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er piece language 내적 언어의 편린(片鱗)

구성안展 / KUSUNGAN / 具星安 / painting   2022_0510 ▶ 2022_0516

구성안_fiel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9.4×130.3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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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주말_12:00pm~06:00pm

갤러리 너트&아트게이트 7 KNOT Gallery&AG 7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7(안국동 175-61번지) Tel. +82.(0)2.598.5333 www.galleryknot.com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 수많은 스펙터클과 비교되는 회화는 한 화면에 많은 것을 압축함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정지된 한 장면에 잠재적 운동감과 그에 따르는 서사를 접어 넣는 방식은 고전적이다. 회화는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많은 정보량을 내장한다는 점에서 밀도 있는 매체다. 동시에 이러한 밀도는 용이한 소통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현대의 화가는 그가 비록 물감과 붓만으로 작업한다 할지라도 다른 시각적 관습에 반응하며, 때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현대인의 몸의 일부가 되다시피 한 작은 고성능 컴퓨터인 스마트 폰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 한 작은 액정화면은 인터넷 이전의 장르들 또한 급격하게 변화시킨다. 하지만 그럴수록 화가는 회화만이 가능한 표현방식을 고민하기 마련이다. 2021년 말에 열린 구성안의 전시 [The stare of zooming]의 부제에서는 광학적 용어가 등장한다. 줌 아웃일 때는 풍경, 줌 인일 때는 추상적 드로잉으로 보이는 이중적 차원은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구성안_part of fiel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12.1cm_2022

구성안의 작품은 다소간 평범한 풍경을 밀도를 통해 또 다른 차원으로의 변주를 꾀한다. 그의 경우에는 관객이 보는 위치도 감안한다. 가까이 가서 보면 수많은 선의 그물망으로 뒤덮인 추상화가, 멀리서 보면 자연이나 고건축 같은 형태가 드러난다. 가까이 갈수록 대상은 멀어지지만 더 자세해지는 것은 조형 언어다. 정작 그 언어가 실어 나를 내용은 모호해진다. 우리는 대체로 멀리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마치 잘 알고 있다는 듯 자신 있게 말한다. 정치에 대한 생각이 대표적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대중들도 SNS 등을 통해 여론 조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대중은 매체나 관료주의 등 시스템의 관리를 받는 존재다. 그가 정치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환골탈태하는 경험이나 도전이 요구될 것이다.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모를뿐더러 명확하게 말하기도 힘들다. 나, 특히 작업하는 내가 대표적이다. 구성안의 작품의 형식적 밀도를 지탱해주고 있는 수행성은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나를 잊음으로서 다시 찾는 역설적 방식이다. ● 작업을 열심히 한다고 작품이 더 확실해지는 것은 아니다. 구성안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고건축의 지붕이나 식물은 어떠한가? 그것은 잘 안다고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다. 작가는 '자연은 우리에게 예술가에게 영원한 진리이며 철학'이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대상에 주목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결말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삶도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2021)고도 한다. 작가는 전체가 아닌 일부를 선택함으로서 의미와 연결될 명확한 대상을 찾는 관객의 눈을 시험한다. 부분의 선택은 카메라를 비롯해서 여러 복제기계의 도움으로 용이하게 실험할 수 있다. 동시에 작가는 다른 복제기계와는 다른 그림만의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구성안은 그것을 여백과 필촉에서 찾았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칠해진 작품은 통상적이지 않은 부분에 배치된 여백이나 하나하나 손으로 그은 선들은 기계적 반복이 아닌 차이를 낳는 반복을 지향한다.

구성안_part of fiel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233.6cm_2022

이번 전시에서는 여백이 거의 없는 작품도 출품되지만, 대체로 여백은 동질이상의 작품에 차이를 낳는 요소다. 작업 초반기의 서정적추상화 스타일의 작품을 부분적으로만 계승한 이 방식은 2006년경부터 시작됐다. 요즘의 작업은 노동력이 많이 들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타협의 결과이기도 하다. 몰입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과 짬짬이 시간을 내서도 이어갈 수 있는 작업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요즘 스타일의 작업에 대해 '자다가도 일어나서 선을 그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삶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하는 수행적 작업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작업 편의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얇은 선을 수없이 쌓아가는 기본적인 방법론은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냈던 작가에게 자연에 내재하는 수많은 겹의 표현에 적절했다. 중첩되는 선들은 여러 색깔로 이루어져 있지만 작품마다 톤은 다르다.

구성안_piece of fiel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6_2022

세필로 촘촘하게 그어진 선들은 그것은 시각성에 한정되어 오던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에 촉각성을 도입하는 요소이다. 마거릿 올린은 [현대문학 문화비평 용어사전](조셉 칠더즈, 게리 헨치 편집, 문학동네)의 '응시'를 설명한 장에서, 응시의 이론을 통해 시각예술을 다시 본다. 저자의 결론은 시각의 폭력성을 지적하고 배제되었던 촉각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마거릿 올린은 19세기의 심리학 이론을 활용하면서, 촉각은 무게와 견고함을 전달하는 가운데 현실과 접촉하게 만드는 반면, 시각은 비물질적인 색채와 빛을 전달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시각은 지성, 영혼, 상상력의 감각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촉각은 보다 현세적인 임무에 속한 것으로 남겨졌다고 한다. 이론가들은 시각예술이 시각에 고유한 색채와 빛을 묘사하는 데 머물러야 하며 윤곽선과 같은 촉각을 보다 잘 전달하는 요소를 재현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회화는 시각성에 특권을 부여하게 된다. 마거릿 올린은 이러한 선택 또는 편중에서 시각과 정신주의의 연합을 본다. 시각성에만 충실한 '진정한' 예술은 우리를 일상을 초월한 곳으로 데려간다. 촉각은 정신이 아닌 사물의 영역에 남겨졌다. 이러한 편중은 시각의 관념성, 그리고 권력과 얽힌 난맥상을 간과한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권력관계를 보는 마거릿 올린은 메두사같은 응시로 인해 돌로 변한 시선의 폭력성을 언급한다. 마거릿 올린은 응시를 감시와 연관시킨 미셀 푸코, 그리고 구경꾼이 됨으로서 탈 인간화될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기 드보르의 이론의 예를 통해서 시각성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강조한다. 구성안의 작품에서 시각적 측면을 방해하는 요소는 복슬복슬한 편물 수세미가 연상될 정도로 촉각성이다. 작품마다 예측 불가능한 자유로운 여백의 운용은 까슬까슬한 필촉의 실루엣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중략]

구성안_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3.4cm×4_2021

작가가 전시 부제로 썼던 광학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통상적인 시야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지붕이라는 소재 그 자체는 '줌 인' 된 것이다. 작가는 '줌 인'을 통해 지붕의 텅 빈 부분을 강조한다. 하얀 눈으로 착각할 부분은 이 작품이 새삼 그려진 그림임을 자각하게 한다. 이미 작가는 기와처럼 눈보다 더 단단한 대상 또한 가는 선으로 와해시켰다. 물론 그것은 화면을 더 자세히 볼 때 그렇다. ● 가까이 보면 이 작품은 잔설이 남은 붉은 기와지붕이기보다는 수많은 가는 선들이 하얀 면 위에 얹혀 있는 섬세한 그물망이다. 선들은 대상을 단단히 고정하기보다는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는 실 같은 형태가 켜켜이 얹혀진 상태다. 그것은 '줌 아웃' 된 위치에서만 시각적 환영에 충실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흩어지고 멀리서 보면 뭉친다. 구성안의 작품은 관객의 시야에 의해 추상과 구상은 자리를 바꾸곤 한다.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인 서양화지만 채색화처럼도 보이는 작품에 적용된 동양화의 여백의 개념은 일상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단단한 지반에 어깃장을 놓는다. 이번 전시의 지붕 시리즈에서도 '응시'라는 키워드는 함께 가지고 간다. 작품 [stare](2022)는 궁궐의 지붕이 화면 가득 잡혀있다. 그 위에 선이 흩뿌려진 듯 덮여 있다. 나무/숲을 표현할 때 가지런한 세로줄이었던 것과 차이가 있다. 기와지붕은 자연과 좀 더 가까웠던 전통의 상징이다.

구성안_star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30.3cm_2022

자연이 아닌 자연적 요소는 인공의 산물인 건축의 층을 만든다. 그것은 시간의 두께를 늘려가고 있는 오래된 것들과 함께 간다. 운동감 있는 다채로운 선의 배열은 무채 색조의 기와지붕에 활기를 부여한다. 인상파 회화처럼 팔렛트가 아닌 눈에서 직접 색이 섞인다. 식물과 지붕이 함께 있는 풍경은 서로를 품고 있다. 건축이라는 문명의 산물 역시 자연처럼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오래된 풍경이다. 하지만 구성안의 작품은 자연이든 고건축이든 무겁지는 않다. 겹은 물리적 두툼함보다는 오래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분위기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지만 실재와 비례에서 짙어진다. 하지만 벤야민이 예견했듯이 분위기는 사진을 필두로 하는 본격적인 기계 복제의 시대가 열린 후에 사라져간다. 오늘날 화가는 변화된 조건 속에서 다시금 예술이 실재같은 위상 또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려 한다. '시간을 쌓고, 겹겹이 쌓여진 시간이 보이기를'(2018)바라는 구성안의 작품들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 이선영

Vol.20220510b | 구성안展 / KUSUNGAN / 具星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