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눈보다 빠르다 The Hand Is Quicker than the Eye.

변상환展 / BYUNSANGHWAN / 卞相煥 / sculpture.installation   2022_0609 ▶ 2022_0710 / 월요일 휴관

변상환_손은 눈보다 빠르다展_스페이스 소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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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예술경영지원센터 기획 / 스페이스 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소 SPACE SO 서울 마포구 동교로17길 37 (서교동 458-18번지) Tel. +82.(0)2.322.0064 www.spaceso.kr

변(辯)을 위한 메모 ● 천혜향, 한라봉, 카라향, 황금향, 레드향, 진지향, 청견 등 인위적으로 교배한 그 종류와 명칭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르는 품종들이 전시장에 배치되어있다. 이들의 조상님은 몇 안 되지만, 교배의 방식과 다양함 때문에 모양과 크기에서 차이가 생긴다. 비슷한 모양의 군집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품종 간의 식별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이는 작가가 제작한 「C의 테이블」의 문제와 닿아있다. 양파의 레이어를 하나씩 까 가며 점점 작아지는 심지들을 석고 캐스팅해낸 이 작업은, 그 시트러스한 풍경의 바로 옆에 놓여있다.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다"라고 말했던 선배 작가처럼, 단순한 시각적, 현상적 문제를 넘어서 대상에 내재하는 여러 층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접근이 드러난다. 전시장 안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변상환_깊은, 맑고 작은 물_석고, 방수페인트, 소주_33×80×72cm_2022 변상환_시트러스 풍경_from 제주_ 석고, 온주밀감, 한라봉, 진지향, 천혜향, 황금향, 레드향, 카라향, 하귤, 청견 캐스팅_가변설치_2022
변상환_C의 테이블_양파_석고, 양파 캐스팅_8×120×33.5cm_2018

뜯지 않은 담뱃갑을 가늘고 길게 연이어 붙인 석고 작업이 있다. 석고라는 것이 본디 연결부위가 가늘수록 약하기 마련인데 그 완성된 형태가 불안하다. 거기다 누워있는 것이 아닌, 벽에 위태롭게 기댄 형태. 20대 이후로 담배를 태우지 않는 작가는 레종이라는 담배의 어원에 끌렸다고 한다. 'Raison D'etre(존재의 이유)'. 담배의 이름으로는 꽤 거창하지만, 연기가 되어 사라져야 의미가 있는 물건에 지어준 이름치곤 의미심장한 센스가 돋보인다. 사라질 운명을 타고난 사물을 작가는 위태롭게 붙잡아 두었다.

변상환_존재의 이유_석고, 담배 레종 캐스팅_84×16.5×17cm_2022

전시장 안쪽에 있는 생강은 흙에서 뽑아낸 그대로 모양이 재미있다. 생긴 것이 모호하고, 제각각이고, 묘사할만한 말이 '생강 같네'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들쭉날쭉한 형태는 가는 마디로 이어져 있다. 작가는 이 덩어리의 한쪽 면을 갈아내어 평평한 단면을 만들어 놓았다. 산을 깎아 호수를 채우듯, 볼륨과 요철은 밋밋한 단면으로 압축되었다. 옆에 놓인 파프리카와 피망은 그 맛과 색에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전시장에 놓인 이들의 정체는 구별할 수 없다. 전부 브론즈로 캐스팅되어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질을 지워 내거나 알아챌 수 없게 해놓은 이 식재료들에서 소프트한 컨셉과 시각적 교란을 던져놓기 좋아하는 작가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변상환_손은 눈보다 빠르다展_스페이스 소_2022

24시간 돌아가는 에어컨과 히터, 매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도시의 삶 속에서 눈을 즐길만한 여유는 없다. 이런 처지의 환경을 산책하는 와중에도 작업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이다. 그는 인적 드문 골목과 사람이 지나다니기 어려운 틈 사이로 나 있는 연통에서 나온 물이 만든 역고드름을 뽑아서 작업실로 가져왔다. 겨우내 주택밀림을 헤집으며 열심히 발견한, 크기가 자라길 기다리며 채집한 덩어리들의 새로운 몸에는 항상성의 의지와 한철의 날씨, 그리고 그곳의 환경이 응축되어있다. 녹기 전에 떠낸 몰드에, 그 고드름에서 나온 물과 기타 부유물들이 그대로 석고와 함께 부어져서 원래 모양 그대로 캐스팅되었기 때문이다. 마주 보는 곳에 자리한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세 마리의 통닭들은 각각 석고의 양생에 필수가 되는 물을 서로 다른 세 가지 액체로 대체해 놓았다. 이는 색깔과 냄새로 짐작할 수도 있는데 소주, 맥주, 막걸리가 그것이다. 옛날통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시장치킨은 얇은 껍질과 토막 내지 않은 적나라한 닭의 형태를 특징으로 갖는다. 석고로 하얗게 떠낸, 매운지 순한지 맛을 구분할 수 없는 노래방 새우깡도 그 옆을 지키고 있다.

변상환_등가교환_석고, 보일러 연통 고드름_가변설치_2022
변상환_니나노 _ 옛 것들_ 석고, 옛날 치킨 캐스팅, 각각 소주, 맥주, 막걸리_ 16×18.5×12cm, 16×17×12.5cm, 13×17×12.5cm_2022
변상환_공기 반 소리 반_ 석고, 새우깡 매운맛(좌), 순한맛(우) 캐스팅_9×31×25.5cm_2022

전시장에 놓인 이 백색의 덩어리들은 석고와 물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서 제작되었다. 물조차 그가 포착한 현실의 대상에서 길어왔기에 허구가 개입될 틈은 없다. 도시의 틈바구니마다 너무 흔하고 하잘것없어 지나치게 되는 풍경과 그것을 구성하는 현실의 일부를 석고로 붙잡아 놓았다. 갈지자로 비틀거리는 통닭들과 녹지 않는 몸을 부여받은 고드름들에는 작가가 지나온 몸과 정신의 시간이 함축되어있다. 그리고 고드름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여 석고를 작가는 버리거나 낭비하지 않고 조심스레 구 모양으로 둥글게 말아 이곳저곳에 배치하였다. 진한 보라색 배경 속에서 뚜렷해지는 엷은 음영과 윤택 없는 양감. 이들이 만들어내는 혼합된 현실의 층위는 고안된 무대 위에서 극화로 극대화된다.

변상환_등가교환_석고, 보일러 연통 고드름_가변설치_2022 변상환_사물의 사리_석고_가변설치_2022
변상환_등가교환_석고, 보일러 연통 고드름_가변설치_2022 변상환_사물의 사리_석고_가변설치_2022

먹음직스러운 과일이나 식사 후에 태우는 담배의 연기처럼 어떤 사물은 몸을 거쳐 세상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밤새 얼어붙은 고드름과 줄 서서 진열된 통닭들도 사라질 것은 매한가지다. 미술가는 이것들을 자신의 재주로 순간에 붙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 또한 고정된 것만은 아니다. 작가가 세상의 질료를 고유의 방식으로 질서를 부여한 것이 미술이라면, 전시장에 놓인 그 미술은 관객을 만나며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해석을 낳는다. 현실에서건 전시장에서건, 우리는 늘 질서를 소비하며 무질서를 생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싱거운 농담과 상투적인 수사를 집약적인 노동의 수행을 통해 일상과 부대끼는 희극으로 만들어온 작가의 과거. 백색 고드름과 위태로운 담뱃갑이 오늘날까지 작가가 가져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변상환_손은 눈보다 빠르다展_스페이스 소_2022

전시장의 초입에는 소주로 속을 채운 작은 산정호수가, 그리고 안쪽에는 반으로 썰린 아보카도가 있다. 외피를 뜬 거푸집, 반으로 떠낸 과육, 그리고 그 씨앗. 그가 만들고 떠내온 의미망들의 코어 속에는 건조하게 비틀어진 현실이 자리한다. 그래서 정상의 단물도 결국 또 다른 환영과 일시적인 해방감만을 안긴다. 전시의 시작과 끝에 놓인 작품과 몸을 받고 몸을 내어준다는 작업노트로부터, 긴 시간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작가에겐 미술이 삶의 허무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동기가 주는 생생함 자체일 수도 있는듯하다. 여기엔 뜨거운 긍정의 행위를 통해 차갑고 먹먹한 사물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작가의 실천이 있다. 무심코 무심히 지나쳐서 사라져간 것들이 어느새 사려 깊은 필터를 거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 손은 눈보다 빠르다. ■ 박성민

Vol.20220619a | 변상환展 / BYUNSANGHWAN / 卞相煥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