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연결_두번째(scattered connection)

모유진展 / MOYUJIN / 牟庾珍 / painting   2022_0103 ▶ 2022_0121 / 주말 휴관

모유진_공간관계드로잉_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_60.6×72.7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국립창원대학교 미술학과 주관 / 국립대학육성사업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 휴관

아트스페이스 창 ARTSPACE CHANG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대학로 20 본관(1호관) 1층 Tel. +82.(0)55.213.3920 www.changwon.ac.kr/arts/main.do

모유진_흔적을 지우면서 남기는 기억의 기록 ● 널찍한 테이블 위에 따뜻한 조명이 있는 상태는 기다림이다. 누군가가 오고, 마실거리와 먹을거리가 테이블 위에 놓이고, 또 다른 누군가가 오고,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많아져 간다. 기다림이 끝나고, 만남이 시작되고, 대화가 이어지다, 만남이 끝난 자리. 그 자리엔 다시 누군가를 기다리는 테이블과 조명이 있다. 다시 기다림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 기다림은 만남이 지나간 기다림이다. 만남이 지나간 자리엔 어떤 흔적이 남을 것이다. 인간의 흔적이자 시간의 흔적. 오랜간 사용한 목재 가구가 손때를 타면 더 광이 나고, 어떤 의자는 닳고, 어떤 테이블보엔 커피 자국이 남는다. ● 글로 쓰는 건 가까스로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이 흔적을 화면에 시각적으로 옮길 수 있을까? 흔적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인데, 모유진은 이 흔적으로 화면을 꾸려보는 시도를 한다. 테이블 위에 있던 것을 지우면서, 남기는, 말로 쓰고 나니 굉장히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화면을 흔적으로 채워나간다.

모유진_공간 관계 드로잉2_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_53×43cm_2021
모유진_텅빈공간1_순지에 채색 및 덧붙이기_114.8×139cm_2020
모유진_텅빈공간2_장지에 채색 및 덧붙이기_90.9×72.7cm_2020
모유진_텅빈공간3_순지에채색_91×116cm_2020(출품작)

병이나 컵, 혹은 접시가 있던 테이블 위는 어떤 만남을 상상하게 한다. 아마도 놓여져 있었을 병과 컵, 접시는 테이블보의 패턴에 혹은 배경의 색에 묻혀 있지만 은근하게 드러난다. 주변과 섞이고 동시에 구분되면서 자기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드러낸다. 지우면서 드러내는 아이러니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화면은 흥미로워지고, 흔적에서 테이블 위를 지나간 대화와 만남을 상상해보도록 한다. 일반 카페같은 이미지도, 따뜻한 캠핑장의 느낌도, 술자리의 거나한 장면도, 숲 속에서의 잠시간 휴식도 모두 모유진의 붓끝에서 그럴듯한 흔적의 형상을 가진다. 그것들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기억엔 남았지만 현장에는 없는 일, 지나간 시간이다. 그렇다면 그 기억은 정확히 남은 것일까?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다른 시선으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을 일이다. 분명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누군가가 왔다 가고, 대화가 오가고, 불분명한 흔적이 남았을 뿐이다.

모유진_텅 빈 공간6,7_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_97×130.3cm_2021
모유진_텅빈공간8_한지에 채색 및 덧붙이기_116.8×91cm_2021
모유진_꽉 찬 관계5_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_130.3×97cm_2021
모유진_Used_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_159×129cm_2021

동양화를 전공한 모유진 작가는 동양적 기법을 충실히 활용하면서도 서양화같은 화면을 선보인다. 종이에 수채로 채색해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사물의 흔적을 자른 한지를 계속 붙여나가며 어렴풋하고 은근하게 형상을 드러내는 방식은 배접에서 응용한다. 먹선을 긋고 그 위에 종이가 여러겹 조각조각 붙여져 드러난 형상은 동양화의 그것이다. 하지만 채색을 통해 테이블보에 형상을 넣거나 감추느라 교묘하게 넣은 패턴의 선명함과 조명의 디자인이나 색감 탓에 화면은 한국화의 여백이나 먹의 주는 형상의 느낌보다는 추상화같은 선명한 색의 서양화에 가까운 첫인상을 남긴다. 물론 아주 찬찬히 들여다보면 쌓아 올리고 지워내는 채색기법이나 사용하는 종이나 먹의 사용 등을 찾아내며 동양화였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사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신작 이전의 작업들은 동양화의 외연에 좀 더 가까웠다. 불분명한 윤곽의 색을 잃은 사물들이 흑백으로 어렴풋이 구현된 화면은 먹과 종이를 떠올리게 하는데 재료는 또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이었다. 사물의 형태를 덮기 위해 사용되던 흑백의 아크릴 물감은 신작에서 종이에 수채물감을 겹쳐 쌓아올리거나 닦아내며 형상을 만드는 식으로 바뀌었다. 재료면에서 화려한 색과 조명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2010년 초중반의 흑백작업들과 급격히 변한 모습이다. 이렇듯 변한 작업들은 일관되게 기억의 왜곡이나 애매한 흔적에 대한 단서를 제시하는 방식을 고민하는데, 그 표현방식 자체에서 독특한 질감을 자아내며 호기심을 유도한다. 겹친 종이결이나 붓질을 한참 들여다보게 하거나, 있다가 만 사물의 자리를 상상하게 하거나, 그 자리에 놓였던 음료나 음식, 사람에 대한 궁금증까지 더해가는 식으로 화면 속 이야기는 제멋대로 흘러간다.

모유진_흩어진 연결_두번째(scattered connection)展_아트스페이스 창_2022
모유진_흩어진 연결_두번째(scattered connection)展_아트스페이스 창_2022
모유진_흩어진 연결_두번째(scattered connection)展_아트스페이스 창_2022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이나 추상과 구상의 구분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모든 장르와 형상이 뒤섞이거나 혼존하거나 왔다갔다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모유진은 이 동시대미술의 혼란 속에서 차분히 흔적을 찾고 지우며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 간다.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고 애매한 세상에서 확실한 사실은 모유진이 만들어낸 작업들은 시종일관 흥미롭다는 점이다. ■ 이나연

Vol.20220103b | 모유진展 / MOYUJIN / 牟庾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