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주말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이목화랑 YEEMOCK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 94(가회동 1-71번지) Tel. +82.(0)2.514.8888 www.yeemockgallery.co.kr @yeemockgallery
형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구름을 타고 ● 캔버스라는 공간에 한 사람이 걸어 들어간다. 색으로 가득한 그 장소엔 형태도 없고 정면도 없다. 그곳에서 행하는 모든 움직임은 선이 되고, 선은 곧 레이어가 된다는 점에서 캔버스는 경험과 흔적의 장소다. 이곳에서의 선은 이전의 층위를 가리거나 지워내기 위한 덮음이라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흩날리는 퍼포머들의 옷자락을 보는 것처럼 일시적이고, 투명하고, 가볍다. 붓을 잡는 시간만큼 그림을 바라보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에게 화면은 언어로는 온전히 붙잡을 수 없는 감각을 현현하기 위한 장소가 되겠다. 이 글은 추상을 근간으로 형태 없음의 형태를 탐구하며, 개별적 감각을 소환함으로써 사유를 추동시키는 회화를 지속하는 조유진의 작업을 그의 개인전 «낮의 달»을 중심으로 살펴보려는 시도가 되겠다.
'형태 없음'은 기존의 관념들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겉모양, 생김새, 의미나 개념으로부터 탈피한 그림을 앞에 둔 지금, 조유진의 작업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포털(portal)은 2020년 작 「어느 구름」이다. 추상적 화면을 이루고 있는 캔버스 15호 사이즈의 이 그림에 따라붙은 "어느 구름"이라는 심심한 제목은 키(key)가 되어 그림을 바라보게 한다. "어느"라는 미지칭 대명사가 의미하듯, 형태와 대상을 특정하지 않는 태도는 그의 작업 전반과 닮아있다. 색을 풀고 선을 그어 추론 가능하되 정의 내리지 않는 태도, 그리고 힌트처럼 혹은 최소한의 단서로써 따라붙는 제목. 개인의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장치로서의 그림은 조유진의 회화를 관통하는 기제다. 땅 위에 있을 때란 하늘의 시선 아래 있을 때라는 아리스토텔레스(Ἀριστοτέλης)의 오래된 말을 떠올리며 캔버스라는 땅을 딛고 펼쳐진 공간, 조유진의 회화로 걸어 들어가 보자.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최근 작업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떠올렸던 근과거의 시간들-산책, 여행 등을 통해 마주했던 일상의 풍경과 소리를 감각한 순간-을 환기하며 그린 회화를 선보인다. 「물결」 「알딸딸한 새들」 「어둠 속 불빛과 속삭임」 「흔들리는 것」 「떨어지는 별」 「지나간 소리」「어느 구름」 「그네 타기」 「풀밭 썰매」 「물웅덩이」 「비치는 것」 「사라지는 불길」「구름 속으로 걷기」. 이번 전시 출품작의 제목들이다. 일련의 제목들은 고정된 것보다는 변화하고 지나가는 것을 떠오르게 하며 끊임없이 유동하는 대상("물결, 불길, 구름, 소리" )이나 어떠한 동적 상태("흔들리는, 떨어지는, 지나간, 사라지는")를 지시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달라붙은 언어는 이미지와 닮아있어 그의 그림 역시 고정된 형태보단 "흔들리고, 흩날리며" 유연한 상태를 이룬다.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선의 집적을 보여주는 조유진의 회화와 언어 사이의 일정 거리만큼 관람자, 그러니까 외부의 사유가 개입할 자리와 여백은 확보된다.
"낮의 달". 언뜻 조금은 낯설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언제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운동과 맞물려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의 개입으로 또렷이 보이기도, 흐려지기도 하는 달의 상태변화를 생각해본다면 그리 어색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섭리에 어긋남이 없는 존재라 하겠다. 그렇게 다시 한번 이 세계의 문을 열었던 작업 「어느 구름」으로 돌아와 보자. "어느"가 지칭하는 미인칭은 어쩌면 익명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끊임없이 유동하는 형태변형을 통해 비가 되고, 눈이 되고, 안개가 되지만 여전히 같은 본질을 공유한 채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구름을 무엇보다 명료하고도 유연하게 바라보는 그림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안쪽에 숨겨져 있다" * 는 어느 시인의 말을 따라, 존재를 해체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렌즈를 갈아 끼우고 조유진의 작업을 다시 차례차례 응시하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그의 세계로 진입하는 또 다른 무수한 포털을 발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안에서는 형태와 상태, 해체와 존재는 동의어라 하겠다. ■ 신지현
* 이영주의 시 '둥글게 둥글게'에서 발췌. 해당 시 수록 시집은 『차가운 사탕들』(2014, 문학과지성사).
Vol.20220707h | 조유진展 / CHOYOOJIN / 曺有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