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비, 마른 언어-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Dry Rain, Evaporate Language-The Unbearable Weight of Being

신호윤_이지현 2인展   2022_0504 ▶ 2022_0717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MUAN SEUNGWOO OH MUSEUM OF ART 전남 무안군 삼향읍 초의길 7 Tel. +82.(0)61.450.5482~6 www.muan.go.kr/museum

주체가 한 눈으로 소실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풍경과 건물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절대적 공간을 형성해냈던 원근법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이 인식하는 모든 것'이라는 시각중심적인 사고였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생각은 계몽주의나 데카르트 형식주의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러한 시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19세기에 이르러 사진기, 현미경, 활동사진, 망원경 등의 광학기구를 발명하도록 만들었고 이로부터 얻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점차 기술(언어)중심의 역사를 대신하는 '이미지 전환의 시대'를 이룬다. ● 하지만 이와 다른 흐름도 존재한다. 광학기구나 해부학의 발달로 인간의 눈이 보지 못한 세계, 즉 피부 아래 숨어 있는 신체의 비밀을 밝혀내는 의학적 접근이나 전투기에서 조망되었던 전쟁의 참혹한 광경은 유토피아 대신 죽음의 트라우마를 안겨주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시각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하여 시각중심의 사고를 반성하거나 이에 저항하며 다른 지각이나 신체를 통한 경험을 중시하는 현상학이 나타났다. 또한 시각은 '보는 눈'(eye)과 보고 있는 나를 지켜보는 '응시'(gaze)로 분리되고 이 '응시'는 권력이나 자본과 연계되어 모든 사회적 관계로 확장된다. ● 미술사에서도 절대적 공간에 시간이 들어오게 되면서 재현 중심의 체계가 무너졌다. 인상주의에서 시작되어 큐비즘이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등 20세기 아방가르드 그리고 1960, 70년대 모더니즘의 역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곡점을 만들어냈던 상황주의 인터내셔날(SI, Situationist International)에 이르기까지 명백한 반시각적 흐름이 존재했다. 현대 포스모더니즘의 해체와 전복의 전략 역시 이러한 반시각적 담론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 이번 오승우미술관 초대전은 이처럼 시각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소위 '반망막적 미술가'인 신호윤, 이지현작가가 초대되었다. ● 신호윤은 정교한 문양이 플로터 컷팅된 5m 30cm에 이르는 붉은 종이띠로 천정에서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마른 비'를 내린다. 마치 제논의 화살처럼 작가는 지속되는 액체성의 빗줄기를 종이라는 가변적인 물질로 변환하여 정지시키고 그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관객들은 종이로 물질화된 '비와 비 사이의 공간'을 걸으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눈' 대신 '신체'로 경험하게 된다. 빈 공간은 죽음과 상처, 고통의 기억에 대한 치유의 장소를 의미하며, 작가는 이를 통해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기를 의도하고 있다. ● 이지현은 신문이나 성경, 고전문학 등의 책에 인쇄된 텍스트를 날카로운 도구로 수백 번의 행위를 통해 해체하여 공허한 종이뭉치로 만드는 작업을 보여준다. 또한 주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옷의 기호들을 해체하여 한갓 천이라는 물성으로 변화시킨다. 책이나 옷의 기호를 뚫는 행위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적극적인 해석을 나타내며, 결과적으로 물질이 지닌 고유한 빈칸과 접힌 면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제시하게 된다. 텍스트를 무화(無化)시켜버린 작가의 '마른 언어'는 의미 대신 너덜너덜해진 종이의 물질성을 감지하는 촉각을 통해 우리의 의식을 대상의 표면에서 그 내부로 안내하게 되는 것이다. ● 두 작가는 공통으로 가볍고 연약하고 가변적인 종이를 소재로 해체와 전복, 표류와 역설의 비유를 통해 비가시적인 세계로 우리를 이끌면서 존재 혹은 실존의 무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박현화

신호윤_마른비_종이_500×10cm×480_2022
신호윤_마른비_종이_500×10cm×480_2022
신호윤_마른비_종이_500×10cm×480_2022
신호윤_마른비_종이_500×10cm×480_2022
신호윤_마른비_종이_500×10cm×480_2022

신호윤의 작품세계 ● 신호윤은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기존의 굳건한 사회구조에 미묘한 균열을 내고자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형상은 작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현실과 충돌한다. 종이를 자르고 붙이면서 작가는 일회성으로 소모되고 피상적 관계에서 소멸되는 현대인의 자아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본다. ● 신호윤은 종이에 대해,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이며 인간 본연적인 물성이 깃든 소재라고 말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에 더해 쉽게 구겨지고 찢어지는 특성이 사람을 연상시킨다고 보았다. 이렇듯 종이가 지닌 이중적인 물성은 그가 평소 지녀왔던 문제의식과 결합되며 은밀한 메타포로 기능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일이 종이를 오려 작품을 제작했다. 이후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많은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녹여내며 점차 대형화되고 있다. 이에 능숙한 컴퓨터 그래픽 실력과 첨단 기자재의 도움으로 입체적이고 기하학적 형태를 좀더 수월하게 구성해낸다. ● 신호윤 작품의 내부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텅 비어 있게 인지된다. 어느 순간 면과 선의 구분이 모호해져 관람객의 시선이 무력해진다. 실재와 허상이 모호하다. 전통 도상과 작가의 상상력, 첨단기술이 조합된 그의 작품은 개체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전체 속에서 각각을 보게 하고 그 각각이 전체로 보인다. 일부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유기체와 같다. 직설적은 아니지만, 일관성 있게 개인과 사회, 내부와 외부, 부자와 빈자 등의 사회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中에서 발췌됨) ■ 박영재

마른 비, 마른 언어-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展_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이지현 섹션_2022
이지현_022MA04004 dreaming book-만나다_ 책 뜯다, 옷 만들다, 나무 프레임, 비닐_340×93×93cm, 가변설치_2022
이지현_022MA04005 dreaming book-손문 만나다_ 책 뜯다, 옷 만들다_260×50×16cm_2022
이지현_022MA04001 dreaming book-clothes project 만나다_ 책 뜯다, 옷 만들다_420×570×380cm, 가변설치_2022
이지현_022MA04002 dreaming book-Library project_ 책 뜯다, 책꽂이 설치_247×256×172cm_2022
이지현_022MA04003 dreaming book-Library project_ 책 뜯다, 아크릴 책꽂이 설치_201×91×25cm_2022
이지현_022MA04007 dreaming book-Library project_ 책 뜯다_314×243×9cm_2022

이지현의 작품세계 ● '호모 사케르'(벌거벗은 인간)라는 말은 희생양을 의미한다. 벌거벗은 인간, 더욱이 벌거벗겨진 인간, 더 이상 숨을 데가 없는 인간, 적나라한 인간이 희생양이다. 그렇게 옷은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으로서의 결여와 결핍, 수치심과 부끄러움, 상처와 트라우마, 때론 치부를 덮어서 가려주는, 그러므로 희생양의 원초적 상태로부터 존재를 구제해주는 문명의 발명품이며 제도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 이지현은 이러한 옷을 소재로 작업한다. 그런데 그가 옷을 다루는 방식이 예사롭지가 않다. 멀쩡한 옷을 망치고 해체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체된 천 조각을 다시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 복원이라고는 했지만, 그렇게 복원된 옷이 처음의 옷과 같을 수는 없다. 전체적인 형태는 여전할지 모르나 이미 조직이 변질되고 의미가 달라진다. ● 작가는 전작(前作)에서 책 작업이 책 이전에 종이의 물성을 드러낸 것처럼, 옷 이전에 천의 물성을 강조한다. 책이라는 기호를 해체해 종이라는 물성을 드러내고, 옷이라는 기호(사회적, 문화사적, 계급적인 기호)를 해체해 천이라는 물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기호화된 사물대상, 기호에 가려진 사물대상의 본성(그리고 본질)을 복원하는 과정이며 행위일 수 있겠다. ● 옷은 인격의 일부이며 감정의 한 부분일 수 있다. 바로 너덜너덜해진 옷이 상처를 암시하고 삶을 상기시키는 것이 그렇다. 너덜너덜해진 옷은 말하자면 존재론적 상처의 표상이며 물화된 형식일 수 있다. 그의 설치작업에서 장소 특정적 작업이 있듯이, 옷 작업 역시 매번 작업실이나 전시장소가 달라지는 것에 맞춰 그 의미 또한 달라진다. 예를 들면, 제주작업에선 해녀들이 물질할 때 입는 옷을 소재로 작업한다. 물질이란 어쩌면 매순간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너덜너덜해진 옷들은 바로 그런 해녀들의 말 못할 속사정을, 죽음과 재생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의 방식(태도)을 침묵으로서 증언한다. ● 그런 만큼 작가의 작업을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나름으로 감정이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인격을 대신하는 사물대상(오브제)을 페티시라고 한다. 작가가 보기에 옷은 상처를 내재화한 인격이다. 애틋한 것도 상처고, 설레는 것도 상처고, 그리운 것도 상처다. 그렇게 작가는 하나의 옷에 내재화된 애틋한, 설레는, 그리운 상처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렇게 페티시를 사용하는 다른 방법을 예시해준다. (「옷, 애틋한, 설레는, 그리운 페티시」中에서) ■ 고충환

Vol.20220504i | 마른 비, 마른 언어-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신호윤_이지현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