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보이 도영씨의 그림일기

송도영展 / SONGDOYOUNG / 宋道永 / painting   2022_0525 ▶ 2022_0531

송도영_붉은 방의 자화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181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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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 Tel. +82.(0)2.734.7555 www.topohaus.com

자기 고백의 시대 ● 자화상은 개인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시각예술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에 따르면 모든 화가는 화면에 자신을 드러낸다고 한다. 즉 어떤 그림이든 일종의 자화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에서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 1909~2001)로 이어지는 회화에 대한 믿음에 따르면, 자화상은 작가의 영혼을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사물이다. 우리는 화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그 중에서도 자화상을 통해 타인의 내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송도영'이라는 중년남성의 자기고백 앞에 서 있다.

송도영_The cav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22

에너지의 응축 ● 송도영의 청년 시절은 파란만장했다. 군복무를 마친 1995년에 사이판의 한 공장에 입사해 3년 정도 일을 한다. 사이판에서의 반복되는 삶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신만 커져가는 상황이었기에 송도영은 1998년 미국으로 무작정 떠난다. 지인을 만나는 여행을 핑계로 미국까지 왔지만 불행은 시작에 불과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지 못했고, 돈은 금새 떨어져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불법체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다행히 숙식을 기댈 수 있는 모텔청소를 시작으로, 인도식당에서 허드렛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을 악용한 인도인은 월급조차 주지 않았고, 건강마저 최악으로 악화되어 간다. 이후 캐나다 토론토로 이동하여 사이판에서 일했던 기간의 퇴직금으로 새 출발을 시도한다. 그래서 당시 만난 아름다운 여자와의 불같은 첫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금방 실연으로 이어진다.

송도영_양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5cm_2021

이때부터 송도영은 세상에 무엇인가 남기고자하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이후 식당보조로 일하면서 우연히 본 사진책을 보게 된다. 그 사진책은 송도영에게는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다음 삶의 방향을 만들어주었다. 송도영은 한인 사진관으로 찾아가 사진관 보조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사진을 공부했다. 그곳에는 뉴욕의 예술학교에서 공부한 사진 선생님이 과외 수업을 하고 있었다. 사진에 빠지며 스스로의 삶에 애착과 욕심이 생겨 2002년에는 온타리오 컬리지 아트앤 디자인에 입학한다.

송도영_Cheer up! 아버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97cm_2021

그러나 아직 송도영의 불안한 삶은 끝나지 않았다. 34살인 2004년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등록금을 날려 버리게 되었고, 그길로 포르투갈 리스본을 시작으로 육로를 8개월 동안 이동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36세에 결혼을 하고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송도영은 이후 10년동안 일이 끝나면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47세가 되던 날 술에 취해 얼굴을 크게 다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영적인 목소리에 귀를 열었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송도영_남자의 이데아_나무패널에 아크릴채색_112×145cm_2021

에너지의 변환 ● 얼굴이 아물고, 거동이 가능해지자 송도영은 걷기 시작했다. 48세가 되며 육체와 정신이 회복되자 송도영은 10년 넘게 잊고 살았던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드로잉을 시작한다. 1년 정도가 지나고 이번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 단독으로 사진전을 열었고, 드로잉을 함께한 사람들과 누드 크로키 전시를 열게 된다. 내면에 담아두었던 것들을 드디어 꺼내기 시작했다. 송도영은 처음으로 정면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었고, 삶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 것이다. 송도영이 그림을 그리면서 선택한 소재는 자기 자신이다. 거울을 이용해 자기 자신을 직접 바라보기를 시도한다. 이후 송도영은 제도권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되었고, 3년이 지나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리고 같은 해에 자화상을 모아 첫 번째 회화 전시를 단독으로 열게 되었다.

송도영_비상을 위한 날개짓_캔버스에 유채_100×170cm_2021

에너지 해석 ● 송도영의 회화들은 매우 강렬하다. 마치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 선언하듯, 송도영은 스스로를 화면에 중앙에 배치한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송도영은 보색의 배치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감추고 싶을 만한 육체의 상처와 내면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송도영의 회화들은 자기불만에서 응축되기 시작한 에너지들을 자신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면서 정제하고 농축시킨 결과물이다. 도덕을 허구라고 말하는 프리드리히 니체(F. W. Nietzsche, 1844~1900)적으로 해석 한다면 '그의 붓질은 승화된 형태의 자위행위(自慰行爲, masturbation)'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송도영_In the beginning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20

정신분석학에서 강박적 자위는 거세 불안, 즉 자신의 성기가 온전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를 포함한다. 그리고 정신적 자위는 신체에 특별한 자극 없이 흥분을 완전히 방출할 만큼의 아주 강렬한 환상을 내포한다. 즉 송도영의 작품 활동은 자기 존재의 온전함을 확인하는 동시에 강력한 성취감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물론 다빈치의 견해를 다시 소환한다면 모든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송도영은 이것을 숨기지 않고 전면에 드러낸다. 즉 송도영 회화의 특징은 자기 존재의 확인과 성취가 자신감 넘치고 꾸밈없는 터치들로 발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송도영_Fake meditat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126cm_2021

리틀 보이의 등장 ● '리틀 보이'는 160cm 남짓한 송도영이 미국과 캐나다에서 무시당했던 시절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리틀 보이'는 2차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핵무기의 코드네임인 동시에, 이름과 반대로 엄청난 에너지를 함축한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2차대전이 끝난 세상은 냉전으로 이어져 '리틀 보이'의 후계자들을 양산하는 경쟁에 돌입했고, 세상은 긴장감과 견제를 바탕으로 한시적 평화가 찾아온다. 핵의 가공할 에너지는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재앙과 풍요, 모두로 연결될 수 있다. 송도영은 자신이 가진 엄청난 에너지의 활용법을 몰라 스승을 찾는 긴 여행을 떠났었다. 스스로 밝히길 첫 번째 스승은 가난이었고, 두 번째 스승은 실연이었으며, 세 번째 스승은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이었다. 세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동안 긴 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송도영_La Goumandi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22

되는대로 '그냥' 살았던 시기에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혜안이 없었다. 결국 송도영은 그냥 사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세상에 드러내며 '아재'와 '꼰대'가 되어버린 동년배들의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미학은 복합적이고 독특하다. 원초적인 동시에 진지하지만 항상 유머가 따라온다. 50대 아재의 그림에는 어린 소년의 순수함과 중2병스러움이 공존한다. 그러나 생각은 자유가 아닌가? 예술을 통한 송도영의 세상 정복은 죄가 아니다. 그가 새롭게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송도영_Lemon tig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5_2021

사족 ● 개인적으로 미디어와 함께 자라온 MZ세대의 특징을 '완벽주의'라 생각한다. 그들은 아주 극단적인 행동패턴을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세상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세계적인 성과를 거두지만, 어떤 이들은 세상과 상관없는 삶을 살기위해 소통의 문을 굳게 닫는다. 그들은 엄청난 자기애와 엄청난 자기혐오로 각각 나아간다. 개인의 삶은 스스로 선택 할 수 있고, 각자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살면 그만이다. 그 책임을 진작에 느낀 것일까? 그리고 자신이 '리틀 보이'라는 것을 이제야 인정하게 된 것일까? 지천명에 이른 송도영의 작품들에서 MZ세대의 고민이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몇 번의 전시가 계속 이어진다면, 그의 관심사가 '자신'에서 '인간'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 구영웅

Vol.20220525a | 송도영展 / SONGDOYOUNG / 宋道永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