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김미형展 / KIMMIHYUNG / 金美亨 / painting.drawing   2022_0708 ▶ 2022_0826 / 월,공휴일 휴관

김미형_draw wing-겨울_캔버스천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7.7×140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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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_예술공간 이아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공휴일 휴관

예술공간 이아 ARTSPACE IAA 제주도 제주시 중앙로14길 21 (삼도이동 154번지) B1 제1전시실 Tel. +82.(0)64.800.9339 www.artspaceiaa.kr

1. 끝없이 뻗어가는 넝쿨과 함께-넝쿨드로잉 ● 제주로 이주한 나를 반겨준 것은 모든 것을 쓰러트릴 기세의 겨울바람이었다. 세찬 바람은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들여다보게 했고, 그런 바람 앞에 서 있는 나처럼 담벼락이 있었다. 아름답고 긴 넝쿨이 멋스러운 담이었다. 하나 둘씩 짐정리가 끝나고, 하나 둘씩 고장 난 것들을 고치고, 낯선 길들과 풍경이 익숙해질 무렵, 담벼락의 마른 넝쿨도 언 몸을 녹이고 싹을 틔워냈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죽은 넝쿨은 마치 처음부터 담과 하나였다는 듯, 비바람을 견디며 오랜 시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넝쿨은 아름다운 자태로 시선을 끄는가 하면, 섬뜩할 만큼의 기운을 뿜으며 접근을 허락하지 않기도 했다. 이 경이롭고 매력적인 담쟁이넝쿨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커다란 담쟁이넝쿨의 한 부분에서 날개처럼 생긴 형태를 발견했고, 한쪽뿐인 날개의 형태를 온전하게 해주고 싶어졌다. 수평전환 한 이미지를 더해 비로소 쫙 펴진 날개가 된 이 작업은 'draw wing'이라는 제목과 함께 넝쿨드로잉의 첫걸음이 되어주었다. 다른 계절에도 그 흔적을 기록했고, 그 넝쿨이 무리에서 끊겨져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날개가 되어 언제든 날아갈 수 있다며 위로를 하였다. 치열한 삶의 흔적인 넝쿨의 선들. 그 형태에 주목해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가는 이번 작업을 '넝쿨드로잉'이라 정했다. 대부분은 넝쿨이 무성한 잎들을 떨구고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포착했다. 넝쿨에서 새로 움트는 새싹이 힘차고 유연한 선의 흐름들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 모습도 담았다. 끝없이 뻗어가는 넝쿨들과 함께 산을, 사람을, 사랑을 그려본다.

김미형_draw wing-여름_캔버스천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7.7×140cm_2021
김미형_바다를 품은 산_캔버스천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5.6×90cm_2021
김미형_움트는 산_캔버스천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5.7×116.8cm_2022
김미형_사랑하기 때문에_캔버스천 에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40×99.3cm_2021
김미형_마음결_캔버스천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4.7×140cm_2021
김미형_그 남자_캔버스천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68.6cm_2022
김미형_그 여자_캔버스천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68.6cm_2022
김미형_노래하는 세이렌1_캔버스천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70cm_2022
김미형_노래하는 세이렌2_캔버스천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70cm_2022

2. 구멍 난 잎들이 건네는 말 ● 구멍 난 잎들로 작은 드로잉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0년 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다방에서의 전시를 끝내고서이다. 작업에 대한 고민도 고민이거니와 생활과 삶에 대한 시름이 깊어 나름 방황의 시간이었다. 구멍 뚫기에 있어 벌레가 이파리에 뚫은 구멍을 내가 이길 수 없다는 걸 받아드렸다. 구멍을 뚫는 대신 구멍 난 것들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행위의 수없는 반복이던 나름 노동집약적이던 작업의 방식도 바뀌어졌다. 그런 변화가 좋았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구멍 난 잎들을 잘 말려두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들춰보는 재미. 몇 달 전의 산책이 몇 년 전의 산책이 그날의 바람과 햇볕과 함께 생생하게 전해지는 묘미. 의미심장하게 뚫린 구멍 난 잎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내가 고민상담사가 된 것도 같고 의사가 된 것도 같았다. "자 이제 이야기를 해보세요, 내가 잘 듣고 있답니다." 어떤 잎은 따는 순간부터 바로 작업구상이 되기도 했지만, 잎 하나를 놓고 몇날 며칠을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작은 드로잉들은 시간을 거치면서 A4크기로 정착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액자를 해 넣기 전까지는 A4화일에 차곡차곡 넣어 둘 수 있다는 거다.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는 동안 많은 작품들이 다치고 상했다. 버려야했다. 제주로 오기로 결심하면서 남은 것들을 또 버렸다.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내 걱정은 말라며 A4파일 안에 잘 넣어져있는 작은 그림들이 신통방통했었다. 그 형식은 작기에 더 가까운 시선을 유도하는 힘을 가졌고 어쩐지 편안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힘도 가졌다. 무엇보다도 많은 부피를 차지하지 않으니 별다른 작업공간이 없던 시절에도 작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도 내게 주었다. 구멍 난 잎들은 구멍이 나지 않은 멀쩡한 잎들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구멍이 났으니 더 가볍고 가볍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내가, 내 삶의 구멍들에 대해서도 같은 시선과 마음이길 다독여본다.

김미형_촛불의 의미_종이에 구멍난 잎, 드로잉_20×14cm_2018
김미형_구멍난 삶 위에서 균형잡기_종이에 구멍난 잎, 드로잉_21×29.7cm_2019
김미형_괴로워도 슬퍼도_종이에 구멍난 잎, 드로잉_50×70cm_2022
김미형_마지막 한마디_종이에 잠자리날개, 드로잉_29.7×21cm_2018
김미형_나의 허물-시카다싯달타_캔버스천에 매미허물_116.8×91cm_2022

3. 매미허물을 만나다, 껍질과 껍데기들로 ● 예전에 내가 십년 넘게 살던 동네의 오래된 아파트 앞에는 시끄러운 도로의 소음과 공해를 어느 정도 커버해주는 제법 큰 나무들이 있었다. 굵은 나무들을 들여다보다 발견한 매미허물, 그리고 근처의 또 다른 매미허물, 나무에 매달린 갈색의 매미허물은 어쩐지 좀 징그러웠다. 자주 그 장소를 기웃거린 덕에 매미가 허물에서 나오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구겨진 날개가 서서히 팽팽해지며 조심스럽게 몇 발짝 올라 높이 나는 모습. 그렇게 남겨진 매미허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마음이 요동쳤다. 매미는 날아가 버리고 없는데 그 자리에 남아 나무를 움켜잡은 허물. 떠나가 버린 사랑하는 이의 체취가 남은 옷을 어루만지듯, 그렇게 매미허물을 만져보았다. 더는 허물이 징그럽지가 않았다. 가운데가 찢어져 벌어지며 허물은 그 빈 공간을 드러냈다. 허물은 커다란 구멍을 갖고 있었다. 이 귀한 자태인 허물이 어쩌다 잘못 저지른 실수나 비웃음거리를 지칭하는 허물이 되었을까? 알맹이가 아니라고 껍데기 취급을 받게 된 걸까? 껍데기가 아니었다면 알맹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다 껍데기는 실속도 내용도 없는 것의 상징이 되었을까? 알맹이는 사라지지만 껍데기는 남는구나. 그렇게 껍데기는 가지 않고 내 곁에 머물게 되었다. 매미가 울어대는 계절이 되면 나는 매미허물을 찾아 그것들을 채집했고, 이 허물들로 뭔가를 만들겠다며 몇 년을 모아 나갔다. 궁리를 거듭한 끝에 모아진 허물들은 나의 허물을 덮어주는 심정으로 허물에 허물을 덮어나가며 형태를 만들어 나갔다. '허물이 있음에도 우리는 본래 부처다.'라는 말을 되뇌면서 말이다. 작업을 하느라 매미허물을 손으로 만지다보면 허물의 다리가 내 손가락에 딱 달라붙어 털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매우 절실한 마음으로 나무기둥을 타고 올라갔을 매미의 삶을 떠올린다. ■ 김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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