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ents in Time 시간의 순간들

이윤기展 / LEEYOONKEE / 李潤基 / photography   2022_0120 ▶ 2022_0129

이윤기_Moments in Time #01_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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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공휴일_11:00am~06:00pm

갤러리 브레송 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퇴계로 163 (충무로2가 52-6번지) 고려빌딩 B1 Tel. +82.(0)2.2269.2613 gallerybresson.com cafe.daum.net/gallerybresson

컴퓨터 창업자에서 흘림사진 고수로-팔순 사진가 이윤기의 인생 2모작 ● 풍경 찍는 일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 이렇게 외치듯 반문하며 2008년 사진작가로 제2의 인생 재출발을 선언했을 당시 그는 다리와 등짝, 엉덩이가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한 전직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였다. 그것도 왕년에 한국의 컴퓨터 산업을 주름잡았던 유망 기업의 수장이었다. 2010년 9월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휙휙 스쳐 지나가는 자연 풍경들을 포착한 흘림 사진들로 첫 데뷔 전시인 '풍경의 가속도'를 열었을 당시 그는 이미 백발이 성성해서 은퇴 생활을 한 지가 10년 가까이 된 즈음이었다. 하지만, 사진 앞에선 개구장이처럼 웃고 떠들며 들뜬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르는 신예 작가의 풍모를 내비치곤 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1970~80년대 국산 컴퓨터 개발의 주역이었던 그의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다. 그때 이윤기 작가는 자신 있게 말했었다. "흐르는 풍경들을 나만의 주관으로 렌즈와 앵글에 담는다는 게 너무 좋아요. 왜 이제야 만났을까 싶어요. 일주일에 서너 번씩 현장에 찍으러 나갑니다. " 순박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괄괄한 호랑이상 느낌도 주는 이 작가는 1970년대 초 동양전산기술을 창업했다. 1980~90년대 대한민국 컴퓨터 산업의 여명을 열었던 삼보컴퓨터의 사장과 엘렉스 컴퓨터 회장을 지냈다. 최초의 국산 조립 컴퓨터 생산과 국산 가정용 피시의 첫 국외수출 등을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이윤기_Moments in Time #01_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2

퇴임한 뒤 기업컨설팅을 하면서 여가 때는 술로만 소일해왔던 그가 사진에 빠진 건 2007년부터다. 사업으로 숱한 성공과 실패를 겪었던 삶의 흔적들을 자서전처럼 사진에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노라고 그는 11년 전 인터뷰에서 털어놓았었다. "한때 상사로 모셨던 두산그룹 박용성 전 회장의 영향이 컸어요. '사보' 등에 작품들을 실어 속 깊은 사진 취미를 드러내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죠. 제가 어릴 적에 아이들 사진을 좀 찍어준 경험도 있고...나도 은퇴해서 저 양반 하던 것 해봐야지 하는 생각은 막연하게 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육십 대 은퇴한 그가 고독하게 셔터를 누르는 사진쟁이의 세계에 빠져들기까지는 십 년 가까이 시간이 필요했다. 직장생활하면서 한번도 쉬어본 적도, 놀아본 적도 없었다는 그는 일단 실컷 놀아보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십 년 가까이 놀았지요. 그런데, 아이고 이젠 안 되겠다 싶은 거예요. 놀아봤어야 노는데 놀아본 적이 없잖아요. 십 년간 놀아보니 별 재미 없고 폐인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맨날 술만 먹고. 그래서 소개받아 김남진 관장을 만난거지. 아무 지식 없이 일단 셔터부터 누르기 시작했어요."

이윤기_Moments in Time #01_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2

"처음에 서울 남산에 사진을 찍으러 갔어요. 거기서 본 단풍 숲과 서울 전경을 촬영했는데, 그냥 포착하고 찍는 것은 적성에 안 맞더라구.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데 김남진 관장이 조언해줍디다. 힘들어도 흔들면서 찍는 것은 어떠냐고. 그래서 그렇게 해봤더니 내 감각과 감성에 맞더라고요. 그 뒤에 자연스럽게 차 타고 다니면서 흔들리는 차체 안에서 자연과 사람들 움직임을 담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초창기 사진들은 셔터 속도를 느리게 조작한 뒤 차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하면서 포착한 도시의 거리, 숲, 인파 등의 흘러가는 풍경이었다. 움직이는 풍경과 군상의 이미지들이, 독특한 빛의 잔상을 여러 각도로 끌리듯 남기면서 붓질한 그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그만의 시선으로 세상의 움직임을 틀지워 잡아내고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처음 찍을 때는 엉망진창으로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김 관장이 초창기 찍은 거로는 괜찮은 거요 하면서 용기를 주더라고. 그래서 생각한게 손으로 흔들지 말고 차를 타고 가면서 찍는 것이었어요. 전철 타고 가다 보면 창밖으로 가로수가 휙휙 날아가잖아. 아, 저걸 어떻게 카메라로 표현할 수 없을까. 휙휙 대본 까먹잖아. 다 없어지잖아. 저걸 정지된 상태로 담아보자 해서 자동차 타고 가니까 하기 시작한 거지. 십 년 넘게 초지일관하긴 했지요."

이윤기_Moments in Time #01_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2

그는 지금도 계속 가로수들과 숲들이 차창 밖으로 획 휙 날아가는 장면들을 찍고 있다. 처음에 흘림 사진을 할 때는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이런 걸 왜 하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계속 찍다 보니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게 있었다. 바로 운동감이 주는 기운생동의 쾌감이었다. 출사 초창기엔 해변가를, 중반 이후에는 산 쪽을 주로 다녔다고 한다. 나라 안의 웬만한 자연 지형과 해변가는 거의 다 돌았다. 전국 각지의 모든 풍경이 다 흘러가는 이미지들로 들어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가 좋아하는 산 쪽을 가는 게 쉽지 않아졌다. 코로나 때문에 다 막아놨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은 차가 못 들어간다. 그래서 빙빙 돌아서 산림 농사 때문에 만든 샛길인 임도로 출사하러 다니고 있다고 한다. "거긴 안 막아놔서...그냥 무작정 차를 몰고 들어가 찍어버리곤 하지요. 허허..." 10년전 인터뷰 때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출사를 나간다고 자신있게 얘기했었지만, 이젠 팔순이 가까워지면서 체력 탓인지 출사 횟수도 한 달 너덧 번에서 두 번 정도로 줄었다. 그래도 한번 출사 때마다 1000장 이상의 흘림사진들을 찍어온다. 이 사진들을 다시 추리는데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두 번의 출사로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고 한다.

이윤기_Moments in Time #01_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2

작업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야구로 말머리를 돌렸다. 많이 건질 수 없는게 있다고, 야구 타율은 잘하면 삼 할 정도이고 못 치는 사람은 일 할에 불과하다고. 그러면서 자신의 사진을 작가는 일 할짜리 타자에 비유했다. "이거는 그거의 밑에 밑에 정도에 불과하지요. 몇백 장을 찍어야 하나 정도 작품이 나와. 왜 그럴까? 그러니까 만족도지요. 찍으면 다 나오지요. 아웃풋은. 그게 작품으로서 여러 가지 모양 갖췄느냐?. 이건 아니야. 그러니까 몇백 장을 찍어야 평균 한 장 건지는 거죠." 그의 흔들기 사진 작업은 처음엔 카메라를 붙잡는 손가락 힘이 잔뜩 들어간 탓에 경직된 흔적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바다와 숲 등에서 비치는 색감이나 형상의 조형성이 뚜렷해지고 나름의 경지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젊은 수강생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감성도 훨씬 젊어졌다. 앵글에 포착하는 시선의 날카로운 감각이 사진 속에서 일종의 힘이 응축된 건 같은 이미지로 나타나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전국 각지의 산야와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익힌 눈맛이 작용해서 최근 찍은 근작들은 막연히 흘러가는 잔상들을 찍었다기보다는 분명한 형상성을 지닌 풍경의 덩어리를 포착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경영과 촬영은 과정이 비슷해요. 크리에이티브(창조)하는 거니까요. 비즈니스가 성과를 확인하는데 수년이 걸리는 반면 사진은 순간순간 창조물이 나와 바로 감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죠. 잡념 없이 몰입할 수 있고 찍기 위해 열심히 걷고 운동하니까 건강에도 좋고..."

이윤기_Moments in Time #01_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2

현대회화와 사진에 새 지평을 연 영국의 그림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는"우리는 삶의 열정적인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와 연결을 끊지 마라"란 명언을 남겼다. 인생에 대한 집요한 호기심으로 세상과 삶을 낯설게 바라보며, 새로운 일과 금기에 끊임없이 도전해보라는 뜻일 것이다. 육체적 노화의 제약을 넘어 삶을 즐기며 자신의 사진 세계를 갈고 닦아온 이윤기 작가 또한 호크니처럼 열정적인 삶의 탐험을 지속하리라 믿는다. 을지로 커피숍에서 함께 수다판을 벌인 기자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그가 일러주었다. "내가 62학번이요. 흘림사진의 이미지들처럼 청춘의 나이는 60년 전 휙 사라졌지만, 하여튼 멋지게 나이 들고 남에게 민폐 주지 않고 조용히 세상과 같이 흘러가는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진 덕분에 조용히 세상과 같이 간다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그게 사실 인생의 제일 중요한 목표가 아닌가 싶고..." ■ 노형석

Vol.20220120e | 이윤기展 / LEEYOONKEE / 李潤基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