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의 길 The Way of Print

갤러리 민트×아터테인 기획展   2022_0617 ▶ 2022_0702 / 일,월요일 휴관

구지회 / 강유정 / 강보라 / 김병주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구지회_강유정_강보라_김병주_김민지_김효 김영주_노경은_방인희_서지선_문숙희_부지현 서한정아_신효순_장서우_정길재_신명규 신현희_안정민_장성숙_오연화_이혜영_심진섭 전현주_이지영_유희경_임우리_이학진_이지은 조우이_정유선_조은정_정우리_최미아_허문정 한정선_한지민_황진희_정명국_한경화_황수정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터테인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3-4 (연희동 717-14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갤러리 민트 GALLERY MINT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2 1층 www.gallery-mint.com @gallery_mint

판화의 길(The Way of Print)을 찾는 네비게이션 ● 판화는, 미술사를 통틀어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했던 장르였다. 이는, 판화의 시작이 시각예술에 있어 회화적이기 보다 시대 공감적 사건과 사실을 알리는 시사적인 쓰임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건과 사실을 알리기 위해 판화는 말 그대로 같은 내용들을 찍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복제의 기능성이 그 기술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했다.

김민지 / 김효 / 김영주 / 노경은
방인희 / 서지선 / 문숙희 / 부지현

19세기 이후, 국. 내외를 막론하고 판화는 그 자체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했으며, 그에 따라 지금 까지도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문제는 판화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인 이 복제 기술로 인해 판화는 회화나 조각과 같이 미술사적 희소성으로부터의 미술적 아우라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제기될 수 밖에 없었다.

서한정아 / 신효순 / 장서우 / 정길재 / 신명규

하지만, 빠르게 많은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시대적 상황을 공유하는 것이 판화의 시각예술적 역할이었다면 이는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연유로 판화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장르가 되기까지 가장 많이 활용되었던 분야는 아마도 출판 분야였을 것이다. 즉, 지금처럼 인쇄 기술이 발전되기 전까지 판화의 근간을 이루는 동판, 목판 등을 활용하여 당대를 풍미하던 종교적 경전이나 대학자들의 저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시작된 기술, 즉 같은 내용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판형 제작 기술이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신현희 / 안정민 / 장성숙 / 오연화

어찌되었든, 18세기 대량 생산 기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판화는 실용산업의 발전에 직접적인 관여해 온 것은 사실이다. 이는 현재의 IT 기술의 발달로 전지구적 소통이 이루어지기 전, 가장 중요한 공유와 소통을 위한 기술로 발전되어 왔을 것이며, 이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통해 동시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몇 안 되는 유일한 매체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 파고, 새기면서 쉽게는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인장을 만들어 찍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시대의 지식을 활자로 찍으면서 판화는 나름의 기술적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판화 기술은 이제, 드디어 이미지를 찍고 복제하고 공유하게 되면서 시각예술의 또 다른 감상과 표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

이혜영 / 심진섭 / 전현주 / 이지영

해서, 판화에 있어 감상과 표현의 폭을 이야기 하려면 적어도 그 기법이 얼마나 기술적으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은 해결 되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그리는 행위를 넘어 찍어내는 행위까지 이어지려면 말이다. 회화의 그리는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와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 즉 철학적 사고다. 반면 판화는 앞서 말한 것처럼, 복제할 수 있는 기술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기술을 통해 자신의 사고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그 내용이 형식적인 기술에 녹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희경 / 임우리 / 이학진 / 이지은

그렇다면 과연 판화의 기술은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었기에 그 자체의 장르를 만들고 그 나름의 미술사적인 가치를 만들고자 했을까. 아니, 만들어 왔을까. ● 절대, 다른 작품과 장르처럼 판화 역시,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예술은 늘, 시대를 타고 흐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 내려졌던 모든 예술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가능성으로 그 정의에 대한 공격을 받아 왔고, 그것을 바탕을 시대를 탐구했다. 그리고 결과가 한 줄기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예술은 쉽게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판화의 미술사적 의미와 역사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미술시장에서 판화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한 물음으로, 과연 판화는 지금 어떠한 발전 가능성을 고민하고 어떠한 길을 만들고 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조우이 / 정유선 / 조은정 / 정우리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것으로 유일하게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닌 인류가 후대에 전할 수 있는 보물 중 하나가 시각예술이라면, 일단 판화는 다른 입장에서 시각예술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많은 관객들이 동시에 판화 작품을 공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매체로서의 판화는, 하나 밖에 없는 문화적 가치의 문제에서는 지극히 자유롭다. 그러나 판화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법과 디테일한 기술력들의 발전으로, 이제 회화적 의미와 가치를 표현함으로써 그 충분히 시각예술적 가능성을,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최미아 / 허문정 / 한정선 / 한지민

'판화의 길', 굳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량 복제가 가능한 이미지와 활자판이 아니라. 내가 그리는 행위가 그대로 담겨질 수 있는 회화로서의 판화라면. 판화는 그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회화의 또 다른 기법과 기술이 접목될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그림. 그것이 자연스럽게 접목될 수 있는 그 길을 찾는다면 말이다. ● 판화는, 프린트라고 하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그 기법으로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회화적(시각예술적) 매체임은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판화가 시각예술에 있어 그 자체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그 역할과 자기 중심적 사고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시각예술에 있어 회화라고 하는 좀 더 넓은 범주에 진입하고 융합해 낼 수 있다면, 그 만큼 판화는 그 장르적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황진희 / 정명국 / 한경화 / 황수정

그러한 이유로, 본 전시 즉, '성신판화'가 기획 한 '판화의 길'은 디테일한 판화기법이 바탕이 된 회화(드로잉)으로 구성됨으로써 앞서 이야기 했던 판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따라서 찍어내는 행위와 그리는 행위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통해 판화의 표현 영역과 함께 회화의 표현기법의 다양성을 동시에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40년 동안 한국 판화 역사를 써내려 온 '성신판화'가 이루고자 하는 판화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의지이기도 하다. ■ 임대식

Vol.20220617c | 판화의 길 The Way of Prin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