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테이블_4150 Smooth Table_4150

이혜진展 / LEEHYEJIN / 李惠珍 / photography   2022_0428 ▶ 2022_0528

이혜진_willow_피그먼트 프린트_50×50cm, 50×50cm_2011

테이블 토크 / 2022_0514_토요일_07:00pm

주최 / 복합공간 소네마리 후원 / 수유너머104_네오룩

관람시간 / 12:00pm~07:00pm

복합공간 소네마리 SONEMARI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 315 후문 수유너머 1층 Tel. +82.(0)10.7920.7950 www.nomadist.org

예술과 철학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다른 층위에서 표현될 뿐 사유의 태도는 같은 지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서로의 생각을 훔쳐 사생아를 낳는 반복이 이 둘의 역사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화성과 금성의 남녀처럼 서로에게 에로스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술가는 물에 잠긴 달을 표현하고, 철학자는 달이 잠긴 물에 대해 말하니 말입니다. 매끄러운 테이블은 이 둘 사이 패인 홈을 지우는 역할이 되고자 합니다. 예술가는 철학자의 언어를, 철학자는 예술가의 이미지를 서로 차용하고 재생산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 예술과 철학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 어떤 새로움은 모두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현재에 대한 저항이 결여되어 있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지만 다행히 우리는 시작의 힘을 알고 행동합니다. 그 행동이 예술과 철학입니다. 물론 그 예술이, 그 철학이 종종 피곤으로 몰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유하는 행동이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매끄러운 테이블은 사유하는 행동이 시작되는 공간입니다. 어떤 새로움으로 향하는 시간입니다. 대화에 누구나 참여하여 생각을 확장, 혹은 해체할 수 있습니다. 5월 14일 저녁 7시에 시작하는 매끄러운 테이블_4150은 이혜진의 작업, Ten lullabies로 진행됩니다. ■ 복합공간 소네마리

이혜진_metronom_피그먼트 프린트_50×50cm, 50×50cm_2011

우리를 잇는 완벽한 놀이, 실잣기 「텐 럴러바이」1. 앨리스가 만난 모자장수는 시간과 싸워서 매 순간을 6시로 산다. 6시는 티타임이므로 모자장수는 계속 티를 마신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시간은 싸우고 화내는 인물처럼 다뤄진다. 시간이 인물이라면 어떤 성격을 갖고 있을까? 시계만큼 정확하다는 용법을 입증하듯 칼같이 분명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가졌을까? 누구에게나 똑같이 속절없이 흘러가듯 무심하고 평등할까? 실은 그리운 것을 차마 보내지 못하는 마음을 더듬어 마술을 부리는 연금술사는 아닐까? 혹은 아름다운 것에 자주 마음을 빼앗겨 영원을 순간에 붙박는 심미주의자? 타고난 본성보다는 길러진 양육과 처한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게 우리의 성격이라면 시간도 다종한 성격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유한한 인간은 거기에 내던져져 있을 뿐이라는 게 우리의 통념이다. 이 때 무한과 유한이 대쌍을 이루듯 영원은 찰나의 대개념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산다. 입이 쩍 벌어지도록 높고 커다란 나무의 느리고 긴 호흡과 모기처럼 작은 인간의 분주하고 성마른 숨은 다르다. 그처럼 각각의 신체는 시간을 상이한 리듬으로 조율한다. 우리의 호흡과 속도가 다르듯 저마다의 시간은 다르고, 그 상이한 시간들이 모여 동조화될 때 또 다른 시간은 탄생한다. ● 이혜진의 「텐 럴러바이」는 상상할 수 없이 오래 계속될 시간과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가버린 시간을 교차한다. 오래된 카메라는 수천 년 동안 일어난 일들과 지극히 짧은 순간을 교차한다. 그 순간 혹은 영원을 유한한 스크린에 포착한다. 어떤 일이 있었고, 또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고 있었다는 반복구는 그 장면들에 리듬감을 불어넣는다. 각각의 사각 프레임에 담긴 피사체들은 그렇게 상이한 시간을 가리키면서도 서로 뒤엉켜 어지러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2. 양파 순이 자라던 한 달여 동안 어떤 일이 있었다.(#9. Balance)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보다 많아지고 나도 흰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인의 머리가 빠르게 새어가듯 아이는 무섭게 자란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아주 잠깐 동안 어떤 일이 있었다.(#4. Shoes) 아이들의 발이 방금 벗어놓은 신발보다 점점 커졌다. 신발을 벗어버린다. 맨발로 돌아간다. 인류가 이천년이 넘게 맨발로 집을 떠나야 했던 이후로 그 때부터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2. Water, salt and bread) 우리는 서로 다른 분량의 소금과 빵과 물로 몸을 살찌웠다. 아주 작은 빵 조각과 거대한 빵 덩어리. 아이는 불평등을 평등으로 배운다.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스스로 돌보지 않았음을 고백한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5. Alchemy) 우리는 분노와 호기심과 두려움과 욕망, 절망과 자만심, 질투로 허기졌다. 곧 네가 있는 세계가 시시해지면서 바다로 걸어가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다.(#7. Liquid) 내 안의 모든 액체가 굳어갔다. 그렇게 나약하고 무례하고 고집 센 이들과 잠을 잤다.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았고 내 오래된 잠옷은 더욱 축축해졌다. 그것을 말리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다.(#8. Washing) 내 오래된 잠옷보다 짧은 나의 생이 돌아갔다. 그러니 돌아간 아버지의 영혼이 거울 속에 불려나오고, 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치 않다. 오래된 카메라를 통해 그것을 바라본 지극히 짧은 순간 어떤 일이 있었다.(#1. Willow) 그리고 이어진 긴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있었다.(#10. Yarn) 낯선 이들을 만나 춤추고 싸우고 헤어지고 춤추고 싸우고 헤어지고…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어 어두워질 때까지 완벽한 놀이를 했던 긴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있었다. ● 일상은 어떤 일들로 채워진다. 어떤 일은 눈을 감은 한 순간 일어나고, 어떤 일은 수천 년동안 일어나고 있음을 지속하며, 어떤 일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기술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더 이상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신발 크기처럼 어떤 일은 쫒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들처럼 어떤 일은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되며, 절망을 멈춘 고요와 비밀을 앗아간 대기 속에서 눈을 감는 화자처럼 어떤 일은 무시간을 향해 간다.(#3. Metronome) ●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시간이 단일 단위로 셈해지는 시계적 시간과 다른 것임은 분명하다. 이혜진은 시간을 '어떤' 일들을 전개해갈 원기(原基)처럼 다룬다. 그것은 텅 비어있지만, 그래서 상이한 리듬이 들어올 자리를 허락한다. 삶의 굴곡에 따라 변형되도록 자신을 내어놓는다. 시간이 관통하는 신체마다 각이한 형상을 갖는 것은 이 때문일거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거꾸로 시간을 살아가는 것들 속에서만 드러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복수의 신체 속에서만 자신을 표현하는 시간은 그렇게 단 하나의 대문자 시간이길 그치고 복수의 시간들이 된다. ● 단 하나의 실패를 중심으로 돌돌 감긴 붉은 실처럼, 시간은 한 사람의 신체에 말려들어갈 것이다. 주름진 피조물들은 저마다 실패 노릇을 하며, 시간을 제 몸 안에 말아넣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의 매듭은 헐겁고, 각이한 신체들이 만날 때 실들은 쉽게 풀려난다. 춤추고 싸우고 헤어지는 몸들과 더불어 실들은 뒤엉킨다. 돌돌 말린 실패 대신 이제 어지러운 그물망이 직조된다.(#10. Yarn) 풀려난 시간은 실패 노릇을 하던 신체를 흐트러트린다. 그렇게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만나 또 다른 시간이 만들어지고, 우리는 낯선 무엇이 되어간다.

3. 새로운 신체가 생성될 때, 실패는 무엇이 될까? 실패는 더 이상 감을 수 없이 뒤엉킨 실들 앞에서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Willow」는 이 낯선 시선을 구도로 표현하려는 듯 마주선 분신의 형상으로 놓여있다. 동요하듯 일렁이는 버드나무는 서로를 바라본다. 바깥을 바라보듯 자신을 바라본다. 알 수 없는 실들이 얽혀있는 저 나무쪽으로 몸을 한 번 기울여볼까? 이것은 서로를 휘감은 실들을 갖고 벌이는 또 한판의 완벽한 놀이를 예고한다. ● 우리, 시간으로 주름진 피조물은 이제 단 하나의 실패이길 그치고, 다른 실들에 감기고 풀려나고 얽히는 복수의 삶들이 된다. 새로운 매듭을 발명할 때마다 새로운 주름을 또 하나 얻는다. 팽팽하게 실을 당길 때마다 어제의 주름이 사라지고, 실잣기가 성공한다면 또 다른 무늬가 새겨질 것이다. 이것은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매번이 새로운 시작인 기이한 놀이. 이것은 너의 실과 나의 실이 만나 우리를 잇는 완벽한 놀이. ■ 김효영

이혜진_shoes_피그먼트 프린트_50×50cm, 50×50cm_2011

이혜진, 잠들지 않는 자장-놀이 - 사진, 두 번째 돈키호테 ● 피에르 메나르는 『돈키호테』의 저자이다. 그는 또 다른 『돈키호테』를 집필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가 집필하려고 했던 것은 『돈키호테』 그 자체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피에르 메나르이면서, 피에르 메나르의 경험을 통해서 『돈키호테』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17세기의 책을 20세기라는 외국어로 다시 쓰기 위해 그는 온갖 노고와 수많은 불면의 밤을 바친다. 메나르는 드디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능가하는 위대한 착품을 창조하고야 만다. 놀랍게도 세르반테스의 텍스트와 피에르 메나르의 텍스트는 언어상으로 단 한 글자도 다른 게 없이 똑같다. 글자 하나, 부호 하나 다르지 않는 완전히 동일한 텍스트가 다시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삐에르 메나르의 것은 무한할 정도로 풍요롭다. 두 작가의 동일한 문장 속에는 서로 다른 사유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메나르의 시간을 통해 『돈키호테』에 도달하고자 하는 작업은 '놀라움'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한번도 읽어 보지 못한 돈키호테를 완전히 새롭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놀라움은 독자의 시간에서 펼쳐진다. ● 버드나무는 버드나무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버드나무의 시간이 렌즈 속으로 들어와 오랜 응시 끝에 작가의 시간과 만난다.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버드나무, 이제 곧 작가에게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버드나무의 사유가 시작된다. 거기 존재하고 있는 버드나무, '웅얼거림'이라는 낯선 언어로 다시 쓰기 위한 이혜진의 불면의 밤. 버드나무가, 작가의 버드나무가, 버드나무의 버드나무가 그 끝나지 않은 열 개의 자장가 속으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그리하여 버드나무는 그 버드나무가 아니다.

'완벽한' 놀이 ● '텐 럴러바이'에서 작가는 이미지를 텍스트로 묶는다. 그러자 곧 텍스트는 훼손된다. 글자는 옅어지고 뒤집히고 뒤섞인다. 텍스트가 흐려질수록 선명해지는 이미지,를 작가는 기대한 것일까. 그러나 선명해지는 것은 뒤집어진 텍스트에 대한 집착이다. 흩어지는 한 글자 한 글자 붙잡아서 완-벽하게 되돌려 내고 만다. 해체된 텍스트는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놀이가 된다. ● 버드나무를 보았지만, 오래된 카메라를 읽었고, 거울과 아버지와 나는 어디에도 있다. 빵과 물은 소금과 함께 평등하거나 불평등하고, 우리는 이천 년 동안 맨발이다. 시간은 멈추었고 메트로놈은 가라앉는다. 신발은 자라지만 아이들은 신을 벗고 꿈을 꾼다. 일곱 가지 색들은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다. 혼자 아침을 먹으면 이스탄불은 이사를 간다. 액체는 들리지 않고 너의 목소리가 시시할수록 바다는 굳어간다. 고집 센 잠옷은 마르지 않고, 축축한 빛은 거짓말을 한다. 먼나라 양파는 어머니보다 하얗다. 실타래는 돌아갈 수 없어 헤어지고 춤춘다. ● 짧은순간어떤일이일어나고있었고,이천년동안어떤일이있었고,한순간어떤일이일어나고있었다,아주잠깐동안어떤일이일어나고있었고,수천년동안어떤일이있었고,아무런일도일어나지않았다,어떤일이있었지만,어떤일이있었다,한달여동안어떤일이있었다,긴하루동안어떤일이있었다,완벽한놀이이다.

● "내게 피사체는 응시의 대상입니다. 피사체가 비스듬한 이미지로 떠돌고 그 자리에 기억과 환영의 이미지가 겹쳐 보입니다."(작가 노트 중) ● 작가는 피사체를 오래, 응시,한다고 말한다. 응시는 피사체와 렌즈 사이에 통로, 공-간을 만들어낸다. 응시하는 동안 통로에서 이미지와 기억과 환영이 함께 떠돌고, 마주치고, 섞인다. 피사체 안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하면서 와해되는 시간들, 응시하는 사유 안에서 나타남과 사라짐이 보존되는 시간들. 서서히 떠오르는 렌즈의 사유. 셔트를 누르는 순간 '틈'이 찍혀져 나온다. 정지된 프레임은 시간을 훔쳐낸다. 피사체와 사유가 소통하는 공간, 덮쳐오는 시간들이 사각의 프레임 밖을 넘쳐 흐른다. 이혜진의 텍스트는 이미지를 상처낸다. 상처는 이미지에 틈을 벌리고 사유와 마주칠 자리를 내어준다. 우리는 텍스트도 이미지도 없는 그 틈에서 흘러 넘치는 미래의 시간을 만나게 된다.

잠들지 않는 자장 노래 ● "자장가는 완전히 깨어 있을 때는 노래가 들려도 들리지 않고 완전히 잠들었을 때도 듣지 못합니다.(...)하지만 자장가를 듣는 순간처럼 시간의 경계가 느슨해질 때 다른 시간을 꿈꾸게 됩니다."(작가 노트 중) ● 자장가를 듣는 동안, 비몽과 미몽의 아득한 시간에서 각각의 다른 노래들이 귓가를 떠돈다. 선명했던 스무 개의 이미지들은 자장가가 계속 이어질수록 겹치고 섞여서 희미한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노래는 끝나지 않고 시간의 주름은 겹겹이 다른 얼굴을 내어준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낯선 사진이 찍혀 나온다. 열 개의 꿈들.. ■ 황정화

이혜진_alchemy_피그먼트 프린트_50×50cm, 50×50cm_2011

Ten lullabies, 피사체는 다가오는 매 순간이었다 ● 이 사진들(Ten lullabies)은 2011년 영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찍었던 것이다. 벌써 십여 년이 지났고 이후에는 사진과 관련 없는 일을 했으니 꽤 멀리 있는 작업이다. 그래서 왜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정리해 보려면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물론 이 사진들로 당시에 졸업 논문도 썼고 책도 만들었으니 작업에 대한 정리는 이미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논문을 쓰고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외국어로 글쓰기를 해야 하는 현실적인 한계가 많은 것을 어지럽혔다. 결과적으로 이 사진들은 엉뚱하게 포장된 채 끝났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거기서 멈추었다. 낯선 공간에서 다른 언어로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그때의 나는 이 작업에 대해 명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년 남짓한 외국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만들었던 그 책을 몇 명에게 주었다. 꼼꼼히 보지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업한 의도를 물어주길 기대했다. 솔직히 누군가가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혼자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후 이 사진들은 어쩔 수 없이 침묵했다. 그러다 불과 몇 달 전, 눈먼 노신사를 만났다. 그는 내가 만든 책을 보지 못했음에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이 사진들을 찍고 있는 그때의 나였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어쩌면 이 순간을 보고 있을 나는 점점 선명해졌다.

이혜진_washing_피그먼트 프린트_50×50cm, 50×50cm_2011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다는 것은 프레임 안으로 대상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스냅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 내게 피사체는 응시의 대상입니다. 피사체가 비스듬한 이미지로 떠돌고 그 자리에 기억과 환영의 이미지가 겹쳐 보입니다. 이 순간을 푼크툼(punctum)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 사진적 용어는 감상자가 사진을 보면서 가지는 개인적인 감성의 균열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되죠. 하지만 피사체를 응시하는 순간에도 라틴어로 '찌름'을 의미하는 푼크툼은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설명할 수 없는 당혹감은 웅얼거림으로 남게 됩니다. 내가 했던 작업 대부분이 텍스트가 걸쳐진 사진인 것도 이런 경험을 가져서 입니다. 언어의 규칙과 제한을 넘은 텍스트가 사진 이미지에 상처를 내는 작업이었죠. 그러나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치면서 웅얼거림은 일상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말이 소통의 기호가 되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고 있어요. 그러나 이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아요. 말이 습관처럼 나오지 않으니 일상에서 더듬거리며 생각하게 되고 머뭇거리며 회의하게 됩니다. 요즘은 시제 구분이 정교한 영어의 문법으로 사진을 보곤 합니다. 웅얼거림이 발생하는 응시의 순간이 어디쯤인지 들여다보고 있어요. 사진은 대상이 그때 그곳에 존재했음을 보여 주는 과거의 흔적입니다. 이를 영어의 시제에 따라 내가 했던 작업을 구분해 보면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과거 완료이고, 셔터를 누르기 전 웅얼거림이 발생하는 순간은 대과거이고, 대상을 피사체로 마주하는 시간은 대-대과거가 됩니다. 이렇게 시제를 구분해 보니 내가 사진을 찍는 과정은 결국 대-대과거에서 과거 완료로 이동하는 순차적인 시간의 진행 방향을 따릅니다. 그러나 이 순서는 언어가 정해 둔 시간의 방향대로 인식하는 것이겠죠. 여기서 의심하게 됩니다. 웅얼거림이 발생하는 순간은 이미 언어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데 과연 시제로 구분할 수 있을까? 없을 것 같습니다. 웅얼거림은 언어의 빈틈으로 무의식이 끼어든 꿈꾸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억과 환영이 오버랩 된 우연의 이미지가 웅얼거림만 떠돌게 만들죠. 이 무질서의 순간은 의식 너머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혜진_balance_피그먼트 프린트_50×50cm, 50×50cm_2011

자주 가는 언덕에 키 큰 버드나무가 있어요. 그 나무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그 나무를 찍으려고 카메라를 통해 보는 데 버드나무의 좌우가 바뀌어 있었어요. 오래전부터 사용했던 웨스트 파인더 카메라의 특성이라 당연한 일인데도 그 순간은 완전히 다르게 보였어요. 마주했던 버드나무, 기억과 환영의 웅얼거림, 좌우 반전된 버드나무의 이미지가 마치 과거, 현재, 미래로 다가왔습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미래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웅얼거림이 미래를 불러들인 걸까요? 집에 돌아와 이전 사진에 걸쳐진 텍스트를 보았습니다. 모두 내 안의 시간만 결정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이미지의 웅얼거림만 떠돌고 있었던 겁니다. 다른 시간은 상상한 적도, 소유한 적도 없었던 거죠. 마치 과거 완료의 시제에 내가 갇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버드나무를 응시한다는 것은 버드나무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의 웅얼거림은 두 시간이 교차하는 것이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시간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이를 표현하고 싶어 내가 보았던 버드나무 이미지와 카메라를 통해서 본 반전된 버드나무 이미지 사이에 텍스트를 두는 형식으로 작업을 해 보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가졌던 놀라움을 연속 사진(sequence photo)으로 만들어 보았죠. 이 방식이 사진의 문법으로 본다고 해도 억지는 아닌 것 같았어요. 오늘의 내일이 며칠만 지나면 지나간 오늘과 내일로 모두 과거가 되듯 우리는 시간을 과거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죠. ● 그럼에도 여전히 언어의 규칙은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웅얼거림의 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순차적으로 오지 않고 동시에 덮쳐 오는데... 하지만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일상은 순차적으로 진행됩니다. 조금 전에 점심을 먹었고, 내일은 약속이 있고... 그리고 다시 지나간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고… 이렇게 이어 붙이니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것 같기도 합니다. 시간의 바깥에서 보면 이 셋은 하나의 흐름일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은 무한히 만들어지겠죠. 내가 버드나무의 시간을 만났을 때 다른 시간의 흐름이 생기듯 지금 당신과 나는 또 다른 시간의 흐름에 있고… 어쩌면 여태껏 살아왔던 모든 일상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시간의 흐름이 겹겹이 지나갔고, 앞으로도 그렇겠죠. 단지 지나간 내가 그 흐름을 억지로 막고 있지는 않았나 싶어요. 자장가는 완전히 깨어 있을 때는 노래가 들려도 들리지 않고 완전히 잠들었을 때도 듣지 못합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완전히 깨어있거나 완전히 잠들었을 때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포착할 수 없습니다. 허술한 기억과 예측이 그 흐름을 막고 서 있는 거죠. 하지만 자장가를 듣는 순간처럼 시간의 경계가 느슨해질 때 다른 시간을 꿈꾸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됩니다. 얼핏 보았던 그 순간을 사진과 텍스트가 과연 기념할 수 있을까? 애초에 표현 불가능한 피사체를 두었던 건 아닐까? 내 대답은 실패한대도 이 작업을 한동안은 하겠다는 겁니다. 내가 가졌던 시간의 담벼락이 낮아지고, 당신의 시간에 초대된 지금처럼 다른 시간을 만나는 놀라움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 이혜진

이혜진_yarn_피그먼트 프린트_50×50cm, 50×50cm_2011

A man who can't die ● I was cold and hungry and completely lost when I suddenly realized. At first, I looked for a bench where I could sit down, but most benches had been taken by others who looked very happy, unlike me. So I just sat on a kerb beside the road and I looked at myself. ● I was wearing quite a nice blue velvet jacket, neat blue jeans, a shirt and blue suede shoes. I seemed to be obsessive about blue. I put my hands into the pockets of my clothes to find something, a clue such as a wallet or ID card, and money. Sure enough there was a blue leather wallet inside the pocket of my jacket, and I could see cash and credit cards as well. Unfortunately, I didn't find my ID card, so I still didn't know who I was, why I was there and how I had come to be there at that moment. ● One thing I got from the cards was a strange name, Robert Allen Zimmerman sounded Jewish, but I didn't have any idea who that could be. Yet, I would not be able to ask the credit card company who I was as they would think I was either a mugger or a crazy guy. ● Anyhow, I could no longer think about myself since I was starved and smelled familiar aromas from the surrounding restaurants. I decided to go to a pub with a blue roof as I felt not only hungry but also thirsty; I needed to have a cool beer. While I was waiting for my menu after I had ordered, I looked around the hall. There were only two old men, sitting at different tables. One was already dead drunk and the other one was keen on playing Sudoku on the newspaper; both looked like drab old men. ● After a while, a waiter came bringing my menu and gazed at me with no expression. He was short and fat, and on the back of his left hand there was the tattoo of a woman's face. I thought she might be his impossible love, then ignored it and gulped down the beer, started to eat my fish and chips. It would be the best meal I had eaten even thought I could not remember what had happened before. Actually, I hadn't expected to taste as good as it did because of the only two old customers and the unkindness of the waiter's appearance. When I was full I tried to recall who I was again but remembered nothing. ● At that time a woman came into the restaurant, wearing long red scarf and dark sunglasses, who then sat down in an old armchair beside a window without any hesitation, seemingly a regular customer. I thought her black short hairstyle was good on her white skin and slim figure. Suddenly, I realised she was the woman in the tattoo of the back of the waiter's hand. She slowly took off her sunglasses, looked at me blankly. I smiled unnaturally, but she seemed not to see me. She seemed to simply enjoy the sunlight through the window for a while, as she didn't order anything. I tried to find the waiter, but he must have already left since there were other guys behind the bar. I was so curious about her that for the moment I totally forgot about myself and just looked at her for a while. ● Then I stepped up to her and said, 'If you don't mind I'd like to buy a glass of wine for you' She only smiled faintly, never answering, but I thought it was a gesture of assent to my proposal. After I ordered a bottle of wine I sat down on the chair at her table. Her eyes were still vacant, only then I knew she couldn't see anything and saw a long stick beside her. ● I thought, 'It doesn't matter, I just need to chat with someone, anyway she is still attractive.' I started to talk about the weather as the beginning of typical conversation. ● I introduced myself Bob, who had moved there the previous week, to her. She told me her name was Marian; she had got a car accident a year before and after that she had lost her eyesight. ● She was more cheerful than I expected, and our interesting dialogue continued until we drank up the bottle of wine. Whenever she asked me about my personal stories I lied spontaneously; I used to be a singer and poet, but now I was interested in drawings, and I was single. Additionally, I didn't need to care about my facial expression when I lied. It's weird that although I didn't remember even my name, I pretended to be Bob who was a fictional man made by me, that, moreover, as time went on, the lies made me very comfortable and safe. Perhaps I enjoyed lying about myself more than talking with her. ● She left with a 'thanks' after she had answered the phone, and the next moment I realized the fiction was over. I looked at her through a window; she was running, grabbing the stick – she didn't look blind, but as an athlete. 'She also lied to me and enjoyed my lying' I thought and felt ashamed of myself, because she must have seen all my facial expressions while we were talking. I suddenly wondered what I look like, so I went to a toilet. ● There was a run-down old man in the mirror: thinning white hair, a blotched nose, and drooping shoulder, looking much over 60 years old. I had thought I was a 40s' dandy guy who was fond of blue and seemingly rich. I never thought I would look so old. Reality was severe. As if all his blue clothes were a shroud. I took out my blue wallet and then looked at its inside carefully. There was a note folded up between the cards. ● ' I am a patient suffering from alcoholic dementia. So, sometimes I totally forget who I am, but now my mind is so clear. I have no family and no friends because of my fucking stupid behaviour. My life is abominable, so I want to quit it. I will kill myself, which would be better than keeping at it. If I see this when I have lost my mind, I SHOULD JUMP DOWN OR DASH AT A CAR' I felt faint, disgusted, and saw the yellow dust in the wind. ■ Hyejin Lee

Vol.20220428f | 이혜진展 / LEEHYEJIN / 李惠珍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