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lter from Silence 모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영혼의 쉼터

정민기展 / JUNGMINGI / 鄭民基 / installation   2022_0614 ▶ 2022_0626 / 월요일 휴관

정민기_동창회reunion_이응노의 집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이응노의집 창작스튜디오 제5기 입주예술가展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Ungno Lee 충남 홍성군 홍북읍 이응노로 61-7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Tel. +82.(0)41.630.9232 www.hongseong.go.kr/leeungno/index.do

충남 대표 국·공립미술관으로 선정된 홍성군 '이응노의집'(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는 청년 예술가들의 순수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한다. 2017년 제1기를 시작으로 올해(2022.) 제5기 입주예술가까지 다양한 매체, 장르, 주제, 공공미술 등 지역과 연관 짓거나 개인의 연구 과정을 참신하게 보여줬다. ● 특히, 올해 입주예술가는 운영 과정부터 차별성을 가졌다. 이전 방식과 가장 큰 차이는 ▲'주제 선택'(①홍성 원도심 탐구. ②자연, 생태, 환경 / 택 1)를 통해 개인의 창작물-개인전-을 진행하는 것과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에서 본인의 예술 세계관을 누구(예술 분야 전문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면 좋을지 평론가, 기획자, 아트 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직접 찾아야 했다. ● 단기 입주예술가가 충남 홍성에 머무르는 시간은 약 19주(3월~7월)이다. 그 안에 상상했던 모든 걸 내뱉어야 한다. 입주 준비(이사)로 한 주가 지나고, 적응하는데 또 한 주가 필요하다. 그렇게 2주가 지나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지역을 조사하고, 공간·환경을 탐색하고, 사람을 만나다 보면 또 2주가 지난다. 아직 작업은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금세 한 달이 흘렸다. "시간 참 빠르다." ● 이 같은 경우를 흔히 "발등에 불 떨어졌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작가는 여유롭다. 물질로 전환된(눈에 보이는) 작업이 없다고 작가는 초조해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작업이 있고, 그와 비슷한 작업을 오늘까지 수백 번 그려왔을 때문이다. 이젠, 여유롭게 화면을 살피며 상상했던 것과 최대한 유사한 걸 하나씩 찾아 넣기만 하면 된다.

정민기_Hongbuk-eup homo Vitium Piper Hamelini_170×134×74cm_2022

상상했던 걸 하나씩 조립하다 보면 작업이 완성된다. 멀리서 완성된 작업을 보면 "참 쉽겠다."란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럼 이제 가까이 들여다보자. 작품에 촘촘하게 박힌 바느질의 시작과 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수백 번을 교차해 만들어진 살갗(헝겁면)은 생명의 탄생처럼 천천히 조직이 형성되듯 제작되었다. 그 아래로 아슬하게 지지하고 있는 나무도 주워온 후 돌려가며 말리고, 정성스레 다듬고, 화력을 조절해 태우고, 불필요한 부분을 깎고 조립해야 하기에 작업 제작은 쉬운 게 아니다. 쉽지 않은 이유야 당연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연에서는 똑같은 걸 다시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작가에게 발견한 재료들은 '쉽게 눈에 띄지만 어렵게 선택한 것'들이다. 여기서 쉽게 눈에 띄었다는 것은 조금만 걷다 보면 어디에나 있을법한 버려진 나뭇가지, 돌멩이, 흙 따위의 것들이고, 어렵게 선택했다는 것은, 그 많은 것 중 상상했던 것과 유사한 형태, 무게, 질감 등을 선별해야 했다. 예를 들어 같은 돌이라도 형태와 질감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달라지고, 같은 나무일지라도 건조된 시간에 따라 작품 해석에 영향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작업물(완성 작품)이 모이면 상상 속 변종들은 조금씩 늘어난다. 처음 한두 마리일 때는 '변종'이라고 일컫지만, 그 개체 수가 일정하게 유지되면, 변종이 순종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정민기의 개인전 『모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영혼의 쉼터』가 하나의 순종으로 탄생하였다. ● 작가에게 『개인전』이란 본인의 예술 세계관을 매듭지는 '과정'이다. 여러 가닥으로 묶인 매듭이 견고하듯, 작가의 개인전도 '이전과 다른 그리고 앞으로 달라질 작업'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한 번의 매듭이 지어지면, 그 위로 또 다른 매듭이 늘어난다. 매듭이 많을수록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이걸 단순히 무명과 유명으로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계가 한층 가까워졌음을 말한다. 즉. '상상이 현실로 되는 길'쯤으로 볼 수 있겠다. 입주예술가 개인전을 통해 다음 상상계의 문이 언제 열릴지 기대하며 서문을 갈음한다. ■ 정보경

정민기_Junggye-ri Bona relatio Mater filio Bene sequere_134×111×42cm_2022

손 끝을 따라가면 어쩌면 무한 세계 ● 곧 위험한 속도로 움직일 날카롭고 예리한 바늘 끝은 한자리를 응시하고 있다. 섬유가닥들을 꼬아서 서로를 지탱할 수 있도록 얇고 견고하게 뭉쳐진 실은 바늘을 관통한 상태이다. 그리고 감겨진 타래로부터 그 길이를 가늠할 수 없이 쉬지 않고 뽑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 재봉틀을 자유로이 오가야 하는 거대한 천은 아직 완전히 펼쳐진 면을 보여서는 안된다. 천에 이미지를 새기기 위하여 자리한 바늘과 실을 겨냥한 두 손 사이 간격 안에서만 펼쳐(stretch)져야 한다. 한쪽 손은 둥근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밀며, 노루발에 올려둔 발을 굴리면 바늘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늘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천은 손 사이 간격을 유지하면서 작가의 응시와 손끝에서 지정하는 방향을 따라 유영하며 실을 끌어당기고 밀어 넣는다. 천은 적당히 얇아서 손끝의 미세한 힘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천은 작가가 몸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전체 면적을 보이지 않은 채 작가와 재봉틀의 주변으로 구겨져 놓인 채 바늘 끝에서 작가의 손과 눈으로 가늠해가는 이미지의 부분 부분을 차례로 안착시킨다. 전체 그림은 온전히 작가의 머릿속에 형성되고 있고 손끝에서 전달된 그림은 완성될 때 까지 바늘을 지나간 천의 굴곡 속에 숨겨진다. 작가가 몸을 일으켜 재봉틀 주변에 한껏 모여 있는 천을 '탁' 하고 펼쳐내는 순간 드디어 전체 그림을 온전히 볼 수 있다.

정민기_Junggye-ri Bona relatio Mater filio Bene sequere-Empty house_ 134×111×42cm_2022

퀼트 아티스트인 어머니 덕분에 어릴 적부터 바느질 환경에 익숙했던 정민기 작가는 실과 바늘을 자유롭게 다루었다. 그리하여 종이와 펜 대신 천과 실을 사용한 드로잉을 기본 형식으로 삼게 되었다. 회화 캔버스 천과 비슷한 재료이지만 그의 작업으로서 재료가 된 천은 실-바늘과 조응하며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졌다. 거대한 회화를 완성하기 위하여 작가의 몸을 캔버스 위로 움직이며 그 흔적을 쌓아나가는 브러쉬 스트로크(brush stroke)와는 달리 미싱으로 그려진 실은 각 땀(stitch)의 간격과 길이가 일정하다. 이들이 이어가는 이미지는 작가가 손끝으로 지정하는 방향에 의하여 결정된다. 날카로운,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바늘 앞에서 작가의 몸은 경직되리만큼 긴장감을 안고 몸통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하는 동시에 눈과 손의 미세한 움직임은 민첩해야 한다. 신체 전체가 재봉틀을, 그리고 가느다란 바늘을 다루는 방법에 충분히 숙련되어야지만 자유자재로 실과 천을 통제할 수 있다.

정민기_Junggye-ri Monitos Maculosus CRINITUS cornibus hircus_ 123×51×69cm_2022

정민기는 천과 실, 바늘 등을 사용하되 드로잉이나 회화를 대체하는 재료로서만 다루지 않는다. 그가 다루는 형식은 평면, 설치, 입체, 퍼포먼스 등 다양하다. 특히 퍼포먼스는 재봉틀을 작동하거나 혹은 직접 바느질을 하는 행위 자체가 그 결과물로서 완성되는 다양한 형식을 관통하는 방법론인 동시에 이미지를 고안해 내는 과정에서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2022년 6월에 선보이는 전시 『모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영혼의 쉼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잘 드러난다. 작가는 바느질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변의 산을 오르내리며 버려진 나뭇가지, 목재 등을 주웠다. 숲길을 걷다보면 눈에 띈 오브제를 도저히 내버려둘 수 없는 끌림이 작동한다. 그래서 작가는 오르막길을 앞에 두고도 무거운 짐을 등에 쌓아가며 수행자처럼 걷곤 했다. 그리고 주워온 것들을 나무가 나무 이전/이후의 다른 종류의 생명체인 것처럼 네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의 모양으로, 혹은 특정 공간을 이루는 기본 골격으로 사용하며 모종의 풍경을 조형한다. 이는 쓸모가 다하여 잘려나간, 한때 이 세상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그 삶을 제공해온, 존재에게 자신이 다시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행위'이기도 하다. 작가는 나뭇가지의 부분들에 이를 하나의 생명으로 완성시킬 작가의 가공물을 이어나간다. 천을 바느질하여 만들어낸 얼굴, 몸통, 꼬리, 다리 등 나뭇가지 하나로는 미흡해 보이는 부분들이다. 흙을 퍼낸 공사 현장 근처에서 천을 염색하기도 한다. 홍성의 땅으로부터 추출한 자연의 색을 입히는 과정이다. 이들은 야외에 설치되고 그 장소에서 맞을 비바람이 이 생명에 나이를 더하고 소멸로 향하는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동물모양을 완성하는 동안 작가는 재봉틀보다는 직접 손으로 실과 바늘을 다룬다. 거칠고 투박하게, 그리고 (재봉틀보다)느린 속도로 제작되는 이 작업 과정의 흔적은 나무끼리 찌르고 끼우고 뽑아내는 등의 행위와 동등하게 실로 꿰매고 매듭짓고 이어나가는 행위를 부각시킨다. ● "본체에서 떨어지고 이탈되거나, 생명을 다해 뒹구는 나무는 비와 바람을 맞으며 오랜 시간 침묵 속에 있다. 그 침묵 속에서 정령이 머물다 간 공간을 마주한다. 폐목재, 고사목, 유목 등 내가 수집하는 것은 결국 그 침묵의 모습이었다. 말없이 자연을 거닐면 나의 침묵이 그 소멸하는 것들에 닿는다. 우린 소멸을 견딘다는 점에서 닮았다. (정민기_작가노트 발췌)"

정민기_Seobu-myeon Plana luto Ferruginea metallum galaxia_ 165×115×123cm_2022

정민기는 전시와 프로젝트별로 색다른 주제를 선택해왔다. 당시 마다 작가가 마주한 환경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이응노 미술관에서 작가는 전시와 함께 퍼포먼스를 병행한다. 대도시의 마천루같은 풍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홍성에서의 생활은 늘 자연을 거니는 것이 생활화 된다. 전시의 제목인 『모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영혼의 쉼터』를 조성하기 위하여 작가는 홍성 지역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자연으로부터 탈락된 오브제를 수집한 것이다. 이 재료들은 자연이라는 거대하고 두려운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와 소멸의 과정을 겪는 오브제이다. 뿌리를 딛고 자라왔고, 새들의 집이 되어왔으며, 벌레의 양분도 되어주었다가 소명을 다한 이들은 작가의 손에서 또 다른 형태로 기능할 수 있는 존재로 가공되어가는 존재이다. 작가는 이렇게 가공된 것들을 '영혼의 집'으로 명명하고 새로운 종(種)으로 선언한다. 이들은 각각 '중계리와 용봉산에 서식하는 세 다리의 지팡이', '중계리에 서식하는 바퀴 달린 점박이 푸근한 뿔난 염소' 등의 종 이름을 얻는다. 이 명칭에 대하여 작가는 '속명-종명-명명자-명명 연 도'의 순서로 종속 명을 표기하기 위하여 특성, 지역명, 이용, 생육 등을 고려한다'고 서술한다.

정민기_Shelter from Silence: 모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영혼의 쉼터展_ 이응노의 집_2022

작가는 야외에 세워진 조각들, 즉 꿰맨 천과 나뭇가지들을 결합하여 만든 동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현존케 하는 장소로 우리의 눈을 이끈다. 이 전시를 관람하고자 하는 관객들은 미술관을 진입하는 길에서 바퀴가 달린 이 조각들과 함께 거닐 수 있다. 이 곳은 관객까지 포함하여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캐릭터들처럼 주어진 공간을 배회하는 무대의 일부로 보이기도하다. 정민기는 또한 이번 전시에서 마스크를 제작하여 이를 쓰고 연극형식 혹은 제의적 형식의 퍼포먼스를 하는데, 이는 자신 스스로가 자연을 무대 삼아 생명을 관장하는 존재가 되어 이들을 다루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정민기_Shelter from Silence: 모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영혼의 쉼터展_ 이응노의 집_2022

한편, 바느질로 드로잉한 천 위에 황토와 석고가루를 섞어 발라서 면을 만들어 낸 작업도 만들어냈다. 자연 색감을 입힌 천의 표면 위로 쿠션 형태로 제작된 바느질 제작물이 추가로 부착되었다. 그 모양새들은 사람, 동물 등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는 형태와 추상적인 유기체로 보이는 선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러한 형태들이 특정한 스토리나 화면 구성의 치밀한 흐름을 발현하지 않은 채 마치 태초의 인간들이 수수께끼처럼 남겨놓은 듯 한 동굴벽화처럼 보인다. 작가는 스스로 언급하였듯 영혼의 매개자인 일종의 무당이 되어, 떠나간 생명을 다시 불러와 생을 다하여 떠돌아다니는 영혼이 안착할 수 있는 매개체들을 제시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삶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이곳 홍천에서 정민기 작가가 펼쳐 보일 또 다른 세계의 풍경을 배경 삼은 퍼포먼스는 고대 벽화가 함의하고 있는 생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자 하는 제의적 행위를 전승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정민기 작가가 취하는 작업의 결과물에는 늘 바느질로 제작된 작업이 전제되어 있지만 이 방법론만을 단정적으로 특징지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전시 얼마 전 그는 "자신의 흥미로움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이든 시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그가 펼쳐놓을 다양한 결과물로 구성된 세계 속에서의 미시적인 존재들부터 삶을 향한 철학적 서사까지 폭 넓게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손끝에서 한 땀씩 이어나가는 실을 따라가다 보면 무한할 것 같은 세상의 놀라운 이미지를 만나게 되는 것 처럼. ■ 김인선

정민기_Shelter from Silence: 모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영혼의 쉼터展_ 이응노의 집_2022

침묵으로부터의 휴식 ● 홍성의 숲, 바다, 도시, 농가 등에서 '자연 목재'를 수집한다. 수집된 '자연 목재'와 '소색 원단'을 결합하여 '목공'과 '바느질'로 드로잉을 한다. 작업의 찌르기, 뽑기, 매듭짓기, 끼우기 등의 행위는 평면의 선을 입체의 선으로 확장한다. ● 나의 드로잉 과정은 놀이와 유사하다. 생물들을 흉내 내며 춤을 추듯 드로잉하고, 자연의 소리를 입과 악기로 재해석한다. 홍성에서 마주한 동물, 식물, 사람, 자연의 모습을 모방한다. ● 이 모든 작업 행위는 '침묵과 소멸'의 시간을 어루만지는 제사 의식처럼 느껴진다. 대자연의 평온과 안식을 위한 염원을 한 땀 한 땀의 바느질에 담는다. ● 지구의 질량은 그대로지만 '탄생과 소멸'의 과정은 계속되고, 이러한 물질의 순환을 통해 생태계는 유지된다. 그 순환의 고리에서 입자화되는 것을 수집해서 작업을 통해 잠시 박제하듯 멈추게 한다. ● 물질로 만들어진 모든 생명의 몸은 영혼이 머무는 집이다. 내가 수집한 것들은 각각의 빈집, 헌 집이다. 빈집, 헌 집들을 엮는다. 헌 집들을 엮은 새집은 쉼터가 된다. 쉼터는 헌 집에서 지내던 영혼들이 침묵으로부터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새로 명명한 종(種) ● 내가 만든 영혼의 집은 새롭게 발견한 종(種)의 이름으로 명명한다. 이때, 생물의 '명명법'을 참조한다. 라틴어로 표기하며 아종과 변종을 구분하기 위한 삼명법을 기본으로 한다.'속명-종명-명명자-명명 연도'의 순서로 종속 명을 표기하기 위하여 특성, 지역명, 이용, 생육 등을 고려한다.

바퀴 달린 것들 ● 조형의 모방 대상으로 야생에서 살았던 동물, 식물 혹은 인류에게 길든 가축의 모습을 떠올린다. 드로잉 한 조형물에 바퀴를 달며 비인간 종이 인간에게 길든 모습도 은유한다.

설치 ● 이번 작업은 평면과 입체 작업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납작한 화면도 자연에서부터 수집한 덩어리와 결합해서 부피를 지닌다.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 이응노의 집 야외 잔디밭, 이응노의 집 야외 보행로 등 실내와 실외 공간 특성에 맞게 작품을 설치한다. ■ 정민기

Vol.20220614b | 정민기展 / JUNGMINGI / 鄭民基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