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뻘: 시공을 몽타쥬하다 Ppaeppeol: Montage of time and space

김현주+조광희展   2022_0518 ▶ 2022_0526 / 일요일 휴관

포럼 / 2022_0526_목요일_03:00pm

지역문화자원 발굴 및 재생 거점공간 기획지원사업

주최 / 빼뻘 보관소 후원 / 의정부문화재단_경기문화재단_의정부시

관람시간 / 10:00am~04:00pm / 26일_10:00am~03:00pm / 일요일 휴관

의정부아트캠프 블랙 UijeongBu Artcamp BLACK 경기도 의정부시 평화로493번길 48 (의정부동 161-1번지) Tel. +82.(0)31.850.5130

복화술의 무대: '빼뻘 보관소' - 1. 빼뻘은 어떤 곳인가요? ● '빼뻘'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익숙한 장소나 지명이 아니다. 갯벌의 방언을 의미하는 '뻘'이라는 명칭이 암시하는바 이곳은 오래된 커뮤니티의 역사를 지닌 마을이라기보다는 버려진 땅에 가까웠다. 현재의 '빼뻘'로 불리는 마을 건너편에 위치한 산곡동에 살던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뺑풀이 많다고 하여 '뺑뻘', '빼뻘'이라 불렀다. 동두천이나 의정부에 비하여 빼뻘이라는 명칭이 필자에게도 낯설었기에 작가에게 이곳이 '기지촌'과는 어떠한 관계에 있느냐고 물었다. "빼뻘도 기지촌 중의 하나예요." 원래 기지촌이라는 명칭은 6.25 전쟁 직후 한반도, 특히 경기도 북부 휴전선 근처에 주둔하게 된 미국의 기지 근처에 생겨서 부쳐진 이름이다. 1) 빼뻘 또한 "뺑풀"로 덮인 사람이 많이 살지 않던 미군 부대 근처에 전쟁 직후 고향을 잃은 실향민과 인근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정착해서 생겨난 기지촌 중의 하나이다.

김현주+조광희_빼뻘-시공을 몽타쥬하다_단채널 영상설치, HD_00:09:38, 가변크기_2022
빼뻘: 시공을 몽타쥬하다-김현주+조광희展_의정부아트캠프 블랙_2022

그러나 수락산 계곡 초입에 숨겨져 있는 빼뻘의 규모와 위치는 다른 기지촌에 비해서도 작고 왜소하다. 미군이 철수한 후 빼뻘은 의정부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현재까지 집세가 싼 채로 남아 있다. 2019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마을의 경기가 급격하게 쇠락하였다. 미군이 드나들던 클럽하우스는 폐허와 같이 방치된 채로 남아 있거나 철거되었다. 미군이나 기지촌 여성들이 세들어 살던 방에는 인근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새로 유입되었고, 그마저도 코로나 이후 고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거나 추방된 해외 노동자들 때문에 동네 주민의 수는 더욱 줄어들었다. 이제는 냉전의 기억마저도 희미해지고 있는 지역이다.

빼뻘: 시공을 몽타쥬하다-김현주+조광희展_의정부아트캠프 블랙_2022
김현주+조광희_빼뻘아카이브 – 킹클럽_피크먼트 프린트_40×28cm_가변크기_2022

전시 '빼뻘 보관소'에서 다뤄지고 있는 물건과 인터뷰, 지역을 VR로 재생한 사진은 빼뻘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다양한 생업을 해오신 분들이자 아직도 지역에 남아 있는 분들에 집중한다. 작가는 빼뻘에서 오랫동안 철물점, 중국집, 기념품 가게를 운영했던 사장님, 임대업자,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였던 주민분과 오랫동안 소통해 왔다. 이에 그들의 물건과 인터뷰를 비롯하여 당시 미군이나 기지촌 여성이 세들어 살던 집의 구조와 기억을 작가가 고고학자와 같이 파헤치고 취재하고 모아서 전시하고 있다. 특히 2019년부터 지역에서 전시장을 운영하면서 주민분이 사라질 때마다 그가 살아온 공간과 사물이 함께 사라지는 것을 목격해 왔다. 미군 부대 시절을 기억하는 얼마 남지 않은 뻬뻘의 주민들이 이제는 연로해서 세상을 떠나고 있다. 또한 "뻬뻘"의 장소성이 변화하거나 '변형'되는 것도 경험해 왔다. 전시는 지난 3년간 작가가 소통해온 빼뻘의 사람들과 흔적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작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게 한다. 빼뻘은 어떤 곳인가? 아니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김현주+조광희_사라지는 말들 – 와스레나이데_피크먼트 프린트_84×60cm, 가변크기_2022

작가는 빼뻘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이곳은 낯선 '섬'처럼 느껴졌다. 2) 빼뻘은 한국 정부와 미군이 맺은 조약에 따라 경기 북부에 흩어져 있던 미군 부대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철수하면서, 현재 뻬뻘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공항 기지만 남게 되었다. 남아 있는 기지는 미군헬기들의 중간 급유지로 활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3) 빼뻘의 한쪽에는 이씨 왕조의 종중(전주이씨 선성군파 명산종중)이 가진 땅과 다른 한쪽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미군의 임시 전투기 기착지가 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한국 근대화를 주도한 두 개의 망령이 공존하고 있다. 조선의 마지막 왕조와 6.25 전쟁 후 한국에 주둔하기 시작한 미군 덕택에 19세기까지 버려진 땅에 가까웠던 빼뻘은 비극적인 한국 근대화의 역사를 품은 마을이 되었다.

빼뻘: 시공을 몽타쥬하다-김현주+조광희展_의정부아트캠프 블랙_2022
김현주+조광희_Thirsty Thursday, Tequilla Tuesday_ 미군전용바 '힐사이드'에서 나온 지폐와 낙서, 혼합재료_가변크기_2021

이에 빼뻘을 프랑스 철학자 미쉘 푸코(Michal Foucault)의 고전적인 이론인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와 연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서구 근대화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내러티브가 누락해 온 질병, 건강, 지식학 등의 각종 쟁점을 연구하던 푸코는 '공간'적인 구분도 다루었다. 불균등하고 '다른'이라는 의미를 지닌 헤테로토피아는 명확하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공간적 체계가 미처 명명하지 못하거나 억압한 장소나 상태를 가리킨다. 4) 그러나 헤테로토피아는 공식적인 공간적 구분에서 배제되기는 하지만 접근이 아예 불가능한 공간은 아니다. 접근의 경로가 숨겨져 있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존재하기에 눈에 잘 띄지는 못하지만, 공식적인 공간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필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공간이 여타의 오염된 공간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공간이 헤테로토피아라고도 할 수 있다. 감옥이 그러하고, 여행지가 그러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일탈의 공간이 존재하기에 공식적인 공간이 보다 '안전하고, 생산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미군의 존재를 위해서 빼뻘의 한국인 커뮤니티가 필요하였듯이 말이다. ● 빼뻘의 마을 구조와 마을 내 서로 다른 지역, 커뮤니티에 다다르는 경로에도 주목해보고자 한다. 인접 마을과는 달리 빼뻘은 좁은 길을 따라서 미군기지가 위치한 높은 지대로까지 이어진다. 마을 초입에 보건소가 위치해 있고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토끼굴처럼 뻬뻘 마을이 존재한다. 5) 작가에 따르면 기지촌 마을은 흔히 호리병 모양을 띤다. 입구와 출구가 폐쇄성을 띠기 때문이다. 마을의 입구는 밖으로 열려 있지만 마을 자체는 닫혀있다. 빼뻘의 경우 입구도 작거니와 뒤쪽은 미군 기지로 막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씨 종중의 땅과 가파른 숲길, 계곡에 둘러싸여 있다. 반면에 인근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흑석마을(일명 거문돌)'은 사방으로 열려 있어서 타지역 주민과의 왕래가 곧잘 일어나고는 한다. 이에 반하여 빼뻘은 연결되기는 하지만 폐쇄된 '헤테로토피아'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 "동네 분들은 마을 위쪽에 많이 사셨고 아래쪽에 있는 방들은 조그맣고 음습했어요. 클럽들이 주로 아래쪽에 많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마을 위쪽에 많이 사셨어요. 특히 아이를 데리고 있는 마을 주민들은요. 힐사이드 뒤편 언덕의 집들이 다닥다닥 있잖아요. 그곳에 많이 사셨어요." 6) ● 클럽을 사용하는 미군에게 생계를 맡기는 이들에게 빼뻘이 외부 공간으로 열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마을의 입구가 외부로부터 어느 정도 숨겨져 있는 편이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는 더 편리할 수 있다. 또한 헤테로토피아 공간은 그 존재의 영속성이 언제나 위협받는다. 빼뻘의 존폐도 미군기지의 변동된 상황에 달려 있다. 따라서 "빼뻘이 어디였느냐"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에 등장하는 '토끼굴'처럼 공간적 좌표에서 비껴간 빼뻘의 장소성은 언제나 공식적인 장소에 따라 정의된다. 특유의 장소성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장소성의 의미는 오랫동안 지역민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여타의 장소들이 그러하지만 빼뻘은 특히 외부의 힘에 의해 지역민의 생계와 존재의 의미, 역할이 부여되어 왔다.

2. '메타포트(Matterport)'와 부유하는 섬 ● 빼뻘과 같이 공식적인 공간적 좌표에서 벗어난 장소나 커뮤니티는 공식적인 기록의 과정에서 사라지기 쉽다. 그 과정에서 기록의 주제, 관점, 방식에 대한 예민한 문제가 언제나 쟁점화될 수밖에 없다. 미군이 철수하였고 이제 미군 상대의 클럽하우스도 하나둘 개발에 대한 기대를 비껴가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과연 무엇을 역사의 흔적으로 남겨야 하는가? 빼뻘의 몇몇 어르신들에게 이곳은 풍부하고 복잡한 한국 현대사가 묻혀 있는 장소이다. 그러나 빼뻘의 역사가 기록되고, 방영되며, 예술작업의 부분으로 되는 일련의 과정은 아직도 이들에게 낯설기만 하다. 아니 불편할 수 있다. ● 공식적으로 의정부 시청이나 지역의 문화재단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과거의 역사를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소통될 수 있는 특정한 역사적 사실이나 과거의 사건으로 박제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 몇 년간 지역을 둘러싼 박물관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가 오고 갔다. 지역의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공적인 욕구, 의무감이 염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가 지난 2019년부터 경험한 뻬뻘은 살아 있는 역동적인 장소이면서도 과거의 망령과 싸우고 있는 장소이다.

김현주+조광희_빼뻘 – 시공을 몽타쥬하다_VR 아카이브_가변크기_2022
김현주+조광희_빼뻘 – 시공을 몽타쥬하다Ⅱ_단채널 영상설치, HD_00:12:00, 가변크기_2022

김현주와 조광희는 우선 '메타포트'라는 360도 카메라로 VR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지역의 건물과 도로를 거의 빠짐없이 기록하고자 하였다. 7) 기지촌 여성과 미군에게 임대업을 하며 살아온 주민분이 직접 지으신 고택 구조와 클럽 내 여성들 숙소의 폐쇄적 구조를 사라지기 전에 남겨놓기 위함이었다. "욕망과 폭력이 난무했던 공간"일수록 폐쇄성은 짙고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내부로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60도로 외부에서 찍었을 때 시각의 '틈'이 생겨난다. 빈 시야나 각도가 존재한다. 일종의 불연속적인 연쇄 고리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에 작가는 빼뻘 동네 사진의 축적물을 '부유라는 섬'이라고 표현한다. 필자는 검은 배경에서 등장하는 뻬뻘의 이미지가 무중력 상태를 유영하는 '우주선'과 같이 느껴졌다. '부유하는 섬'이나 '우주선'이나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장소의 특징을 은유적으로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 "자기가 찍은 부분만 딱 이렇게 화면에 나오고 스캔이 안되는 부분은 다 이렇게 블랙으로 처리가 됩니다. 그걸 조합하면 나중에 이렇게 전체 풍경이 되는데... [동네] 한 바퀴를 다 찍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다 찍고 보니 우주선 같아요. [그런데] 이 우주선 같은 느낌이 너무 좋은 거예요." 8) ● 빼뻘은 여타 도심의 공간과 달리 개발이 더디기 때문에 현재에도 섬처럼 존재한다. 의정부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개발 붐이 일어났고 기존의 자연 숲 자리에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섰다. 반면에 수락산 계곡으로 연결된 뻬뻘에는 등산객이나 도시인들이 휴가를 오고는 한다. 메타포트로 사진을 찍게 되면, 뻬뺄 내의 파편화된 풍경이 강조된다. VR을 끼고 보다보면 울퉁불퉁한 상태로 남아 있는 빼뻘의 도로 상태가 눈에 들어온다. 주민들은 자기 집 앞에 각종 시멘트로 만든 표지나 구축물을 놓아두는데, 통일되지 않은 채 들쑥날쑥 놓여 있는 구축물이 관객의 시선을 방해한다. 동시에 공식적인 체계가 부재한 빼뻘의 상태를 보여준다. 개별적으로 구역을 제시하거나 주차 공간을 표시하는 모습은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존재해온 소외된 지역 주민의 생존방식을 떠올리게 해준다. ● 또한 메타포트로 찍은 사진을 모아서 위쪽 벽면에 설치된 우주선 이미지는 멀리서 쉽게 파악되지는 않는다. 관객의 머리 위로 설치된 거대 우주선 이미지는 눈높이 위치에 걸렸을 때와는 사뭇 다른 거리감을 느끼게 해준다. 물리적으로 전시장 공간을 점유하는 대신 위쪽에 부유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미군 부대가 사라진 후 개발의 붐에서도 비껴가면서도 사회적 변화로부터도 자유롭지 않은 빼뻘은 그야말로 근대사에서 자리 잡지 못한 채 부유하는 장소이다. 파편화된 빼뻘 내부 이미지와 우주선 모양의 콜라주는 현재 빼뻘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VR과 같이 각광 받는 기술적 매체를 사용해서 말이다. 동시에 어두운 전시장 상단에 놓여진 빼뻘의 이미지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공간에 대한 관객의 판타지를 자아낸다.

3. 남아 있는 사람과 물건의 흔적: 문화적 경계에서 ● 그렇다면 빼뻘에 살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전시는 장소와 함께 남아 있던 뻬뻘의 주민에 집중한다. 후기식민주의 이론가이자 문화연구가인 호미 바바(Homu Bhabha)가 지적한 바와 같이 비극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들이 일상의 삶과 분리되어왔다면, 예술이나 인류학적인 다큐멘터리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이 사용된다. 문화의 침탈이나 잊힌 비극의 역사를 여성, 어린이, 일반인의 일상적인 삶과 목격담을 통하여 기록하고 알린다. 일상과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쟁이나 정치적인 비극이 결국 거미줄과 같이 일상적인 삶과 연결된 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9) 이에 기록하고 기억하는 이의 관점이 궁금해진다. 빼뻘의 현재와 과거를 누구의 관점에서 기록할 것인가? 작가는 2019년부터 빼뻘의 폐업한 미군 전용 클럽을 개조하여 예술공간으로 운영해왔다. 공간에서 주민을 상태로 한 인터뷰, 문화예술교육, 전시, 포럼 등이 진행되었다.

김현주+조광희_빼뻘아카이브 – 마을 주민의 유품_혼합재료_가변크기_2022

작가는 기지촌에서 오랫동안 생계를 이어왔고 남았던 지역민을 인터뷰하였다. 미군 부대가 철수하기도 하였거니와 현실적으로 기지촌 여성을 인터뷰하는 것이 힘들었을 수 있다. 인터뷰 참여자들이 연관된 역사가 굳이 아름답게만 그려질 수는 없다. 빼뻘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 또한 말해지는 것보다 훨씬 복잡할 것이다. 미국이 가져다준 '선진 문물'을 직접 접할 수 있고 '영어'라는 문화적인 권력을 배울 수 있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이곳'에서 힘든 삶을 살았던 여성과 아이들을 접하면서 느꼈던 이중적인 감정이 인터뷰에서 묻어나온다. 물론 질문은 일차적으로 남겨진 이들의 삶을 향하지만, 질문의 의도는 다분히 복합적이다.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인터뷰 참여자의 답변이나 말뿐이 아닌 그들의 행동과 몸짓을 해석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투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시장 입구에는 한 기지촌 여성활동가가 1995년 운영하던 놀이방과 공부방 마을 어린이와 나눈 편지와 그림이 놓여 있다. 활동가 선생님과 교감을 나눈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작가는 당시 기지촌이라는 어른의 세계에서 아이들의 존재는 이중적으로 소외되고 지워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에 어린이의 그림과 사연은 그들의 경제적인 상황, 외부의 시선을 내재화한 마음의 상태를 엿보게 해줄 수 있는 자료들이다. ● '빼뻘 보관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빼뻘에 남겨진 이들의 물건을 보관하는 일이다. 박제화해서 고정하는 것이 아닌 '보관'하는 일이다. 작가는 물건을 공여받고, 물건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물건을 통하여 관객과 뻬뻘의 남겨진 사람들의 삶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게 하는 과정을 통하여 '보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현주, 조광희 작가 특유의 겸허함과 성실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마을의 어린이 공부방이었던 두레방에서 나온 편지와 그림 옆에는 지역 유지였던 이oo 할아버지의 물건이 놓여 있다. 이oo 할아버지가 지역에서 의원으로 선거에 나갈 때 사용했던 포스터, 장부, 교과서, 영어를 공부하면서 남겨놓은 노트 등은 한국 근현대사, 문화교류사, 그리고 불편한 식민의 역사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 한다. 이oo 할아버지의 책과 가훈은 성공한 사업가로서 할아버지의 부지런한 면모, 방을 미군과 기지촌 여성에게 세를 주면서 할아버지가 남긴 '임대료 수입 장부'나 미군이 할아버지에게 준 선물은 거간꾼으로서 할아버지의 역할, "교육상 좋치 않은" 빼뻘에 거주하던 할아버지의 심경을 적은 편지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 전시에는 할아버지가 찍은 영상도 포함되었다. 할아버지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웃이 할아버지에게 선물해준 비디오카메라로 빼뻘 뒤쪽 계곡의 풍경을 찍었다. 비디오카메라가 흔치 않던 시대에 미군으로부터 얻은 비디오카메라 사용법을 직접 익히고 편집하였을 할아버지를 상상하게 된다. 빼뻘에서 다방면의 인간적인 교류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빼뻘은 어떤 이들에게는 기회의 땅이었을 것이다. 일찍이 영어를 배우고 신문물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임대사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집 실내도면은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교류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그 과정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담보로 사용되었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말이다. ● 따라서 할아버지는 뻬뻘을 기점으로 일어난 다양한 교류의 현장을 경험하였다. 문화적인 교류뿐 아니라 인간의 신체를 통한 경제적인 물질교환(transaction)과 착취의 역사의 중요한 목격자로서 말이다. 기획자이자 작가는 어렵사리 할아버지의 역사와 가족의 역사를 공유한 할아버지 가족과의 깊은 인연도 전시해 놓고 있다. 물론 역사와 전시의 배경이 전시장의 관객에게 쉽게 전달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관객은 남겨진 이들의 개인사를 통하여 당시 그들의 상황과 그들이 품었을 생각을 상상하게 된다. 할아버지는 미군과 기지촌 여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을까? 할아버지와의 복합적인 정서를 상상하는 과정이야말로 관객의 몫이다.

김현주+조광희_빼뻘아카이브 – 송산반점_피그먼트 프린트_가변크기_2022
김현주+조광희_빼뻘아카이브 – 송산반점_피그먼트 프린트_48×80cm_2022

문화교류의 역사는 미군과 미군을 둘러싼 한국인들의 '인연'에 그치지 않는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한동안 월세가 싼 빼뻘 마을에 러시아 노동자들이 몰려왔다. 작가는 빼뻘에서 60년 동안 문을 열었던 중국 식당(송산반점)의 내부와 냉장고를 사진 기록으로 남겼다. 중국 식당을 운영 했던 할아버지는 코로나 사태로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식당을 그만두었다. 현재 이불 가게의 창고로 사용되는 식당의 내부에는 노동자들의 침구들과 노동하러 갈 때 입는 옷가지며 신발, 가방들이 흙이 묻은 상태 그대로 버려져 있다. 테이블 위에는 먹던 양념들이 몇 달째 그대로 남아 있고, 냉장고에는 러시아 노동자들이 잘 먹던 메뉴를 만들기 위한 음식 재료들이 그대로 냉동되어 있었다. 빼뻘의 역사가 단순히 기지촌의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 빼뻘의 역사가 진행형이라는 사실은 본 전시장의 입구에 마련된 노란 플랜카드를 통해서도 목격할 수 있다. 카드는 전주이씨 종중과의 토지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주민들이 거리에서 시위하면서 사용했던 것들이다. 전주 이씨측은 토지세 인상을 이유로 주민들에게 임료를 8배를 높였고, 이에 반발한 주민들과의 갈등이 지난 십여 년간 계속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둔하는 미군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뻬뻘 지역에서는 폐업하는 가계가 늘어났다. 이씨 종중과 남아 있던 빼뻘 주민, 그리고 새로 지역에 흘러들어온 세입자 간의 이해관계는 이처럼 복잡하다. 역사는 반복되어서 재산과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는 대결구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어느 한쪽의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조명되기는 한다. 빼뻘은 문화적으로는 오랫동안 가치가 폄하되거나 버려진 땅이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갈등 관계는 빼뻘 주민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 빼뻘 외부에 존재하는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다. 빼뻘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우주선과 같은 장소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의 장소이기도 하다. 빼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다른 곳에서도 지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4. 타인의 고통을 대신 읽어주기 ● 전시장이 빼뻘에 남겨진 이들의 인터뷰 영상작업, 사진, 물건과 VR로 이루어져 있다면, 전시장의 뒤쪽에 마련된 공간(원래 분장실)에는 기지촌여성활동가 정oo 선생님을 비롯하여 총 11분의 인터뷰가 17개의 텍스트로 나누어 배치되어 있었다. 관객은 뒤쪽 방에서 조용히 텍스트를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소리 내어서 스스로의 귀에 들리도록 읽을 수도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목소리 내러이션 과정을 통하여 이야기가 관객의 몸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관객의 신체에 떨림이 생기기도 한다. ● 경험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에피소드는 기지촌 여성활동가가 관찰한 빼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미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특히 혼혈 아동들에게 미국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 관객은 직접 활동가 선생님의 목격담을 통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이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던 동경의 대상으로서 미국의 모습과 빼뻘 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미국 군부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아이들은 왜 외제 물건의 공수가 이뤄지는지, 어떻게 그러한 상황에 반응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입양이 무엇인지, 그리고 희망을 갖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도 알고 있다. 빼뻘의 현실과는 너무 달라서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미국은 애초부터 아이들에게 단순한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위협적인 존재이다.

김현주+조광희_빼뻘아카이브 –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_ 90년대 기지촌여성활동가가 마을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 사진, 기지촌여성 그림_가변크기_2022

걔 중에는 끔찍한 이야기도 있었다. 뻬뻘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른들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관계를 아이들이 모방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뻬뻘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위계화된 미국과 한국,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이곳 아이들에게는 절대적인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비극적인 빼뻘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과거의 사건은 자신의 것이 되어갔다. 읽는 과정에서 관객은 틀리지 않고 읽기 위해서 모든 단어에 정신을 집중시킨다. 아이들을 바라보던 당시 어른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된다. 아이를 도우려고 노력하였지만, 동시에 무기력함을 느꼈을 법한 기지촌 활동가의 고뇌도 느껴보게 된다. ● 관객이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과거의 이야기를 되새김질하는 과정은 전시장에서 본 물건 이면에 존재했던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한 방편이다. 순간적으로 눈이 반응하는 방식이 아닌 읽고 집중하고 목소리로 연기하면서 관객은 타인의 고통에 주목하게 된다. 물건과 사연을 공유했던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커뮤니티는 사라진 상태이다. 게다가 빼뻘에서 어려운 성장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과 그들의 엄마는 이 동네를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흔적은 의도적으로 버려져 왔다. 관객은 버려진 흔적이나 폐허의 자리에서 발견된 이야기를 작가와 함께 접하게 된다. 고고학자가 개별적인 유물이 아니라 유물과 여타 유물, 유물과 발견된 환경과 지층의 관계를 통하여 전체 이야기를 유추해 내듯이 남겨진 물건만으로는 부족한 숨겨진 이야기를 관객은 뒤쪽 전시장에서 발견하게 된다.

5. 슬픔과 고통을 기억하는 방법: 복화술 ● 남겨진 물건이나 경험담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전시 '빼뻘 보관소'는 겸허한 태도를 보인다. 흔적을 최대한 성실하게 기록한다. 아니 메타포트로 다 기록할 수 없는 시각적인 틈조차도 그대로 드러낸다. 따라서 기록에 대한 미학적 경험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메타포트가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다면, 빼뻘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커뮤니티의 모습이나 물건의 모습은 흔적에 불과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이들 또한 철저히 타자의 위치에만 놓였던 이들은 아니다. 기지촌 활동가들과 같은 일차적인 목격자들 또한 지역을 떠났다. 기억의 빈 곳과 자료의 부실함, 시각적인 틈새를 채우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김현주+조광희_밖에서 들리는 목소리_관객참여 퍼포먼스_가변설치_2022

필자는 활동가 정강실 선생님의 인터뷰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신체적 반응을 통해서 감지되는 감정적인 변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이야기에 대한 정서적인 교감이 신체적인 반응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경험담을 허투루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문학비평가이자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Regarding the Pain of Others)』(2003)의 저자인 수잔 손탁(Susan Sontag)은 타자의 고통을 재현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고통을 묵인한다면 그 자체로 비극적인 역사를 덮는 과오를 범하게 되겠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을 그대로 다루는 경우에조차 관객은 자신의 처지와 재현된 이미지 속 타자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구분한다. 아니 구분함으로써 미술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10) 관객은 비극의 역사적 순간은 사라졌다고 안위하면서 그렇게 고통의 기록은 예술이 되어간다. ● 이에 반하여 빼뻘의 보건소를 둘러싼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돌보았던 활동가 선생님의 경험담은 과거의 것이지만 관객이 읽으면서 그들의 몸을 통해서 재생된다. 자신의 목소리로 읽어가면서 관객은 남의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동정이건 슬픔이건 자신과 타자의 위치를 구분하기에 목소리를 통한 연기의 과정은 즉각적이다. 물론 자신의 내러이션이 낯설 수도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후에 들었을 때 타인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목소리는 이내 자기 귀를 때린다. 고통을 당한 이들이나 그들의 이야기와 거리감을 두기 전에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정동(affection)은 감정이나 사랑을, 나아가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을 함께 지닌다. 즉 읽기의 과정은 고통스러운 과거와 현재, 고통받는 타자와 관객을 이어주는 중요한 미학적 경험에 해당한다. ● 그뿐만 아니라 대본을 또박또박 읽어가는 과정에서 관객은 말해질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서 사라진 이들을 대신해서 그들을 이야기를 재현해내게 된다. 대부분 희생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지 않거나 못한다. 덧붙여서 어차피 고통이란 누구에게나 달리 감지되고 기억된다. 빼뻘에서 지냈던 수많은 인물의 기억도 제각각일 것이다. 이 때문에 옳은 기억과 그른 기억을 구분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대신 침묵의 비극적인 상황에서 빼뻘에 남겨진 이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역사적 소명을 다하고 있다. 이oo 할아버지의 가족처럼 아버지의 물건이 무엇인가 소통해내기를 바라는 가족이나 작가도 그들의 소명을 다하고 있다. 빼뻘의 역사는 복화술을 통하여, 물건을 통하여, 현대인을 통하여, 누군가의 목소리로 재생된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어느 하나일 필요는 없다. ● 이 때문에 최근 빼뻘을 특정한 장소와 기억으로 축약하고 과거의 일어났던 한 사건으로 박제화하려던 어떤 시도들도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역의 문화기관이나 공공기관은 지속해서 빼뻘의 역사를 '보존'하고자 할 것이다. 그때마다 빼뻘은 과거의 특정한 시대의 모습으로 화석화될 위험에 처한다. 예단일 수도 있겠으나 기관이 개입될수록 과거를 과거로 돌리려는,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려는 태도가 강조된다. 이에 현대인들은 손탁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고통의 순간을 바라보는 "관객"이나 불편한 "방관자"의 양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복화술의 무대로서 '빼뻘 보관소'에 거는 이제까지와 앞으로의 기대는 적어도 전시를 방문한 이들이 관객이나 방관자 중의 한쪽을 택일하지 않아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빼뻘의 기억에 대하여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동연(미술사가)

* 각주 1) 뻬뻘에 미군이 공식적으로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1952년이었다. 1958년부터 부대 이름이 '캠프스탠리'로 명명되었고 미 육군 2사간 비행전투여단 주둔하였다. 1970년대 미군의 수는 2-3천명이었고, 전성기 때는 3400명에 이르렀다. 1960년대에 뻬뻘은 독립된 파출소, 우체국, 보건소가 들어설 만큼 꽤 큰 규모의 마을로 성장하였다. 2) "서울에서 불과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곳인데도 인근 주변의 도시 풍경과는 이질적인 곳으로 느껴졌고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현실과는 뚝 떨어진 낯선 섬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김현주, 필자와의 이메일 인터뷰, 2022년 7월 4일. 3) 미군은 철수하였지만 미군의 헬기들이 주유를 위해서 매일 들르는 시간(오후 4-6시)에 파생되는 프로펠러의 거대한 소음 때문에 인근 주민의 항의가 그치지 않고 있다. 4) Michel Foucault, "Of Other Spaces: Utopias and Heterotopias (Des Espace Autres)," March 1967; Architecture, Mouvement, Continuité, No. 5 (October 1984), pp. 46-49. 5) 원래 주 1회 운영되던 보건소에서 여성들은 정기적으로 성병 검진을 받았다. 그러나 미군 감축과 기지촌 여성 감소로 보건소도 폐소되었고, 현재는 어린아이를 위한 공부방인 두레방이 아랫마을에서 보건소 자리로 이전한 상태이다. 6) 인용, 기지촌 여성활동가 정강실, 인터뷰 (김현주 제공). 마을 초입에서 난 큰길을 따라 우측은 미군 담장을 따라 가파르게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을 '윗마을'이라 하고 좌측 평평한 길을 따라 형성된 곳을 '아랫마을'로 불렸다. 7) 360도 카메라로 주요 도로, 골목, 그리고 마을을 내 다섯 공간(폐업한 미군 전용클럽과 중국집, 철물점, 마을슈퍼, 주민이 직접 짓고 살아온 60년 된 고택 내부)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VR 영상으로 전시에 선보였다. 360도 카메라로 기록을 하게 되면 공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닫혀 있고 폐쇄된 공간의 구조나 특징을 외부에서 짐작하는데 큰 도움을 된다. 8) 김현주, 필자와의 인터뷰, 2022년 5월 24일. 9) Homi Bhabha, The Location of Culture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4), p. 145. 10) Susan Sontag,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New York: Picador/Farrar, Straus and Giroux, 2003), p. 42.

Vol.20220518i | 빼뻘: 시공을 몽타쥬하다-김현주+조광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