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SIDE

최규연展 / CHOIKYUYUN / 崔圭然 / painting   2022_0701 ▶ 2022_0717 / 월,화요일 휴관

최규연_6 Birds, 5 Trees, 4 cars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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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연 인스타그램_@kyuyunchoi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화요일 휴관

갤러리인 GALLERY IN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 116 201호 Tel. +82.(0)10.9017.2016 @_innsinn_

모더니즘에서 모더니티로의 추이 ● 풍경은 이것저것을 한데 담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자루와도 같다. 단절을 통한 연결이 특징인 도시의 면면은 풍경을 통해 자연, 인간, 문명, 텍스트 등등을 자연스럽게 한데 버무릴 수 있다. '일상의 편린들'을 포착한 최규연의 "Roadside"전은 다소간 느슨한 풍경의 형식을 따른다. 길은 서사를 자연스럽게 이끄는 방식이다. 전시장에는 단편적인 듯하면서도 서로 이어지는 풍경 20여 점이 걸려있다. 작품 속 '길'은 서울의 집과 북수원 시장통에 있는 작업실을 오가는 길과 주변이 주 무대다.

최규연_움직이는 관찰자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22
최규연_도약_캔버스에 유채_45.5×65cm_2022
최규연_4 Trees_캔버스에 유채_50×65cm_2022

미국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정작 회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서였다. 작가가 가져야 할 소양인 이방인적 시점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유지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 작품에서는 자동차 안팎의 시점이 많다. 자동차 창문을 통해 보는 시점은 수동적이다. 관찰자가 적극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우연히 훅 다가왔다 사라지는 장면들이다. 그것은 원래부터 거리두기나 낯설게 하기를 통해 작동하는 현대예술과 맞아 떨어진다. 현대예술은 아무리 비대중적으로 보여도 결국 현대성의 한복판에서 탄생한 것이다. 작가가 청년기에 미국에서 연구했던 형식주의적 관례는 모더니즘의 맥락에 있다.

최규연_Green Beams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1
최규연_기다리는 풍경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2
최규연_Flirting_캔버스에 유채_27.3×22cm_2022

모더니즘은 '현대적인 도시의 초라한 모습 속에 담겨있는 시적인 가능성을 살린' 보들레르에서 시작된다고 지적된다. 그것은 또한 '남루한 현실주의적인 것을 환상적인 것과 결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엘리어트)이다. 평범하다 못해 하찮아 보이는 대상도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근대성의 결과다. 길이라는 전시 컨셉은 지나가는 사람, 특히 도시의 산책자의 관점을 전제한다. 다양한 것들이 밀집된 도시는 빠른 시각의 전환을 특징으로 한다. 거리에서 이미지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점에서 그림은 이제 작은 시냇물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예술은 자본과 기술의 집약체인 스펙터클처럼 광폭의 거친 나아감이 아니라, 지배적 대세 가운데 놓쳐 버린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는 대로에서의 이미지의 사냥꾼이 아니라 길가에서 예쁜 조약돌을 줏는 마음으로 자신이 수집한 것들을 내어놓는다. 하지만 최규연의 작품도 무관계성, 소원함. 상품으로 대표되는 사물이 주역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작품들은 현대성을 작은 규모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압축 재생한다. 사람은 드물게만 등장한다. 인간은 장면을 포획하는 시점을 통해 암시된다.

최규연_Blue Car& Pink Marks_점토에 아크릴채색_2.5×8.5×4.3cm_2022
최규연_Our Friendly Neighbor_점토에 아크릴채색_13.6×9.7×4.5cm_2022
최규연_Street Lights_점토에 아크릴채색_8×7.5×3.5cm_2022

작가가 처음부터 이러한 소소한 소재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유학 중의 작업은 좀 더 야심찼다. 회화가 가능한 형식적 조건에 대한 근본적 탐구는 현대미술가라면 해결하고 넘어가야할 난제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모더니즘의 문제에 천착해왔다면 이제는 모더니티의 문제다. 작가는 쓰고 남은 물감으로 캔버스에 발라 놓았다가 그것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린다. 언제 어디다 쓸 것인지는 미지로 남겨둔다. 거리에서처럼 화면에서도 우연한 조우를 기다린다. 화면을 가다듬기 위해 칠하는 것이 아닌 만큼 최종 작품에도 울퉁불퉁한 물감 자국이 남아있곤 한다. 겹겹이 다른 색으로 칠해지고 덮이지만 밑색과 계속 대화적 관계를 통해서 진행된다. 언뜻 비효율적인 듯한 이러한 방식은 평면적이면서도 깊이가 있고, 단순한 형태에도 다채로운 효과를 남긴다. 세상의 추상화(抽象化)는 추상화(抽象畫)를 낳았다. 이 거대한 동어반복이 예술 안에서도 이루어진다. 하지만 형식이란 결국 어떤 내용에 대한 형식이라는 점은 변치 않는다. 그림보다는 그림이 가능하기 위한 형식적 조건의 탐구에 몰두했던 어떤 시기를 뒤로 한 최규연이 형식주의가 괄호치려 했던 현실을 새삼스럽게 주목하는 이유다. ■ 이선영

Vol.20220702h | 최규연展 / CHOIKYUYUN / 崔圭然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