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조각 프로젝트 : 경이로의 초대

예울마루 10주년 기념展   2022_0520 ▶ 2022_113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GS칼텍스 예울마루 GS CALTEX YEULMARU 전남 여수시 예울마루로 83-67 야외 일원 Tel. +82.1544.7669 www.yeulmaru.org

예울마루 야외 조각 프로젝트, '경이로의 초대'에 부쳐 Yeulmaru outdoor sculpture project : Invitation to thauma 프롤로그 ● 예울마루는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친환경 컨셉을 주제로 한 'G페스티벌'(G: Green) 행사를 진행한다. 일련의 여러 행사들 가운데 야외 전시는 아직은 활동 범주가 제한되어 경험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감각들을 일깨우는 일종의 촉매제로, '경이로움'을 맞닥뜨리게 하는 장소로 이곳이 기능하길 기대하며 기획했다. 무엇보다 어떤 만들어진 작업들을 일정 수량 확보해 가져옴으로써 야외 조각전시가 흡사 어드벤처 놀이동산 같은 역할을 수행하여 조각이 무엇인지 사유할 틈 없이, 나아가 작품에 올라타는 등 놀이기구로 기능하는 안쓰러운 상황에 처하는 일만큼은 방지하고자 다짐했다. 이것은 나름의 개인적 뜻을 품은 일이었으나 결과가 어떠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번 야외 조각 프로젝트는 어쨌든 규모를 갖춘 조각을 통해 시각적으로든 심적으로든 경이로움을 전달하고, 본래 공간을 환기할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라볼 뿐이다. 불특정 다수와 만날 마놀로 발데스(Manolo Valdés)의 조각과 STUDIO 1750의 설치 프로젝트가 부디 각 개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경이하는' 시간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1. 그리하여 이번 야외 조각 프로젝트에서 관람객들을 만나게 될 작품은 마놀로 발데스의 라 파멜라(La Pamela, 2015)와 STUDIO 1750의 설치 프로젝트 반짝이는 living things(2022)이다. 오페라갤러리 소장작품인 발데스의 라 파멜라는 커다란 챙이 있는 모자를 쓴 여인 두상의 형태이다. '파멜라'라는 용어가 생소할 수 있으나 이는 모자의 일종이다.1) 1942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발데스는 이러한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가이다. 그는 왜 이 조각에서 '모자 쓴 여인 두상'을 표현한 것일까. 이는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음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령, 비제 르 브렁(1755〜1842)의 짚 모자를 쓴 초상화를 비롯하여,2) 앙리 마티스(1869~1954)의 1905년 작품 모자 쓴 여인,3) 타마라 드 렘피카(1898〜1980)가 그린 모자를 쓴 여인4) 등을 연상시키는데, 발데스는 미술사의 주요 작품들과 도상을 차용해 비판적 시선을 가한 작업을 1960년대부터 20여년간 꾸준히 이어왔다. 바로 에퀴포 크로니카(Equipo Crónica 1965-1981)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시기인데, 발데스는 에퀴포 크로니카를 결성하며 스페인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1939〜1975)에 비판을 가하는 작품들을 소개했었다. 자유가 억압 받던 시대에 미술사에서 대표적인 전통 회화를 패러디하며,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를 질문하고, 억압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풍자, 유머를 가하며 이를 미학적 운동처럼 전개해나갔다. 발데스의 이러한 활동을 되뇌며 라 파멜라를 본다면, 스케일 측면 외에 지금도 중심과 주변을 미묘하게 구분하는 것들, 보이는 힘에만 신경 써서 감추어진 속의 것들, 즉 보이지 않는 이면의 것들을 문득 의문시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2. STUDIO 1750은 2014년 결성한 유목적인 그룹이다. STUDIO 1750의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이들은 유연한 태도로 다양한 프로젝트에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소와 재료 그리고 함께하는 이를 제한하지 않는 유목적인 그룹으로 장소와 호흡하고 주변의 재료를 활용하는 거주하는 곳이 아틀리에가 되고 전시장이 된다. 현재 2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때에 따라 여럿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객원예술가, 기획자 등을 초대해 그의 행보에 발맞추기도 한다."5) 혼종문화, 유전자 변형 생명체, 지금의 먹거리로 인해 변이 또는 진화해가는 과정을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조각, 설치로 이야기하는 STUDIO 1750의 작업은 다루는 주제만큼 사용하는 재료도 흥미롭다. 보통 조각이라 할 때 그 재료로 돌, 나무, 석고, 금속 등 자연 혹은 인공재료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STUDIO 1750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사용한 다양한 재료 중 재미있는 것은 '공기'였다. 이들은 이전에 떠있는 조각인 부유하는 조각(2018)을 비롯하여 공기가 들어간 Study in Scarlet(2017), 분홍괴물(2018), 평행정원(2018)을 창작하며 유연한 형태의 작업을 진행했었다. 이번 야외 조각 프로젝트에서도 기존 관념에 물음표를 던지는 기회와, 작품과 관객이 만나 새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작업 설치 계획에 따르면 STUDIO 1750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다음과 같은 인공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가까운 미래 혹은 먼 과거에 존재했을 법한 정원의 재현이다. 환경적인 혹은 유전적인 영향으로 변이되거나 진화하는 생물체들에 대한 이야기로 점점 더 인위적으로 변해가는 도심 속 인공 정원이다. 어느 날 유전자의 변형으로 동식물이 지금의 것과는 달라질 거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은 과거에 두려워했던 오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예측하며. 반짝이는 living things은 태양을 닮은 빛의 파편들로 채워질 것이다." 이러한 예측을 따라본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 어느 순간에 그렸던 어떤 인위적,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 나아가 그렇다면, 현재의 가장 동시대적인 고민과 이야기들은 현재이자 (과거에는) 미래였고 (미래에는) 과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더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순수의 전조』(1863)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들판에 핀 한 송이 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찰나의 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작품을 통해 우주를 보고, 그 찰나의 경험이란 시간 속에서 영원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3. 다시 발데스의 라 파멜라로 돌아오자. 발데스의 이 조각은 프랑스 파리 방돔광장(Place Vendôme),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 미국 뉴욕식물원(New York Botanical Garden) 등 해외 관광명소에 설치되었던 작품이다. 넓은 녹지와 어우러진 발데스의 조각은 탁 트인 공간 가운데 시원함을 전해주었다. 2020년 국내에서도 소개된 이 조각은 한국-스페인 수교 7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디귿(ㄷ)자 건물들 사이에 놓였던 라 파멜라는 인상적 규모를 전해주었다. 다만 주변이 전부 인공적인 건축물이었기에 해외 설치 사례처럼 자연을 담은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이번 야외 조각 프로젝트에서는 라 파멜라 조각을 바다와 자연이 마주한 공간에 설치할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장소 선정 전(全) 과정에 고민과 아쉬움, 이견도 가득했다.6) 발데스의 이 조각은 반드시 어디에 위치해야만 한다는 소위 전위적인 조각에서의 급진적 태도를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이 조각이 인공건축물이 아닌 자연에 담기길 바라는 열망과 고민이 있었다는 사실은 언급하고 싶다. ● 다음으로 STUDIO 1750의 프로젝트는 신작으로, 과연 얼마나 손상을 입지 않고 초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야외의 예측 불가능한 조건들을 한 달 이상 견디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던 STUDIO 1750의 언급은, 모든 환경에 견딜 수 있는 조각과 그와는 다른 유연한, 연약한 조각 사이를 명멸하듯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견디는 기간 동안 이 공간에 만들어진 STUDIO 1750의 인공정원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반짝이는 소중한 것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해본다.

에필로그 ●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번 야외 조각 프로젝트의 각 작품들은 그 의미가 깊다. 그러나 이러한 전시 유형은 다수가 예술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약점도 안고 있다. 바로 이 공간이 다른 장소들과 구별되는 차별화된 곳임을 표방하며, 이로 인해 장소가 상품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관광명소를 홍보하듯이 이러한 전시 유형은 이 같이 해당 장소를 매력적 특성을 지닌 곳이라고 홍보하는 데 동원될 수 있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기회에 의미 있는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는 역할을 했다는 측면에 전시의 의의를 둠으로써 자의적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리고 향후의 야외 조각 프로젝트가 단순히 조각을 곳곳에 늘어놓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말로 지속되는(sustaining) 관계들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이하는 것을 철학의 출발로 보았다. "무엇인가에 의문을 가지고 경이하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무지(無知)로 생각하고 이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지혜를 구하기 시작한다." 지난 2월 이 세상과는 작별한 이어령(1934∼2022) 선생은 깨달을 때의 환희를 그리스 말로 '타우마제인(Thaumazein·놀라움)'이라고 하며, 평생을 물음표(지성)와 느낌표(감성, 영성) 사이를 오가며 자신이 발견한 타우마제인이 벅차서 글을 쓰고 사유해왔다고 했다.8)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지금의 이 시점에 무엇인가에 놀라 이상하게 여기는, 경이하는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진정한 인간이 되는 또다른 걸음을 떼는 일이 아닐까. ■ 선우지은

* 각주 1) 밀짚으로 만든 컵 받침 접시 모양의 모자를 일컫는다. 끈으로 턱 밑을 고정해서 착용하며, 특히 1790〜1810년대에 널리 착용했던 모자였다. 2) https://en.wikipedia.org/wiki/File:Self-portrait_in_a_Straw_Hat_by_Elisabeth-Louise_Vig%C3%A9e-Lebrun.jpg 3) https://en.wikipedia.org/wiki/Woman_with_a_Hat 4) https://tamaradelempickaestate.com/wp-content/uploads/2020/08/Young-Lady-with-White-gloves.jpg, https://tamaradelempickaestate.com/wp-content/uploads/2020/09/The-Straw-Hat_1.jpg 5) https://STUDIO1750.wixsite.com/STUDIO1750/cv 6) 작품이 놓일 위치 선정 과정 속에 고민과 이견은 끊임없었다. 첫 장소로 예울마루 맞은편에 보이는 섬, 장도에 설치하고자 했었으나 로베드 차량 등이 다리를 진입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해당 장소는 배제되었다. 이후 예울마루 분수광장쪽에 설치함에 있어서도 다양한 의견이 따랐다. 야외 공연의 무대와 객석으로 쓰일 공간을 차지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해당 장소에 조각을 두면 방해가 된다는 의견, 그렇다면 해당 공연이 있는 동안에는 다른 위치로 이동하자는 의견 등. 가로, 세로 7미터 규모의 조각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기에 이러한 운송설치 과정에 큰 예산이 소요된다. 또한 대형 운송차량들이 도로를 차지해야 하므로 차량, 보행자 통행 등에도 제한도 따른다. 이와 같은 전방위적 내용을 고려하며 전시기간과 장소를 선정해야 했고, 이후에도 시(市)에서 진행하는 공사로 인해 주최하고 기획하는 큐레이터 입장에서의 난감함과 더불어 작품 소장기관(오페라갤러리)과의 이어지는 논의가 있었다. 해당 공사는 웅천-소호대교 개통 공사로, 대교 건설과 더불어 예울마루 앞에는 대형 로터리와 그 로터리 가운데 대형 거북선 조형물이 설치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관광산업, 도시발전 등을 도모하고자 끊임없이 진행하는 개발 사업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문(自問)해야 했다. 어쨌든 발데스의 라 파멜라가 그 조각 자체로 어떤 문제적 메시지를 던지는 조각은 아닐 수 있지만, 이 작품이 여수 지역으로 내려옴으로써 이전의 전시 때와는 어떤 다른 감상 기회를 열지 그 해석의 다양성은 열어 놓고자 한다. 7) "장소 특정적 미술은 장소의 특성을 살린다는 구실 아래, 장소(place)를 상품화하고 시리즈화하여 차이들을 지워버리는 데 동원 될 수 있는 것이다." 권미원, 『장소 특정적 미술』, 김인규 외, 현실문화, 2013, 89쪽. 8)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 이어령, 넥스트, 「조선일보」, 2022년 1월 1일, https://biz.chosun.com/notice/interstellar/2022/01/01/6NTPJJ7EORHQLOONBANIV6VDM4/?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biz

Vol.20220520a | 야외 조각 프로젝트 : 경이로의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