120cm_미림극장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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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2_0111_화요일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입장마감_05:00pm

미림극장 Milimcine 인천 동구 화도진로 31 Tel. +82.(0)32.764.8880/6920

양키시장 인천 동구 송현동 100번지

미림극장의 『극장 디오라마_환대의 장소』프로젝트는 한국전쟁 당시 평안도, 황해도 지역에서 목선을 타고 월남한 이주민들의 정착지였던 만석동, 화수동, 수도국산에 정착해 살면서 일상생활의 삶의 터전인 양키시장과 육체 노동의 현장에서 이주민들의 위안의 장소였던 미림극장과의 관계성을 마을의 장소와, 역사성을 기반으로 한 다 학제 연구 전시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8년 시작된 『항해1 프로젝트』인 인천항을 출발해서 압록강과 두만강의 조.중 접경지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조선인 집단 이주 마을에서 발생되는 정체성의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교란 되는지를 사회적, 정치적 지층의 탐사연구에서 확장된 작업이다. 미림극장을 중심으로 다학제 연구 전시 프로젝트는 사진 설치, 영상, 공연, VR, 회화 작업을 통해 사물의 기념비를 구축해 오는 작업의 연장선 상에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인천 송현시장(일명 양키시장)과 동인천역(과거 축현역이라 불림) 주변에 위치해서 시대와 현장성, 장소의 이동성에서 규정되는 노동과 집단, 계급과 지배의 구조 속에서 변경된 신체와 유령화 된 장소에 특정 된 프로젝트다. 그 지역의 지정학적 환경에 공존해 왔던 동물(신화, 전설 속에 존재했거나 일상에 공존해 왔던)의 정치적 논쟁이 한국 근 현대사 역사 속에 어떻게 표면으로 번안되어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 1920-30년대 한반도 전역에서 집단 또는 개별적인 이주로 형성된 100여년이 넘은 마을 중 신툰촌, 삼봉촌, 내두산촌을 대상으로 장소, 사람, 환대에 대한 내재된 개별적 기억들의 취조와 대면을 통해 기록된다. 이 기록 보관소는 집단이주 정치, 사회의 비판적 시각에 대한 나의 진입 점이 된다.

이주용_환한 어둠이 살고 있는 장소(양키시장)_ Solvent print on LED backlit pannel, LED 라이트 패널_206×459cm_2022

마지막 남은 조선인의 소학교, 북한 횡령에서 이주해 와서 3대째 살고 있는 집, 그들의 미곡 창고, 부엌과 방이 일체 된 방, 그리고 지금은 빈집이 된 그들의 삶의 터전에 그들이 사용해왔던 사물을 기억의 매개로 기념비를 구축한다. 이주해 와서 살고 있는 사람, 자연, 사물, 또는 빈집과 터를 두만강, 압록강을 거쳐 서해상으로 항해해서 인천으로 이동해 왔다. 인천의 양키시장은 피난 온 이주민들이 미군정 시절부터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팔기 시장했던 장소가 활성화되면서 지금까지 인천의 역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곳은 이주민의 혼종성의 터전이다. 일본, 중국, 북한, 미군, 노동자, 자본가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며 지금도 그렇다. 미림극장에 이러한 이주의 역사를 가지는 항만으로서 도시에 이주민의 기념비와 인천 이주민의 혼용을 보여준다. ● 곧 사라질 환한 어둠이 살고 있는 양키시장 사람들, 마을의 장소를 갖지 못한 사람들, 자신들이 속한 곳이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또는 그들이 머물러도 좋을 자리, 점유할 수 있는 위치를, 이 지역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장소 상실이라는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건설된 집과 터에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동물 사회학, 사물의 기념비, 이주와 노동, 이산과 집단을 말하려 한다. ■ 이주용

이주용_극장 디오라마_환한 어둠이 살고 있는 장소_ Solvent print on LED backlit pannel, LED 라이트_206×153cm_미림극장_2022
이주용_극장디오라마_환대의 장소_미림극장 전시 플로어 맵_2022

이주용 작가가 전시 장소로 선택한 '바다'극장과 '미림(美林)'극장 그리고 '문화역서울284' 는 작가의 「항해」 프로젝트와 「사물의 기념비」를 펼치기에 꼭 맞춤 한 곳이다. 장소가 지닌 문화 사회적, 역사적 함의가 다분한 가운데 장소의 흔적이 작품과 중첩되고 장소성과 작품성이 조응-상생하며 전시의 새로움이 연출되었다. 관객은 이주용 작가의 전시를 보기 위해 '극장'과 '역'에 갔다. 1968년에 개관한 바다극장은 건물 인근에 흐르는 청계천처럼 한국 근현대사의 곡절이 압축된 상징적인 곳이고, 1957년에 천막극장으로 시작한 인천 미림극장은 폐관과 재개관을 거듭하다 지금은 문화공간으로 맥을 잇고 있다. '문화역서울284' 는 교통과 교류의 관문인 구 서울역사의 원형을 복원하여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모두 다종다양의 이질적이고 무질서한 개별 존재들이 공존하는 장소이자 지대이다. 공통적으로, 푸코(Michel Foucault)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와 오제(Marc Auge)의 비장소(non-places)의 개념이 겹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푸코는 헤테로토피아의 6가지 원칙을 논하며 거울, 극장, 정원, 감옥, 묘지, 박물관, 도서관, 학교, 병영, 정신병원, 허니문, 노인요양원, 무대, 페어, 카니발, 휴양지, 사우나, 모텔, 매춘굴, 터키식 목용탕, 예수회 식민지, 배를 헤테로피아의 예로 든다. 오제가 '비장소'로 언급한 공항, 철도역, 쇼핑센터, 호텔 등은 그가 말한 인류학적 장소(anthropological places)와 대비되는 장소로, 장소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유동하는 지대라고 할 수 있다. 바다극장, 미림극장, 문화역서울284에서 이주용은 여러 각도의 프레임을 통해 다면적으로 관람을 시도할 수 있게 했고, 각 작품을 개념적으로 연동해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곳곳에 설치된 오브제들은 각기 사회, 문화, 미학적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에 전시 장소를 형성하는 물리적인 요소들과 어우러져 전시 관람의 감응을 이끈다. 작가는 왜 이곳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을까. 이주용 작가는 말한다. "장소를 갖지 못한, 자신들이 속한 곳이나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의 시공과 기억, 사물, 수집이라는 단어들이 가로지르는 기억-오브제로서의 사진의 주요한 특성에 주목한다." (극장, 역, 항해, 배 – 헤테로피아, 호랑이가 바다로 간 까닭은 에서 일부 발췌) ■ 최연하

이주용_극장 디오라마_환대의 장소展_미림극장_2022

이주용에게 있어 물성은 시간의 축으로 이어진 사건의 연쇄이자 서사이다. 현상으로 기록되지 않은 사물에 내재한 물성을 통하여 시간의 축으로 횡단하여 기억을 포착한다. 그는 사진 아카이브를 통하여 연대기 순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시간(Story Time)'을 해체하고 '서사의 시간(Narrative Time)'으로 모든 이야기 시간을 재배치하고 분산시킨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해체되고 혼용하는 시간 역전이 일어나는 서사의 시간을 통하여 낯선 결과물을 창조한다. 현재에서 미래로 가기 위해 과거로 역전되는 시간의 불일치 속에서 그가 고 생각한다. 그의 초창기 사진은 오래된 것이지만 그의 시간은 오히려 오래된 미래로 향하고 있다. 이주용은 물성에 깃든 사진 이미지를 통해 기억과 시간을 탐구하고 획득한다. 그는 이야기에 능한 농부의 시간을 품되 끝없이 이동하는 서사를 품은 선원의 시간을 향해 길을 떠난다. 그 길에서 만난 이미지는 서사가 되고, 그 각각의 이야기는 사물로 내재화되어 물성을 뿜어내는 한편의 서사극으로, 은폐된 이야기와 서사의 시간을 드러낸다. 그중 하나는 시간을 공간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이 사진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장소 안에 있게 한다. 관객을 몰입하게 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작품 속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 세계를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 그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그는 천상의 비상보다 지상의 가뭄을 좋아한다. 상상력은 불온하다. 그 불온은 불완전성에서 나온다. 세계를 완전하게 기록할 수 없음에서 나오는 예술 감각이다. 그가 세계를 보는 초점은 보이는 사물에 있지 않다. 그 사물에 깃든 기억의 시간을 기록하는 데 있다. 사물이 끌고 온 서사와 그 장소에 있다. 그것은 한순간을 포착하고자 끊임없이 움직이는 장소를 찾아 이야기를 쫓아가는 시간이자 기념의 시간이다. 너머의세계로 이행하는 시간이다. 이주용은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크다는 것을 아는 작가다. (물성, 움직이는 장소의 디오라마_이주용의 이미지 중에서 일부 발췌) ■ 이세기

이주용_극장 디오라마_환대의 장소, 사물의 기념비

작가 이주용은 아카이빙과 사진, 영상 설치 작업에 기초한 다학제 연구 프로젝트는 「항해」 프로젝트에 와서도 계속된다. 이 작업에 작가는 「장소, 사물의 기념비」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부제를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라고 규정했다. 개인과 집단의 삶은 장소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그 지역의 삶을 연구하는 이 프로젝트도 그 장소를 벗어나면 작품의 의미를 상실한다는 뜻일 것이다. 현대미술의 경향 중의 하나인 소위 '장소 특정적 미술' 의 확대적용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 프로젝트는 인천항에서 시작하여 중국 단둥을 거쳐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으로 연결되는 한중 접경지역의 조선 이주민 마을에 관한 연구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근대 시기에 집중적으로 진행된 조선인의 집단 이주와 타지에서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을 들추어내고자 하는 셈이다. ● 실상 이주와 정착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 곳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어 이주를 하나 목적은 '다른 곳'에 정착하기 위함이다. 이주의 목적은 정착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 한 장소, 요컨대 토포스(Topos)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과 산기슭에서 자란 사람이 다르듯이 말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토포스는 인간을 지배한다. 그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이 이주가 필요하다. 근대 시기 한국인의 집단 이주도 그렇게 시작됐다.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착취와 억압을 견딜 수 없어서 이주를 선택한 경우도 있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부푼 꿈을 안고 이주한 이들도 있다. 본질은 같다. 자신의 토포스를 버리고 다른 토포스를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토포스에 적응하는 과정이 곧 그들의 삶이었다. 작가는 이 과정을 추적하여 "우리의 역사를 기억 보존"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임을 작업노트에서 밝히고 있다. 출발은 개항의 요충지 인천항이다. 이곳은 외래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이자 수탈의 요지이기도 하며 이주의 메타포가 될 수도 있다. 이주의 경로를 추적하는 시발점인 셈이다. 작가는 단둥을 거쳐 북한과 조선의 접경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그 곳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삶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여기서도 이주민의 가족사진은 그들의 가족사, 나아가 '이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자료가 된다. 이주가 자신의 토포스를 포기하는 행위인 이상 모든 이주민들에게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 이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주민들의 삶은 토포스를 통해 규정된다. 그리고 바로 그 장소에서의 적응 과정이 삶 자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장소의 지배를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장소의 성격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지만은 않는 것이다. 예컨대 「항해」 프로젝트의 과정에서 작가가 추적한 이주민들의 주거 형태는 한국인의 그것이어서 중국 땅의 전형적인 형태와 다르다. 그것이 인간과 장소의 상호관계를 통해 규정되는 이주민의 삶이다. ('느린'사진술로 기억을 보존하다 의 일부 발췌) ■ 박평종

이주용_미림극장 2층 관람석_2022

특정한 공간에서 인간의 구체적인 활동과 경험이 이뤄질 때 사람들은 그것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또한, 주어진 환경에서 사회 구성원이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생활 세계는 하나의 장소에 고유하면서 동시에 여타 장소와 구별되는 장소성(place-ness)을 형성한다. 장소성은 시공간에 대한 기억과 정체성 형성에도 깊이 관여한다. ● 기계 복제 매체 영화는 상영 장소를 불문하고 항상 같은 장면을 보여주는 단일한 속성을 지니지만 극장은 그것이 자리한 곳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아날로그 방식의 기계 매체가 지배적이었던 시절, 관객 대부분이 영화를 처음 만나는 곳은 촬영 현장이 아니라 극장이었다. 상영과 관람이동시에 이뤄지는 극장은 도시와 지역 그리고 상영 환경에 따라서 그것에 대한 의미부여가 달라졌다. 극장은 도시 발달의 지표였으며 극장 설립자의 이력은 문화 자본의 성격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극장은 관객의 집단 무의식을 드러내는 공간이었다. 관객은 성별과 계층 그리고 섹슈얼리티(sexuality)에 따라서 문화적인 실천을 다르게 수행하기 때문이다.관객은 동시에 극장이 자리한 곳에서 살아가는 지역민이었다. 극장 주변에 흔히 기차역과시장 그리고 다방과 유곽이 있었다. 도시에 따라서 군부대 그것도 미군 부대가 있었다. 영화와 극장은 모두 지역민의 일상을 구성하였으며,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어우러지는 삶의 결절 점에 자리하였다. 특정한 지역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관객은 지역민으로서 그들의 다양한 이력만큼 스크린에 각자의 욕망을 투사하였다. 관객은 처음 만난 사람을 옆 좌석에 두고 울고 웃으며 '함께' 영화를 보았으며, 극적 세계의 주인공에게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잠시나마 현실세계를 벗어났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풀어헤친 감정의 푸닥거리가 끝나면 관객은 각자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에 바빴다. 이렇듯 극장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공간이었다. ● 인천에서 극장이 가장 많았던 구역은 동구 즉, 동인천역과 중앙시장 그리고 양키시장이 자리한 곳이었다.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주요 장소인 철도역과 시장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도시와 도시를 이어갔다. '수도국산'으로 불린 송현동 산 1번지는 만석동과 더불어 월남한 황해도민의 정착지였다. 특히, 송현 3동은 '하꼬방'으로 불린 판잣집들이 산비탈에 게딱지처럼들어선 곳이었다. 얼기설기 급하게 지어진 판잣집은 안방과 부엌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볼 정도였다. 이들 집에서 살았던 이들은 북성부두와 화수부두 그리고 만석부두 등지에서 생계 수단을 찾은 하루 품팔이 노동자였고 영세 상인이었다. 대성목재와 대한제분에 출퇴근하는사람들 역시 몸 하나 믿고 살아간 육체 노동자였다. ● 먹고 사는 문제는 숙명적인 일이었으니 비루한 일상 가운데에서도 삶은 앞으로 나아갔다. 부두 노동자들은 곡물 자루의 하역 과정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진 콩이나 보리쌀 낱알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긁어 모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원목을 가져와 가공하던 대성목재에서 나온 부산물인 나무껍질 역시 자르고 말려서 땔감으로 판매하였다. 그렇게 그들이 가져온 물건은 시장에서 팔려나갔고 시장통에 모였다 흩어지는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었다. 누군가 시장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것' 이라고 말했는데 동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네에 따라서 인천 지역민이 선호하는 영화도 달랐다. 그만큼 그들이 공유하는 정서가 달랐기 때문이다. (극장이라는 장소_동인천역 미림극장 일부 일부 발췌) ■ 위경혜

이주용_사라진 장소_소환되는 사람들_ 단채널 비디오, 영화 스크린 상영_00:07:00_미림극장_2022
이주용_사라진 장소_소환되는 사람들_ 단채널 비디오, 영화 스크린 상영_00:07:00_미림극장_2022
이주용_환한 어둠이 살고 있는 장소_양키시장_ 영화 스크린 상영_단채널 비디오_00:13:00_미림극장_2022
이주용_환한 어둠이 살고 있는 장소_양키시장_ 영화 스크린 상영, 단채널 비디오_00:13:00_미림극장_2022

출발은 개항의 요충지 인천항이다. 이곳은 외래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이자 수탈의 요지이기도 하며 이주의 메타포가 될 수도 있다. 이주의 경로를 추적하는 시발점인 셈이다. 작가는 단둥을 거쳐 북한과 조선의 접경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그 곳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삶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여기서도 이주민의 가족사진은 그들의 가족사, 나아가 '이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자료가 된다. 이주가 자신의 토포스를 포기하는 행위인 이상 모든 이주민들에게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이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주민들의 삶은 토포스를 통해 규정된다. 그리고 바로 그 장소에서의 적응 과정이 삶 자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장소의 지배를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장소의 성격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지 만은 않는 것이다. 예컨대 「항해」 프로젝트의 과정에서 작가가 추적한 이주민들의 주거 형태는 한국인의 그것이어서 중국 땅의 전형적인 형태와 다르다. 그것이 인간과 장소의 상호관계를 통해 규정되는 이주민의 삶이다.

이주용_피난민 차학원 할아버지가 기억을 토대로, 한국전쟁 당시 황해남도 청단군 용매도의 섬에서 장봉도로 피란할 때 타고 인천 앞 바다의 작은 섬으로 내려왔던 배의 모양을 기록한 그림(연필 드로잉) 이주용_유령이 된 배_합판 목재, 옻칠 부표, 동물박제, 조화 꽃_2021
이주용_극장 디오라마_환대의 장소-인천 북성포구_ Solvent print on LED backlit pannel_200×755cm_2021
이주용_유령의 통로_기록과 기억, 환한 빛을 기다린다_ VR, 360° 단채널 비디오_00:07:00_2022
이주용_호랑이를 죽여라_ 극장 간판, 합판에 유성페인트 (나오미作)_540×270cm_양키시장내_2022

「천연당사진관」에서부터 「항해」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집요하게 천착해 온 문제는 개인의 삶과 집단의 기억이 만나는 지점을 아카이브로 구축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동원된 방법은 과거의 기념사진과 가족 앨범을 끌어 모으고 '고전적인' 사진술을 통해 '현재'를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서 '첨단 기술'은 별 의미가 없다. 실상 디지털 기술은 '데이터'로 만 존재하는 '가상'의 정보인 탓에 시간의 흐름에 영향 받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과거의 기록으로부터 유의미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사라져 버린 시간으로부터 무언가를 건져 올렸기 때문이다. 기억은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겪었던 물질성으로 부터 온다. 물성이 없는 디지털 데이터는 '정보'를 줄 수 있지만 시간과 '싸우지' 않기에 기억과의 연결고리가 약하다. 말하자면 그 정보가 생산된 시공간 속에 '물질'로 존재할 때 비로소 기억과의 접점이 생겨난다 하겠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생산된 사진관사진이 비록 우리가 그 장소에 없었다 할지라도 집단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이유다. 작가가 디지털 기술 대신 물성 강한 다게레오타입이나 앰브로 타입을 택한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느린' 사진술로 제작된 오늘의 초상은 근대 시기에 제작되어 남겨진 가족사진이 그렇듯이 시간과 싸워 살아남아 미래에 자신의 물성을 주장하면서 '기억 보관자'로 남게 될 것이다. 작가가 불편을 감수하며 더디지만 어렵게 작업을 진행해나가는 의미가 거기에 있다. (''느린'사진술로 기억을 보존하다' 의 일부 발췌) ■ 박평종

이주용_유예된 시간_양키시장 아카이브 사진_2022

1.인천 축항의 전경과 각국 조계지

2. 오성극장과 수도국산 ● 양키시장에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을 세워 시장의 지붕 위에 오성극장을 건축했다. 오성극장은 양키시장의 망명 공화국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영화를 즐기고 신세계였던 양키시장에서 구한 양담배를 몰래 피우며 엄혹한 시대의 시름을 태웠다. 그 뒤로는 장엄하게 수도국산이 보인다. 수도국산은 1980년까지 1.4 후퇴 이후 평안도, 황해도 등 피난민과 일자리를 찾아 대처에 온 노동자가 터주로 거처한 동네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로 거대한 산을 이루었다. 미로와 같은 골목길과 루핑집, 판잣집,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마주하고, 담장에 오동나무가 싶어 있는 파란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저녁 식사를 하는 수도국산 달동네 주민들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풍경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다.

3. 중앙시장 간판이 보이는 미림극장 주변 ● 1960년 중앙시장과 미림극장 주변 모습이다. 이 일대는 양키시장, 중앙시장, 미림극장 등이 운산한 인천의 중심지였다. 인근에는 피난민 판잣집으로 즐비한 송현동 일대 '수도국산'과 만석동, 송월동, 화수동, 화평동이 가깝다. 1960년 4.19 혁명 때 인천의 학생들이 중앙시장 도로변에 모여 시위를 하는 장면이다. '3.15 부정 선거 다시 하라' '1인 독재 물러가라' '이승만은 하야하라' 외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쩡쩡하게 들리는 듯하다. 중앙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박수와 격려로 화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곳 주민 중에는 피난민이 많았다. 이들은 좌판을 깔고 닥치는 대로 새우젓, 생선, 조개탄 장사를 하였거나 인천항, 화수부두 등에서 하루 품팔이 하역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주용_장소, 사물의 기념비_Solvent print on LED backlit pannel_240×120cm_2020
이주용_장소, 사물의 기념비_Solvent print on LED backlit pannel_160×120cm_2020
이주용_장소, 사물의 기념비_Solvent print on LED backlit pannel_160×120cm_2020
이주용_장소, 사물의 기념비_Solvent print on LED backlit pannel_200×150cm_2020

조선인 이주 마을 프로젝트 진행 중 우연히 발견한 책, 『호랑이를 죽여라(To Kill a Tiger: A Memoir of Korea)』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대 후반, 가족을 따라서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 저자 이정화(Jid Lee)의 개인 가족사를 바탕으로 출간되었다. 미국 정착 이후에 그녀의 사고와 견문이 넓어지면서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이 재해석되어, 한 여성으로서의 치열한 정신적 성장사를 투영한 과거를 기억해 낼 수 밖에 없었다. 가사 노동, 심지어는 밥상에서조차 희생만 강요 당했던 여성들, 그녀의 개인사를 통해 한국 근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여성이 당면한 사회 현실을 비판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된 내용이다. 몰락한 한 유학자 집안의 아버지의 모순이-당신 자신이 그렇게 싸웠던- 한국 사회의 모순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에선 한 사람과 그를 둘러싼 사회 사이의 끈이 얼마나 견고한 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시대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비판이란 얼마나 사랑이 결여된 것인지를 배웠던 것이다.  그녀의 5 세대 가족사는 넓게는 조선 말기 과거제도의 폐지, 일제 시대 정신대로 이어지는 식민지에서의 폭력, 빠르게 변해온 남녀 관계 및 결혼관, 해방 전후 좌우익 사이의 갈등, 한국 전쟁, 60년대 이후의 민주화와 여성 운동이 뒤엉켜 있다. 나는 이 한 여성, 이정화(Jid Lee)의 개인사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언어적 환경에서의 이주를 바라보게 되었다. 삼봉촌, 신툰촌, 내두산촌에서 내가 만난 이주 마을의 사람들은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모두 여성이었다. 그들(그녀)의 집단 이주와 정착에서 노동과 생산성의 동력의 중심 역할이었다. 그리고 마치 이정화(Jid Lee)의 삶을 투영하는 듯한 여성들의 초상을 조선족 마을을 연구하며 진행했다. ■ 이주용

Vol.20211225b | 이주용展 / LEEJUYONG / 李柱龍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