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 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 Envisioning Arcadia - Korean Painter in New York, Po Kim

포 킴(김보현)展 / Po Kim / painting   2022_0506 ▶ 2022_0612 / 월요일 휴관

포 킴_파랑새 Blue Bird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3.36×548.64cm_198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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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본관 Hakgojae Gallery, Space 1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 @hakgojaegallery www.facebook.com/hakgojae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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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낙원'을 그리다1. 포 킴(Po Kim, 1917-2014). 본명은 보현(寶鉉).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살았던 제1세대 한인 화가다. 일본에서 그림을 배운 그는 해방 이후 조선대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는가 하면, 광주를 중심으로 선구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 시간은 해방공간과 6. 25전쟁의 소용돌이로 내달리고 있었다. 이 격동기에 김보현의 삶도 크게 출렁이었다. 좌익 혐의로 고문을 당하는가 하면, 친미 반동분자로 몰려 죽음의 문턱에 섰다. ● 김보현은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일리노이대학의 연구원 자격이었다. 1년이 지난 뒤 아예 뉴욕에 눌러앉았다. 이념의 족쇄를 스스로 풀어 제치고 자유의 세계로 '탈출'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 미국으로의 이주는 화가 포 킴의 생애 궤도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벅찬 자유로의 여행이자 외로운 디아스포라(diaspora, 이산)의 출발이었다. 그 이후 김보현의 이름은 한국미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1) 대신 포 킴의 삶이 활짝 열렸다. 포 킴은 60여 년 동안 뉴욕에서 살다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 포 킴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이미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굵직한 전시가 열려 그 예술적 성가(聲價)가 알려진 바 있다. 그의 예술 유산의 일부는 오래전부터 '어머니의 땅'에서 숨 쉬고 있다.2) 그러나 포 킴은 여전히 한국 미술계에 낯선 인물이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예술가 포 킴의 영혼은 아직도 목마르리라. 멀고 먼 뉴욕에서도, 생을 마감하고서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고향으로의 회귀 본능. 그의 전시는 회향(懷鄕)의 의미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혼의 귀향이다. 이국에서 이룩한 포 킴 예술의 길고 긴 여정을 되짚고, 그 고난과 환희, 위안과 영광을 함께 나누는 자리다.3)

포 킴_따스한 섬 Warm Island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3.36×182.88cm_1998

2. 포 킴은 미국으로 건너가기 이전까지 재현적 사실주의, 자연주의적 구상 작품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 당시 한국작가들의 일반적인 조형 어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그의 작품은 새로운 길을 걷는다. 세계미술의 심장, 그 힘찬 박동은 포 킴의 예술세계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동시대성'과 어깨동무하는 일이었다. 포 킴의 예술 여정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이어진 추상표현주의 시기, (2)1970년대에 정물을 소재로 한 극사실주의 시기, (3)구상과 추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양식적 완성 시기. 이번 전시는 세 번째 시기의 작품을 소개한다. ● 포 킴이 미국에 정착하던 시기, 뉴욕 화단은 추상표현주의의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추상표현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미술, 이른바 '뉴욕파의 승리'를 상징하는 빛나는 '깃발'이었다. 포 킴은 추상표현주의의 자율적인 형상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즉흥적인 붓질, 강렬한 색채, 유려한 필치, 신체의 떨림을 실어내는 격렬한 제스처…. 포 킴 작품의 붓의 흔적에는 속도와 촉각과 중량이 실려 있었다. 화면은 터질 듯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포 킴의 격렬한 화면은 저 과거의 사슬에서 벗어나고픈 가열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추상 충동은 지워버리고 싶은 한국에서의 상처, 가위눌림과도 같은 내면과 무관하지 않았다.) 포 킴의 추상표현주의는 서양의 그것과는 또 다른 특색을 보여주었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전성기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동양 전통미술의 기법과 사상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추상표현주의의 조형적 특징을 드러내면서도 전통미술의 방법을 구사하는, 이른바 동양과 서양 미학을 융합했다. 특히 기(氣), 서체적 충동, 색채, 여백 등에서 서양의 회화와는 차이를 보였다.4)

포 킴_무제 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2.88×152.4cm_1999

포 킴은 1970년대 초부터 정물 드로잉에 집중한다. 추상표현주의의 격렬한 파고가 한풀 꺾이고 다시 구상으로 돌아갔다. 딸기, 복숭아, 배, 사과, 망고, 호두알 같은 과일, 그리고 양배추, 홍당무, 파, 브로콜리 같은 싱싱한 채소를 소재로 삼아 색연필로 정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포 킴은 이 작업을 약 7년간 지속했다. 얼핏 보기에는 부드러운 수채화 같기도 하고, 정밀한 다색판화 같은 완벽한 묘사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흰 종이에 배경을 완전히 배제하고 대상의 실존만을 색연필로 묘파했다. 구도와 구성을 단순 명쾌하게 설정한 그림이다. 화면에는 과일과 채소 이외에는 테이블도 배경의 벽면도 아무것도 없다. 차가운 정신적 고립감마저 느껴진다. 마치 참선하듯 묵시적 수행에 가까운 극사실의 드로잉 작업이었다. ● 1980년대 후반부터 포 킴의 작품은 대형 캔버스 작업으로 되돌아간다. 꽉 짜인 엄격한 사실주의가 돌연 해방을 맞는다. 객관적 표현 대상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색채와 형태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형식에서 내용으로의 전환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거침없이 토해내고, 화면 크기를 끝없이 확장해 나갔다. 얼핏 보면 1980년대 세계 화단을 지배했던 신표현주의 회화, 특히 미국의 뉴페인팅이나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드의 화면을 떠올린다. 포 킴의 작품 변화는 동시대 미술의 '공기'와 무관하지 않다.

포 킴_야자수 Palm Tree_리넨에 아크릴채색_76.2×91.44cm_2001

바야흐로 '포 킴 양식'은 절정으로 내달린다. 그것은 역동적 필치의 추상과 극사실 묘사의 구상, 양자를 모두 끌어안는 '제3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화면은 마치 시간과 공간의 진공상태와도 같다. 마치 종교화에서 자주 활용하는 이시동도(異時同圖,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사건을 한 그림에 구성하는)의 수법을 대하는 느낌이다. 이야기의 통일성이 없이 여러 배우가 각자의 개별적 몸짓으로 연기하는 연극 무대가 연상되기도 한다. 다양한 동작의 벌거벗은 인물 군상이 줄지어 있는가 하면, 느닷없이 잘린 신체 부위가 꽃과 물고기와 새와 동물 등 온갖 생명체와 한데 어우러진다. 화면의 물상(物象)은 때로는 고통으로 아우성치듯, 때로는 평온한 안식을 취하듯 대지와 물과 하늘을 떠돌고 있다. ● ​포 킴은 자신의 오랜 삶 속에 녹아 흐르는 잠재의식을 즉흥적인 붓놀림으로 그려냈다. 사전에 어떤 주제나 내용 전개의 구상도 없이, 붓을 움직이는 순간순간에 자유롭게 형상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노련한 연주가의 즉흥곡에 비유하면 어떨까. 포 킴의 작품은 논리나 합리화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의식 세계로의 무의식의 침투, 물리적 세계로의 형이상학적 침투, 혹은 양자의 통합으로 치닫는 것이다.5) 혼돈 속의 질서로 이룩한 거대한 화면. 인간과 동물, 식물 등 모든 생명체가 한데 어우러져 어둠도 슬픔마저도 화평으로 요해한 세계가 아닌가. 그것은 파라다이스 혹은 아르카디아(arcadia)의 세계다.

포 킴_발리의 기억 Memory of Bali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2.4×182.88cm_2003

3. 포 킴은 뉴욕의 다국적 예술의 세계에서 한때는 아방가르드의 비옥한 토양에 젖어 들었으며, 또 한때는 불교의 좌선(坐禪) 수행처럼 무아정적(無我靜寂)의 세밀한 묘사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포 킴의 예술은 원숙한 노년에 이르러 서양과 동양을 뛰어넘는 자기화의 길, 무한의 자유 세계로 한껏 날갯짓했다. 화면의 파노라마에는 젊은 시절을 억압했던 구속의 삶과 상처 입은 영혼을 이겨내고, 디아스포라의 땅에서 고립과 망향마저 씻어 내려간 포 킴의 삶의 승리가 투영되어 있다. ● 포 킴 예술은 한마디로 '아르카디아의 염원'. '낙원의 동경'이라 풀이할 수 있다. 영원한 희원(禧園) 아르카디아는 인간이 쫓는 행복의 땅이다. 그것은 미래의 희망으로 가득 찬 신화 같은 세계지만, 또한 좋았던 과거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아르카디아란 손에 잡을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잃어버린 시간을 향한 애절한 향수이기도 하다. 포 킴의 작품에는 한국과 일본, 한국과 미국으로 이어지는 디아스포라의 삶, 그 희망과 향수의 수레바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포 킴의 작품에는 때로는 죽음처럼 어두운 과거가, 때로는 유토피아 같은 밝은 미래가 교차한다. 포 킴은 '지상의 낙원'6)을 그렸다. ■ 김복기

* 각주 1) 나는 해방공간의 연표에 등장했던 김보현의 존재가 사려져 버린 이유가 궁금했다. 세상을 떠났거나 다른 나라(일본)로 이주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만 가지고 있었다. 망각의 화가로 남아 있던 김보현이 포 킴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은 1992년이다. 당시 미국에 일시 체류하던 장석원 전남대 교수가 『월간미술』 기자로 일했던 나에게 포 킴의 베일을 벗기는 발굴 기사를 보내왔다(장석원, 「김보현, 37년 만에 귀국전 갖는 재미화가」, 『월간미술』, 1992년 10월호, pp. 100-104). 40년 동안 국내 화단은 물론이고 뉴욕 한인 사회와도 철저히 단절되었던 화가 포 킴의 생애와 예술세계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고국과의 끈을 되찾은 포 킴은 1995년 가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대규모 작품전을 열었다. 2) 포 킴은 2000년 340여 점의 작품을, 2002년 부인 실비아 올드(Sylvia Wald)의 작품 78점을 조선대학교에 기증했다. 3) 포 킴의 생애와 예술세계는 나의 글 두 편을 참고할 수 있다. 여러 차례 뉴욕 취재로 쓴 글이다. 김복기, 「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아트인컬처』, 2006년 7월호, pp. 85-100: 김복기, 엘리너 하트니(Eleanor Heartney), 달리아 브라호플러스(Thalia Vrachopoulos) 지음, 「디아스포라 반세기의 삶과 예술」. 『Po Kim, 아르카디아로의 염원』. 에이엠아트, 2009, pp. 11-43. 4) 1997년 뉴저지 짐멀리미술관에서는 《아시아계 미국 예술가들과 추상(Asian American Artists and Abstraction) 1945~70》이라는 전시가 열렸다. 한국, 중국, 일본 작가 57명의 작품 150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였다. 한국 작가는 포 킴과 함께 장발 김환기 안동국 김병기 전성우 이수재 한농 존배 등 9명이었다. 이 전시의 근본 취지는 아시아계 미국 작가들이 미국미술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조명하는 것이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제프리 웩슬러(Jeffrey Wechsler)는 포 킴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서예를 연상시키는 김포의 추상작품은 무수정, 일필(一筆)의 동양 그림 방법을 적용해 유려한 선의 움직임과 여백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회화와 서예를 구별하지 않고 무구한 흰 종이를 회화의 한 요소로 응용하는 동양적인 사고는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서양의 관념을 뛰어넘는다. (…) 도교에서는 존재와 비존재가 등가(等價)여서 동양에는 회화적인 무(無)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무 그 자체가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존재인 것이다. 비백(飛白)이라 불리는 동양의 운필 기법은 이러한 사고가 담겨 있다. 붓끝이 깨져 먹 사이에 남긴 가늘고 긴 백지 부분, 거기에 나타나는 기(氣)가 '난다(飛)'는 활발한 행동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5) 바바라 런던(Barbara London), 「Earthly Paradise」, 『원로작가 초대전: 김보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5, p. 51. 6) 생전에 포 킴의 자연 예찬은 참으로 남달랐다. 그는 뉴욕 소호의 생활공간이자 스튜디오에서 수많은 새, 천 수백 종의 양란, 열대식물과 함께 살았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한 생명의 표정을 일상에서 마음 깊이 즐기곤 했다. 그곳은 마천루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지상의 낙원'이었다. 또 포 킴은 맨해튼 북쪽의 2만여 평 숲속의 별장에 작업실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림 같은 호수에는 물고기 떼가 헤엄치고, 한국의 석물과 화초, 우거진 수목이 신비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야생 노루가 식구처럼 뛰노는 땅, 새와 바람과 물이 합창하는 땅, 그리고 흙과 태양과 하늘이 서로를 환하게 비추며 웃는 땅. 인종도 국경도 이념의 경계도 없는 이 땅이야말로 바로 '지상의 낙원'이었다.

포 킴_날아가는 생각 Flying Thought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2.88×152.4cm_2006
포 킴_물 밑의 빨강 Red under Water_ 캔버스에 콜라주, 아크릴채색_182.88×152.4cm_2009

Envisioning Arcadia1. Po Kim (1917-2014), whose Korean name was Kim Pohyun, went to the U.S. in 1955—among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artists to do so—and took up permanent residency in New York City. He studied painting in Japan, later becoming a professor at Chosun University (Gwangju) soon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It was in Gwangju that he began his journey as an artistic pioneer. However, the entire nation was mired in the ideological upheaval between the political left and right after national liberation in 1945 and during the Korean War (1950-53). His life was also greatly impacted by this turbulent period: he was tortured by the rightists on charges of being a leftist, while the leftists nearly killed him on accusations of being a pro-U.S. reactionary. ● Eventually, Kim left for the U.S. as an exchange visitor on a fellowship at the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After one year, he settled in New York, which can be likened to freeing himself from ideological shackles and escaping to a world of freedom. This move to the U.S. dramatically changed the trajectory of his life. While it was an excursion into overwhelming freedom, it was also the beginning of a lonely existence as part of the Korean diaspora. The name "Kim Pohyun" disappeared completely from the South Korean art scene.1) Instead, "Po Kim" began a vigorous decades-long career. He lived in New York for the remaining 60 years of his life, until his death in 2014. ● The exhibition reflecting upon his oeuvre is to be held in Seoul. Major art institutions like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have already dealt seriously with his works, bringing greater light to his artistic achievements. As such, some of his artistic legacies have already returned to his motherland.2) Still, Po Kim remains a stranger in Korean art circles. I cannot help but wonder whether the soul of the lonely artist feels a craving—a homing instinct that continues even after his death in faraway New York. In this sense, this exhibition cannot be free from his longing for home—indeed, signifying a return of his artistic soul. It is a place to reflect upon the long-running, ever-evolving career Kim made in a strange land and share his hardships and delights, his comforts and glories.3)

2. Before his move to the U.S., Po Kim was engrossed in representational realism and naturalistic depictions, which were the mainstream among Korean artists of the time. Upon his arrival in the U.S., he took on an entirely different approach. Living in the heart of the international art community shook his entire artistic worldview. In other words, he was directly facing the 'contemporary world.' The artistic path of his career in the U.S. can be largely divided into three phases: (1) Abstract Expressionism in the 1950s and into the 1960s, (2) hyper-realist still-life drawings in the 1970s, and (3) a style he developed that freely crosses figuration and abstraction. This exhibition showcases works from this third and final phase. ● When he was settling in the U.S., the New York art world was at the height of the Abstract Expressionist movement, a glorious "flag" symbolizing the victory of American art, or more particularly, that of the New York School after the Second World War. Po Kim received fresh inspiration from Abstract Expressionism in terms of freedom, spontaneous brushstrokes, intense color, fluidity, and gestures of fierceness that echo the movement of the body. The traces left by his brush convey speed, tactility, and weight, filling each canvas with explosive energy. (Their intensity may have been part of his struggle to break free from the chains of the past. His abstract impulses were not unrelated to the nightmares from his earlier life in Korea and the traumas there that he wished to expunge.) His form of Abstract Expressionism differs from that of his Western colleagues. During the heyday of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m, Asian Americans introduced the techniques and ideas of traditional Eastern art into their works, fusing Eastern and Western aesthetics to reveal the formal characteristics of Abstract Expressionism through the use of traditional methods. In particular, the differences from Western painting can be seen in the expression of ch'i (氣, "vital energy"), calligraphic impulse, color, and intentional blank space.4) ● From the early 1970s, Po Kim came to focus on still-life drawings. The forceful wave of Abstract Expressionism subsided and he returned to representational depiction. The subjects of his works from this seven-year period include strawberries, peaches, pears, apples, mangos, walnuts, cabbage, carrots, green onions, and broccoli, all minutely depicted with colored pencils. At first glance, they look like soft watercolors, and the impeccable rendering, like that seen in elaborate multicolored prints, evokes a sense of mystery. Each subject simply exists in color within a bare white world, devoid of background. In these straightforward compositions, there is nothing else besides the fruit, nut or vegetable, not even a table or a background wall. There is, however, a cold sense of mental isolation in these hyper-realist drawings, produced out of an almost Zen-like concentration. ● From the latter half of the 1980s, he went back to work on large-scale canvases, indicating a sudden liberation from the strict rigidity of realism. This was a liberation from the object and from color and form—a transition from form to content. He poured his emotions and stories without hesitation and expanded his canvas. At first glance, they are reminiscent of the Neo-Expressionist paintings that dominated the international art scene in the 1980s, especially the American "new painting" or the Italian Transavantgarde. There is indeed a sense of the contemporary currents in Kim's transition. ● At this time, the "Po Kim style" was rushing to its peak. This can be regarded as a "third style" that embraced both the dynamic brushwork of abstraction and extremely realistic depiction. The canvas serves as a vacuum where time and space do not exist. It is reminiscent of continuous narrative in religious paintings that juxtapose multiple events from different times and spaces onto a single canvas. This style is also evocative of a theater stage with actors performing individual acts without a coherent storyline─As nude figures line up in various poses, cut-off body parts suddenly blend with all kinds of living creatures, such as flowers, fish, birds, etc. Images on the canvas float on the ground, in the water, and up in the sky, sometimes as if screaming in agony, and sometimes resting peacefully. ● Po Kim painted the subconscious, melting together and flowing into his long life, with spontaneous brushstrokes─freely creating images with each movement of his brush, without planning ahead. One might compare it to an impromptu performance by a seasoned musician. His work shows little concern for logic or rationalization: it is intended instead to infiltrate into the conscious domain through the subconscious, into the physical world through the metaphysical, seeking a merger of the two.5) On large canvases, where order is created out of chaos, where man, fauna, flora, and all living things are in harmony, and where darkness and even sadness are reconciled in the soul through peaceful acceptance, this is Arcadia, an earthly paradise.

3. In New York's multinational art world, Po Kim was once immersed in the fertile soil of the avant-garde, and at other times immersed in detailed depiction, as if engaged in Buddhist meditation. And finally, in his masterful old age, his art found its own path, transcending the distinction between East and West and soaring to infinite freedom. The panorama on the canvas projects his victory in life, as he overcame the cruel scars left on his young soul and prevailed against isolation and longing for home in the land of the diaspora. ● His art can be summarized as a longing for Arcadia and aspirations of paradise. Arcadia, the eternal paradise, is the land of happiness pursued by humans. It is a mythical world full of hope for the future, but also a longing for the good of the past. In other words, Arcadia is a hope that can be grasped, and it is simultaneously a sorrowful nostalgia for a time forever lost. In Po Kim's works, his life as part of the Korean diaspora in Japan, and again in the United States, repeatedly appears on the wheel of hope and nostalgia. His work presents a past as dark as death intersecting with a future as bright as utopia. As such, Po Kim envisioned Arcadia.6) ■ Kim Boggi

* footnote 1) I was curious about Kim Pohyun's disappearance from Korea, as he had made a remarkable appearance during the years after national liberation. I had only a vague assumption that he had passed away or moved to another country, possibly Japan. It was in 1992 when, after seemingly disappearing into oblivion, he reappeared as Po Kim. Chang Sukwon, a Chonnam National University professor who was temporarily living in the U.S. at the time, sent an article to me (I was then working as a journalist for Monthly Art magazine) that revealed who Po Kim was. [Chang Sukwon, "Kim Pohyun, a Korean-American Artist Having His First Show back Home in 37 Years," Monthly Art (October, 1992), pp.100-104]. It first introduced the life and art of Po Kim, who had been completely excluded not only from Korean art circles but also from the ethnic Korean community in New York for almost 40 years. Having restored his ties with home, Kim had a major exhibition at the Hangaram Art Museum in Seoul Arts Center in the autumn of 1995. 2) Po Kim donated some 340 of his works in 2000 and 78 works by his wife, Sylvia Wald, in 2002 to Chosun University. 3) For more information about the life and art of Po Kim, readers can refer to two of my writings based on extensive research and several visits to New York to cover him. Kim Boggi, "Korean Artist Po Kim in New York Portrays Arcadia on Earth," Art in Culture (July, 2006), pp.85-100; Kim Boggi, Eleanor Heartney, and Thalia Vrachopoulos, "The Life and Art of a Half Century in the Diaspora," Po Kim, a Longing for Arcadia (Seoul: I Am Art, 2009), pp.11-43. 4) In 1997, the Zimmerli Art Museum in New Jersey held an exhibition entitled, Asian American Artists and Abstraction, 1945-1970, which featured 150 works by 57 Korean, Chinese, and Japanese artists. The nine participating Korean artists were Don Ahn, Chang Louispal, Chun Sungwoo, Kim Byungki, Kim Whanki, Po Kim, Lee Soojai, Nong (Han Kisuk), and John Pai. The exhibition was meant to shed light on the influences that Asian American artists had on American art and vice versa. Jeffrey Wechsler, who curated the exhibition, evaluated Kim's work in the following way: "Po Kim's calligraphic abstractions reflect the uncorrected, single-go Eastern method, its elegantly developed linear gestures and, more importantly, its concern for open space. Whether in painting or calligraphy, the Eastern use of untouched white paper as a pictorial element went beyond the Western notion of "negative space,' a term that itself implied the superiority of the mark over the void. As "being" and "non-being" are equal in the Tao, there is really no such thing as a pictorial "nothing" in the East. "Nothingness" itself is a metaphysical entity. This concept lies behind the Eastern technique of brush gesture known as "flying white," named not for the visual effect of the ink but instead for where the ink is not. The streamers of untouched white paper left between the ink deposited by divided bristles of a brush are the visual focus, and the presence of ch'i invests these voids with the vitalized physical activity of "flying." 5) Barbara London, "Earthly Paradise," Invitational Veteran Artist Retrospective: Po Kim (Seoul: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1995), p.51. 6) His whole life, Po Kim was a great admirer of nature. At his artist's loft in SoHo, New York, he had numerous birds and well over a thousand Western orchids and tropical plants. He deeply appreciated the beauty of nature and the mysterious expressions of life on hand for him in his home, which was an "Earthly Paradise," nestled among skyscrapers in the large city. He had another studio at a second home in a forest of approximately 66,000 m2, north of Manhattan. There, a picturesque lake teemed with fish, and, together with plants and stone implements brought all the way from Korea, they created a mystical scene in the midst of tall trees and shrubs. Wild roe deer romped around as if part of the family; birds, wind, and water sang in chorus; the soil, sun, and sky shone and smiled on each other. This place, with no restrictions of race, border, or ideology, was the Arcadia he himself found on Earth.

Vol.20220506c | 포 킴(김보현)展 / Po Kim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