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풍경

조혜정展 / CHOHAEJEONG / 趙惠情 / painting   2022_0106 ▶ 2022_0115 / 월요일,1월 10일 휴관

조혜정_대나무숲앰버_캔버스에 유채_112.1×112.1cm_202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0119b | 조혜정展으로 갑니다.

조혜정 인스타그램_@sophiecho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1월 10일 휴관

유중갤러리, 유중아트센터 3층 uJung Art Center uJung Gallery 서울 서초구 방배로 178(방배동 851-4번지) Tel. +82.(0)2.599.7709 www.ujungartcenter.com

엄마의 정원(庭園)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조혜정 개인전 『비밀 풍경』에 부쳐"예술은 우리의 통속적이고 평균적이며 경험적인 물질적 사물들의 실재 속에 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예술이 개인적이고 내적인 생의 영역에서만, 즉 상상 혹은 몽상 속이나, 감정 또는 정념 속에서만 살고 있다는 것 역시 참일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Ernst Cassirer, 1874~1945)

조혜정_두다다쿵을 찾아라_혼합재료_162×130cm_2021

새로운 화가의 탄생 ● 조혜정은 화가이자 '엄마'이다. 그로테스크한 형상성과 신비로운 심미성을 지닌 개성 넘치는 현대미술가이면서, 누구보다도 가정과 육아에 충실한 행복한 엄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현실은 비범함과 평범함, 예술과 일상, 열정과 냉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작업과 육아 중 어느 것이 더 예술적이고 어느 것이 더 열정적인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매너리즘(Mannerism)에 물든 일상도, 싸구려 키치(kitsch)도 그리 나쁘게만 보이지 않고, 피로감을 이기고 힘껏 휘두르는 붓질도, 창작의 기쁨도 뭔가 이전처럼 개운하지만은 않다. 당연하다. 화가 조혜정은 엄마가 된 것이다.

조혜정_그라스정원 산책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21

세계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프랑스의 미셸 우엘베크(Michel Houellebecq)는 논란의 소설 『Platform』(2001)에서 "자기 자신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바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타인과의 관계를 못 견디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엄마라는 특별한 존재는 자식을 자신과 동일화하는 존재이며, 우리의 상식선에서는 자식을 타자화(他者化)할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들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사랑은 타인과 타인 간에 이루어지는 여러 형태의 사랑을 아주 쉽게 초월해 버린다. 이 위대한 사랑 안에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극한의 상태로 타자화시켰던 한 여인의 처연한 사연이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조혜정_맞춰놓은 시간이 끝나면_혼합재료_130×162cm_2021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삶을 선택한 타자, 초월적인 힘과 영겁(永劫)의 책임감을 동시에 부여받은 타자, 타자로서의 '엄마'는 그렇게 탄생한다. 이제 작가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졌다. 화가라는 존재와 엄마라는 존재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방법도 배워 본 적이 없다. 삶의 열정을 불태우던 그림 앞에 매일 서보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반쪽짜리 낭만을 어깨에 짊어지고 붓을 들 수밖에 없다. 화가는 그렇게 또 죽지 않고 자신을 표현한다. 아니,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된다.

조혜정_너와 나의 둘레둘레길_혼합재료_162×130cm_2021

어긋나는 '나', 미끄러지는 세계 ● 조혜정이 그리는 풍경은 기묘하고, 신선하며, 비밀스럽다. 집안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아들의 장난감들도 마찬가지다. 작가에게는 이 플라스틱 세계도 하나의 비밀스러운 풍경이자, 차라리 심리적 억압에 가까운 것이다. 어두운 공간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빛과 형체, 나무 사이로 초현실화한 게슈탈트적 연상(聯想),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 없는 언캐니(uncanny)한 장난감들, 해체된 색과 주름진 형태들로 이루어진 숲..., 작가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문명의 어법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미지의 장소이다.

조혜정_여름 밤, 오늘도 퇴근할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_캔버스에 유채_91×72cm_2021

그의 영상작업 「숲 정원」도 다소 '부드러운 정취'를 발산하긴 하지만, 이러한 미지의 신비로움을 내포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제적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몽환적인 그의 정원엔 말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시끄러운 영혼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름답고 유희적인 영상의 시퀀스(sequence)는 그저 탈주를 위한 하나의 미끼, 하나의 껍질로만 보인다. 그래서 「숲 정원」은 마치 우리를 어디로 인도한다기보다는 우리를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부터 멀리 떼어내려 한다. 미국의 현대미술가 매튜 바니(Matthew Barney)가 제작한 영화시리즈 『The Cremaster Cycle』(1994~2002)을 지배하는 신화적이고 몽롱한 정서가 오버랩될 정도로 조혜정의 영상 이미지는 익숙한 만큼 이질적이고 무의식적이다.

조혜정_그때 그 시간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20

생각해 보면, 많은 화가가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소개할 때, 00대학 교수, 00협회 이사, 00상 수상 등의 힘을 빌린다. 사실 이러한 직함이나 사회적 성취가 예술 창작과 어떠한 밀접한 상관성이 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오히려 작가가 엄마라는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존재방식을 작업의 동기에 결부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우리는 "그림을 그린다"라는 지극히 순수한 충동에 너무나 많은 불순물을 뒤섞어 놓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반성과 함께 조혜정의 작업노트를 조심스럽게 엿보자.

조혜정_확인하고픈 시간_캔버스에 유채_112.2×112.2cm_2021

"아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캐릭터들이 작품의 풍경 속에서 숨어있는 대상들로 나타난다. 아직은 미취학 아동을 전적으로 돌봐야 하는 나의 일상에서 그것들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등장한다. 그것들은 나의 시선에 발견된 것이자, 나의 무의식이 감추려 한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대상성이 동시에 반영되는 화면에 큰 흥미를 느낀다. 잘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래로 캔버스 앞에서 가장 솔직해지는 것 같다. 그림은 여전히 어렵고 혼란스럽지만, 여전히 그 필요성을 제공해 준다." (조혜정 / 작업노트 中, 2021)

조혜정_정글숲바나클대장_포토 프린트_90.7×72.7cm_2020

사물의 내면(內面) ● 커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지만, 엄마의 정원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꽃에 대한 기억과 꽃에 대한 소망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며, 꽃으로 만발할 자식의 정원에 뿌릴 거름만을 쌓아둘 뿐이다. 그래서 기분 좋은 향기보다는 땀에 젖은 쿰쿰한 냄새가, 기쁨보다는 기쁨 이후의 걱정이, 풍요로움보다는 억척스러움이 엄마의 정원을 에워싼다. 그 정원에서 가끔 보이는 빛은 어둠의 틈을 힘겹게 헤집고 나온 것이며, 골짜기와 나무에 새겨진 주름들은 생명을 잉태하고 지속하기 위해 희생한 모든 찰나의 겹겹이다. 이렇게 엄마라는 존재방식, 서로 깊숙이 연결된 우리 모두의 존재방식은 생소한 환경에 노출되며 끝없이 분열한다. 끝없이 분열하는 자에게 자신만의 이상(理想)은 사치이며, 완벽한 조화는 위선이다. 작가 조혜정은 이러한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느낌을 붓으로 표현한다. 그의 붓에는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도 없고, 이성적 필연성도 없다. 원근법의 눈속임도, 주제부와 배경의 구분도 따로 없다. 빛과 시선은 공평하게 모든 대상을 비추고 있으며, 어둠과 상념(想念)도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 안에서 모든 사물은 사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조혜정_하늘색토끼베개는 풍경을 싣고_캔버스에 유채_32×32cm_2021

자신의 삶과 존재의 '어긋남'에 솔직해지면서 작가가 얻은 것은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정신의 풍경이었다. 예리한 선들이 펼쳐지거나 쌓이고, 격정에 찬 색과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양감은 그 선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메운다. 그림을 그리며 안식을 꿈꾸지만, 누군가를 제 목숨처럼 섬기는 자에게 그것은 지나친 희망일 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작가의 캔버스엔 새롭고도 신선한 풍경이 싹을 틔운다. 예술이라는 이름을 빌려 그 모양새를 갖게 된 존재의 경쾌함을 잔뜩 머금고 말이다. ■ 이재걸

Vol.20220106a | 조혜정展 / CHOHAEJEONG / 趙惠情 / painting

@ 통의동 보안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