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고창선_김병종_김상우_김용민_김유정 김지민_김진_노주련_박자용_변경수 신기운_유의정_이명호_이지영_임상빈 정혜련_조은필_조정현_차민영_차재영_하원
주최 / 쿤스트원 주관 / 뮤지엄 원
관람료 / 성인 18,000원 / 청소년 15,000원 / 어린이 13,000원
관람시간 / 월~금 10:00am~07:00pm / 주말,공휴일 10:00am~08:00pm
뮤지엄 원 MUSEUM 1 부산시 해운대구 센텀서로 20 Tel. +82.(0)51.731.3302 kunst1.co.kr/museumone
우리 미술관은 기획자나 예술가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전시 형태의 보편적 구태에서 벗어나 현대미술과 대중과의 소통, 교감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2019년 8월에 개관하였다. 오롯이 관람자만이 전시 공간의 주체가 될 때 비로소 '시각예술의 저변확대'라는 모든 미술인들의 오랜 바램이 성취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의 학예팀은 전시의 주제를 동시대 미술이 주목하는 특정 테제나 이데올로기에서만 찾지 않고 미술계 바깥의 진짜 '세상'에서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 그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첫 번째 전시 『완전한 세상』은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매우 구체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실체가 없는 허상이며 이상에 불과한 유토피아를 미술관 안에 구현해 내는 것이 목표였다. 대중이 생각하는 예술은 항상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예술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 침실과 주방 조차도- 그것에 대한 정보나 지식 없이도 미술관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 하고 싶었다. 우리는 이 전시가 포스트 모더니즘의 실천을 넘어서서 오히려 반(反)모더니즘 적이라고 불리길 원했다.
2020년 9월에 선보인 두 번째 전시 『수퍼 네이처』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한 전시로 비추어 졌을 것이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통제 불가능한 재앙의 근거를 인간이 자연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일방적 폭력으로 규정 내리기 위해 마련된 자아비판을 위한 이벤트였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을 당장 멈추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는 섬찟한 예언의 전시였다. 인간이 환경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근대적인 착각을 하루 빨리 지워야 하고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을 통제하지 못하며, 그저 세상에 속한 하나의 먼지 같은 존재임을 관람객이 자각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19의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 인간들의 이기심은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지속되었고, 결국 우리는 최근 2년간 그 인류세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인간들이 상처받는 이 기간 동안 매우 역설적이게도 지구와 환경이 치유되는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단지 인위적 개발과 활동을 멈추고 세상에게 잠시 주체적 일상을 부여했을 뿐인데 환경이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은 실로 놀라웠다.
치유는 상처받았음을 근거로 한다. 상처는 삶을 통해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삶, 다시 말해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일반적으로 여행을 가장 큰 치유의 행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그것의 근거이다.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는 행위가 꼭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궤적에서 아주 조금 이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예컨대 길을 걷다 하늘을 바라보는 행위,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수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소소한 실천 따위가 말이다. 물론 물리적 행위 자체가 치유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물리적, 신체적 행위를 통해 일상에서 벗어난 뇌가 새로운 환경이나 행위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인지하는 과정이 결국 치유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치유는 익숙한 상황이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서 습득할 수 있게 된다. 일상 속에서 예술을 감상하는 과정은 직접적으로 신체적 활동을 하지 않고도 매우 효과적으로 사유를 유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작품이 심리적 안정을 가져온다고들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시가 대단히 거창하게 치유의 방법이나 삶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치유의 기술』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가장 진보된 조형 언어와 미학적 감성을 동원해 본인이 경험하고 사유한 현실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관객은 작가의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을 마주하면서도 극단적인 비현실을 체험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일상적 경험을 통해 치유의 효과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 전시제목의 일부로 표현된 '기술'을 나는 중의적 의미로서 설정하였다. 작가들이 물리적 행위를 통해 작품을 창조해 내는 예술적 기술 (technique)이면서 동시에 예술과 치유의 관계에 대하여 자유롭게 기술 (describe)한 텍스트를 관람객에게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관람객은 예술가가 상상하는 치유의 방식에 대해 알 수 있으며 더불어 그것으로부터 기인하여 완성된 결과물을 동시에 목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예술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가치 중에서도 특히 관객의 사유에 초점을 맞추어 기획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전시에 참여하는 현대 미술가들이 목격한 시대에 관한 메시지와 그것을 집약한 결과물을 찬찬히 따라 걷다 보면 예술과 치유의 본질에 대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치유의 기술』은 앞서 우리가 선보였던 전시들에 비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상당히 명확하다. 우리는 관람객에게 지난 2년 여 동안 수고했고, 앞으로 조금만 더 버티며 힘내자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 놓고 보니 결국 예술의 태생적 본질에 가장 가까운 전시가 되어 버렸다. ■ 윤상훈
Vol.20220327a | 치유의 기술 Technique of Healing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