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바구 Busan Evoked

박종우展 / PARKJONGWOO / 朴宗祐 / photography   2022_0430 ▶ 2022_0821 / 월요일 휴관

ⓒ 박종우_기억의 소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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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프로젝트展 GoEun Museum of Photography Busan Project

주최 / 고은문화재단 주관 / 고은사진미술관_BMW 동성모터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마감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고은사진미술관 GoEun Museum of Photography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로452번길 16 (우2동 1005-17번지) Tel. +82.(0)51.746.0055 www.goeunmuseum.kr @goeun_museum_of_photography www.facebook.com/goeunmuseum

기억의 소환 ● 부산 작업에 대해 얘기하려면 먼저 나의 가정사부터 끄집어내야 한다. 서울내기로서 비록 부산에 발붙이고 살아본 적은 없으나 심정적으로 따진다면 어렸을 때부터 부산은 나에게서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수색중대장이었던 나의 아버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의 길에 나서면서 서울에서 모시고 살던 홀어머니와 갑자기 헤어지게 됐다. 중공군 참전과 함께 아들의 소식이 끊기자 할머니는 홀로 피란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갈 곳이 없던 할머니는 부산진역에 내린 다음 물어물어 역에서 가장 가까운 절을 찾았고, 불교 신자라는 인연 하나 만으로 동구 좌천동에 있는 작은 절, 연등사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한편 아버지는 1 · 4후퇴 도중 황해도에서 벌어진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후송되어 부산 동구 수정동 경남여중 자리에 임시로 들어선 국군수도병원(당시 제36육군병원) 에 입원을 했다. 전쟁으로 생이별했던 아들과 어머니는 1951년 어느 따뜻한 봄날, 수정동의 작은 구멍가게에 각자 물건을 사려고 들렀다가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 당시 할머니와 아버지의 마치 영화 속 한 장면과도 같은 재회 얘기를 들으면서 나에게는 전쟁수도 부산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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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피란생활의 얘기를 자주 들려주시던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돌아가셨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경남 진해에 살고 있었다. 할머니의 유언에 의해 유골을 부산진 연등사에 모시기로 하여 장례 버스를 타고 낙동강 구포다리를 건넌 것이 내 기억 속 최초의 부산 방문이었다. 어린 나이였 음에도 일반적인 여행이 아니라 장례행사의 일환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처음으로 부산에 도착한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낙동강을 건너니 온통 크고 작은 산이었다. 시내에 들어서자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빈틈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판잣집들, 산허리를 감싸고도는 비포장 산복도로, 동네마다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높다란 목욕탕 굴뚝들... 당시의 부산은 한국전쟁 피란수도로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연등사가 자리 잡은 동구 수정산 일대는 부산에서도 그런 풍경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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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마침 이모가 영도에 살게 되었던 덕에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방학 때마다 서울을 떠나 부산에 와서 지내곤 했다. 영도다리의 개폐 모습, 크고 작은 선박 수리소들, 영도와 자갈치를 이어주던 통통배, 영도다리 입구에 줄지어 있던 점집들, 자갈치와 충무동의 시장 풍경... 이런 기억들은 첫 방문에서 만났던 산복도로의 풍경과 함께 나의 뇌리에 깊이 박힌 부산의 이미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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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마다 내려온 부산에서의 행동반경이 그리 넓진 않았다. 영도 도선장에서 통통배를 타고 자갈치에 내린 다음 일대를 돌아다녔는데, 멀리 가봐야 대신동이나 영주동 바깥으로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에는 그 정도 권역이 내 머릿속에 담겨 있는 부산의 전체 범위였다. 남포동 큰 길을 달리는 버스 안내판에는 괴정, 당감, 괘법, 개금, 하단, 다대... 신기한 지명들이 적혀져 있었다. 이름들이 너무나도 이국적 이어서 그런 장소는 부산이 아닌, 훨씬 더 바깥쪽에 따로 존재하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생각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넓지 않았던 부산의 원도심에서 나는 당시 부산이 지닌 거의 모든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신기한 눈길로 만나고 다닌것 같다.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부산 프로젝트를 제의받은 후 새롭게 돌아본 오늘의 부산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부산은 나의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있던 모습과 지금의 초현대적인 모습들이 혼돈스럽게 뒤섞여 극적인 메타모포시스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 혼재된 모습 속에서 과거의 부산은 점점 자취를 잃어가고 새롭게 탈바꿈하는 현대 도시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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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의 첫 번째 부산 방문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구포다릿목부터 찾아보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다릿목에 번성했던 시장은 아직까지도 구포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으나 구포다리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부산의 모든 것이 그렇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오랫동안 이어져오던 것들이 갑자기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문화재도 아니고 기념물도 아닌 그저 그런 건물이나 골목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현지에 사는 주민들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부산은 주택가에 작은 시장이 무척 많다. 서울 사람에게는 그런 모습이 신기하게 보이는데, 누구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동네 시장들이 사라지거나 축소되고 빠른 속도로 대형 마트에 잠식되어 간다. 더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나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부산의 모습을 다시 추억하고 불러내어 기록의 상자에 담아두고자 했다. 작업의 가장 큰 부분은 정통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접근한 거리 사진 (Street Photography)이다. 산복도로와 시내 여기저기 남아있는 골목길들을 배회하며 아직도 그곳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부산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본 작업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작업을 하는 동안은 무차별로 도시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지만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식은 바다로부터 서서히 산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로 옮아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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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란 도시의 원도심은 해안선에서 멀어져 사람 사는 동네로 깊숙이 들어간다고 해도 시각적으로는 바다에서 그다지 멀어지지 않는다. 동네의 경사도가 커서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바다는 도리어 점점 더 잘 보이게 된다. 경사가 심한 곳의 집들은 입체적으로 지어져 있고 그런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 또한 입체적이다. 그러므로 작업의 많은 부분은 자연스럽게 산복도로 주변 동네에서 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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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역사가 타임캡슐처럼 축적된 산동네는, 태생적으로 가진 급경사 때문에 도리어 역동적으로 움직여온 삶의 현장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고난과 그 뒤 이어진 산업화 시대 서민들의 애환이 켜켜이 쌓인 동네를 쏘다니며 행해진 나의 이번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예기치 못한 전쟁으로 인하여 빚어졌던 도시 공간의 변형에 대한 관찰과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다. 한국전쟁 이후 부산의 산동네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눌러앉은 피란민 외에도 이 나라가 산업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농촌에서 유입된 부두 노동자, 봉제 / 신발공장 노동자, 행상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도시의 하부 계층이 었다. 오늘날의 국제적인 대도시 부산을 만든 실질적인 주역이 바로 이들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민들의 구성은 많이 바뀌었지만 부산을 탐구할 때 산동네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코로나 팬데믹이 겹쳐 동네에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골목골목마다 날씨가 좋으면 삼삼오오 모이는 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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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만나면서 서울에서와는 다른 경험을 했다. 요즘 서울에서는 초상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드러내놓고 모르는 이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기가 어렵다.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항의가 터져 나온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정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한다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부산은 달랐다. 부산의 신도시 지역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나는 원도심에서의 작업 기간 중 그런 일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다. 구수한 사투리로 먼저 말을 건네오고 살아가는 얘기를 꺼내는 부산 시민들 덕분에 작업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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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산의 도시 모습이 바뀌는 현장은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정도다. 여기저기 수많은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재개발과 고층 아파트 건설이 특히 그러하다. 서울에 몇 달 있다가 내려가 보면 멀쩡했던 동네가 어느새 전부 철거되어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얼마 만에 수 십층 고층 아파트가 하늘을 향해 솟구 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변화가 극심한 오늘날의 부산에서 카메라를 대야 할 대상이 비단 원도심만은 아닐 것이다. 행정관청에서 내세우는 '다이내믹 부산'이라는 구호처럼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부산의 또 다른 다이내믹한 변화의 모습도 매우 중요한 아카이빙 작업의 한 분야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흔적을 늦지 않은 시기에 기록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마음과 함께 충분히 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다음 사진가의 몫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 박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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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