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늘 열려 있었어요

박광선展 / PARKKWANGSUN / 朴光善 / painting   2022_0225 ▶ 2022_0331 / 주말 휴관

박광선_문은 늘 열려 있었어요展_아트스페이스 휴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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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기획 / 아트스페이스 휴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 휴관

아트스페이스 휴 Art Space Hue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111 3층 Tel. +82.(0)31.955.1595 artspacehue.com

"나는 합판을 망치로 내려치거나 톱과 펜치 등으로 자르거나 뜯어서 인물의 형태를 만든다. 그렇게 얻어낸 화면 위에 유화물감을 바르고 닦아내기를 반복해서 재현한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화면에 무엇을 그릴지가 아니라 화면 자체가 고민이었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입듯이 나는 합판이라는 소재를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다. 합판은 인물을 표현하려는 나의 작업과 많은 부분 부합하는 것이었다. 빙판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운 캔버스의 표면은 내가 제대로 서기 힘들 정도로 미끄러웠다. 김연아 선수의 실력 정도는 되어야 관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노트) ● 박광선 작가는 인물을 그린다 아니 지운다. 합판에 그려진 인물들은 그려짐과 동시에 그 특유의 거칠고 메마른 표면 안으로 스며든다. 캔버스는 아직 그에게 너무나 매끄러운 재료라며 작가는 합판에 그것도 버려진 합판에 눈길을 멈춘다. 작가가 초기 작업부터 거의 유일하게 회화의 재료로 선택한 합판은 무언가의 쓸모에 의해 사용되고 버려지는,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감추는 헌신과 희생의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합판의 주변을 잡아 뜯어 인물의 형태를 만들고 가장 가까운 지인인 가족과 자신의 모습을 그 위에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의 기억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낸 인물들은 다시 그 안으로 묵묵하게 몸을 숨기고 조금씩 지워진다. 그렇게 작가는 인물을 덮거나 지우는 방식을 통해 과거와 현재, 현실과 기억의 간극에서 비롯된 상실과 고독의 흔적을 스스로 지워나간다. ■ 아트스페이스 휴

존재의 앞과 뒤 ; 문 밖으로 나가기 ● 시인 이상은 한 시에서 '아내는 아침이면 외출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상, 지비(紙碑) 1-어디 갔는지 모르는 안해, 1935. 9.15, 중앙일보사) 아내만 외출할까. 남편도 외출하고 자식도 외출한다. 우리 모두는 매일 어디론가 외출을 한다. 그렇게 외출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도시에 활력을 부여한다. 사람들은 가만히 집에만 있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생명을 위협하는 포식자들이 가득한 동굴 밖으로 나간다. 사람들은 외출하는 평범한 일상의 반복에서 삶을 일구고 정신적 또는 영적 가능성을 키운다.

박광선_정원 R03_합판에 유채_157×44cm_2022

1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 사람들이 있다. 변하지 않고 항구적인 것은 언제나 좋은 것이고 변하는 것은 나쁘거나 종종 시대마다 좋은 의미를 갖기도 했다. 오늘날은 변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 간의 관계도 그렇고 사람들이 신뢰하고 추구하는 가치 또는 이념에 있어서도 그렇다. 교조적이거나 극단적인 신념과 가치는 불편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처럼 보이는 시대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변화하는 가운데 그 밖에서 또는 그 중심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것이 본질이건 중심이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들을 찾는다.

박광선_정원 R01_합판에 유채_153×72cm_2022 박광선_정원 R02_합판에 유채_163.5×66cm_2022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인간이란 사회적 존재이고 사회적 관계의 총합이라고 주장해왔다. 각 개인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맥락 속에서만 존재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인간이란 하나의 신화이고 전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상상한 것이고 그것은 실제 삶보다 더 선명하고 멋지고 분명하며 충만한 삶으로 채워진 상상의 존재이며 상상의 사회적 관계망의 운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면 개인은 사라지고 새로운 종과 유로서 '인간'이라는 관념, 인간이라는 상상의 구조가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박광선_정원 R11_합판에 유채_181×59cm_2022

현대적 삶이란 선명하지 못한 모호한 칼라와 형태로 이루어진 사회의 삶이다. 일상이란 결코 투명하지 않은 불분명한 얼룩이 묻은 거울처럼 무수한 사건과 사고의 흔적을 남긴다. 거칠게 마감하지 않은 합판에 새겨진 사람들은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 흐릿하게 표현된 얼굴의 군상(사람들), 사람들의 어깨와 등과 허리와 다리에 매여 있는 사회적 관계 속의 생활과 책임, 긴장과 이완.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 미완성인 채로 남는 시간들과 관계들 뿐이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고 사회적 존재란 또 무엇이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과 판단은 또 어떤 의미인가. 자연과 신, 사회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이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박광선_문은 늘 열려 있었어요展_아트스페이스 휴_2022

영화 『메트릭스』 속 주인공은 빨간약과 파란약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주인공은 하나의 현실, 자신이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로 되돌아가거나 완전히 새로운 현실에 들어가야 한다. 다차원의 현실들 가운데 하나의 현실로 존재하게 된다. 이곳이 현실이라면 저곳은 가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곳이 진짜 현실인데 이곳에서 착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박광선_문은 늘 열려 있었어요展_아트스페이스 휴_2022

2 사람들의 뒷모습은 앞모습보다 더 신비하고 미스테리하다. 영화미학에서 카메라가 극적인 순간 배우의 얼굴이나 눈을 클로즈업하는 것을 가장 드라마틱하고 미학적이라고 보는 것을 생각하면 박광선 작가의 뒷모습의 사람들은 그 보다 더 심오하다. 깊은 울림이 있다. 공사장의 합판을 거칠게 쪼개고 다듬어진 사람들의 뒷모습은 그들의 익명성과 함께 오늘을 살아내는 평범한 일상인들의 삶의 무게와 두께를 상상하게 한다. 눈을 마주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관객을 직시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들의 얼굴을 알 수 없지만 바로 그러한 익명성을 통해 우리의 상상력은 극대화되고 작품을 향한 몰입감이 거듭 강화된다. ● 박광선 작가는 우연히 보게 된 인도 영화 속 대사에서 분명하게 가슴에 와닿은 것이 있었다. '문은 항상 열려있었다'라는 대사의 맥락은 시간이 지나며 흐릿해졌지만 문이 닫혀있었던 적이 없으며 그것은 어떤 착각이나 오류로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과 자신과 세계의 관계가 갖는 희망적인 부분을 망각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혀졌다. 이는 매일매일 마주하게 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인식 전면에서 사라져갔지만 어느 순간 사람 한명 한명이 모두 강렬한 존재감으로 빛을 발한다는 인상을 말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일상의 논리를 벗어나는 일종의 초논리이거나 영감과 통찰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익숙함과 낯섦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본다. 삶과 일상에 단단히 발을 딛고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고독한 군중이나 사회적 고립과 형이상학적 고독에 발 묶인 인간이 아닌 공동의 생활과 관계 속에 인류라는 공동의 운명에 뒤얽힌 사람들의 어떤 연대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연대감은 현재의 생활과 미래에 대한 희망에 힘을 부여한다.

박광선_여기에 111-R01_합판에 유채_176×117cm_2022

문은 존재하는가? 문이란 무엇일까? 사람들 사이에 벽이 있다면 당연히 문을 떠올리게 된다. 열리지 않는 문이라면 그것은 문이 아니라 문의 형태만을 닮은 벽일 것이다. 가짜 문과 진짜 문 사이에서 사람들은 주저한다. 작가는 생각하길 문은 항상 열려 있었는데 사람들은 마치 문이 닫혀있고 심지어 문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유령 같은 것이라고.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이며 존재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작가는 캔버스를 들고 관객을 응시한다. 캔버스 밖, 작가가 현실인지 아니면 합판 위에 재현한 작가가 현실인지 누구도 알지 못한 채. ■ 김노암

Vol.20220226b | 박광선展 / PARKKWANGSUN / 朴光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