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Light

박현주展 / PARKHYUNJOO / 朴昡姝 / painting.installation   2022_0714 ▶ 2022_0806 / 일,공휴일 휴관

박현주_into Light 17_캔버스에 안료_162.2×130.3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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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홈페이지_www.parkhyunjoo.com

초대일시 / 2022_0714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예화랑 GALLERY YEH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73 Tel. +82.(0)2.542.5543 www.galleryyeh.com

박현주의 회화 - 빛의 질감이 열어놓은 신성, 영성, 그러므로 어쩌면 인성 ● 회광반조,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 그러므로 언어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마음속 영성을 직시하는 것. ● 반 입체 형식의 오브제 작업이 빛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평면 캔버스 작업은 시간의 흔적들이 쌓여가면서 만들어지는 빛이라 할 수 있다...여기서 빛은 절대적인 존재를, 그리고 색은 물질계의 삼라만상을 상징한다...그리고 마침내 화면 속에서 빛을 좇아가는 작업이 결국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작가 노트)

박현주_into Light 12_캔버스에 안료_162.2×130.3cm_2022

태초에 신이 빛을 창조했다. 그러므로 빛이 세상에 가장 먼저 있었다. 그런 만큼 빛은 이후에 올 것들, 이를테면 생명의 씨앗을 상징하고, 존재의 원형을 상징하고, 만물의 근원을 상징한다. 신을 상징하고, 말씀을 상징하고, 로고스를 상징한다. 숨어있으면서 편재하는 신(루시앙 골드만)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처럼 부재하면서 존재하는, 부재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신을 어떻게 아는가. 바로 이처럼 신을 알고 표현하는 방법이 타고난 도상학자이며 상징주의자이며 표상 제조공인, 그러므로 어쩌면 신의 사제들인 화가에게 과제로 주어진다. 그리고 화가들은 빛으로 화한 신을 표현하기 위해 후광(님부스)을 발명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발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중세 이콘화를 통해서, 그리고 천창으로 비치는 장엄하고 부드러운 빛의 질감을 통해서 사람들은 신의 임재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박현주_into Light 19_캔버스에 안료_162.2×130.3cm_2022

신의 시대가 가고 인간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그러므로 르네상스 이후 빛은 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을 표현하기 위한, 엄밀하게는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온 신, 그러므로 인격의 일부로서의 신성을 표현하고 암시하기 위한 매개체로 주어진다. 특히 바로크미술에서 그런데, 마치 자기 내면으로부터 은근하고 성스러운 빛의 기운이 발하는 것 같은 조르주 드 라투르와 렘브란트, 그리고 빛의 도입으로 극적 긴장감과 함께 마치 파토스의 물화 된 형식을 보는 것 같은 카라바치오의 경우가 그렇다. 그리고 근대 이후 계몽주의와 자연과학의 시대에 빛은 색의 문제로 넘어가는데, 빛과 색의 광학적 상관성에 처음으로 눈뜬 인상파 화가들이 그렇다. 실제로 인상파 화가들은 색을 찾아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 최초의 화가들 그러므로 외광파 화가로 불리기도 한다.

박현주_into Light 24_캔버스에 안료_116.8×91cm_2022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좋을, 그러므로 재현의 시대 이후 추상의 시대에 그 바통을 색면화파 화가들이 이어받는다. 특히 클레멘테 그린버그와 헤롤드 로젠버그에 의해 지지되는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이 그렇다. 각 그린버그로부터 평면성(모더니즘 패러다임에서 회화가 시작되는 근원 그러므로 회화의 그라운드로 보는)을 그리고 로젠버그로부터 숭고의 감정(초월적 존재 감정 그러므로 어쩌면 다시 내면으로 들어온 신성)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정식화한 것인데, 그 유산이 최근 물질주의 이후 그 반대급부로 주목받고 있는 영성주의와 통하고, 크게는 박현주의 작업과도 통한다. ● 이미 지나쳐온 줄 알았던 신성을 새삼 되불러 온 것이란 점에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그동안 잊힌 줄 알았던 신성에 다시금 주목하고 각성하는 계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인간의 한 본성으로서의 신과 신성에 대해서는 인식론적 문제라기보다는 존재론적 문제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여기에 재현으로부터 추상으로, 그동안 달라진 문법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추상 자체가 오히려 부재하면서 존재하는, 부재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신을 표상하는 전통적인 기획과 방법에 부합하는 면이 있고, 이로써 추상을 통한 현대미술에서 그동안 잠자던 신이 다시 깨어났다고, 그리고 그렇게 신이, 그리고 신성이 진정한 자기표현을 얻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박현주_into Light 31_캔버스에 안료_116.8×91cm_2022

그렇게 작가는 빛을 그리고 색을 그린다. 그러므로 빛과 색은 작가에게 소재이면서 어느 정도 그 자체 주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빛과 색을 주제로 한 작가의 작업은 크게 입체 조형 작업과 평면 타블로 작업으로 나뉜다. 이처럼 드러나 보이는 형식은 다르지만, 정작 이를 통해 추구하는 의미 내용은 상통한다고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형식적 특성상 입체 조형 작업이 형식논리가 강하다면, 평면작업은 아무래도 그림 자체에 대한 주목도로 인해 상대적으로 의미 내용이 강조되는 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 먼저 입체 작업을 보면, 주지하다시피 작가의 작업은 벽에 걸린다. 벽에 걸리고, 벽 위로 돌출된다. 일반적인 정도를 넘어서는 상당한 두께를 가진 정방형과 장방형의 변형 틀을 만들고, 그 표면에 대개는 단색조의 색채를 올린다. 그리고 모든 측면, 이를테면 화면의 위아래 부분과 좌우 측면에 금박을 입힌다. 여기서 회화의 전통적 문법인 정면성의 법칙이 소환된다. 우리는 거의 저절로 혹은 반자동으로 그림 앞에 선다. 그림을 정면에서 볼 버릇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외관상 작가가 봐줬으면 하는 부분은 색채가 올려진 정면 부분이고, 그러므로 금박 처리한 측면 부분은 그저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편이다. 혹은 그렇게 보이도록 조심스레 계획된 부분이 있다. ● 그렇게 색이 정면으로 보이고, 빛은 우연히 눈에 들어온다. 간접적으로 보인다고 해야 할까. 간접적으로 바로 이 부분에 빛의 질감에 대한, 빛의 아우라에 대한, 빛의 울림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감각이 숨어있다. 빛의 진원지 그러므로 광원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고, 빛을 받은 물체가 그 빛을 되비치는 식으로 제시할 때 빛의 울림이, 빛의 아우라가 오히려 증폭된다고 본 것이다.

박현주_into Light 05_캔버스에 안료_90.9×72.7cm_2021

그렇게 정작 색도 없고 금박도 없는 벽면에, 조형과 조형 사이의 허공에 빛의 질감이 생긴다. 그렇게 조형이 만들어준 조형, 조형에서 비롯된 조형, 조형으로 인해 비로소 그리고 겨우 존재하는 조형으로 치자면 그 전형적인 경우가 그림자다. 그렇게 작가의 입체 조형 작업에선 색면이, 빛의 질감이, 그리고 여기에 그림자가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상호 간섭하는 형국을 보여준다. 금박과 함께 때로 금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금박에 비해 더 부드럽고 은근한 빛의 질감을 얻을 수가 있다. ● 이 일련의 입체 조형 작업에서 결정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빛의 질감이 연출해 보이는 특유의 분위기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우연히 본 빛의 질감에서, 간접적인 빛의 질감에서, 되비치는 빛의 질감에서 유래한다. 그렇게 간접적인 빛, 되비치는 빛, 그리고 우연한 빛의 질감이 신의 알레고리 같다. 빛으로 화한 신의 알레고리 같고, 그럼에도 직면할 수 없는 신(신을 직면하면 눈이 멀거나 몸이 굳는다)의 알레고리 같고, 숨어있으면서 편재하는 신의 알레고리 같다. 그러므로 인간 내면의 신성을 각성하고 영성을 일깨우는 빛의 성소 같다.

박현주_into Light 04_캔버스에 안료_90.9×72.7cm_2021

그리고 여기에 일련의 타블로 작업이 있다. 입체 조형 작업에 비해 더 내면적이고, 입체와는 다르게 내면적이다. 입체도 그렇지만 특히 타블로 작업에서 작가 회화만의 특장점이랄 수 있는 전통적인 템페라 기법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변용되는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생 아사 천에 토끼 아교로 초벌을 한 연후에, 그 위에 호분과 티타늄화이트 그리고 중탕 가열한 토끼 아교 용액을 섞어 만든 젯소로 바탕 작업을 하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회화라고 부를 만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과정에 철저한 경우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그 위에 금박을 붙이기도 하고 금분을 칠하기도 한다.

박현주_into Light 28_캔버스에 안료_90.9×72.7cm_2022

그리고 최종적으로 색채를 올리는데, 마치 색 밑에서 부드러운 빛의 질감이 배어 나오는 것 같은, 색 자체가 진즉에 자기의 한 본성으로서 머금고 있던 빛의 잠재적인 성질이 비로소 그 표현을 얻고 있는 것 같은, 색 자체가 은근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은, 그리고 그렇게 빛과 색이 하나인 것 같은 미묘하고 섬세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또 다른 분위기가 가세하는데, 가만히 보면 그림 속에 크고 작은 비정형의 얼룩으로 가득하다. 아마도 금분을 칠할 때 더러 흩뿌리기도 했을 것이다. 아니면 때로 채색을 올리는 과정에서 흩뿌리거나. 그리고 그렇게 마치 타시즘에서와도 같은 비정형의 얼룩이 생성되었을 것이고, 그 위에 채색을 올리면서 그 얼룩이 더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고, 때로 화면 속으로 침잠하는 것도 같은 은근하고 부드러운 빛의 질감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박현주_light Between 28_캔버스에 안료, 금박(22k)_116.8×91cm_2022

그렇게 크고 작은 비정형의 얼룩들로 가득한 화면 앞에 서면, 마치 화면 속으로 빨려들 것만 같다. 부드럽고 은근한 빛의 반투명한 깊이 속으로 빨려들 것도 같고,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막막한 우주 속을 떠도는 것도 같고,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도 같고, 마치 신기루와도 같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질감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같다. 기억마저 아득한 상처들의 풍경을 보는 것도 같고, 언젠가 설핏 본, 형상은 온데간데없고 다만 그 질감과 색감의 분위기만 남은, 고려 불화의 장엄을 보는 것도 같다. ● 실제로는 멀리 있는 것인데 마치 눈앞에 있는 것 같은, 실제로는 아득한 것인데 마치 손에 잡힐 것 같은 감정을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라고 불렀다. 그게 뭔가. 그것은 혹 신일지도 모르고, 인간이 자기의 한 본성으로서 간직하고 있는 신성일지도 모르고, 인간 내면의 잊힌 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벤야민은 그 아우라가 중세 이콘화 속에 들어있다고 했다. 그렇게 빛의 질감, 빛의 아우라로 형용 되는 작가의 그림은 어쩌면 예술과 종교가, 인성과 신성이 그 경계를 허무는 어떤 지경을 열어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고충환

박현주_light Between 31_캔버스에 안료, 금박(22k)_90.9×72.7cm_2022

몇 해 전부터 작은 텃밭 가꾸는 일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겨우내 잠들었던 땅을 뒤집어서 밭갈이를 하고, 어느 정도 밭갈이가 끝나면 씨앗을 뿌리고, 정성껏 물을 준다. 파릇파릇한 싹들이 얼굴을 내미는 순간은, 자연의 경이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텃밭 가꾸는 일이 자연스럽게 작업 과정과 닮아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땅, 토양, 흙을 의미하는 "ground"라는 단어는 회화 재료학 용어로 그림의 바탕지를 의미 한다. 물과 양분, 그리고 햇빛을 흡수하여 생명체를 움트게 하는 자연의 섭리가 그렇듯이, 나는 백색 ground 위에 씨를 뿌리고, 가꾸면서, 열매가 맺히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그러나, 이때 섣부른 혹은 지나친 나의 욕망이 개입되면, 예민한 대지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만다. 바탕지 위로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쌓여가는 숨결과 흔적들을 지켜보게 된다.

박현주_light Between 32_캔버스에 안료_90.9×72.7cm_2022

평면에서 입체로 다시 평면으로 반복하는 작업의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반 입체 형식의 회화적 오브제 작업들이 빛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평면 캔버스 작업들은 시간의 흔적들이 쌓여가면서 만들어지는 빛이라 할 수 있다. ● 회광 반조 (廻光 返照)라는 불교 용어가 있다.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이다. 불교의 선종에서 언어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마음속의 영성을 직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온전한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매 순간 매일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와 삶을 돌아 비추어보라는 가르침에서 작업 과정은 나 자신을 바탕지 위에 올려다 놓게 되는 시간이다. (작업노트 中, 2022.06) ■ 박현주

박현주_LM square01_나무, 안료_23×23×8.5cm_2022 박현주_LM square03_나무, 안료_23×23×8.5cm_2022 박현주_LM square07_나무, 안료_35×35×8.5cm_2022

Painting of Hyunjoo Park - Divinity, spirituality and thus perhaps humanity, opened by the texture of light. ● 回光返照 – to illuminate again by reversing the light; and therefore to look directly into one's inner spirituality without relying on language or sign. ● "If I am to say that the three-dimensional works of objet art were a narrative of light and space, the plane canvas works are light as a result of temporal flow (...) Light here signifies an absolute entity, and color signifies the entirety of what composes the material world (...) And finally I have realized that to pursue light in the screen is a journey towards the discovery of myself." (Artist's Note, June 2022) ● At dawn of the world, God created light. Hence light preceded every existence in the world. It is, therefore, natural that light symbolizes what would come next, say, the seed of life, the archetype of existence and the origin of everything. It symbolizes God, His words and logos. It symbolizes 'the hidden God' that is ubiquitous (Lucien Goldmann). But how exactly do we come to understand God that is absent and existent, and He who exists only through absence? Such a question becomes the main assignment of the artists who are natural iconographers who know God and are endowed with His expression; are symbolists and the producers of representations; who, therefore, should be regarded as the priests of God. The artists have invented nimbus (the light that is drawn behind saints) to better convey the holiness of God, and have invented stained glass. And through such medieval icon painting, and through the solemn yet soft texture of the light through the sky window people could experience the presence of God. ● But when the age of God gave way to the age of human, as in post-Renaissance, light too gained a new status as a medium of expressing humans (strictly speaking, to express the divinity that has entered human existence and to imply God's presence as part of humanity). This is particularly so in Baroque art, with the exemplars of Georges de La Tour and Rembrandt whose paintings depict the subtle and holy light emanating from the inner part of self, and in case of Caravaggio whose works illustrate a dramatic tension and mimic the reified form of painting and pathos by the inclusion of light. ● And ever since the world saw the Enlightenment and the advancement of natural sciences, light became the problem of color, which can be witnessed in the works of impressionists who were the first to recognize the optic relationship between light and color. In fact, the impressionists are the first artists to have walked into the light in search of color, and that is where they earned the name of "plein air painters". ● And the Art Field painters follow in the trail of light in the age of abstraction that followed the age of representation, which can perhaps be regarded as the continuum that persists today. Mark Rothko and Barnett Newman, who are supported by the critics Clement Greenberg and Harold Rosenberg, fall under such category in particular. Rothko and Newman have, respectively, inherited the 'planeness' (the origin where painting begins in the modernist paradigm, as a ground of painting, so to speak) by Greenberg and the emotion of nobility (the emotion of a transcendental entity, therefore perhaps denoting the divinity that returned to inner parts of humanity) by Rosenberg and such legacy has some certain connection to Spiritualist Art which has recently risen as an antagonistic movement against materialism, and in a bigger scale, corresponds to Hyunjoo Park's works. ● It is viable to interpret her works as untimely, as the works have re-conjured divinity that we regard as obsolete, but it is more valid, it seems, to view her works as the cornerstone to revisit divinity that has once thought to be forgotten (it is more valid to look at God and divinity as part of human instinct ontologically rather than epistemologically). And here lies the need to attend to the change in the artistic grammar, from representation to abstraction. Abstraction itself, so to speak, corresponds to the traditional methodology of expressing God that is absent but existent, and who exists only through absence. And therefore perhaps we could safely argue that the sleeping God in contemporary art has awaken through abstraction, and in so doing God and the divinity are achieving their true self-expression. ● And so the artist draws light and color. Light and color, then, are not only objects for the artist but the theme itself. The artist's work that thematizes light and color thereby bifurcates to the three-dimensional plastic art and plane tableau art. We should understand the signification pursued stays intact despite the variegated formats. Perhaps the only difference is that, due to formal characteristics, three-dimensional plastic art displays and relies on formal logic more heavily whereas plane tableau art helps the audience to focus more on the meaning of the art due to the attention given to the painting itself. ● Examining the three-dimensional plastic art first, as per her request, the artist's works hang on the wall. They are hung and become a dent on the wall. The artist forges a square and/or rectangular alternate frame with abnormal thickness and paints the surface with a monotone color. And all sides, for example, the top and bottom part of the frame of the screen and the left and right part, are gold foiled. Here we see the frontality principle in play, which is the traditional grammar of painting. We stand in front of the painting almost automatically due to our habitual use of perspective. The artist seems to have meticulously planned the use of our habit: the part that the artist wants us to see is the frontal part with the color, and the gold foiled sides are merely supplementary. ● Hence the color is viewed frontally, and light enters the vision accidentally. We could say that the light is seen indirectly. It is precisely with this indirectness where the artist's outstanding sensibility towards the texture, the aura and the reverberation of light resides. Instead of directly visualizing the light source, the artist employs indirectness; in so doing, the reflection of light from the object that received the light will amplify the reverberation and aura of light. ● Such is how the texture of light is manifested in the void between plastic art and plastic art, and on an empty wall with no color and no gold foil. The exemplar of the phenomenon of plastic art that the other plastic art produces, the plastic art that originated from another plastic art, that which barely exists only because of another plastic art's presence is shadow. We find an intertwined affair of the colored field, the texture of light and the shadow in Hyunjoo Park's artworks. The artist sometimes employs gold powder along with the gold foil, which gives a softer and subtler texture of light compared to the foil. ● The unique ambience produced by the texture of light is the most decisive appeal from the series of three-dimensional plastic art process. And the ambience originates from the texture of light seen accidentally, from the indirect texture of light, and from the texture of light that reflects. Such types of textures of lights, indirect, reflective and accidental, seem like an allegory of God. They seem like an allegory of God that illuminates through light, God that despite such illumination cannot be directly seen (if you see God directly you either go blind or get petrified), and God that is hidden but ubiquitous. In a way, therefore, they feel like a sanctuary of light that enlightens the spirituality and awakens the inner divinity. ● It is here where a series of tableau works lie. The works are more inward than the three-dimensional plastic art work, and the tableau is more deeply internal than the three-dimension. We can see in her tableau works where the artist's traditional tempera technique (her most impressive strength) really starts to fortify and edify its presence. After laminating the linen with rabbit glue, the artist works on the Ba-tang with gesso made from a mixture of whitener, titanium white and rabbit glue solution that has been double boiled, and the completeness of this sole process qualifies to be called art already. That is how much the artist prioritizes the process. She then gold foils the Ba-tang or sprays gold powder on it. ● And in the final step she colors the canvas and the subtle yet sensitive ambience where light and color merges is achieved through the light where its soft texture permeates from underneath the color, where the potential property of light that the color has been inherently endowed with is finally finding its own language, and where color itself seems to emanate light of its own. And another prevailing ambience overlaps on the forementioned ambience; upon close examination we see the drawing is full of atypical stains of all sizes. Perhaps the artist spread the gold powder at will, or spread the paint as she pleased. And the atypical stains probably came to existence through such an act, like tachisme; and by painting on top of the stain the stain sometimes becomes more accentuated, or produces a subtle and soft texture of light as if the stain sank down beneath the surface of the canvas. ● Standing in front of the canvas full of various, atypical stains, we feel as though we are about to get pulled into the screen. We feel as though we will get sucked into the opaque depth of the soft and subtle light, and as though we are meandering around the seemingly endless and interminable universe, and as if we are looking into the fathomless depth of the abyss, and as though we are reminded of the déjà vu and involuntary memory that confuses us with its perceived familiarity. It feels as though we are glancing over the scene of scars that no memory can hold or looking at the majesty of Koryo Buddhist painting whose form has etiolated, leaving only the texture and the ambience of the color behind. ● Walter Benjamin called the emotion that is distant but feels close, that which is far away but feels palpable as "aura". What is aura? It may be a God, may be a divinity that men possess as part of their instinct, or a forgotten scenery inside us. Benjamin famously said that such an aura resides in medieval icon paintings. The artist's paintings, describable as the texture of light and the aura of light, perhaps open up a possibility of transgressing the boundary between art and religion, and humanity and divinity. ■ Kho Chunghwan

It has been a few years since I have somewhat grown a liking to cultivating a small garden. Tillaging the soil that hibernated throughout the winter, seeding and watering in cycle has become a routine. The magical moment when the green buds surface the soil leaves you in awe at nature's resilience. ● Gardening resembles my artistic process. The word "ground" that means land, soil, and dirt, gains a different meaning of Ba-tang as in material and technique of painting term. As per the laws of nature where water, nutrition and sunlight gives birth to life, I tillage, seed and cultivate on white 'ground' and wait patiently. I must be careful not to betray my overexcitement or desire, because the 'ground' is sensitive and will run away from me. I simply look in tranquility and awe the accumulating breath and trace as the time passes. ● Where am I going to, amidst the repetitive process of work that circles back to plane from objet and to plane again? If I am to say that the three-dimensional works of objet art were a narrative of light and space, the plane canvas works are light as a result of temporal flow. ● There is a Buddhist term 廻光返照. It means to reverse the direction of light and shine backwards. In Dhyāna Buddhism, this utterance commands a reflection on inner spirituality without relying on language. In east Asian everyday life, this term denotes a moment of having clarity just before one passes away. The artistic process has thus far been based on this Buddhist teaching: to reflect on my life and my actions with as much clarity of mind as possible. The process thus becomes a time when I place myself on the 'ground'. (From the artist's note of June 2022) ■ Hyunjoo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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