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

이인현展 / LEEINHYEON / 李仁鉉 / painting   2022_0521 ▶ 2022_0624 / 월,화요일 휴관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_ 캔버스에 유채, 나무에 채색_16×71×16cm_20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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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월,화요일 휴관

갤러리 소소 GALLERY SOSO 서울 중구 청계천로 172-1 더 소소 The SoSo 4,5층 Tel. +82.(0)31.949.8154 www.gallerysoso.com

라그랑주 포인트를 찾아서 ● 두께가 있는 캔버스 위를 여러 선이 가로지른다. 수평 수직으로 공간을 가르는 프레임 형태의 구조물 사이로 천 위에 번진 푸른 물감이 보인다. 작품을 보는 이는 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고, 그러다 문득 멈춰 선 채, 선과 면, 색, 작품에 비치는 빛,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 그 사이의 공기로 채워진 어떤 순간을 만난다. 바로 그만의 라그랑주 포인트다.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_ 캔버스에 유채, 강선에 채색_187×442×83cm_2017~22

두 개의 천체 사이에서 중력적 평형을 이루는 궤도상의 지점을 뜻하는 라그랑주 포인트는 풀 수 없는 삼체문제의 특수해이다. 뉴턴의 만유인력으로 명쾌하게 밝혀진 두 지점 사이의 중력 작용, 즉 이체문제와는 달리, 공식이 성립할 수 없는 삼체문제에서 수학자 라그랑주가 중력이 0이 되는 예외를 밝혀낸 지점이 라그랑주 포인트로 명명된 것이다. 고도의 수학적 계산에서 나온 이 천문학 용어는 명징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넓디넓은 우주 속에서 찾게 되는 한 순간의 깨달음 같은 무척이나 인문학적인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푸코의 개념에서 가져온 철학적인 이름의 「회화의 지층」 작업을 하는 이인현 작가는 개인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천문관측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의 개인전 《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는 다른 속성의 단어를 병렬로 나열한 이름처럼 삶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속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작가 본인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_ 캔버스에 유채, 나무에 채색_56×221×11cm_199?~2022

미셸 푸코는 모든 담론은 그 배경이 되는 인식의 구조가 있고, 그것이 지층처럼 시대적인 구분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그 체계를 '에피스테메(L'épistémè)'라 칭했다. 이인현 작가는 이 에피스테메를 가져와 자신의 작업에 「회화의 지층(L'épistémè of Painting)」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작업은 회화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미술사적 구조를 탐구하는 여정이다. 그가 처음 회화의 지층 작업을 공개하며 제기한 '정면의 역사'에 대한 반문은 2차원적 시각예술인 회화에 대한 다층적인 탐구였다. 벽에 걸린 회화는 흔히 정면의 얼굴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구획된 평면의 어느 부분을 회화로 지칭하게 되기까지 현대미술사의 흐름은 격류와도 같았다. 멀쩡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회화의 얼굴이 실은 수많은 담론의 충돌 속에서 구축된 것임을 작가는 회화의 측면을 강조한 일련의 작품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展_갤러리 소소 더 소소 4층_2022

이인현 작가가 회화의 인식구조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방식은 비단 옆면을 두껍게 한 캔버스 형태만이 아니다. 그는 작품의 제작과정에서 작가의 손길을 배제하는 작업을 해왔다. '대가의 한 획' 같이 낭만주의적 예술가상을 극대화하는 이미지를 여러 방법으로 전복시켰다. 붓을 캔버스에 직접 대지 않고, 담뿍 먹은 물감이 떨어지도록 가만히 들고 있는 이른바 물감을 천에 내려 놓는 방식을 비롯하여 길다란 나무막대에 캔버스 천을 감싸 붓 대신 사용하기도 하고, 붓으로 사용한 막대에 감은 그 천을 다시 작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작품이 가진 물성을 강조하고 작가의 손길이 이끄는 완성이라는 개념을 해체하는 이 모든 작업은 시각적인 감상의 영역을 확장시켜 회화를 이해하는 인식의 구조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모든 작품은 하나하나의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그가 예술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행위, 그의 삶을 따라 흐르는 연속적인 작업의 이름인 「회화의 지층」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_캔버스에 유채, 나무에 채색_ 왼쪽 14.5×64.5×14.5cm, 오른쪽 14.5×14.5×14.5cm_2019~22

「회화의 지층」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작업은 '옆에서 바라본 그림', '어두워질 때까지', '재생'과 같은 부제를 갖기도 한다. 이 부제들은 작가의 당시 상황이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 예로 '재생'의 경우 받침대로 쓰이거나 물감의 농도를 시험했던 천을 사용하거나 이전에 만들었던 작품을 재구성한 작품들로 기획된 전시였다. 여기에는 주된 것과 주변의 것, 미완성과 완성,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이라는 생각의 틀을 부수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정면과 완결을 요구하는 회화의 틀에 대해 곁눈질해서 볼 것을, 회화를 구성해온 시간을 염두하고 작품을 볼 것을, 작품의 완결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는 이 흥미로운 부제의 역사는 이번 전시에 이르러 회화의 틀이 해체된 혼란 속에서 예외적으로 존재하는 '라그랑주 포인트'의 경험을 제시한다. 무려 30여년을 넘나드는 작품의 제작연도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어느 지점을 가리키고, 작품에 포함된 프레임과 캔버스의 조합은 공간 사이의 어느 지점을 향하게 하는 그의 작업은 연속된 어느 길에서 찰칵하고 찍어낸 한 순간 같은 기념할 만한 경험이다.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_ 캔버스에 유채, 나무에 채색_30×100×20cm_1993~2022

「회화의 지층」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전시와 작품을 지칭하는 이인현 작가의 작업에서 짚어봐야 할 것은 실제 상황에서 불리는 작품의 이름이다. 작품은 때에 따라 '양수리', '미시시피' 등 작품의 조형적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불린다. 제목으로 구분할 수 없는 작품을 가리키기 위해서 지인들이 사용한 일종의 별명 같은 이러한 용어를 작가는 평소에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번 전시에도 건물 외벽 공사를 위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만든 설치물인 비계의 은어 '아시바', 푸른 물감의 번짐에서 연상되는 '청화백자', 유난히 두꺼운 검은 프레임을 장착한 '트랜스포머'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작품이 등장한다. 공식적인 제목이 아닌 이러한 용어들이 쓰이는 것을 수용하는 작가의 태도는 회화의 역사가 형성해온 경직된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 그의 예술관과 실천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_캔버스에 유채, 강선에 채색_ 왼쪽 84×93×51cm×2, 오른쪽 74×62×50cm_1995~2022

이인현 작가의 이러한 열린 사고는 각각의 작품이 갖는 조형적 특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전시《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에 포함된 이른바 '프레임을 포함한 작품'들은 작품의 내외부를 결정짓는 공간의 구획에 다채로운 변주를 가져온다. 작품의 영역에 들어간 프레임은 작품의 공간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한계선을 모호하게 만든다. 벽에서 뻗어 나온 철선은 캔버스 너머의 벽을 작품 안으로 끌어온다. 기존에 작품을 구획하고 공간을 제한하는데 사용되던 틀이 순간의 빛이 만드는 그림자와 그것을 보는 시선의 각도에 따라 무한대의 공간까지도 작품에 함유시키는 것이다. 작품은 프레임을 껴안음으로써, 공간과 시간이라는 제한선을 가뿐히 넘고 독립성이라는 개념적 구획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_ 캔버스에 유채, 나무에 채색_각 51×101×11cm_2017~22

이러한 공간 구성은 관람자가 갖게 되는 작품 감상의 경험 역시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이미 두께를 가진 회화로 보는 이에게 정면의 주변을 볼 것을 제안했던 작품은 이제 허공으로 뻗어나간 프레임과 캔버스가 만들어내는 조형을 즐기도록 유도한다. 관람자는 작품을 보기 위해 계속 이동하며 자신만의 각도를 찾아야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작품은 고정된 이미지를 갖지 않고 보는 사람이 서있느냐, 무릎을 약간 굽혔느냐, 앉아서 보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을 갖게 된다. 이 때 그것을 보는 날의 날씨, 보는 이의 감정 상태 등 다양한 조건들이 작용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작가는 별개의 작품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기도 하고, 직각으로 꺾이는 갤러리의 벽을 따라 두 작품이 연결된 듯이 설치함으로써 그러한 경험을 더욱 확대시킨다. 보는 이에 따라 무한히 달라지는 작품은 온갖 우연을 포용한 채, 정면, 완결성과 같은 획일적인 관념에 저항한다. 작가와 관객은 작품을 중심으로 저마다 다른 라그랑주 포인트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展_갤러리 소소 더 소소 5층_2022

다시 《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로 돌아와 작품 하나하나가 가진 조형의 맛과 작품 간의 흐름, 그리고 이를 비추는 정교한 조명이 만드는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즐기다 보면, 그 사이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신경을 곤두세운 한 사람이 느껴진다. 그는 예민한 집중력과 강도 높은 노동으로 작가의 손길을 배제한 작품을 완성하고, 머리 속에서 한시도 쉬지 않는 사고의 흐름으로 우연적인 전시를 계획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인과의 만남, 하늘 보기, 맛있는 케이크, 좋은 술과 같은 것들에 대해 같은 집중력과 태도로 몰입한다. 예술과 삶을 구분하고, 처음과 끝을 만드는 단선적인 사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그의 작업은 모든 삶의 순간에서 실천적으로 행해진다. 회화의 안과 밖, 작품을 사이에 둔 작가와 관람객, 과거의 작품과 현재의 작품, 작업과 일상 등 수많은 교차에서 정교하고 예민하게 쌓아가는 회화의 지층에 선 이인현 작가의 라그랑주 포인트. 《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에서 모든 것을 향해 열려있는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라그랑주 포인트를 찾게 되길 바란다. ■ 전희정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展_갤러리 소소 더 소소 5층_2022
이인현_회화의 지층 – 라그랑주 포인트展_갤러리 소소 더 소소 4층_2022

Searching for a Lagrangian point ● Several lines cross over a thick canvas. Viewers can see blue paints spreading on the fabric between the frame-shaped structures that divide the space horizontally and vertically. They would have to move a bit to identify what the work is all about, and then suddenly stop, encountering a moment filled with lines and planes, colors, light reflected in the work, shadows hanging on the wall, and air in between. That is s their own Lagrangian point. ● The Lagrangian point, which refers to a point on the orbit that forms a gravitational equilibrium between the two celestial bodies, is a special solution to an unsolvable three-body problem. Unlike a two-body problem like the gravitational action between two points clearly identified by Newton's universal gravitational pull, the point where mathematician Joseph-Louis Lagrange found an exception of zero gravity in a three-body problem that could not be formulated was named the Lagrangian point. This astronomical term, which comes from sophisticated mathematical calculations, conjures up a very humanistic landscape, such as a moment of enlightenment, found in a vast universe where no clear answer can be found. Inhyeon Lee, who works on L'épistémè of Painting with a philosophical name taken from Foucault's concept, personally is immersed in astronomical observation in his free time, which is beyond amateurism. His solo exhibition 《L'épistémè of Painting - Lagrangian point》 implies the nature of himself as an artist that does not want to be biased in any way amid various elements in life just like the names of words of different attributes in parallel. ● Michel Foucault stated that every discourse has a structure of perception that is the background of it, and that it has a classification of the times like a stratum. He named the system "L'épistémè." Lee took the episteme to name his work L'épistémè of Painting. As the name suggests, his work is a journey to explore the art historical structure that forms the perception of painting. Upon his release of his work of L'épistémè of Painting for the first time, he raised a question on the "history of frontal facets" based on which he conducted a multi-layered exploration of painting, that is, a two-dimensional visual art. A painting on the wall is often considered to have a frontal facet. However, the contemporary art had undergone a tumultuous period to the point of having a part of a partitioned plane dubbed as a painting. In other words, he is telling the audience that the face or the frontal facet of that painting, which is showing its face in a good condition, was built in the collision of numerous discourses through a series of works emphasizing side aspects of painting instead of the face. ● The way Lee induces the audience to think about the perceptive structure in painting is not confined to the form of canvas with thick sides. He has been excluding his distinctive touch as an artist in the production process. Images that maximize the romanticist images of an artist – as in "an honorable stroke of a master artist" – have been overthrown in many ways. For instance he put the so-called paint on a cloth without having a brush touch the canvas for an almost fluid paint to almost drip. Or he used a canvas cloth wrapping around a long wooden stick and used instead of a brush, or the cloth wrapped around the brush again for his work. All such work, emphasizing the physical properties of his work and dismantling the concept of an artist-driven completion expands the realm of visual appreciation, and provides something to consider on the perceptive structure of understanding painting. Thus, not every work of his is not a completed piece per se: rather, it is called L'épistémè of Painting, a name given to his continuous work which flows in tandem with his every act of contemplating on art and his life. ● His work titled L'épistémè of Painting also has such subtitles such as Painting Seen from the Side, 4D Perspective and Refurbished. These subtitles were derived from the then circumstance of thoughts of his. For example, Refurbished was an exhibition curated with works using cloths used as pedestals or to test the concentration of paints, and works reconstructed from previous versions. Here are layers of meanings breaking down the framework of the ideas on the main vs. the peripheral, the incomplete vs. the complete, and the past vs. the present. The history of such intriguing subtitles – encouraging the audience to look sideways at the frame of painting that requires what is face-to-face and completeness, to view a work in consideration of the time spent in the making of it, and to rethink the concept of completeness of a work, presents the experience of the "Lagrangian point" that exists exceptionally amid the chaotic disintegration of painting. The years of production for his works exceeding 30 years point to a mileston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and the combination of frames and canvases in his works toward a point between spaces, is a memorable experience, just like a single moment incidentally photographed on a continuous path in his artistic journey. ● What is noteworthy in Lee's work, who refers to his exhibitions and works under the one name of L'épistémè of Painting, is the name of his work called in real life. His work is sometimes called the names representing figurative characteristics of the work, such as "Yangsuri" and "Mississippi." Lee usually accepts these terms which are like nicknames used by his acquaintances to refer to his works that cannot be distinguished otherwise, that is, by title alone. This exhibition will also exhibit his works with various nicknames: "Scaffolding" – a term used on construction sites that allows people to walk around for constructing exterior walls; "Blue-and-White Porcelain" being reminiscent of smudging blue paint; and "Transformers" equipped with exceptionally thick black frames. Lee's inclusive attitude of accepting the use of these terms which are not the official titles illustrates his view of art and pragmatic attitude of disagreeing with the rigid thinking formed by the history of painting throughout all those years. ● Lee's open-mindedness as such can also be found in the figurative characteristics of each work. The so-called "works including frames" exhibited in 《L'épistémè of Painting - Lagrangian point》 bring about a variety of variations in the space that determines the interior and exterior of the work. The frame that enters the area of his work does not limit its space but obscures its limitation or boundary. The frame used to block a work or limiting a space includes even infinite space in his work depending on the shadow created by the instant light and the angle of view. By embracing the frame, his work easily transcends the limitations of space and time and starkly crosses the conceptual division of independence. ● This spatial composition also extends the audience's experience of appreciating works to an infinite level. His work suggesting the audience to see sideways as they are seeing it as a thick painting now encourages them to enjoy the frames that stretched out into the air and the shapes created by canvas. The viewers must continue to move to see the work and find their own angle of liking. As they do so, a single piece of work does not have a fixed image and has a different appearance from time to time depending on whether the viewers are standing, slightly bending their knees, or sitting down. Here, it is obvious that various conditions such as the weather on the day of seeing it and the emotional state of the viewers come into play. Lee further expands such an experience by combining separate works into one frame and installing the two works as if they are connected along the wall of the gallery bent at perpendicular angles. His work varying infinitely depending on the beholders embraces all kinds of coincidences and resist uniform notions such as frontality and completeness. The artist and the audience see his work from their own perspective at different Lagrangian points. ● Coming back to 《L'épistémè of Painting - Lagrangian point》, and getting immersed in the figurative beauty of each piece and the flow in between, and the aesthetic harmony created by the sophisticated lighting on them, You might feel the presence of an uptight person being as tight as a stretched-out string there. He completes a work that excludes his artistic touch with sensitive concentration and intense labor and plans an incidental show in the stream of thoughts that never stops in his mind. At the same time, he is immersed in the same level of concentration and attitude for things such as meeting up his acquaintances, looking at the sky, and tasting delicious cakes, and high-quality alcohol. His work, which distinguishes art from life and asks questions about linear thinking that makes the beginning and the end, is put into action by Lee in every moment of his life. Lee's Lagrange point stands in the middle of L'épistémè of Painting, as an exquisite and sensitive point in intersections in and out of painting, the artist and the audience on his work, his past and present works, and his work and daily life. I hope that we will all find our own Lagrangian points through his oeuvre being open to everything in 《L'épistémè of Painting - Lagrangian point》. ■ Chun Heejung

Vol.20220521a | 이인현展 / LEEINHYEON / 李仁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