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ure 출발

주황展 / JOOHWANG / 周荒 / photography   2022_0513 ▶ 2022_0610 / 월요일 휴관

주황_Departure #4570 tokyo_디지털 C 프린트_105×7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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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홈페이지_www.joohwang.kr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3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_spacemom

은유로서의 익명성 - 길 위에서 ● 주황은 길 위에서 사진을 찍어왔다. 유학 시절에 그는 유색인, 이민자, 가난한 예술가와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 다운타운에 살았다. 이스트 빌리지에서 마주친 아시아 여성들의 사진을 찍은 「Stranger Than Paradise」(1996)처럼, 백인 남성 중산층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인종, 젠더, 종교, 계급 등의 이유로 자신과 마찬가지로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당시 사진은 요즘의 휴대폰 카메라만큼 조작이 간단한 건 아니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을 순발력 있게 포착하고 시각의 무의식을 드러내기에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포토저널리즘과 거리 사진의 역사부터 80년대 미국의 소수자 문화에서 나온 사진 작업 등이 증명하듯 사진은 정치적인 성향의 예술가들에게 어울리는 매체였다.

주황_Departure #0233_디지털 C 프린트_105×70cm_2016

유학생이 많지 않은 미국 대학에 다니며 쌓인 소외의 감각은 홀로 고립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더욱 유심히 바라보게 했다. 다운타운에 사는 젊은 아시아 여성들은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점찍어 미뤄두다시피 했을 사람들이다. 아직 사진가로서의 경력이 충분치 않은 시절의 작가가 거리의 여성들에게 다가가 쭈뼛쭈뼛 말을 거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퍽 갑작스러운 제안인데다 조리 있게 취지를 설명하지도 못했는데도 의외로 흔쾌히 촬영에 응한다. 해 질 녘, 또 하루만큼의 긴장과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겪고 몸도 마음도 피곤한 상태에서 낯선 이의 부탁을 받고 남에게 보일지도 모르는 사진을 찍겠다고 결정한다. 말로 채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공감이 작용했을까. ● 대체로 경직된 그들의 모습을 보면 사진가와의 서먹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가끔은 멀리서 거리 풍경과 어우러지고, 가끔은 렌즈를 가까이 당겨 무표정 아래 감춘 투명하고 여린 인상을 드러냄으로써,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달랐을 그들의 삶을 상상해보게 한다. 젊은 아시아 여성 한 무리가 한때 그곳의 지리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주황의 사진 연작이 없었다면 막연하게만 남아 거의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 오랜 타지 생활을 정리하고 2012년에 한국에 돌아온 작가는 최근에 대전의 비혼 여성 공동체 '비온후갬'의 회원 중 페미니스트 문화 기획자 그룹 보슈 팀의 일원들 사진을 찍었다. 「피리 부는 여자들」(2021-2022)은 대전 구도심 거리의 골목이나 공터를 배회하며 야외 코트에서 농구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이 경우에는 즉흥적인 섭외와 설득의 과정을 거치는 거리 사진과는 다르게, 사전에 여러 차례 만남을 거듭하며 이들의 특수한 삶의 방식에 대해 자세히 듣고 사진 작업의 의지에 대해서도 공감을 받았다. ● 그런데 어쩐지 주황이 찍은 사진에서 이들은 모두 거리에 서 있다. 적어도 공개된 사진 중에는 그렇다. 여러 사진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상이 바뀌는 것을 통해 여러 날에 걸쳐 찍은 것임을 알 수 있지만, 세 사람이 모여 거리를 유랑하듯 떠도는 모드가 일관적이라 한낱 한시에 길에서 맞닥트려 따라다니며 찍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은 공동체의 활동 공간이 있는 지역으로, 오랫동안 공동화되었다가 몇 년 전부터 재개발이 시작돼서 곳곳에 건물이 헐리며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다. 적어도 사진 속의 거리는 작가가 지정한 배경이 아니라, 피사체가 이끌어 간 곳일 테다.

주황_Departure #0551 malaysia_디지털 C 프린트_105×70cm_2016

평소 모습 중에서 거리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동안, 작가의 시선은 경계 없이 이곳을 바라보는 얼굴에, 농구 코트에서 가볍게 날아올라 깨끗한 폼으로 공을 던지는 몸으로, 공터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다정하고 친밀한 관계와 같은 다양한 모습으로 향한다.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작가와 사전에 대화를 나누고 나름의 관계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에서 거의 무표정하다는 점이다. 아주 먼 거리에서 찍은 사진에서 옆으로 고개를 돌린 한 사람이 무리와 떠들며 웃고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아주 신중하게 웃는 얼굴을 골라내 비공개로 돌린 것처럼 보일 정도다. ● 「Stranger Than Paradise」에서는 이스트빌리지라는 소수자 지역의 맥락이, 「피리 부는 여자들」에서는 여러 번 반복해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들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삶을 더욱 궁금해지게 만든다. 오래된 미학적 상찬의 언어를 따르자면 이런 사진은 개인의 진실한 내면이 담긴,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감정을 드러내기를 거부함으로써 어떤 내면적 진실을 드러내는 듯하다.

주황_출발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22

은유로서의 익명성 ● 「Departure」(2016)는 다르다. 내면을 드러내지도, 감추면서 응축하지도 않고, 표면 그 자체를 보도록 한다.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2015-2016), 「Departure」(2016), 「의상을 입어라」(2016)와 같이 2015-2016년 사이에 수행한 연작 세 편은 사진의 다큐멘터리적 방법에 있어 이전과 사뭇 다른 방식을 취한다. 거리 사진의 즉흥성과 우연성보다 작가의 개념과 단순하고 견고한 시각적 구조가 명백하게 강조된다. 특히 스튜디오 촬영을 택한 다른 두 편과 달리, 「Departure」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섭외해서 곧바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주황_출발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22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작업은 파일명 「departure #0155 amsterdam」에서 시작한다.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지인을 인천국제공항까지 마중하며 헤어지기 전에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발단으로 작가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찍기로 한다. 사진 속 지인은 가벼운 옷차림에 긴장감 없이 편하게 웃는 얼굴이고, 출국장 터미널 바깥 인도의 노란색 안전선 안쪽에서 여행용 캐리어 손잡이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 서있다. ● 한편 같은 장소에서 찍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표정이 없다. 전신 촬영이라 얼굴의 미묘한 뉘앙스가 가까이 드러나지 않아서일까, 사진을 찍자고 말을 건 사람이 생각보다 멀리 뒤로 물러나는 동안 갑작스러운 촬영의 어색함이나 긴장감이 몰려왔을까, 버스나 자가용에서 내려 건물에 들어가려는 바쁜 사람들을 붙잡고 마찬가지로 충분히 대화를 나눌 틈 없이 바쁘게 셔터를 눌러야 했을까. 이들은 포커스 아웃된 배경에 아른거리는 시멘트 건물과 가로수만큼이나 익명적으로 보인다.

주황_Departure #2611 london_디지털 C 프린트_170×113cm_2016

그러고 보면 자연광이 비치는 출국장 바로 바깥의 보도블록은 연예계 셀럽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 각종 온라인 보도 매체의 카메라 앞에서 공항 패션을 뽐내며 포즈를 잡아 보이는 장소다. 이렇게 장르화 되고 잘 알려진 사진의 형식이 유명세 자체를 이미지로 담아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황의 사진에서 무명의 인물들이 반복하는 관습적인 모습은 오리지널 이미지의 상징적 의미를 파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황_Departure #4407 indonesia_디지털 C 프린트_170×113cm_2016

주황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관심이 갔다. 20여 년간의 타지 생활에 지쳐 모국에 돌아와 일말의 안락감을 느끼며 살던 그에게 새로운 세대에 불거진 이주와 탈주의 욕망은 사고의 재 정치화를 요구했다. 2015년을 기점으로 한 시공간에서 현재의 첨예한 선예도는 너무 오래 붙들고 있어 꿈처럼 아득해진 정서를 자극했다. 헬조선, 여혐, 미투와 해시태그, 랟팸 등 다양한 현상이 비명을 지르듯 거칠게 한국 사회의 정적을 가르고 나왔다. 여성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오랜 사회적 갈등의 지연된 공론화가 이루어졌다. ● 결론적으로 「Departure」에 담긴 여성들이 이런 사회적 갈등의 맥락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사진 속 얼굴들이 누구인지, 어떤 내면의 소유자인지,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별 관심이 없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알지 못한다. 사진 파일에 적어놓았듯이 목적지로만 기록된 익명의 인물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피사체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사진가의 욕망에 무기력하게 동원되고 이미지를 착취당했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작업의 취지를 듣고 참여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절차적인 측면 이외에도, 이들은 그러한 익명성의 파괴력을 통해 이 작업을 완수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황_Departure #0462 New York_디지털 C 프린트_170×113cm_2016

다른 장면에서 여성들은 살짝 미소를 지어보일 만큼 조금 여유로워 보인다. 출국장 안에 들어와 수속을 마치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에 대화는 좀 더 편하게 오가고 카메라는 더욱 가깝게 들어간다. 행인들의 보행에 반대가 되지 않도록 밀착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실내 사진에서 바닥에 놓인 캐리어가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날 만큼 카메라는 지척에 서서 인물의 얼굴을 바라본다. ● 여전히, 홀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간편한 복장으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안팎을 거닐던 젊은 여성이라는 포괄적인 기표 이외에 많은 것들이 모호하다. 주황이 관심을 가졌던 대상, 한국 사회를 떠나고 싶어 할 만큼 억압되고 고통 받는 젊은 여성의 내면을 암시할 만한 요소는 없다. 어쩌면 이들은 정말 떠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집 안에 무겁게 발이 묶인 어떤 여성들의 은유상이다. ● 「Departure」에 동참한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과 내면이 아니라, 그러한 기표에 부여된 시대적 은유를 수행하기 위해 익명의 존재가 되었다. 작가와 인물 모두의 투사가 사진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 던져진다. 들여다봐야 할 내면이 있다면 당신의 것이다.■ 김정현

Vol.20220513i | 주황展 / JOOHWANG / 周荒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