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amiliar Trip (낯선여행) - 문이 없는 마을

박초현展 / PARKCHOHYUN / 朴礎顯 / painting   2022_0518 ▶ 2022_0523

박초현_낯선여행 #22011_실크에 페인팅_100×80.3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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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2_0518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5층 경남갤러리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박초현의 낯선여행 - '門이 없는 마을' ● 어느새 녹음이 짙어졌다. 잠시 지난 기억을 더듬어 본다. 47년여 전의 이야기다. 녹음이 드리우기 시작하던 봄날. 혼자였다. 봄볕이 너무나도 따사로워서 대청마루 아 래 놓인 신발들을 가지런히 모아 그 위에 누워서는 낮잠을 잤다. 햇살이 너무 포근하 고 따뜻했다. 펼쳐진 손가락 사이로 볕이 내 눈을 파고들 때는 살짝 눈물이 드리우곤 했다. 외로웠다.... ● 그 해 봄날 조그만 연필 깎는 칼 한 자루와 자그마한 소쿠리를 들고 쑥을 캐러 갔다. 지 금의 기억에도 참쑥의 크기와 내 손의 크기가 그만그만했다. 이윽고 바구니 가득 쑥을 채우고 채워진 나물만큼이나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박초현_낯선여행 #22014_실크에 페인팅_195×348cm_2022
박초현_낯선여행 #22003_실크에 페인팅_97×97cm_2022
박초현_낯선여행 #22004_실크에 페인팅_97×97cm_2022
박초현_낯선여행 #22005_실크에 페인팅_97×97cm_2022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해가 막 떨어지고 캄캄해져 오는 밤 부모님은 역시 농사 일로, 형님들은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 방, 저 방을 열심히 쓸고 닦아도 아 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텅 빈 방 한쪽에 드러누워 본다. 지금은 그냥 작은 방이었지만 그때는 큰 운동장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멀리 사각의 방 모서리만이 그나마 위안이 되 었다. 나 홀로 덩그러니 버려진 그런 세상이었다. ● 그해 여름, 방학이었다. 친구들과 소 풀 먹이러 산으로 가곤했다. 소뿔에 소 몰던 끈을 휘휘 감아서 소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준다. 그리고는 방목. 나는 친구들과 전쟁놀이. 해가 질 무렵이 돼서야 놓아준 소를 찾아 나선다. 도무지 우리 집 소만 보이질 않는다. 유난 작았던 몸으로 산길을 찾아 헤매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눈물은 눈 앞 을 가리고 아무리 외쳐 불러도 기척이 없었다. 소 찾기를 포기하고 눈물을 머금고 집으 로 돌아선다. 집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더욱 크게 울어본다.

박초현_낯선여행 #22001_실크에 페인팅_97×97cm_2022
박초현_낯선여행 #22002_실크에 페인팅_130.3×97cm_2022
박초현_낯선여행 #22010_실크에 페인팅_130.3×97cm_2022
박초현_낯선여행 #22008_실크에 페인팅_130.3×97cm_2022

이듬해 10살이 되었다. 집에는 돼지 막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의 체구는 아직 도 조그마했다. 여전히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집 안팎을 부지런히 쓸고 닦았 다. 그런 성취감이 너무 좋았다. 방에서 잠시 쉬는 동안 밖이 소란스럽다. 문을 열자 돼 지들이 탈출해서 빗살 무늬로 빗질 자국을 내놓은 정갈한 마당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 다. 200kg 정도 되는 어미돼지 2~3마리와 4~50kg씩 나가는 새끼 돼지 예닐곱 마리 가 있었다. 역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돼지들과의 전쟁.... 아무리 애를 써도 역부족 이다. 오히려 나는 공격을 받으며 도망치다 악!! 돼지우리의 문짝에 크게 삐져나와 있던 검붉게 녹슨 대못이 발바닥과 발등을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다. 돼지들이 오가며 짓이 겨 놓은 배설물 위에 나뒹굴어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오열하고 또 오열했다. 하염없이 목 이 터져라 울었다. 너무 아프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다.

박초현_낯선여행 #22009_실크에 페인팅_130.3×97cm_2022
박초현_낯선여행 #22006_실크에 페인팅_80.3×80.3cm_2022
박초현_낯선여행 #22007_실크에 페인팅_80.3×80.3cm_2022

...기억들, 그리고 지금 나는 보고 있다. 그러한 시간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 내가 하는 작업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기보다는 우주를 보는 것이든 종교를 보는 것이 든 또는 물리학적 관점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시간을 보는 것이다. "존재하는 나"와 시 공간의 관계,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공간에서와 지금 나와의 관계. 이런 일련의 순간 을 직관해 보는 것이 나의 작업이다. ● 꽃을 그린다든지, 포도를 그린다든지, 호박을 그린다든지, 꽃나무를 그리는 것이 단지 현상만 따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재들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금의 꽃이 일 년 전에도 또는 이 년 전에도 또 십 년 전에도 그 이전과 이전에도 어떤 환경과 함께 존재하고 있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 역시도 내가 기억하든 못하든 지금의 모습 과 이전의 모습이 함께인 것이다. 양자 역학에서 보여진다는 것은 빛이라고 한다. 원자 핵들로 이루어져서 에너지 작용에 의해 보여지는 빛. 지금의 나도 빛이요, 내가 어린 유년 시절의 기억들도 빛의 소산물이다. 나는 그런 빛을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우주와 나의 우주를 생각해보고 이치를 알아가고 싶다.

박초현_낯선여행 #22015_실크에 페인팅_195×119.5cm_2022
박초현_낯선여행 #22014_실크에 페인팅_195×97cm_2022

이렇듯 나의 여행은 늘 낯설고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시간 여행이다. 문(門)이 없어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오갈 수 있는 마을에 나는 살고 있다. 바람이 내 머리를 스친다. 언젠가 나도 스치는 바람으로 남게 될까.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기를.... - 2022년 어느 향기 나는 봄날에 ■ 박초현

Vol.20220518e | 박초현展 / PARKCHOHYUN / 朴礎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