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rn from the St.

정진용展 / JEONGJINYONG / 鄭眞蓉 / painting.drawing   2022_0114 ▶ 2022_0125 / 일,월요일 휴관

정진용_일월금강십장생도_수묵 및 채색 혼합재료_190×140cm_202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210317f | 정진용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터테인 S ARTERTAIN S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5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日月金剛十長生圖 ● 겸재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적인 시점에 있다. 나는 동양회화미술을 통 털어 고금의 산수명화 중 금강전도를 뛰어넘는 그림을 본 적이 없다. 정선은 화가가 가질 수 있는 절정의 장비인 '신의 눈'을 장착하고 '금강전도'를 그려냈다. 알려졌듯 겸재는 기행산수의 대가로서 금강산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그 기록을 총합함으로서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창조해냈다. 이것은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이고, 상상이자 실재다. 이 장대한 상징앞에서 어느 누가 고개를 돌릴 수 있을까. 어깨에 날개가 돋아 날아오르고, 그윽한 시선으로 세상을 굽어보니 만물상이 발아래 펼쳐져 있다. 사방의 시선들이 한데로 모여 돌아 흐르니 세상은 그대로 굳어 벽에 걸린다. 圖를 통해 道를 구현함이라. 정선이 구현한 금강산경은 범천(梵天)의 세계이자 자연의 파라미타(Paramita)다. 나는 그것을 생명들이 노니는 낙원이자 선경의 판타지로 변화시키기 위해 십장생의 경물들을 풀어놓았다. 결코 거장의 시선을 거스르지 않도록, 오로지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거대함을 위해 나의 조작은 그의 창작과 조우한다. 비홍교로부터 시작된 눈걸음은 만폭동을 유람하며 부분마다 잠시 멈추고 수천수만의 오악들을 지나 비로봉으로 향한다. 그림에서 등산하는 기분, 정상에서 해와 달을 보고 다시 올랐던 S자의 코스로 하산하여 장안사에서 저녁예불소리를 듣는 것이다. 해와 달이 조우하는 금강의 세계! 나는 이런 마음으로 일월금강십장생도를 그렸다. 겸재가 직접 써 넣은 제시를 살펴본다. 개골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萬二千峯皆骨山 그 누가 마음으로 참 모습 그려 내리 何人用意寫眞顔 이제 다시 찾아 내 발로 걸어 본 들 從今脚踏須今遍 베갯맡에 기대어 그림으로 보는 것만 하겠는가 爭似枕邊看不慳

정진용_호연지경_수묵 및 채색 혼합재료_105×200cm_2020
정진용_베토벤_수묵 및 채색 혼합재료_90.9×72.7cm_2020
정진용_모짜르트_수묵 및 채색 혼합재료_90.9×72.7cm_2020

浩然之境 ●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에 대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충만한 크고 강하고 바르게 생성된 기운(其爲氣也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라 말하였다. 무릇 옛 성현들은 사람의 기상이 호연지기를 닮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른바 기운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있다는 것은, 자연은 이미 그러한 정기로 채워져 있는 공간임을 뜻한다. 다만 자연의 일부이자 그 속에 사는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도의를 배반하며 자연의 기운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호연지기는 인간의 사람됨을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자, 사람이 위대한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고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하게 된다. 자연은 말 그대로 대자연이자 사람의 성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성선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타고난 호연지기를 살면서 잃어가게 된다. 이렇게 보면 호연지기는 흔히들 알고 있듯 호탕, 호방한 기질이 아니며. 광대무변한 자연의 원리와 다르지 않은, 크고 바른 사람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의 성정을 파악하지 않고 초상을 그려낸들 껍데기를 그리는 것과 다를게 없듯이, 자연을 그대로 모방한다고 해서 자연이 품고있는 호연지기를 담아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동양고전회화의 거장들의 작품속에 나타난 산수이미지들 중 가장 맘에 드는 부분들을 채집하고, 다시 한 화면에 재조성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호연지기의 형상을 구축하였다. 이렇게 그려진 자연은 순전히 나로 인해 창생된 유일무이한 공간이며, 내가 그것에 기운을 불어넣은 화면 속 시간이다. 호연지기의 시공간은 낯과 밤이 공존하고 봄여름가을겨울이 한데 섞여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호연지경(浩然之景)이라 부른다. (작가노트 中) ■ 정진용

정진용_grape_캔버스에 목탄, 혼합재료_27×22cm_2021
정진용_A bowl_캔버스에 목탄, 혼합재료_27×22cm_2021
정진용_cork_캔버스에 목탄, 혼합재료_27×22cm_2021
정진용_cork_캔버스에 목탄, 혼합재료_27×22cm_2021

가식과 가짜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상당히 어렵다. 가식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고, 가짜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인 듯 하다. 정진용 작가의 성자로부터 떠오르는 기억과 감상은 지금을 살면서 예술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어하는 일종의 진정성에 대한 외침인 듯 하다. 과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이나 얼마나 그림,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즐길 수 있을까. 우리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마치 공기와 같이 언제나 늘 있어왔던 것들.. '그 자체'라는 말에 대한 순수함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을 그런, 그림. ● 잘 그리고 싶어하는 가식적인 행위로부터 잘 그리는 척 하는 가짜까지 결국, 현대미술은 이 둘의 상관관계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해서 그 상황들로부터 어떻게 벗어 날 수 있을지에 대한 철저한 고민. 그것이 바탕이 되어야 진정한 그림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정진용작가의 여러 복합적인 고민과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들을 보면 말이다. ■ 아터테인

Vol.20220116a | 정진용展 / JEONGJINYONG / 鄭眞蓉 / painting.drawing

@ 통의동 보안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