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순환

김기수展 / KIMGISOO / 金基洙 / painting   2022_0126 ▶ 2022_0222 / 월요일 휴관

김기수_기원의 조건_캔버스에 유채_195×130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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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화동 132번지) Tel. +82.(0)2.738.5511 www.artbit.kr

공간, 폭력, 여정1. 이번 전시에 김기수가 선보인 작업은 예의 풍경그림이다. 그의 작가 이력은 압축성장이 초래한 이곳 도시공간의 폭력성, 그 난맥상에 대응한 일련의 실험 작업을 선보이며 시작되었다. 개념주의적 사진, 퍼포먼스 성격의 야외 오브제 설치, 아카이브 등으로 전개된 이 작업들이 풍경그림으로 전화된 지도 어느덧 10년을 넘어선다. 그 동안 4번의 개인전 『밤산책』(11), 『녹색광선』(12), 『대단지 입구』(14), 『창동 레지던시 입주보고서』(16)이 있었고, 이번 전시 『외곽순환』은 시간 격차를 두고 5년여 만에 열린다.

김기수_낯익은 능선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21

2. 초기 그림에서 일단 눈에 띠는 것은 작업 모티브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는 일상 주변에서 맞닥뜨린 장면들을 모티브로 삼는다. 집 근처 골목이나 동네 주위를 거닐면서, 차를 타고 가거나 주차하는 중에, 어떤 장소를 방문하거나 산을 오르면서 우연히 마주치거나 눈에 들어온 장면들을 선택한다. 하긴 이런 방식 자체는 특이할 것도 없다. 하지만 작업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런 식의 모티브 선택이 일상의 사물과 공간을 대하는 작가의 감각적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밤산책』에는 낮의 일상에선 주변화되어 있던 밤의 사물과 정경들이 등장한다. 밤의 빛으로 드러난 사물과 정경들은 낮의 그것들과는 다르다. 바위, 인공폭포, 성벽, 정자, 국사당, 화분, 골목 길바닥을 지나는 고양이, 텅 빈 공원의 풀밭, 불 켜진 문방구 등은 밤의 어두움에 뒤섞여 산란되는 빛을 받아 기묘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그 기묘함은 한편으로 우리들이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 체화한 자동화된 감성체계를 해체하는가 하면, 동시에 일상 속에서 상처받은 우리의 감각을 몽환적인 매력의 이질적 세계로 이끌어 위무하기도 한다. 작가는 일상 속에 있으나, 일상의 주변을 떠돈다. 그리고 그 주변부에서 일상을 빗겨나간 어떤 틈새와 마주한다. 밤의 사물, 정경이 펼쳐놓는 이질적 감각세계를 감수하는 것은 또 다른 삶을 기대하는 것과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김기수_둘레 3_캔버스에 유채_90.5×162cm_2021

『밤산책』의 경우 사물과 정경의 감성적 전환에 초점이 있었다면, 『녹색광선』에선 사물 혹은 상황 자체의 황폐함이 전면에 부각된다. 고속도로 터널 입구의 멍한 풍경, 비어있는 다이빙 풀의 하릴없는 물질적 존재감, 물 뿜는 분수의 허망한 풍경, 연립주택 입구를 장식한 색 전구의 무심한 반짝임 등이 그렇다. 이 작업들이 확인시켜 주는 것은 일상의 감각과 의미가 무화된 순간들이다. 하지만 이 순간은 자동화된 감각의 해체나 상처받은 감각의 승화과정에서 생겨나기보다는 우울증적으로 고착된 작가의 시선에 의해 발생하는 듯하다. 작가는 녹색광선*을 찾아 헤매지만, 녹색 빛은 화면 위를 언뜻언뜻 떠돌고 있을 뿐이다. 사물과 공간은 무의미하게 존립하는 망연자실한 광경 안에 빠져들어 있다.

김기수_강변의 아침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21

3. 『대단지 입구』展에서 그가 다시 현실 공간으로 되돌아 온 것은 아마도 이러한 막막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지 모른다. 일상 속에서 그 너머의 감각에 몰입하던 그는 이제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장소, 나름의 역사와 사건, 그곳을 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기억이 새겨져 있는 성남이라는 시공간에 위치를 잡는다. 아마도 그는 현실 공간에 축적된 시간을 통해 현재와 화해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업은 공적, 사적으로 남겨진 사진들(성남시 공식 행사들, 사건, 기록, 친척, 지인 등), 기억으로부터 이끌려 나온 장면들(주스, 참외, 찬송 등), 그리고 시간의 흔적이 배어든 공간과 건물, 장소로부터 모티브를 채택해 그려진다. 하지만 이 장면들 각각은 서로 모아지지도 연결되지도 않는다. 작가는 장면 하나하나를 마치 파편처럼 다룬다. 그리하여 그 장면들 각각은 연쇄적으로 중첩된 수많은 기억과 사건,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알레고리로 작동하지만, 결국은 모호한, 요해불가능한 무엇으로 남는다. 이들은 상처를 떠올릴 뿐 위무하지 않으며, 기묘한 매력을 발산하지도 않는다. 단지 끊임없는 연상을 일으키며 그렇게 존립할 뿐이다.

김기수_외곽순환로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21

4. 김기수의 이번 전시 제목은 『외곽순환』이다. 작업에서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초기 그림에서처럼 모티브를 다시 일상 주변에서 채택한다는 점이다. 살고 있는 동네의 골목, 건물, 집 안팎의 정경을 그린 작업이 여럿 있지만, 주를 이루는 것은 방문지나 여행지에서 혹은 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마주친 장면이다. 하지만 사물과 공간, 정경을 대하는 작가의 감각적 태도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이 변화가 어떤 식으로든 '화해'를 모색하려는 작가의 새로운 지향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간 김기수의 그림들 배후에는 모종의 폐허감각 같은 것이 깔려있었다. 초기의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작업들이 급속한 난개발로 인한 공간 환경의 폭력성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이 그랬고, 그림으로 전환한 이후 작가가 끊임없이 일상의 주변을 떠돌거나(『밤산책』), 일상 곳곳에서 그 개발 성과들이 남겨놓은 공허함을 응시했던 점을 볼 때 그렇다(『녹색광선』). 『대단지 입구』에서 모든 장면들이 부서진 파편처럼 병렬될 때 그 배후에 놓여있던 것 역시 그 같은 폐허감각 때문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가 이 폐허감각으로부터 큰 보폭으로 걸어 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기수_섬망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21

이번 전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업 중 하나는 「기원祈願의 조건」(2021)이다. 이 그림은 우연히 방문한 바닷가 절의 전망대 마당을 그린 것이다. 난간 위편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공간 앞쪽에는 두 개의 기물이 서있다. 앞쪽 것은 독특한 형태의 3층짜리 음수대이고, 뒤쪽 '바르게 살자' 류의 돌덩이에는 무언가 글이 적혀있다. 바닥엔 음수대에서 넘쳐 나온 듯 물이 흐른다. 첫 눈에 이 그림은 '못그린 그림'으로 보인다. 붓질은 통상 아마추어가 공간을 메꾸는 데 주력하듯 조악해 보이며, 색채 또한 크레용을 사용한 아동화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형태 또한 세부 묘사 없이 대충 윤곽에 맞춘 듯 여겨지며, 화면의 구성은 실제 정경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기물들이 과장된 비례로 위치해 있어 괴이해 보이기까지 한다.

김기수_노래방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7~21

하지만 약간 거리를 두고 그림 전체를 조망해 보면, 이 그림이 매우 잘 그려진 그림임을 알아챌 수 있다. 우선 화면 속 공간은 편하게 열려있고, 구성물들은 차분하게 그 안에 안착하고 있다. 바다와 파도는 부피감을 형성하여 부딪침과 움직임을 드러내며, 빛은 하늘과 구름 속을 부유하며 미세하게 흐르는 듯 반짝인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바닥은 안정되어 있고, 심지어 물의 흐름도 고졸하여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림의 초점은 기도하듯 손 모으고 있는 음수대와 뜬금없는 권위를 내뿜으며 멀뚱히 자리하고 있는 돌비석에 있다. 부조화를 과시하는 듯 홀연히 두드러진 이 두 개의 기물은 하지만 철저히 작가의 의도에 따라 형상화된 것이다. 작가는. 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 기물들이 자연, 관광, 종교, 정치, 전통문화가 한국식으로 생경하게 혼합된 이 장소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게끔, 그것들을 부각시켰다. 이 광경을 수용자들이 인문의 시선으로 반추할 있게끔 구성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첫 눈에 못 그린 느낌을 주던 화면 안 요소들은 작가가 이 장소의 황당한 리얼리티를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취한 방법의 소산임을 알 수 있다.

김기수_학교 2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21

5.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은 이번 전시의 작업들이 이전과 달라진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여러 차이를 언급할 수 있겠지만 두 가지 지점에 주목하고 싶다. ● 하나는 앞서 언급했듯 배드페인팅**의 경향이 나타나는 점이다. 이는 나쁜 대상, 곧 폭력적으로 형성된 이곳 현실공간에 핍진하는 형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그런 공간의 형상화를 외면해 온 기존 예술적 스타일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의도적인 마구잡이 붓질과 검은색의 비상식적 활용, 세부묘사를 생략하는 단순화가 기법적 특징이다. 이번 작업들 중 「강변의 아침」이나 「나무」, 「입산」 등이 대표적 사례다. ● 다른 하나는 특유의 추상抽象 방법을 활용한 점이다. 이는 작가가 모티브로 채택한 장면이 발산하는 정보(감각적, 정서적, 인문적)를 필요에 따라 생략(단순화), 응축, 전환시키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음을 말한다. 앞서 「기원祈願의 조건」 역시 작가가 파악한 장소의 요체를 이런 추상 장치를 활용, 재구성해 제시하는 방법을 사용한 바 있다. 「낯익은 능선」(2021)에선 이 장치를 좀 더 명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은 흔히 볼 수 있는 산사山寺의 한 장면을 그렸다. 좌측에 법당의 일부가 보이고 아래쪽으로 계단이 있다. 멀리 중앙부와 우측으로는 능선이 지나고 중앙 뒤쪽에 탑이 그리고 우측 앞쪽에 나무 한그루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계단은 정성스럽게 그려졌지만, 나무는 동그라미 정도로 표현되고, 탑은 윤곽선만 투명하게 제시되며, 산은 능선 정도로 단순화된 표현방식이다. 이를 통해 낯익은 풍경은 결코 낯익지 않은 그림으로 변화되며, 작가에 의해 새로 해석된 풍경으로 전환한다.

김기수_예술적인 저녁_캔버스에 유채_145.7×145.7cm_2021

이번 전시의 작업에서 이 두 가지 회화적 장치는 거의 모든 작업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활용된다. 나는 이 두 장치가 작가가 그동안 회피해왔던 폭력적인 현실 공간 혹은 공간의 폭력성과 직접 대면하기 시작한 신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의 폭력성에 대한 작가의 저항, 회피, 절망, 알레고리적 대응은 이제 숙고된 대면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유의 대화 방식을 획득해내고 있다. 이 지난한 과정은 작가가 이제 비로소 지나치게 근접해 있어 상처(충격)로만 다가오던 대상, 곧 근대화의 압축성장이 초래한 이곳의 공간 현실과 그 폭력성에 대해 일종의 거리두기가 가능해졌음을 알려준다. 작품 「둘레 3」은 이렇듯 거리두기를 통해 확장된 시공간 감각이 나름의 성취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이영욱

* 각주 * 해돋이 직후 또는 해넘이 직전에 태양방향 수평선 근처에서 녹색 빛이 관측되는 광학적인 현상, 에릭 로메르가 감독한 영화 『녹색광선』(1986)에선 이 광선을 보게 되면 자신의 진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진실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 배드 페인팅은 1970년대 미국 형상미술 중 한 흐름에 붙여진 명칭으로, 비평가이지 큐레이터인 마르시아 터커Marcia Tucker가 1978년 뉴욕의 뉴뮤지엄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했던 동명의 전시 이름에서 유래. 배드페인팅은 당대의 스타일들에 대한 의도적이며 고의적인 불신을 표방하는 작품들을 말함. 특징은 형상의 변형, 미술사적 자료와 비미술 자료의 혼합, 환상적이거나 부적절한 내용 같은 것들. 배드 페인팅은 정확한 재현이나 예술에 대한 관습적 태도를 무시하는 가운데 재미있으면서 뭉클하기도 하며, 종종 좋은 취향이라는 기준을 비웃는 황당함을 드러냄. 위키피디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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