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Pill? Red Pill?

정유진展 / JUNGYOOJIN / 鄭有眞 / painting   2022_0105 ▶ 2022_0116 / 월요일,1월 1일 휴관

정유진_Hey!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일요일_11:00am~05:00pm / 월요일,1월 1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성북구 성북로 49 운석빌딩 2층 Tel. +82.(0)2.766.5000 www.artspaceh.com

여기에 두 개의 세계가 있다. 이곳과 저곳으로 분리되고 어둠과 밝음으로 구별되는 두 개의 세계. 20여년 전 세상에 '진실의 사막'을 보게 하는 빨간 알약과 '가짜의 낙원'을 유지하게 하는 파란 알약의 메타포가 만들어졌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각인이자 질문의 씨앗이 되었고 정유진 작가가 지금 보여주는 분별과 발견의 토대가 된다.

정유진_잠 Sleep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21
정유진_기다림 Wait_캔버스에 유채_91×72.5cm_2019

작가는 어두침침한 공간, 창문, 그리고 그 너머 환한 빛을 차분한 호흡으로 매끄럽게 구축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붓질과 객관적 사실성의 추구는 그림을 관람자 앞에 현현하는 하나의 장면이 되게 만든다. 그러나 정유진의 장면은 취향과 선호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의지와 선택의 상징이며, 생성된 질문의 연쇄적 반응의 결과이다.

정유진_저 밑 Below There_캔버스에 유채_91×65cm_2019
정유진_잠 濳 Sink_캔버스에 유채_145.5×112cm_2019

별 볼일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 하는 마음은 회색 빛 장식 없는 콘크리트 벽으로 표현되고, 허구가 주는 찬란함과 생생함에 취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두 세계를 창문을 이용하여 나누는 것으로 드러낸다. 빨강과 파랑을 분간하듯 이곳과 저곳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일은 구별의 영역이다. 그러나 현실의 어두움 속으로 창문 너머의 빛이 흘러 들어오고 있는 장면은 단순한 구별의 이미지가 아닌 오랜 응시와 질문에서 나오는 분별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정유진_얼핏 In a Flash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21
정유진_어느새 Before i know it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21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와, 고요히 잠들어 있는 모습은 이쪽 세계의 무미건조함을 시각화시킨다. 볼록거울에 비친 상처럼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된 상태여서 혼란스럽거나, 회색 달이 있는 풍경처럼 어둡고 비관적인 것이 정유진이 바라본 '진실의 사막'의 얼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창문을 내기 시작했다. 수도꼭지에서 지금은 물이 나오지 않지만, 물이 있는 곳과 수도꼭지는 연결되어 있듯이 창문은 여기와 다른 세계를 결합시킨다. 구별하려 하고 정확히 보려 한 시도가 이 두 세계의 연결관계를 자각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허구 세계의 빛이 현실 세계를 비추고 어두움을 밝음으로 변화시킨다. 아니 어쩌면 밝음을 어두움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정유진의 그림에선 그런 걸 보진 못했다. 창문 밖 돌고래의 따뜻한 시선과 미소는 늦은 시간 지하철을 타고 졸며 귀가하고 있는 지친 여인의 삶을 위로하는 듯하여, 화가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응시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지향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정유진_가족의 탄생 Birth of Family_캔버스에 유채_60×72.5cm_2019
정유진_거긴 어때? What is it Like?_캔버스에 유채_100×80.5cm_2021

무엇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꾸준한 응시는 한 자리에서 머무를 수 없다. 구별하다가 연결하고 지향하는 것이 생기는 과정에서 작가는 생각하지 못한 발견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정유진의 이번 전시 『Red Pill, Blue Pill』은 이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기에 흥미롭다. 처음엔 작가 자신이 보는 주체였다. 창문 밖의 빛을 포착하고, 유유히 걸어가는 기린을 보는 주체. 그 기린은 단순한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열린 창문을 통해 코끼리의 붉고 반짝거리는 눈이 현실 속 작가를 쳐다보고 있을 때, 이 코끼리는 더 이상 대상일 수만은 없다. 코끼리가 작가를 보는 주체가 되었다. 정확히는 작가가 자신에게로 향하는 이 시선을 발견하고 코끼리를 시선의 주체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보는 자로서의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보여지고 있는 자로서의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명확하게 구별되던 두 개의 세계가 이제 시선의 엉킴으로 결합되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 박지민

Vol.20220105a | 정유진展 / JUNGYOOJIN / 鄭有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