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나와 숲의 믿음

이효연展 / LEEHYOYOUN / 李孝燕 / painting   2022_0608 ▶ 2022_0629 / 일,월요일 휴관

이효연_숲 짓는 사람들_아사에 유채_60.6×72.7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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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연 홈페이지_www.hyoyounlee.com   인스타그램_@dearhyoyounart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갤러리 가비 GALLERY GABI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2길 37 Tel. +82.(0)2.735.1036 www.gallerygabi.com

독일 튀빙엔 대학의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믿음의 생태학(Ecology of Faith)'에 대해 말한다. 즉 믿음의 생명적 차원, 즉 신뢰를 통해서만 '살아있음'의 독특한 특성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몰트만을 그것을 일컬어 '생명의 분위기(Lebensatmosphäre)'라 한다. 이효연이 제시하는 「숲의 믿음」연작에서 물씬 배어 나오는 것이 바로 이 생명의 분위기다. 우리는 「숲의 믿음 4_근원에 대하여」에서처럼, 우주선 기술 없이도 이토록 가까이에서 달을 볼 수 있다. 우주선은 달을 보여줄 뿐, 생명력으로 충만한 달을 보여줄 수는 없다. 기술의 한계요 예술의 가능성이다.

이효연_숲의 믿음5-함께_아사에 유채_130.3×193.9cm_2022

이 문명은 숲을 사용하는 것에 온통 관심을 기울인다. '사용'의 관계는 '믿음'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그르친다. 사용의 문명에서 달과 숲과 실개천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몽상가가 되어야 한다. 자원의 경제를 믿으면서 동시에 숲을 믿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몽상가는 자원의 경제(economy of resources)에서 자발적으로 추방자요 이방인이기를 택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효연의 풍경은 몽상가의 풍경이다. 이효연은 말한다.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함께일 수 있다는 것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것은 나의 하루하루에 위로가 된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를 유쾌하게 지지해 주면 좋겠다."이 얼마나 고상한 미학인가.

이효연_숲의 믿음 4_근원에 대하여_아사에 유채_116.7×72.7cm_2022

이효연의 세계에선 열대 지역의 야자수, 사막의 선인장, 극 지방의 눈 덮인 침엽수림이 함께 자생한다. 사람들은 이 풍경들이 어딘가에 실재하는 장소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은 이 행성에는 부재하다. 이효연의 세계는 사전적인 의미의 풍경화, 즉 15세기 알베르트 뒤러의 계보를 있는 풍경화가 아니다. 그렇더라도 몽상의 세계에 전적으로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나무와 식물들, 호수와 실개천, 폭포수 등은 비례가 비현실적으로 조정되거나 재구성되기는 했더라도 모두 자연에 실재하는 것들이다. 실재하는 것들과 그것들의 비실재적인 구성은 의식의 직물을 짜내는 씨실과 날실 같은 것으로, 양자 모두를 통해서만 삶과 초월, 존재와 영원,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다가서는 것이 가능하다. 야자수와 선인장을 함께 키워내는 이 세계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유동하지만, 그 유동은 어지럼증과 구토가 아니라, 숨 쉴 공간을 터주는 유동성이다.

이효연_초록_아사에 유채_60.6×72.7cm_2022

이효연의 회화는 마음의 눈으로 본 자연이요 세계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정교하고 사실에 가까이 다가선다. 대상을 보기 위해서는 눈이 필요하지만, 대상과 대상을 보는 자신을 동시에 보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그것은 이성적 분별력, 곧 구분의 인식과 구분된다. 그것은 종종 기억의 이편과 저편, 기억과 망각 사이에 상상의 교각을 놓는 것으로부터 긴밀해진다. 마음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대상은 '그것(it)'이 아닌 '너(you)'가 되어, 냉혹하게 대상화되는 것을 넘어 그것 자체의 존재적 힘의 발현에 이르고, 이로부터 창조적 관계가 설정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고, 그 본 것을 기관으로서의 눈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며 종종 긴 시간과 진지한 노력을 요구한다. 이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오늘날 그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시각예술가이다. 이효연은 그런 시각예술가들 가운데 한 명임이 분명하다. (『'숲을 믿는다'는 것의 함의』 중 일부) ■ 심상용

이효연_다르고 서로 같은 숲_아사에 유채_112×162cm_2021

나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것들은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반사되고 역 반사되며 서로를 반추한다고 믿는데, 그 영향을 주고받음이 그림 곳곳에 자연스럽게 숨겨져 있다. 모두는 그 존재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나는 표현하고 싶다. ● 나는 비현실적 풍경을 그려 왔다. 관객들은 여기가 어딘가요? 라며 자주 궁금해 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곳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현실처럼 그럴 듯하게 그린다. 그래야 이야기가 성립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사실적으로 재현하려 했다. 이때 관람자는 자주 등장하는 소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식물들인데 열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야자수, 사막에 사는 선인장, 추운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눈 덥힌 나무와 같은 오브제들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이들이 날씨와 환경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함께일 수 있다는 것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것은 나의 하루하루에 위로가 된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를 유쾌하게 지지해 주면 좋겠다. (작가노트 中) ■ 이효연

Vol.20220608b | 이효연展 / LEEHYOYOUN / 李孝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