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mi : touchable channel7

김규리_김유진_류민수_신보라_이경수_정우빈展   2022_0204 ▶ 2022_0215

김규리_rump series(#1~19)_가변크기_2021 김규리_shall we?_피그먼트 프린트_60.4×85.1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간 / 건국대학교(서울) 현대미술학과 기획 / 건국대대학원 현대미술학과_참여작가 공동

관람시간 / 12:00pm~09:00pm

뿐또블루 PuntoBlu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22길 61 1층 Tel. +82.(0)2.469.9254 puntoblu.co

7명의 신진 작가들이 모여 공동기획으로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전시를 카페 뿐또블루에서 진행합니다. 'OMNI' 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것, 모든 방식, 모든 곳에 라는 의미망 안에서 각자의 채널을 켜고 방송을 한다는 컨셉으로 '만져지는 듯'한 touchable channel 이라는 작품 영역들을 보여주게 됩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페인팅에서 부터, 조형물, 3D 프린팅, 인터액티브 미디어 아트 등 각자의 매체들로 각자의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선보입니다. ■ ommi : touchable channel7

김유진_untitled_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21 김유진_untitled_A-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80.3cm_2021 김유진_untitled_A-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0×30cm_2021

"나무는 사본들을 분절하고 위계화한다. 사본들은 나무의 잎사귀들과 같다. 리좀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그것은 사본이 아니라 지도이다. 지도를 만들어라. 그러나 사본은 만들지 말아라. … 지도는 자기 폐쇄적인 무의식을 복제하지 않는다. 지도는 무의식을 구성해 낸다. 지도는 장(場)들의 연결접속에 공헌하고, 기관 없는 몸체들의 봉쇄-해제에 공헌하며, 그것들을 고른판 위로 최대한 열어놓는 데 공헌한다. 지도는 그 자체로 리좀에 속한다. 지도는 열려 있다. 지도는 모든 차원들 안에서 연결 접속될 수 있다. 지도는 분해될 수도, 뒤집을 수 있으며, 끝없이 변형될 수 있다. 지도는 찢을 수 있고, 뒤집을 수 있고, 온갖 몽타주를 허용하며, 개인이나 집단이나 사회 구성체에 의해 작성될 수 있다. 지도는 벽에 그릴 수도 있고, 예술 작품처럼 착상해낼 수도 있으며, 정치 행위나 명상처럼 구성해낼 수도 있다. 언제나 많은 입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도 리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김재인 옮김, 『천개의 고원』, 새물결, 2001, p.30)

류민수_새로운 습관_3D print filament, MDF, wrench bolt, drawer rail, gas shork absorber, hinge_가변크기_2022

『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현실문화, 2015)이란 책이 있다. 부제는 '동시대 미술의 기원을 찾아서'. 미술이론 연구자 문혜진이 펴냈다. 근거 자료가 촘촘하고 사례도 풍부하다. 논지도 논리적이고 명료하다. 저자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한국미술계에서 벌어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논쟁의 형성과 실천을 밝히려는 시도로 읽힌다. 나아가 불완전한 근대, 미완의 모던 프로젝트를 경험한 한국미술계의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부연하자면, 이 책은 "1990년을 전후로 한 한국미술의 동시대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는 여정으로 읽힌다. 저자가 품은 문제의식은 다음 문장에서 찾을 수 있다. ⓵"한국 현대미술사를 서구 미술의 불연속적인 다시 쓰기이자 새로운 문화창조의 장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논쟁은 한국 현대미술사상 가장 격렬했던 '번역의 장'으로 독해할 수 있다", ⓶"이 책의 개요가 약 25~30년 전에 벌어진 포스트모더니즘 번역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라면, 과거의 사건이 사실로서의 역사적 의미 외에 현재의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서두에 언급한 동시대성의 의미가 될 것이며,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있다. 번역의 지도라기보다 오역의 지도라는 명칭이 더 적절한 혼란의 양상을 발전 도정 중 미숙의 소치로 볼 것이냐, 아니면 한국적 특수성이자 의도치 않은 생산의 계기로 볼 것이냐에 따라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⓵과 ⓶는 상호 보완적이다. 그 주장과 질문은 현재 시점에서도 유효한 명제다.

신보라_About her No.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116cm_2021 신보라_About her No.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15cm_2022 신보라_About her No.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0cm_2022 신보라_The lake_캔버스에 유채_22×15cm_2022 신보라_The scale of shadow_캔버스에 유채_80×116cm_2018

'포스트(post)'는 해석에 따라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후기(後期)', '이후(以後)', '탈(脫)'로 해석하면서 제각기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계승이냐, 극복이냐, 단절이냐 상호상반되는 입장이다. next, beyond, anti처럼 간극은 천지 차이다. 서로 완전히 다른 결이다. 안타깝게 1990년대 활동했던 현재 586세대는 이 조건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 반면 1990년대 출생한 동시대 청년작가는 이런 문제에서 완전 자유롭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무런 상관없다. 이미 포스트를 포스트 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술은 사회에 대한 반응이란 사실은 변함없다. 마찬가지로 창작 의지를 지닌 주체의 행위로 형상화해 낸 유의미한 결과물이 작품이란 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시대 미술이란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과 사유를 전제로 한다. 문혜진이 사유하고 추적했던 문제의식이 2022년 2월 현재, 여전히 유효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1990년대 전후 한국이 서구 미술을 수용-번역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오역(誤譯)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경수_fire-ing house_treadmill_interaction video_2021

『omni : 7 touchable Channel전』은 건국대학교 현대미술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예비)작가 일곱 명이 참여하는 전시다. 이들은 모두 19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났다. 따라서 1990년대 한국미술 현장을 직접 겪지 못했다. 1997년, 이른바 IMF 외환위기 사태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그때 그들은 그저 유아기였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두려움과 기대도 그들 몫은 아니었다. 세기말적 징후와 2000년대 서막이 열리는 질곡과 희망은 철저히 그들 부모세대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전시 얘기에 앞서 1990년대 한국미술신(scene)을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멀지 않은 과거를 돌이켜 봄으로써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시대정신을 반추(反芻)하기 위함이다. 오늘은 반드시 어제와 연결되어 있다. 같은 이치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치열했던 1990년대와 그때 태어난 이들은 지금도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란 어느 경우든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특정한 양상의 세계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주체-작가는 모두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엮여있다. 이 구조는 수직보다 수평에 가깝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를 '리좀'으로 설명했다.

정우빈_act #1-1,#1-2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20 정우빈_beat#1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1 정우빈_beat#2~9_캔버스에 유채_18×14cm_2021 정우빈_beat_단채널 비디오_00:03:26_2021
최정현_캡션…_종이에 프린트_314.1×57.5cm_2021

『omni : 7 touchable Channel전』은 '비주류의 태도'를 선언한다. 중심에서 한발 비켜선 유동적 영역에서의 의미화를 시도한다. 주류에 역행하는 가치전복의 도전을 감행한다. 출품작 형식은 다채롭다. 전통 회화부터 영상미디어, 3D 프린트, 웹 아트 등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파편화된 집단의 특성은 독특한 개별성을 지닌 지층의 단면으로 드러난다. 여기엔 중심이 없다. 획일화를 조장하는 통일성은 없다. 연결과 접속으로 생성되는 가능성의 변용태(affect)가 그물코처럼 엮여있을 뿐이다. 비약하자면, 탈영토화의 여러 운동과 재영토화의 여러 과정이 끊임없이 가지를 뻗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내치면서 상호작용한다. 일곱 작가의 배치물-작품에서 발견되는 지층의 층위는 현재진행형으로 생성되는 '몸짓의 흔적'이다. ■ 이준희

ommi : touchable channel7展_뿐또블루_2022
ommi : touchable channel7展_뿐또블루_2022
ommi : touchable channel7展_뿐또블루_2022

L'arbre articule et hiérarchise des calques, les calques sont common les feuilles de l'arbre. Tout autre est le rhizome, carte et non pas calque. Faire la carte et pas le calque….La carte ne reproduit pas un inconsciens termé sur lui-même, elle le construit. Elle concourt á la connexion maximum sur un plan de consistance. Elle fait elle-même partie du rhizome. La carte est ouverte, elle est connectable dans toutes sesdimensions, démontable, reversable, susceptible de recevoir constamment des modifications. Elle peut être déchirée, renversée, s'adapter á des montages de toute naturem être mise en chantier par un individu, un groupe, une formation sociale.On peut la dessiner sur un mur, la concevoir comme une oeuvre d'art, la construire comme une action politique ou comme une méditation. C'est peutétre un des caractéres les plus importants du rhizome, d'être toujours á entrées multiples. (Gill Deleuze, Félix Guattari, Mille Plateaux, Les Éditions de Minuit, 2013, p. 30) ● In the book "Korean Art and Postmodernism in the 1990s: Tracing the Origin of Contemporary Art" (published by Reality Culture in 2015), the author Moon hye-jin, an art theory researcher, presents solid data and abundant cases with a logical and clear argument and summarizes postmodernism controversy in the world of Korean art during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in an attempt to reveal the discursive construction and practice of postmodernism art. This book also contains anxieties about the 'contemporaneity' of Korean art world that experienced incomplete modernity and unfinished modern project. In other words, it looks like a journey to seek an answer for what the contemporaneity of Korean art around 1990 means. The author's critical mind on this issue is given in the following sentences; First, "From a viewpoint that Korean contemporary art history is considered as a discontinuous rewriting of Western art and a new chapter of cultural creation, the postmodernism art controversy can be read as the fiercest "translational progress" in the history of Korean contemporary art."; Second, "If the outline of this book draws a postmodernism translation map created about 25~30 years ago, what does the past events mean to us today besides historical significance as a fact? The answer to this question would be the meaning of contemporaneity as mentioned at the beginning of this preface, which lies in how we look at the postmodernism controversy. In the situation of chaos that a mistranslation map is a better word rather than a translation map, the meaning will be different depending on how we view this situation as an immaturity on a path to progress, or as a Korea-specific phenomenon and an opportunity of unintended improvement." Both sentences are complement each other. Their arguments and questions are valid at the moment. ● The perspective of "post" vary with interpretations including 'the latter part(後期)', 'after this(以後)', and 'escaping from(脫)'. These meanings are in different sides of 'succession', 'conquest', and 'discontinuity', respectively. As with similar cases such as next, beyond, and anti, the gap among interpretations is as different as light from darkness. That is, they are completely different in texture. Unfortunately the current 586 Generation who were active in the 1990s were very confused in the process of selecting these conditions. On the other hand, young contemporary artists born in 1990s are totally free from such problems, don't mind at all, or have nothing to do with it at all. Because they are already post-post generation. Nevertheless, it does not alter the fact that art is a reaction to social situation. Likewise, the viewpoint for an art work is not much different where artwork is a meaningful production as embodied by an act of subject who has a will of creation. Contemporary art presupposes experiences and thoughts under present conditions, 'here' and 'now'. That's the reason why the problem consciousness which the author Moon hye-jin has been thinking and tracing, still holds good as of February 2022. But one difference is that mistranslations as well as trial and error that Korean contemporary art had experienced in the process of accepting and translating Western art around 1990s has been reduced. ● 『omni : 7 Touchable Channel Exhibition』 is hosted by seven young artists who attend Graduate School of Contemporary Art at Konkuk University. They all were born in mid-late 1990s, and therefore they had no direct experience of not only the Korean art field in the 1990s but also the 1997 IMF financial crisis. At that time they were just in infancy. Similarly such an anticipation or a dread in welcoming the new millennium was not their share. Because any apocalyptic signs and hope or despair in an opening act of the 2000s wholly belongs to their parents' generation. Here is why I mention the Korean art scene of 1990s before introducing this exhibition. The aim is to reflect the zeitgeist of youth generation living in this day by looking back the not-so-distant past. Today is connected to yesterday without fail. Like this, a connection somehow exists between the fierce postmodernism debates in the 1990s and these young artists born at that time. In any case, human beings never exist in its pure form, because they are 'social existence' as formed in the world of certain particular aspects. Accordingly, individual-subject-artist are intimately connected to one another in certain social relationships. This structure is close to horizontal rather than vertical. Gil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 expressed this as 'rhizome'. ● 『omni : 7 Touchable Channel Exhibition』 declares 'an attitude of non-mainstream'. This exhibition attempts signifying in a fluid area which is off center and stands aside. It takes on the challenge of overthrowing values that go against the mainstream. Those exhibition works are colorful in style, with a broad spectrum from traditional painting to video media, 3D printing, and web art. The characteristics of fragmented groups reveal the section of the geological strata having unique individuality. There is no center here. There is no unity to encourage uniformity. The affect of possibility as produced by connections is just interwoven like a net. With a bit of exaggeration, the exhibition works look like that various movements of deterritorialization and several processes of reterritorialization are incessantly spreading branches. They interact in certain ways of accepting and rejecting one another. The multiple layers of strata in the installation works of seven artists indicate 'the traces of gestures' being generated in progress. ■ 이준희

번역_나애실

Vol.20220204d | ommi : touchable channel7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