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MAGE

설고은展 / SEOLGWEN / 偰고은 / painting   2022_0514 ▶ 2022_0610 / 일,월요일 휴관

설고은_새로울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한 새로운 이미지와 영상은 언제나처럼 일정하게 빠르게 쉼없이 멀어지고 가까워지고 지나쳐버리고 건조한 문법으로 녹아 내린다 (0,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30.3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일,월요일 휴관

스펙트럼 갤러리 SPECTRUM GALLERY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32길 2-3 (이태원동 211-22번지) Tel. +82.(0)2.6397.2212 www.spectrumgallery.co.kr @spectrumgallery_official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정말이지 간단한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네모난 틀, 그리고 그 안을 위아래 가끔은 조금 왼쪽으로 아니면 간혹 오른쪽으로 까딱거리는 손가락. (주로) 엄지와 검지가 쭉 펴지고 움츠러드는 동안 나머지 손가락은 가만히 무게를 지탱한다. 그렇게 아주 작은 부분만이 좁게 움직이는 동안 화면에서는 읽을 수 있고 없는 것들이 덜컥 등장했다 미련 없이 떠난다. 가령 메일앱을 켜서 받은편지함을 확인하고 메모장 모양의 아이콘 위에 손가락을 올려서 켠 후엔 사파리를 열었다가 인스타그램으로 흘러들어간다. 엄지를 위아래로 쓱쓱 미끄러뜨리다가 종종 어느 지점을 건드리고 이번에는 유튜브로…. 손가락이 한동안 문지르던 스마트폰 화면이 어느 순간 검은색으로 단칼에 뒤덮인다.

설고은_모르는 사람들이 모르는 장소에서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들을 무력하게 보는 새벽 2시 28분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반복되며 일상에 예기치않은 흔적을 남긴다 (0,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30.3cm_2022

설고은의 작업은 그렇게 불쑥 사라져버리기 전에 보았던, 보았지만 고이지 않고 흘러가버린 것들에서부터 시작된다. 한참을 위아래로 미끄러뜨리고 켜고 끈, 영상과 그림과 문자와 소리가 뒤섞인 이미지가 한바탕 지나간 이후 시작된다. 우선 잔뜩 보았던 지난밤의 화면을 헤쳐 본다. 손가락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던 이미지들은 하지만 그것과 맞바꾼 뭉텅이의 시간처럼 한데 뭉쳐 벌써 어렴풋해졌다. 무언가를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옮길 때면 간신히 실루엣만 남은 뿌연 잔상이 두둥실 따라붙곤 한다. 마치 떠나지 말라는 듯이 눈에 매달리지만 깜빡임 몇 번에 금세 사라진다. 뭉글한 형상으로 얼핏 기억하는 잔상을, 그렇게 웅얼거리는 희미한 흔적들을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낚아채 캔버스에 뚜렷이 흡착시킨다. 네모난 화면이 까맣게 뒤덮이기 전 빛을 뿜어내던, 지난밤의 잔상들에 물감의 이름으로 색을 할당하고 순서와 투명도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미끄러져나가던 그것들을 붙잡는다. 다시금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설고은_Mail, Notes, Safari, Instagram, Notes, Safari, Karrot Market, Safari, Notes, Instagram, Notes_ 150×200cm(50×50cm×12)_2022

이제 이미지가 옮겨진 캔버스를 바라본다. '무엇'보다는 '어떻게'가 먼저 보인다. 모두 와글와글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다. 이제 좀 더 훑으며 구분하고 구별해본다. 설고은의 캔버스는 두개의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갖가지 네모들과, 이리저리 활보하며 벋친 얇고 두꺼운 곡선으로 뒤덮여있다. 붓 대신 에어브러시를 거친 물감은 발려있다기보다는 입자로 흩뿌려져있고, 그렇게 형상들은 미약하게 울퉁불퉁한 캔버스의 표면을 메꾸어가며 안착된다. 선명하게, 혹 반투명할지라도 뚜렷하게 각자 자리를 차지한다. 같은 자리를 공유하며 겹을 이루더라도 물리적인 높이를 생성하지는 않는다. 쌓이고 쌓이지만 두툼해지지는 않는다. 대신 투사되듯 겹치고 겹쳐 캔버스 표면에 더욱 찰싹 달라붙는다.

설고은_Things that revolve around the not-so-distant cloud sphere not so far from now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150cm(50×50cm×3)_2022
설고은_찾을 수 없는 너의 흔적을 찾아 조슈아 트리 공원을 검색하지만 유튜브의 짧은 영상들은 끝없이 돌아가는 회전문처럼 연결되지만 연결되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나를 인도한다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400cm(50×50cm×24)_2022

미약한 움직임만으로도 옮기고 볼 수 있었던 이미지들이 남긴 잔상은 그만큼 미약하게 금세 어렴풋해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미끄러지던 잔상들이 안착된 캔버스 위에서, 여기서는 사라지기는커녕 끝없이 불어난다. 계속해서 연결되는 캔버스만큼의 몸집을 불려간다. 그렇게 설고은은 쉼표를 사이에 두고 잔상(after)과 이미지(image) 사이를 겅중겅중 오가며 눈 깜빡임 몇 번으로 사라지지 않는, 잔상으로 일구어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 최지원

잠이 오지 않는 밤은 매일이다. 아니다, 잠에 들기 싫은 밤이 계속이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사용한다. 아니다, 내게는 사용이라는 단어에 짙게 깔린 특정한 의도와 목적성이 부재한다. 작은 화면에 언어와 숫자, 이미지가 끝없이 떠오르는 것을 본다. 아니다, 나는 무언가를 보지만 강렬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다. ● 눈을 감고 잠에 들기까지 그 짧은 시간을 관통하는 것들, 생각과 감정들을 피해 작은 손바닥 크기의 화면으로 도망친다. 오른손 엄지로 화면을 기계적으로 쓸어내린다. 손가락을 위로 쓸어올리는 것 이상의 에너지가 들어가는 활동은 하지 않는다. 키워드를 검색해 그것을 보는 행위마저도 귀찮다. 밤 9시부터 자동으로 켜지는 "Do Not Disturb" 기능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일체의 연락을 차단한다. 소통과 연대의 끈을 자발적으로 거부하고 누군가 디지털 세계에 남겨놓은 흔적을 은밀히 지나친다. 대략 30초, 길어야 1분을 넘기지 않는 인스타그램의 릴스나 유튜브 쇼츠를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린다. 찰나와 찰나의 분절과 분열들. 막막한 시공간을 그저 유영한다. 오랫동안 화면을 바라봐 빡빡해진 눈의 통증을 무시한다보면 어느 순간 기억이 뚝- 끊기고 기절하듯 잠에 든다. ● 다음날이 온다. 작업실에 출근을 한다. 내가 지난 밤에 보았던 것은 정말 본 것일까. 스치고 지나간 시각적 자극을 되짚어본다. 개별적인 이미지와 영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흐릿하다. 대신 빠르게 점멸한다. 스믈스믈 이동한다. 부지불식간에 증식하는 것들이 대한 인상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들의 연속성이 떠오르고, 어둠속에서 핸드폰 화면의 네모난 가장자리를 따라 형성된 희뿌연 빛무리가 떠오른다. 작업에 앞서 레이어를 정한다. 물감을 조색해 줄줄이 늘어선 빈 통에 넣는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차례로 칠하고 흩뿌린다. 어떤 것이 앞에 오고 어떤 것이 뒤에 오는지 주의깊게 봐야 알 수 있도록 투명도와 위치를 조절한다. 각 레이어마다 사진을 찍고 사용한 물감과 기법을 기록으로 남긴다. 다음에 올 캔버스를 연결해서 언제든지 끝없이 이어 갈 수 있도록. ■ 설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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