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아트랩 대전 ARTLAB DAEJEON

김기훈展 / KIMGIHOON / 金技訓 / photography   2022_0705 ▶ 2022_0726 / 월요일 휴관

김기훈_비 정체성 초상화 연작 16번 좌측_사진_40×30inch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_10:00am~08:00pm 관람종료 30분 전 입장마감

이응노미술관 LEEUNGNO MUSEUM 대전 서구 둔산대로 157(만년동 396번지) 신수장고 M2 프로젝트룸 Tel. +82.(0)42.611.9802 www.leeungnomuseum.or.kr www.facebook.com/LEEUNGNO @leeungno

사진의 내면을 바라보다 ● 사진작가 김기훈은 2012년부터 2021년도까지 「비 정체성의 초상화」에 천착했다. 동일한 인물을 두 번에 걸쳐 촬영한 후 두 점의 사진을 나란히 배치하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만들어낸 장치이다. 표면상으로 거의 비슷해 보인다. 인물은 거의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연속 촬영된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의 사진은 작가가 카메라의 셔터를 직접 누른 것이고 다른 하나의 사진은 2분에서 10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작가가 다른 공간에서 원격으로 촬영한 것이다. 작가의 존재와 부재 여부는 결과적으로 어떤 변화를 유발한 것일까? ● 작가는 처음부터 모델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편안한 자세를 취하도록 요청한다. 그리고 첫 번째 사진을 촬영하고 사라진다. 작가의 개입이 최대한 배제된 상태에서 모델은 몇 분간 가만히 카메라를 바라본다. 촬영 시간이 길어지면서 카메라 렌즈라는 한 점에 집중되었던 모든 감각은 분산되어 길을 잃은 채 헤매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의 세계가 작동하는 것이다.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한곳만을 바라보지만 동시에 모든 방향에서 보여진다.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즉 응시(regard)하는 것이다. 변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모델의 표정 변화다. 얼굴은 틀림없이 카메라를 의식하지만 묘하게 복잡한 양태를 보인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작가는 그 미묘한 순간을 찾아낸다.

김기훈_비 정체성 초상화 연작 16번 우측_사진_40×30inch

사진에 찍히는 것은 자신이 한 장의 이미지가 되어 누군가의 눈앞에 보여지는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밝은 방』에서 카메라 렌즈 앞에서 나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다른 이가 나라고 생각해주길 바라는 사람'이며, '사진작가가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가 자신의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바르트는 사진에 찍힐 때마다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 기만적이라는 느낌이 스쳐 간다면서 사진 찍히는 자의 분열된 상태를 '유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1) ● '타인에 의해 판단되는 나'와 '고유한 나'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나 자신' 사이에도 간극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사진으로 포착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김기훈은 사진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는 카메라 너머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다가가고자 한다. ● 특히 이 작업에서는 사진작가와 모델, 그리고 감상자의 상호관계가 중요하다. 우선 작가는 모델의 심리적인 변화에 전적으로 기대는 측면이 있다. 그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지만 상황을 포착하기보다 모델의 상태 변화를 기다리는 쪽에 가깝다. 그의 작업에서 감상자는 또 다른 주체이다. 두 사진의 차이를 구별하는 중요한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왼쪽과 오른쪽 사진을 번갈아 가며 유심히 바라보다가 순간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하나의 사진은 모델이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것 같은데 다른 하나의 사진은 어느 순간 그가 카메라 렌즈 너머 미래에 자신을 바라볼 누군가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과거의 한 장면인데 그가 현재의 나와 연결되는 느낌이 드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어쩌면 두 사진의 차이 그 자체보다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기 위해 감상자가 두 사진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행위와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경험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 사진은 기본적으로 시각의 영역에서 작동한다. 하지만 그에게 사진은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닌 보이지 않는 저편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보는 행위는 눈의 감각적인 반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대상의 본질을 파편화시키고 하나의 상태로 고정한다. 어쩌면 사진의 숙명과도 같다. ● 이번 전시에는 동명의 영상 작업도 함께 출품된다. 이 영상은 처음부터 작가 없이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다섯 명의 인물 서로 간의 긴장감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영상이 시작되고 모델들은 일제히 심호흡하면서 촬영에 임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술렁이는 느낌은 잦아든다. 각자의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긴장감은 다소 완화되지만 순간 순간 미미한 흔들림은 계속된다. 이것이 바로 사진이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장면이다.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유동적인 이미지로 그들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 김기훈의 기존 작업에서 관계의 상호작용은 지속해서 중요한 관심사였다. 「맞바꾸기」(2015), 「둘 사이」(2016)와 같은 초기작에서는 유학 생활의 답답한 심정을 바탕으로 타인과 소통 불가능한 상태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가 겪은 상실과 고립의 경험은 주변의 대상이 가진 가치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데 영향을 주었다. 「전단지 스티커」(2019)에서는 거리 벽면에 광고 전단지가 떼어지고 남아 있는 청테이프를 통해 여러 겹의 압축된 시간을 발견하고, 존재와 부재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사유로 나아간다. 「소멸 가이드」(2020)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공간이 아닌 여백처럼 느껴지는 공간에서 유의미한 발견을 하고자 했다. ● 이후 「부정함으로써」(2020)에서는 작가의 감정이입이나 의미 부여가 오히려 대상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인식에 다다른다. 예술의 본질과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것도 이때쯤이다. 「아무것도 없지 않은 황량한 장소」(2021)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종의 고백과 같은 작업이다. 그는 기존에 촬영한 사진 중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정서가 잘 표현된 이미지를 거대한 크기로 출력해 둥글게 말아 기둥처럼 설치했다. 기둥은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얇은 종이로 이루어져 툭 치면 금세 울렁거리면서 쓰러질 수도 있다. 부동적인 이미지이지만 찰나일 수밖에 없는 사진의 무거우면서 가벼운 속성을 긴장 관계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이미지로 연출했다. ● 최근에 그는 자신의 생각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보다 대상에 집중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양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을 하나로 정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는 삶의 태도와도 같다. 이미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현실에서 사진의 가능성은 무엇일까? 우리는 사진을 통해 어떻게 타인의 내면을 의식하거나 자기 자신을 반성할 수 있을까? 그의 작업처럼 끊임없이 미세한 움직임을 바라보려는 섬세함과 유연함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갖춰야 하는 덕목이 아닐까? ■ 이슬비

* 각주 1) 롤랑 바르트, 『밝은 방』, 동문선, 2006, pp.27~28. 

나는 어딘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본다.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구부러진 땅, 고독한 나무 한 그루, 고여 있는 물웅덩이, 옥수수밭 그리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이다. 그곳을 바라보다 보면 가끔은 창에 비친 나 자신을 마주하기도 한다. ● 이렇게 창을 통해 바라보는 곳은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이유 없이 본능적으로 직면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곳에는 어떤 사건조차 일어나지 않지만, 그 대상이 짧고 강렬해서 순간적으로 나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 이처럼 나는 창 너머의 것을 보기도 하고, 창 자체를 보기도 하며, 창에 비친 나 자신을 보기도 한다. 창 너머의 것들을 통해 외부 세계에 대한 탐구를, 나 자신이 비친 창을 통해 내면세계에 대한 표현을 하고자 한다. ■ 김기훈

Vol.20220705d | 김기훈展 / KIMGIHOON / 金技訓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