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들어가기(Into the Corner)

손은아展 / SONYUNA / 孫銀娥 / painting   2022_0519 ▶ 2022_0624 / 일,공휴일 휴관

손은아_사라지기 전의 기억 A_캔버스에 유채_150×18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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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레이블갤러리 LABEL GALLERY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26길 31 (성수동2가 278-40번지) Tel. +82.(0)2.2272.0662 labelgallery.co.kr @label.gallery

누구나 마음에 낡은 면 하나쯤은 있다. 버려지고 쓸모없는 물건에서도 나름의 미를 찾아내는 게 오랫동안 작가의 관심사였다. 작가가 말하는 낡은 면은 오래된 물건이나 자동차 등의 낡고 찌그러진 표면들, 그것에서 느껴지는 회화적인 이미지들을 말하기도 하고, 이러한 소재를 이용하여 재현된 작가의 작품 주제를 말하기도 한다. ● 이러한 작가의 낡은 면들은 주로 세밀한 묘사로 화면에 사실적으로 재현된다. 세밀함에 집중하는 것은 기존의 하이퍼 리얼리즘이 추구하는 것처럼 현실 이미지와 시각적 착각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아니다. 낡은 면들이 가지는 섬세한 표면 특성이 저마다 고유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것을 강조하여 표현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해서 낡은 면이 가진 고유성 자체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작가가 느낀 삶의 표정이나 주관적인 시선들을 담아 조형미를 더하고자 한다.

손은아_골목에 들어가기(Into the Corner)展_레이블갤러리_2022

낡은 물건들이 마구 버려지듯 오래된 골목이나 집들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세상이다 보니 그러한 일들에 대해 점점 사람들이 무감각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러한 소멸이 힘들게 이어왔던 인생 역사 전체를 버리는 느낌이랄까. 사람이 소중히 여겼던 기억과 가치가 마구 버려지는 기분이 들어 씁쓸할 때가 있다. 분명 그 오래된 골목에는 많은 이들의 추억과 어려웠던 시절의 희로애락이 있었으며, 많은 이들이 자의로는 떠나고 싶지 않았던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 그 공간들을 찾아내어 기억하고 각인하는 일이 마치 작가에게 주어진 고유의 소임이라도 되는 양 그저 여기저기 골목만 보면 뭔가를 찾아 기웃거리고, 사진을 찍어서 차곡차곡 모아두는 습관이 생겼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도시나 시골을 가더라도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낡은 골목들에는 저마다 다르면서도 나름의 공통점이 있었다.

손은아_Scene H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21

자주 가던 밥집 골목에도, 여행 가서 만난 시골의 폐쇄된 시장 골목에서도, 낯선 지방의 공장 어귀에서도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낡은 면의 미학은 어디나 존재하더라. 이곳의 모습을 재현하여 그때의 장소를 각인시켜 놓거나 장소들마다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흥미롭게 느껴졌다. ● 재개발로 없어질 운명에 처한 창고 가게를 묘사하여 기억을 저장하는 일, 이 가게가 좀 더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 장소가 주는 자체의 이미지가 작품에 반영될 때 또 하나의 낡은 면이 된다.

손은아_골목에 들어가기(Into the Corner)展_레이블갤러리_2022

비록 첨 가는 골목일지라도 낡고 오래된 장소가 주는 특유의 익숙함이나 그 생활의 흔적들에는 언제나 사람과 매우 가까웠던 친밀함이 있다. 때로는 애써 부정하여 내면 깊이 감춰 두었던 자아의 초라함이 원치 않는 순간에 겉으로 나와 버려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 왜 이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를 돌아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낡은 골목에서는 작가만의 낡은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나 보다. ● 언제가 다시 방문하여 그 낡은 골목들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을 때는 작가의 작품이 그대로 전시되어있는 것 같은 착시에 기분이 잠시 설레기도 한다. 때로는 그 골목 자리가 변형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는 개인의 추억이 없어진 것처럼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나마 작가의 화면에라도 각인되어 부분적으로라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손은아_골목에 들어가기(Into the Corner)展_레이블갤러리_2022

아주 작은 광고 스티커의 벗겨짐 하나하나, 효용가치가 떨어져서 마구 늘어진 전선들이 서로 엉켜서 복잡한 형태로 이루어진 모습 하나하나, 오랜 세월에 풍화된 전봇대 생채기 하나하나, 부서진 콘크리트 바닥 무늬 하나하나조차도 세상에 같은 형태는 없다. 작은 상처도 큰 상처도 다 같이 한 사람의 인생 역사가 되듯이 그 골목이 가졌던 삶의 기억들이 일일이 묘사된 낡은 면들에는 차마 다 말하지 못한 사연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기념장소가 되곤 한다. ● 그곳의 시각적 형태는 비록 낡고 부서진 잔해들 같아 보이지만 새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작가의 느낌 그대로 표현되어있길 바란다. 누구나 오래된 친구나 가족에게서 위로와 안정감을 얻는 것처럼 시간이 자연스럽게 쌓여서 향이 깊고 사람 내음 가득한 그곳을 지나가기만 해도 묵은 감정들이 해소되는 기분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힘든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도 위로와 공감을 얻지 못할 때 순간 매우 낙담하기도 한다. 그 힘들고 외로운 순간에 나만의 낡은 면 하나쯤 마음에 새겨둔 장소나 그림이 존재한다면 참으로 좋지 않을까. ● 뭔가 극복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낡은 면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오라. (2022년 봄 손은아 작가 노트에서….) ■ 손은아

손은아_노랑 골목 B_캔버스에 유채_72×53cm_2022 손은아_노랑 골목 A_캔버스에 유채_72×53cm_2022
손은아_Go through B_캔버스에 유채_118×80cm_2020 손은아_Go through A_캔버스에 유채_118×80cm_2020

손은아 -서글픔이 주는 묘한 힘 ● 낡고 오래된 사물들의 허물어지고 박락된 피부는 그것들이 자신의 지나온 생애를 남김없이 그대로 발설한다는 점에서 정직하고 그래서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 자리에는 모종의 알리바이가 없다. 구차한 변명의 밑자락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사실 모든 존재는 시간 앞에서 잔인할 정도로 평등하다. 결국은 소멸과 부재로 종착될 텐데 그 부재를 부재로 알고 슬퍼하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유한한 인간은 늘 그러한 부재, 죽음, 망각을 애도하고 극복하거나 기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미술의 역사가 또한 다르지 않다.

손은아_Shade H_캔버스에 유채_80×117cm_2016

손은아는 도시의 후미진 골목길이나 문을 닫은 상가나 공장 건물, 혹은 오래되어 허물어지는 것들, 방치된 듯한 그 낡은 공간을 화면 안으로 호출한다. 도시를 유랑하는 이의 시선에 걸려든 이 폐허의 이미지는 모종의 잔해들이자 사라지기 직전의 마지막 모습으로 겨우 남아있는 시신과도 같은 것이다. 작가는 그것들을 수습하고 애도하며 이를 기억하고자 그림으로 응고시킨다. 여기서 그림은 부재와 소멸, 죽음에 저항하는 나름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작가는 저 잔해의 이미지에서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들을 또한 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 그림으로 고정시켰다. 아마도 오래된 것들, 오래 살아남아 너덜거리면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에서 연민의 정이나 서글픔이 주는 묘한 힘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손은아_골목에 들어가기(Into the Corner)展_레이블갤러리_2022

그림은 주어진 대상을 차분하게, 더욱 가라앉은 감성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 사실적인 그림에서의 재현기능은 낡은 존재의 피부가 간직한 흔적을 부감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 되는 셈이다. 살아남은 것들, 아직 연명하는 대상들의 피부는 그간의 시간이 덮쳐 문질러놓은 상처들로 처참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마모된 피부는 질긴 생명력의 표상이자 고난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상처들이라 서글픔 속에서 빛을 낸다. 작가는 인적이 부재한 공간을, 사물을 그렸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회색 톤이 흐릿하게 퍼져 안개처럼 엉겨있는 느낌이다. 치밀한 세부 묘사보다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색채로 누르면서 조율하고 있어서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사람은 사라지고 건물과 사물들만이 컴컴한 공간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칠이 벗겨진 담벼락과 전봇대와 전선, 벽면에 붙은 인쇄물과 낡은 간판, 비닐 천으로 포박되어 가려진 것들, 비좁은 골목길 등이 흐릿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불투명한 공기의 층을 감촉시키는 색채 구사로 인해 이 그림은 사실적인 재현이면서도 사실은 심리적인 풍경의 이미지에 해당한다. 특정 장소에서 환기되는 분위기, 정서를 극대화하는 풍경화인 셈이다.

손은아_Scene K-2_캔버스에 유채_80×130cm_2022

사실 모든 그림은 작가의 주관적인 정서와 세계관을 통한 해석에 기인한다. 대상 자체를 지시하려는 즉물적인 차가운 재현과는 거리가 있는 이 풍경은-사실 그런 재현도 온전히 가능하지는 않지만-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특정 관점이 투사된 결과물이다. 너무 빠른 속도로 대체되고 재편되는 도시 공간, 자본주의 공간 속에서 효율성과 합리성의 이름 아래 마구 사라지는, 너무 이르게 죽어가는 대상에 대한 애도의 감정과 그것들을 쉽게 방기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간직하려는 욕망은 유한한 존재가 품고 있는 시간관과 함께 이른 소멸을 재촉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도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번 근작에서 「Scene H」가 가장 예리하게 다가왔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그것을 보여주는 조형적인 구성이 단단하게 결합 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이미 작가가 소재로 삼고 있는 것들은 그 자체로 이미 매우 '쎈' 것들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이런 유형의 그림은 자칫 소재주의화 되기 쉽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대상을 더 예리하게 추려내고 색채와 물감의 질료 적 맛, 붓질이 쇠락하는 것들, 사라지려는 것들이 풍기는 체취 또한 건져 올리는 선에서 보다 단단해져야 한다. ■ 박영택

Vol.20220519b | 손은아展 / SONYUNA / 孫銀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