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The Visible anf the Invisible

한민경展 / HANMINKYUNG / 韓旻璟 / installation.drawing   2022_0712 ▶ 2022_0723 / 월요일 휴관

한민경_‪수집한 마음들_슬레이트 지붕, 타일, 폐목, 장판, 대리석, 페인트, 콘크리트, 플라스틱 지붕, 스티로폼, 철근, 전선, 보도블럭, 벽돌, 알루미늄, 나무껍질, 콘크리트, 쇠, 호스, 접착제, 유리조각_가변설치_2022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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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경 블로그_blog.naver.com/alsrud613 인스타그램_@minkyunghan_art    

작가와의 대화 / 2022_0716_토요일_02:00pm

2022 이응노의집 창작스튜디오 제5기 입주예술가 릴레이 개인展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Ungno Lee 충남 홍성군 홍북읍 이응노로 61-7 기획전시실 Tel. +82.(0)41.630.9232 www.hongseong.go.kr/leeungno/index.do

충남 대표 국·공립미술관으로 선정된 홍성군 '이응노의집'(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는 청년 예술가들의 순수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한다. 2017년 제1기를 시작으로 올해(2022.) 제5기 입주예술가까지 다양한 매체, 장르, 주제, 공공미술 등 지역과 연관 짓거나 개인의 연구 과정을 참신하게 보여줬다. ● 특히, 올해 입주예술가는 운영 과정부터 차별성을 가졌다. 이전 방식과 가장 큰 차이는 ▲'주제 선택'(①홍성 원도심 탐구. ②자연, 생태, 환경 / 택 1)를 통해 개인의 창작물-개인전-을 진행하는 것과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에서 본인의 예술 세계관을 누구(예술 분야 전문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면 좋을지 평론가, 기획자, 아트 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직접 찾아야 했다. ● 상반기 단기 입주예술가가 충남 홍성에 머무르는 시간은 약 19주(3월~7월)이다. 그 안에 상상했던 모든 걸 내뱉어야 한다. 입주 준비(이사)로 한 주가 지나고, 적응하는데 또 한 주가 필요하다. 그렇게 2주가 지나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지역을 조사하고, 공간·환경을 탐색하고, 사람을 만나다 보면 또 2주가 지난다. 아직 작업은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금세 한 달이 흘렸다. "시간 참 빠르다." ● 한민경 작가가 선택한 주제는 '홍성원도심탐구'이다. 작가가 '원도심'을 탐구하는 방식은 "천천히 이동하는 방식을 통해, 이전의 흔적(다양한 잔해)과 만나는 것"이다.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는 '걷기ㅡ산책'와 '줍기ㅡ채집'기술이 사용된다. 그리 대단한 기술로 보이지 않겠지만, 작업(작품)이란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한민경_‪수집한 마음들_슬레이트 지붕, 타일, 폐목, 장판, 대리석, 페인트, 콘크리트, 플라스틱 지붕, 스티로폼, 철근, 전선, 보도블럭, 벽돌, 알루미늄, 나무껍질, 콘크리트, 쇠, 호스, 접착제, 유리조각_가변설치_2022‬

이 같은 경우를 흔히 "발등에 불 떨어졌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작가는 여유롭다. 물질로 전환된(보이는 것) 작업이 없다고 작가는 초조해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작업이 있고, 그와 비슷한 작업을 오늘까지 수백 번 그려왔을 때문이다. 이젠, 여유롭게 화면과 전시 공간을 살피며 상상했던 것과 최대한 유사한 걸 하나씩 찾아 넣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상상했던 걸 하나씩 조립하다 보면 작업이 완성되고 개인전은 시작된다. ● 작가에게 천천히 걷는 시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함이자, 한 걸음씩 장소를 이동하는 것 외에 마음이 이동-움직이는-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사물을 적당한 자리에 놓기 위해 이리저리 옮기고 위치를 찾는 것, 즉. 안정적인 자리(위치)를 잡기 위한 과정인데, 이런 과정을 자신에게 투영되어 걷기·산책하기·배회하기 등을 통해 불안한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 다음 기술은 '줍기'이다. 줍기에는 채집과 수집으로 구분한다. '채집'은 나한테 필요한 적당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고 '수집'하기는 채집물을 검열하여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정된 오브제는 최소한의 의식으로 마음에서 조종된 공간을 만들어 간다.

한민경_‪수집한 마음들_슬레이트 지붕, 타일, 폐목, 장판, 대리석, 페인트, 콘크리트, 플라스틱 지붕, 스티로폼, 철근, 전선, 보도블럭, 벽돌, 알루미늄, 나무껍질, 콘크리트, 쇠, 호스, 접착제, 유리조각_가변설치_2022‬

전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드로잉+오브제 설치 작업으로 이뤄졌다. 드로잉은 3월부터 6월까지 원도심을 걸으며 기록한 260여 점의 그림이다. 작가에게 '드로잉'이란 "우연히 발견된 나와 닮은 것을 흘려보낼 수 없기에, 그 순간 나와 만난 존재들을 화면에 잡아두는 방식"이다. (* 한민경 전시 준비 인터뷰 중) ● 오브제는 질량, 크기, 색상, 제작 시기, 버려진 시기, 사용 목적, 수집 장소 등 그 어떤 것 하나 중복되지 않고 다양하다. 채집 장소는 홍성 읍내(홍성읍 오관리 등)에 위치한 '홍주읍성 복원 사업' 현장 및 주변에서 발견한 사물(objet)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작가에게 발견된 다양한 사물들은 제각기 수많은 사연이 있을 것이고, 작가는 이를 재해석하여 또 다른 상징성을 부여한다. 사물이 상징성을 가졌을 때 의미가 있는 것처럼, 쓸모없다고 여겨지거나 기능을 잃어버린 것들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해 본다. ● 이처럼 개인전 작업은 드로잉과 오브제로 나뉘는데, 그 구분도 아주 진솔하다. 채집할 수 있는 것은 가져오고, 그러지 못한 것은 화면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홍성 원도심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민경의 개인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마치 '홍성 원도심의 축소판'과도 같다. ■ 정보경

한민경_마음 낱말_종이에 연필, 펜_21×14.8cm×40_2022_부분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본다는 것 ● 최근 한민경 작가의 작업은 강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초현실적인 회화부터 설치작업, 매일 기록하는 드로잉까지 실로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작품에 담긴 작업 내용들을 언뜻 보면 재현적인 사물과 도상이지만 맥락 없을 배열과 배치에 당황한다. 각기 무엇인지 모를 형태들이 띄엄띄엄 연결되어 있거나 의미가 유보되어 거의 잘 보이지도 혹은 읽히지도 않을 미세한 교감만이 드러날 뿐이다. 더 거칠게 들어가 보자. 한민경의 작업들은 전체가 언제가 완성될지 모르는 진행형의 작업들이기도 하고 혹은 그대로 완성이 유보된 채 의미로만 남을 수도 있는 작업이 될 듯하다. 마음이 어떤 의미로든 완성되거나 깨우쳐질 때 까지 말이다. ● 늘 마음을 주제로 하는 한민경의 작업 전체에 관통하는 것이 있다면'미시적인 세계관'일 것이다. 그가 세상을 관찰하는 미시성은 늘 한켠 어딘가 분출되지 못했던 마음의 갈래를 찾아내기도 하고 눈과 마음이 닿은 뜬금없는 사물/사태를 찾아내기도 한다. 어떤 몸에서 탈각되어 드문드문 있는 사물의 조각들과 정처 없이 떠다니는 기묘한 풍경의 조합은 그의 미시적 욕망의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 ● 최근 사물을 관찰하거나 어떤 사태를 줍는 그에게 스튜디오 밖은 모든 게 비범한 작업의 소재다. 자연 풍경은 물론이거니와 오래된 원도심의 낡은 집들과 거친 세월을 이겨낸, 거의 쓰레기에 가까운 버려진 사물들이 그렇고 그것을 변주해 내는 드로잉적 능력이 그렇다. 밖의 여기저기 널 부러진 사물의 자태는 자연스레 오늘 시간을 확인하는 중요한 전리품이 되고 의미소를 담을 사건과 흔적이 된다. 마른 이끼가 들러붙은 슬레이트 조각, 나무껍질, 녹슨 철사, 돌멩이, 플라스틱 조각, 구겨진 비닐, 엉뚱하게 놓여있는 물체, 거리에 나뒹구는 모양 등 시간이 낀 덩어리들이 그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렇게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마음에 닿은 사물들을 수집하고 시간들을 찬찬히 담아 기록한다. 그새 스튜디오 앞마당은 정처 없는 방랑자의 사물들로 가득하고 스튜디오 안에서는 오늘 사태들을 촘촘히 기록하고 있다. ● 한민경의 작업은 매번 튀어 오르는 마음의 사정을 어떤 사태나 사물로 접속시키면서 무수한 미시적인 차이를 발견하는 일이다. 늘 동일한 조건과 반복에서 발견하는 색다른 생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그의 작업이기도 하다. 묵묵히 오늘을 소요하며 그려내는 드로잉이 그렇고 흙 묻은 사물을 줍는 것이 그렇다. 그의 작업에서 두드러지게 시간을 소진하는 드로잉은 단순하게 사물을 재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발견이며 해석이다.

한민경_마음 낱말_종이에 연필, 펜_21×14.8cm×40_2022_부분

그의 드로잉을 보자. 모든 드로잉적 행위는 목적 없는 그리기의 감각을 재편하는 놀이이며 곧 욕망하는 기계다.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부담을 벗어난 그에게 그리기는 이제 대상에 대한 또렷함이나 어떤 세계의 본질을 재인식시키는 작업에서 벗어나 자신이 만난 사건에 대한 발언을 충실히 전달할 뿐이다. 그것은 눈앞의 대상을 선택함과 동시에 자신이 표현하려는 의미를 우발적인 배치와 변형하려는 놀이적 충동에서 시작하며, 곧 작업이라는 의미와 배치에 대한 오랜 틀에 문제제기를 하는 아이러니를 생성하기도 한다. 또 이 아이러니의 굴레는 자연스레 감내해야할 오랜 수행적인 작업이기도 하며, 어느 시간과 지점에 도착해야 완성되는 숙명의 질문을 유도하는 섬세한 작업이기도하다. ● 이에 거칠게 탈각된 쓰레기들을 주우며 일련의 예술적 성취감과 해방감에 당도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이런 제시행위를 통해 발언하고자 하는 의미와 문제는 무엇일까? ● 이 답은 한민경의 현재 작품들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는 비속미술의 관점으로 볼 때 보다 선명해진다. 비속미술 즉 아브젝션이란 "정체성, 체계,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것이고, 경계, 위치, 규율 등을 무시하는 것이며 사이in-between, 모호한 것"이라고 크리스테바가 정의하는데, 이는 한민경의 작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개념들이다. 아브젝션은 시각예술에서 '몸'같이 평가절하 되었던 요소들을 향유의 주체적 차원에서 탐색하면서 지난 1990년대 미술의 화두로 떠오른 개념이다. 아브젝트 미술이 일반적으로 오물, 배설물, 털 같은 비속한 물질들을 작품에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보면 한민경의 작업은 그에 비해 전혀 비속하지 않지만 첫째로 한민경의 작업의 단순한 재료가 낮은 물질성을 지향한다는 점, 둘째는 그 '낮은 물질성'이 수행하는'몸'과 관계가 깊다는 점에서 비속미술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술역사에서 근대기간동안 모더니즘 같은 모든 배타적인 중심주의에 의해 억압되어있던 것들이 회귀하는 일련의 조류를 탈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시각에 대한 촉각의 회귀, 이성에 의해 억압되었던 자연, 몸의 회귀, 놀이와 유희 등 직접 몸의 이동을 통해 수행하는 한민경의 작업들과 연을 맺을 수 있는 지점이다. 최근 작업들이 쓰레기 같은 사물들을 주우면서 어떤 시간적인 공간적인 의미를 시사하지 않는, 이도저도 아닌 모호하기 그지없는 비속미술 같은 모종의 수행을 통해 무의미를 의미로 또는 의미를 무의미로 역설하는 위트 있는 작업이다.

한민경_마음 모양 드로잉_종이에 연필_14×10cm×139_2022

마지막으로 한민경의 마음을 다루는 미시적인 작업은 보이지 않고 구축되지 않는 비정형성과 관계한다. 흔히 추상적 회화를 연상시키는 이 비정형적이라는 의미는 초현실주의 작가인 바타이유(Georges Bataille)부터 비롯된다. 불가능성과 금기를 작동시키는 것과 이성과 질서로 환원시킬 수 없는 것 또는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는데서 오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작업의 의미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는 거대한 사회적 통념을 저항하듯 미시적인 수행을 지속시키는 것과 같은데 특히 그가 추구하는 초현실주의와 비정형적인 시도가 마음과 관계된다는 것으로 작업에 드러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은 크기로 그리는 드로잉이나 명제가 그것으로 「이어진」, 「붙잡아두는」, 「연결된」, 「부서진」 등 드로잉에 붙여 미시적인 텍스트들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말하는 마음의 소멸과 생성을 미시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로 거대 통념에 저항하는 창작자의 분열적 행위이다. 한민경은 그 순간 스쳐가는 예기치 못한 '어떤 형상'을 산책과 표류와 배회하는 시간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것이다. 장 프랑소와 리오타르(J. F. Lyotard)에 의하면 어떤 '이미지'가 밖의 지시대상을 상정하는데 반해 '형상'은 사물과 동등한 존재론적 가치를 획득한 자족적인 상을 말한다. 한민경이 우연히 주운 사물/사태, 기념적인 미시적인 드로잉은 미래의 작품 전개 과정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또 우연적인 만남들 즉 비자발적 능력에서 촉발된 형상은 새로운 감각의 폭발적인 확장으로 연계되어 고정된 의미들을 가로지르게 될 것이다.

한민경_마음 모양 드로잉_종이에 연필_6.7×3cm×99_2022

후기주의자 질 들뢰즈에 의하면 자발적 능력은 '우리가 사물 속에 집어넣은 것만 사물로부터 끄집어내는 능력'으로 이때 발견되는 것은 발견하고자 의도했던 것뿐이며 그것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이어서 새로운 것이 없다. 이에 대하여 비자발적인 능력은 아무것도 보지도 지각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자처럼 사소하게 던져진 기호를 유일한 단서로 삼아 온몸을 던져 해독하는 자, 스파이, 미친 사람, 질투에 빠진 연인이 지니는 거미와 같은 초감각적 능력이다. 이 비자발적인 사유를 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잠재적인potentiality 능력이 개시될 것이고 한민경은'기관 없는 신체'의 비자발적인 작가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 김복수

한민경_마음 모양 드로잉_종이에 연필_6.7×3cm×99_2022_부분

분명히 마음은 여기에 있는데 도통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나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모양을 시각화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출발한다. 스스로의 처지나 감정, 바람, 소망과 같은 것들을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진행한다. 주로 버려지고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며,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물의 형태, 질감 등에서 나를 닮은 모양을 발견한다. 전시된 작업은 입주 기간 동안 홍성의 원도심에서 직접 보고 만난 마음의 모양을 수집한 것이다. ● 홍성의 원도심을 걸으며 빈 터, 폐가, 버려진 장소, 집의 죽음, 사물의 죽음, 도시의 죽음을 목격했다. 집-도시-장소는 계속해서 세워지기 위해서 부서지고, 나뒹굴고 마치 없었던 일처럼 삭제되며, 끊임없이 생산과 폐기를 반복한다. 내가 주운 사물 중 대다수는 도시의 잔해, 부산물이다. 부서지거나 훼손된 것들, 낡은 것들, 쓸모를 잃은 것, 탈락된 것, 버려진 것들이다. 이는 전체가 아닌 어떤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일부이며, 파편이다.

한민경_마음 모양 드로잉_종이에 연필_6.4×4.3cm×19_2022

이번 작업에서 행위ㅡ'걷기'와 '줍기'ㅡ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걷기'의 계기는 사적인 경험에서 기인한다. 서울에서 오랜 시간 거주하다 부모님께서 강원도로 귀촌하시면서, 독립하여 서울(중심부)에 머무를 것인지 낯선 지역인 강원도(주변부)로 옮겨갈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결국 한동안 서울과 강원도를 떠다니며 어디에서도 뿌리내리지 못했다. 몸 둘 곳이 없으니 마음도 함께 떠다녔다. 장소의 부재는 나에게 불안을 가져다주었고, '걷기'ㅡ산책하기, 배회하기, 표류하기ㅡ는 이러한 불안을 달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걸음을 옮기는 행위는 장소 없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목적이 없다는 점에서 쓸모의 세계로부터 잠시 비껴 나게 한다. '줍기'는 신체와 사물이 맞닿는 것이며, 이는 대상과 몸을 접촉-접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와 사물은 연결되고, 이음매를 만든다.

한민경_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展_이응노의 집_2022

집-장소가 그러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크고 작은 흠집이 나고, 일부가 무너지거나 죽는다. 나의 작업은 무너지고 흠집 난 마음을 복구하려는 행위이며, 회복의 몸짓이다. 이러한 몸짓으로 수집한 마음의 모양들은 행위의 증거로서 전시장에 진열되며, 이때 마음들은 물질로 다시 살게 된다. ● 아니 에르노는 인터뷰 「진정한 장소」(2019)에서 자신의 책이 개인적인 것이 되기를 절대 원한 적이 없으며, 본인이 포착하고 싶었던 것은 경험의 특수성이 아닌, 그것의 형언할 수 없는 보편성이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작업이 '나'라는 개인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닌 어떤 보편에 가닿는 것이기를 바란다. 버려진 것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 소외된 것들, 주변으로 밀려난 것들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한민경

Vol.20220712b | 한민경展 / HANMINKYUNG / 韓旻璟 / installation.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