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언어

김현진展 / KIMHYUNJIN / 金賢珍 / photography   2022_0119 ▶ 2022_0206 / 월요일,2월 1~2일 휴관

김현진_공민정_피그먼트 프린트_120×80cm_20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_조형연구소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2월 1~2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3 2층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아담도 이브도 없는 1) ● 연인과 헤어지고 그와 촬영해 온 이미지들을 없애기 위해 나는 파쇄기를 구매했다. 사진가인 나는 그동안 엄청난 양의 '우리' 사진들을 남겨온 터라 뒷정리가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디지털파일이 가득한 외장하드 정리도 어려웠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던 말은 대체 누가 한 말인가. 정말 그러했다. 모든 것이 환상처럼 사라진 현실에서 물성으로 버젓이 존재하며 내 손 안에 남은 과거의 사진들을 보며 이게 나의 일상었던가, 꿈이었던가, 신비한 신기루 같은 것이었나 되짚어보느라 반년의 세월을 보냈다. ● 사진과 사랑.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 사진과 사랑이 닮은 지점이라면. 사진의 프레이밍과 사랑의 프레이밍이 닮았다면. 나도 내가 보고 싶었던 것만 봐온 것일까. 조각난 내 사진과 사랑의 언어들은, 한 페이지에 흩어진 픽셀처럼 나의 잘못된 프레이밍 때문이었나.

김현진_나의 그린 올리브 나무_피그먼트 프린트_120×80cm_2019

언젠가 현진이 내게 썩지 않는 도넛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 안이 얼마나 썩었는지 짐작은 할 수 없지만 오래되었는데도 너무 완벽한 방부처리로 겉이 멀쩡해 보이던 하트 모양의 도넛. ● 나는 배꼽이 빠지도록 웃고, 너는 웃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너와 나는 다릅니다 다르니까 사랑하는 거지, 같아지려고 애써보는 거지. 2)

김현진_다이얼로그_피그먼트 프린트_69×39cm_2019

내가 너가 될 수가 없고 너가 내가 될 수 없는 그 사이의 간격에 있는 그것. 사진 속 인물들마다 적막한 눈 속에 들어 있는 그것들은 현진의 도넛 속에 썩어가는 젤리 같은 것이었을까. 밤마저 침묵하게 하는 어두움과 견고한 것마저 울려버리는 사랑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러므로 증명될 수도 없다. 제목을 붙일 수 없는 목적 없는 대화만이 남자와 여자를 가로지르고, 그중에 소중했다 여겨지는 흩어지는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볼 뿐이다. 나무, 사슴, 뿔...

김현진_무제_피그먼트 프린트_72×48cm_2020

바다를 물수제비처럼 가로지르는 불빛은 잔잔한 사람 마음을 요동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불은 곧 빛을 잃을 것이고, 바다는 그 파도를 무수히 오갔던 것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 파도가 해야 할 일들을 할 것이다. 바다 같은 마음의 남녀는 이 시간을 지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아갈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에게 던지며 자의적으로 부시고 조각낸 말들은 하나의 픽셀처럼 어딘가에 우두두 떨어질지도. 그 무엇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을 은밀히 주어온 사진가에 의해 무언가로 재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수많은 마음들을 통해 결국 다른 사랑을 재생 산하는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두처럼. ■ 휘휘

* 각주 1) 아멜리 노통브, 『아담도 이브도 없는』, 문학세계사, 2008 2) 임지은, 『때때로 캥거루』, 웃음의 진화, 문학과 지성사, 2021

김현진_사막, 들개_피그먼트 프린트_12×8inch_2020

1. 연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찍어두었던 사진들은 사랑이 변함과 동시에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그러나 그 순간 찍혀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찍혀진 이미지는 사랑에 대한 또 다른 물음을 낳은 이미지들과 뒤섞인다. ● 어느 것이 선물이며 어느 것이 물음인지 확신할 수 없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을 것이며, 눈에 보이는 나열이 진정한 사랑의 나열인지 혹은 눈을 빼앗긴 채 사랑이라 믿고 싶은 다른 감각들인지가 중요해진다. 이는 이미지를 알고 받아들이는 방식과 소위 우리가 세상을 통해 '본다, 인지한다, 지각한다'라고 느끼는 것들과 뒤섞이며 비슷한 질문을 가진 채 남아있게 된다.

김현진_여자_피그먼트 프린트_16.5×11inch_2019

2. 보는 것과 아는 것, 그리고 믿는 것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기도 벌어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알고 있다는 믿음에서부터 출발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음성언어, 몸짓언어는 사랑을 확신하게 하고 인지하게 한다. ● 이것은 '시각적으로 보다(인지하다)'와는 다르나 우리는 '사랑을 보여줘, 아주 예쁜 사랑이야'와 같이 형태를 말한다. 사랑은 이미지를 보는 것과 같다. 유동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적으로 보이는 것, 혹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된다. 이미지를 읽어 나가며 그 안의 내러티브에 대해 파악하려고 하는 동안 여기에 거짓이 섞여 들어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쉽게 던지지 못한다.

김현진_다이얼로그_피그먼트 프린트_42×28cm_2019

또한 나열된 이 미지를 읽는 방법에서 혹은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개인의 경험과 관념에 따라 a.b.c... 그 이상의 이야기들과 선택적 읽기가 발생한다. 보는 이가 중심에 서게 된다. 이미지가 탄생하는 순간 역시도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의 선택에 따라 현실이 잘려지고 합쳐지며 선택에 의한 결과가 된다. ● 부서진 언어라 지칭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삭이고 말하고 응시하고 안아주는 과정 중 나타나는 흔히 우리가 사랑이라 믿는 감각의 구성들로 사랑이 눈에 보이는가? 그건 어떤 믿음을 가지고 확신 할 수 있는 것일까? ■ 김현진

Vol.20220119d | 김현진展 / KIMHYUNJIN / 金賢珍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