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_존재는 고요하다

한정식展 / HANCHUNGSHIK / 韓靜湜 / photography   2022_0119 ▶ 2022_0303 / 일,공휴일 휴관

한정식_고요 I016 연천 2012_114×11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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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2_011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KP 갤러리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 (후암동 435-1번지) B1 Tel. +82.(0)2.706.6751 www.kpgallery.co.kr

KP Gallery에서 2022년 1월 19일부터 3월 3일까지 '고요_존재는 고요하다' 한정식 사진전을 개최한다. 한국 사진예술을 대표하는 한정식은 '고요'의 미학을 완성한 사진가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한국 고유의 미와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적 사진예술'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2015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작가로 선정되어 그의 평생에 걸친 작업들을 소개하는 『한정식_고요』 전시를 2017년 개최하였다.

한정식_고요 H034 양양 2011_114×114cm

한정식은 과거 대상의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존재 본질에 대한 질문과 철학적 탐구를 "고요" 작품들을 통해 소개하였다. 이번에 새롭게 소개되는 작품들은 사진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내면의식을 추상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들로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사진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한정식은 그의 관념 속에 있는 세계에 대한 본질을 사진적 추상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개하며 "사진의 예술성을 향해 사진이 추구하는 것은 추상의 세계이다. 이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주제(theme)라는 것 자체가 추상적 관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진이 사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존재성을 사진 위에서 지워 사진 그 자체를 제시하여야 한다." 라고 그가 지닌 '고요'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 KP 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의 정신미학과 고유한 문화정체성 위에서 한국사진예술의 근간이자 토대로서 의미있는 역할들을 제시하는 한정식 작가의 '고요' 작품들을 소개하고 사진예술을 통해 사진 본연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KP 갤러리

한정식_고요 H034 양양 2011_114×114cm

공상(空像, 空相), 한정식 작가의 세계-내-이미지 ● 한정식 작가는 사진 자체가 진리(본질)가 아니라, 사진이 진리를 드러나게 하고, 진리에 이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진리를 드러내는 방편으로, 사진 교육자이자 작가로서 사진을 대할 때 엄중하고 엄격한 절차를 중시하고 사진이 담아야 할 의미를 충분히 끌어올려 형식과 내용이 다툼이 없는 조화로운 세계를 견지했다. 「고요」가 전시되고 사진집으로 묶여 세상에 나올 때마다, 세계-대상-피사체의 동일성을 지향한 작가의 정교하고 빈틈없는, 의미로 꽉 찬 사진 재현은 좀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형식처럼 생각됐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작품들은 감각과 지성이 교차하고 선명하게 흔들린 멈춤, 혹은 구체적인 상 속의 떨림 같은 비의(秘意)적인 자유가 흐른다. 무엇일까. 이 내밀한 이미지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 그 무엇도 아닌 '어떤 것'이 '있는' 사진. 한정식 작가의 미발표작에는 그러한 것들이 (고요 속에서) 소란스럽게 생성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는데, 바로 공(空)이었다.

한정식_고요 H034 양양 2011_114×114cm

한정식 작가의 사진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이것은 공(空)이다! 이 텅 빈 이미지는, 놀랍게도 작가가 그동안 발표했던 '고요' 시리즈를 촬영한 필름 곳곳에, 사이에, 끝에 아무렇지 않게 그냥 있었고, 어떤 연유에선지 세상에 전시될 선택권을 놓친(받지 못한) 사진이다. 이 사진 옆과 위와 아래…에 있던 사진들은 밖으로 나와 자신이 작품임을 입증하고 있었다면 이 사진들은 오랜 시간 빛을 머금고만 있었다. 자신의 몸에 닿은 그때 그곳의 빛을 기억하며, 사진의 시공 속에 고요히 머물렀다. 한정식 작가의 기발표작이 사진의 본질에 닿으려는 욕망에 충실했다면, 선택받지 못한 이 사진들은 '고요'의 의미도 모르고 다만 정적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어떤 것을 찍은 채 숨 쉬고 있었다는 것. 이번 전시는 한정식 작가의 세계-내-이미지, 공상(空像, 空相)이 드러나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명명한 '세계-내-이미지'와 '공상(空像, 空相)'은 한정식 작가의 작업 세계의 근간을 이룬 불교의 연기설에서 영향을 받은 말이다. 세계 내 모든 존재는 상호 관계에 의해 의미 지어지거나 의미가 지워지고, 존재는 세계 속의 인연(因緣)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는 것이 연기설의 요지이다.

한정식_고요 F014 홍천 2008_114×114cm

다양한 존재가 다기하고 다채롭게 움직이다 인연이 되어 만나고 흩어지는 것.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중요해진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즉, 학습 받은 데로 보는 것이 아닌, 대상이 드러낸 본무자성(本無自性)을 이해하는 것이고, 이것을 부처는 공(空)으로, 노자는 도(道)라고 일컬었다. 텅 비어 있는 것 같은데 무언가 드러나는 상이 '공상(空像)'이고, 모든 상(像, image)은 상호 연결 속에서 일어나고 이루어지는 것이 '공상(空相, co-existence)이다. 모두 세계 속에서 인연에 따라 현현(顯顯)하는 것이다.

한정식_고요 H052 하선암 2011_114×114cm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지만, 무엇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이 사진들은 카메라의 광학적 작용과 그곳에 있었던 대상, 공간의 상호침투로 만들어낸 이미지다. 미술사적으로 접근하면 추상(抽象)이라 하겠지만, 단순히 상이 있고 없고(有無)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노자가 이 이미지를 본다면 유무상생(有無相生) 이미지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구상과 추상을, 단어 그대로 풀이하면, 구상(具象)은 상(象)을 갖추는(具) 것이고 추상(抽象)은 여러 부분 중에 하나를 뽑아낸(抽) 낸 상(象)이다. 구상은 추상을 포함하기도 하고 때로 추상이 구상이 될 수도 있는, 둘은 사실 한 몸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개 구체적인 상이 보이지 않거나, 구상의 반대 항에 추상을 놓지만, 이항 대립적으로 둘을 해석하려고 할 때 언어 프레임에 갇히는 형국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별개일 수 있으나 존재론적으로 둘은 서로 의지, 보충, 보완하며 존재한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말과 침묵, 양달과 응달, 빛과 그림자, 흑과 백으로 팽팽한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이미지. 한정식 작가의 텅 빈 이미지는 '모든 것의 이미지'로 관객과 함께 공상(空相)하고 공생(共生)하며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사진이다. ■ 최연하

한정식_G066 화엄사 2010_114×114cm

영혼에 닿도록 '고요'한 ● '고요'한 한낮이었다. 어느 '고요'에서는 나뭇잎 하나 물에 떴다. 물 속 그림자 한 점 물고기 되어, 물 바깥 햇살 우러르며 헤엄친다. 또 다른 '고요'에서는 물이 가득 찬 하늘로 돌이 떠오른다. 그 돌은 부석사로 날아가려는 걸까? 물보다 공기보다 가벼운 돌을 본다. 물이 돌알을 낳고 있다. 난생설화는 공기 속에도 있다. 물이 사랑으로 돌을 들어 올렸고, 또 돌은 물의 영혼으로 제 마음을 비워 차츰차츰 가벼워진다. 그런 초현실을 현실로 사고 있는 사물들의 세상이 한없이 고요하다. 사물들의 영혼이 그 고요를 징검다리 삼아 이웃으로 나들이 다닌다. ● 앙리 부르통은 초현실주의를 '외과 수술대 위에서의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이라 했다. 한정식의 '고요' 작품을 처음 본 날, 부르통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초현실주의 정의를 다시 썼다. 많은 '고요'들은 순수사진이어서 형태를 알아볼 수 있지만 묘하게도 초현실로 가는 추상이다. 그는 대상의 아름다움에 관심두지 않았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존재들은 그의 사진 눈빛을 받지 않게 된다. 물과 공기처럼, 자연과 일상에서 늘 함께 살아가면서도 의식하지 않았던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을 불러내 새롭게 볼 수 있게 한다. 그는 모든 사물에 고정된 이미지를 벗겨 내려했다. 이름을 바꿔 불러주려 했다. '고요'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무기물이라 하더라도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어떤 감정 상태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뭣보다 자신이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인간이 아닌) 사물들이 감정을 드러내고 또 작가 자신의 마음밭이 그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조건 또는 어떤 상태가 '고요'였다. 그 고요는 오직 고요만으로 소통되고 교감되었다. 자신의 내면이 대상의 내면만큼 고요해질 때, 그는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너다, 너는 나다, 라고 속삭이는 그때, 바로 그때, '고요'가 태어났다. ■ 박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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