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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문화재단 우란1경 WOORAN FOUNDATION ART SCAPE 1 서울 성동구 연무장7길 11 1층 Tel. +82.(0)2.465.1418 www.wooranfdn.org www.facebook.com/wooranfdn @wooran_fdn
BOOKS AND THINGS: 물아일체 物我一體 1) ● 우리의 삶은 수많은 물건과 함께 한다. 당장 책상 주변만 살펴봐도 수십 가지의 물건이 놓여있다. 이 물건들은 어떻게 나에게 선택되었을까? 아마도 이 선택의 기준 중에 하나는 나의 취향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자아실현이나 나만의 감성을 위한 소비를 지향하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이러한 '소비활동'이 바로 '취향 표현'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지금은 바야흐로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취향의 시대가 되었다. 누구든지 확고한 개인의 취향으로 본인의 물건을 선택하고, 공통의 취향을 찾아 서로 교류하며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이 모든 선택은 나의 기호를 표현하는 취향으로부터 이루어지고, 이렇게 나의 취향은 완성된다. 요즘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만의 취향을 표현하고 즐기는 일은 이미 행복의 한 조건이 되었다.
『Books and Things: 물아일체』展에서는 전통 민화, 책거리/책가도를 당대 취향이 담긴 하나의 표현으로 바라보고, 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책거리는 책과 관련된 여러가지라는 뜻이다. 이 가운데 서가의 가구 속에 책과 물건을 배치한 그림을 책가도라고 한다. 2) 책거리는 조선 후기에 널리 퍼진 정물화이다. 정물화는 서양화의 대표적 장르이지만, 조선에는 책으로 특화되어 존재했다. 서양의 정물화는 꽃, 과일, 음식, 가구 등을 그렸지만, 책거리에는 책을 비롯해 도자기, 청동기, 꽃, 과일, 기물 등이 등장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 속에 그려진 책과 물건(Books and Things)에 대해 당대의 의미와 현재의 의미를 병치해보고자 한다.
정신문화가 지배했던 조선시대였지만 후기에 들어서는 현실적인 물질문화에 대한 욕망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념과 명분만으로는 조선 경제를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은 정신에서 비롯되지만 물질이 배제된 행복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그 현실적 욕망이 응집된 그림이 바로 책거리이다. 이처럼 책거리는 '이념의 시대'에서 '물건의 시대'로 옮겨가는 변화의 신호탄으로서 볼 수 있다. 책과 물건이 공존한다는 측면에서 고고하면서도 통속적인 책거리는 조선후기 문화의 양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이다. 이 풍경은 정신과 물질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보면 물질문화가 정신문화에 기대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당시의 변화에 주목해보고 이를 통해 당시의 가치와 생각들을 지금 우리 현 시대와 맞물려 바라보고자 한다.
책거리의 주제는 진귀한 물건들을 보고자 또 소유하고자 하는 물질적 욕망이다. 이 욕망은 도시 문화의 발달과 문화적 물품의 생산, 그리고 자본의 발달 등 사회적 배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19세기가 되고 사대부 외에 신흥 부유층이 나타나면서, 그리고 그들 또한 "하나 갖추고 있어야 축에 빠지지 않는" 책거리 그림을 열망하면서, 책거리가 드디어 민중의 그림인 민화의 영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궁중 책가도와 달리 민화 책거리는 표현이 훨씬 자유분방하고 기발하다. 반면에 묘사된 물건들은 책가도처럼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반영하는 기물보다는 전통적으로 출세와 신분상승, 부귀영화의 기복적 상징으로 쓰인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근대 시민으로 발전하지 못한 당시 신흥 부유층의 한계를 보여주는 셈이다.
당시에는 하찮은 물건에 집착하면 큰 뜻을 잃는다는 뜻의 완물상지玩物喪志를 조선시대 선비들이 늘 마음에 새기며 도덕적 경구로 삼았었지만, 지금은 이 취향의 추구가 세상의 불평등을 변화하고 완화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렇게 책거리는 그려진 대상과 그림을 소비하고 감상했던 주체 사이에 구별없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당대 사람들에게 선사해주었다. 취향이 시대의 산업과 경제를 뒤흔들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지금의 시대 역시, 한 개인의 선택을 받은 대상과 이를 마주한 주체인 나는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후기 유물인 궁중 책가도 1점과 민화 책가도/책거리 3점 그리고 이를 변용한 6명의 작가 작품 30여 점을 선보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책거리/책가도의 새로운 가능성과 현재적 가치를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누구나 소유하고 있고 또 그 구성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자신만의 취향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책을 주제로 하여 김덕용 작가는 회화로, 조성연 작가는 사진으로 각각 본인만의 매체를 통해 현대인의 취향을 담아낸다. 공예 작업으로 우리 일상의 풍경을 표현하는 김동해 작가와 순수한 형태로부터 일상의 기쁨을 추구하는 그레이트마이너 작가는 설치, 오브제 작품을 통해 당대의 일상의 풍경과 대비되는 우리의 일상을 상상하게 한다. 채병록 디자이너는 책가도가 갖는 주요한 사상과 가치들을 텍스타일 기반 그래픽 작업을 통해 확장해간다. 마지막으로 증강현실을 이용해 과거와 현실 시간 속에서 대상과 자아를 마주하도록 하는 이예승 작가의 작품은 물아일체의 개념으로서 전시장에 위치한다.
이 시간, 그 시대 모든 선비들의 이상향이었던 삶. '밝은 창, 깨끗한 책상 아래 향을 피우고 차를 끓여 법첩과 그림을 완상하며, 좋은 벼루와 명묵을 비롯한 갖가지 문방구를 애완하는 문방청완文房凊玩의 삶'을 지향해보는 건 어떨까? ■ 우란문화재단
* 각주 1) 물아일체物我一體: 바깥 사물事物과 나, 객관客觀과 주관主觀 또는 물질계物質界와 정신계精神界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 2) 책가도冊架圖, 책거리冊巨里, 서가도書架圖. 이 명칭과 정의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단지 서가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가 아니라 문방청완 기물을 담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강관식, 2018) 즉 모두가 동일한 개념이며,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유물에 명명된 이름을 기준으로 책거리/책가도를 병기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Vol.20220105c | Books and Things: 물아일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