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혜영展 / HUHHAEYOUNG / 許惠煐 / painting   2022_0621 ▶ 2022_0702 / 일,월,공휴일 휴관

허혜영_untitled vol.2 no.22-65_캔버스에 혼합재료_91×116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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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유엠갤러리 UM GALLERY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64 (신사동 546-2번지) 3층 Tel. +82.(0)2.515.3970 www.umgallery.co.kr

그림 속에 내가 존재하는가. ●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그림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을 느낀다. 그림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인지, 내 속에 그림이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집중하는 그 시간만큼은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 그림은 그릴 때마다 매번 어렵다. 늘 처음 그리는 것만 같기도 하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그릴 때도 있다. 작품을 대할 때는 '어떻게 그릴까?'를 계획하면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 그저 느낌, 혹은 영감이 한 가지라도 떠오르면 바로 시작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내 마음과 대화를 하는 것만 같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도, 내 작업을 하고 있을 때도 그렇다. ● 나의 붓이, 나의 나이프가 어디로 향할지 캔버스 내에서의 여행을 기대한다. 매일 작업실로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하는 일상을 사랑한다.

허혜영_untitled vol.2 no.22-148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2

어느 정도의 창의성이 있어야 하는가의 물음에 도달할 때도 많다. 사실 그림이라는 게 선, 면, 동그라미 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가끔은 나의 그림이 다른 여러 작가의 리듬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 자신이 나를 보고 그리지 않는 한 나의 내면세계를 누구든지 보았는가? 혹은, 내가 다른 누구의 내면을 보았는가? ● 절대 아니다. 내 그림은 오로지 나 홀로 외로움을 지우고 딛고 밟고 거름 삼아 만든 나만의 고유한, 짙은 나만의 향기이다.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긁고, 다시 바르고 하는 이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것에 뜻이 있다. 일종의 축적이 아닌가? 마치 유년과 청년, 그리고 중년의 발자국처럼 그간의 경험들을 삶에 새기며 살아왔듯이 나의 작업도 그렇다. 땅에 발을 딛고 살아온 나날들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오롯이 한 사람의 것이다. 그 한 사람의 인생과 기억이 작품으로 솟구치는 것이다.

허혜영_untitled vol.2 no.22-157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22

「untitled vol.2」는 아마도 어쩌면 그렇게 축적해온 나날들을 늙어가며 죽음으로 도달해가는 기로에서 꽁꽁 매여 있던 희로애락을 풀어버리고 싶었기에 그렸을지도 모른다. ● 하나하나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쌓아 갔던 「untitled vol.1」 또한 그리는 동안 즐거웠고 큰 기쁨과 의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반면에 이번 vol.2는 구체적으로 다른 추상의 길을 찾기 위해 붓 터치와 정신, 마음의 생각들을 바꾸며 작업했다. 그 작업의 첫 부분은 캔버스에 물감을 말 그대로 대책 없이, 자유롭게, 의식의 흐름대로 바르고 그 후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 창작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시도해 봐야 알 수 있듯이 그 믿음으로 vol.1을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유화물감의 두께와 묵직함, 긁어내는 반복의 단순함에 이끌렸었다. 반면 vol.2는 풀어가는 재미라고 할까? 마치 vol.1 이 색과 물감의 뭉치라면 거기서 가닥을 끄집어내는 재미가 vol.2에는 있다. 내가 좋아하는 색 들로 이루어진 그 물감 창고 같은 곳에서 꺼내 쓰는 맛. ● 이미 vol.1에서 느낀 것을 덜어내고 새로운 것을 이 나이에 와서 다시 만나는 의미도 있었다. 내가 그림을 끝내게 되는 날이 있을 때, 그때는 이 과정 또한 축적이라고, 아름다웠던 나 개인에게는 소중했던 '그림 길' 이었다고 하겠지. 로버트 프로스트가 말한 적 있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의 정신, 그것으로 나의 실존을 느껴 온 작가로서의 희망을 아주 그림을 못 그리게 되기까지 마음은 항상 그림 밭에서 그림 길을 찾거나 그리고 있을 듯하다.

허혜영_untitled vol.2 no.22-182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53cm_2022

강원도 영월군 쌍용리 ● 나는 유년기를 강원도 쌍용리 라는 곳에서 보냈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쌍용시멘트가 있었고 아마 6살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일 것이다. 학교를 오가는 길은 산이 많은 지역이라, 낮은 구릉들과 꼬불꼬불한 길도 있었고, 회사에서 만들어 놓은 신작로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학교를 오가는 길들이 좋았다. 매일 다니는 동안 환희스러운 벅찬 감동으로 꽉 찰 때도 많았다. 산골의 특색인 계절마다 다른 들꽃들과 갖가지 모습들의 나무들, 산딸기와 온갖 풀들은 길 가던 나를 앉게 하고 한참을 들여다보게 했다. ● 그래서인지 나는 자연을 그리워했다. 지금도 매일 자연을 그리워하며 어릴 적 창밖으로 보던 구름까지도 아직 무지하게 그리워하며 산다. 그렇게 나는 나의 어린 모습을 그림 속 꽃들 사이에 그렸다. 나도 모르게 그렸지만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인간의 형상을 그리지는 않았었지만 나의 유년기를 그리며 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기억하게 된 것이 좋았다. ● 인간의 시작부터 유아기, 청년기를 거쳐 노년기를 맞아 죽는 것이 완전한 삶인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에도, 죽는 순간에도 그 순간을 인식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인생은 항상 미완성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불규칙한 인생이 사건의 연속이 아닌 살아온 그림이라고 생각하니 꼭 소용에 닿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림이 별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저 아름다우면 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좋으면 타인도 좋은 것이다. 내가 관객에게 선보이는 하나의 공연인 것이다.

허혜영_untitled vol.2 no.22-186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22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캔버스를 꽉 채울 필요도 없다. 기쁘면 기쁜 대로, 어지러우면 어지러운 대로 표현한다.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면 그 감정을 그려나간다. ● 그렇게 새 그림을 시작할 때 늘 캔버스 자체를 생각하려고 한다. 캔버스 밖, 또는 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단지 점 하나를 찍어 놓을 수도 있고 내키는 대로 마음껏 놀 수도 있다. 캔버스 밖에서 작업하고 싶을 때도 있다. 자유롭게. 결국 인간의 삶은 늘 갈등, 결핍, 그리고 상처들이 동반된다. 현실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부족과 살아가면서 생긴 갈등 또는 상처를 스스로 없애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에너지가 있다. 나는 그 에너지가 꿈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꿈은, 그리고 나를 살게 하는 에너지는 그림이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행복하다. 그림은 나의 정체성을, 살아있음을, 나아가 존재의 이유까지 되어준다. 그렇기에 그림이 현재 나의 전부가 되었다. 오늘도 즐거운 작업이 되기를 바란다. ■ 허혜영

Vol.20220621h | 허혜영展 / HUHHAEYOUNG / 許惠煐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