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고 태연자약

황세준展 / HWANGSEJUN / 黃世畯 / painting   2022_0715 ▶ 2022_0801 / 월요일 휴관

황세준_늦저녁 전선_캔버스에 유채_53×65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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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화동 132번지) Tel. +82.(0)2.738.5511 www.artbit.kr @artbit_gallery

왜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의 평범한 일상을 그토록 안 그렸을까? 가 작업을 하는 내내 달라붙는 생각이었다. 과거의 일상, 윤색된 일상(무슨 k양의 초상등), 특수한 상황의 일상(예를 들어 전쟁 통의 부산, 또는 빈민촌 등)정도가 우리 회화의 일상을 그린 것 전부였다. 물론 박상옥 같은 예외적 작가도 존재하긴 했으나 그 수가 너무 적었다. 삶은 사실 일상이며 예술은 삶에서 나오고 삶을 재구축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 결여를 채우지 않으면 우리 회화는 나아갈 수도 넓어질 수도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탐구의 대 주제는 일상이다. 그런데 일상은 정말 눈앞에 있는,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습관적으로 바라보는 그것 자체일까? 거기에는 어떤 다른 시공간이 겹쳐 있는 것은 아닐까?

황세준_랜드 스케이프_캔버스에 유채_140×140cm_2022

또는 그 습관적이고 관습적인 시야의 일상을 회화를 통해 다르게 보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들은 일상을 주제로 그려지는 그림의 표현과 관계된다. 우리 눈앞에 현전現前하는 우리의 드러난 삶과 그런 삶이 구성 되도록 추동하는, 요구하는, 강제하는 구조들이 있다. 일상을 회화적 주제로 삼아 작업한다는 것은 회화라는 아주 느리고 약한 매체의 평면적 화면에 이 일상의 총체를 구현해 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표현의 방법은 무수하겠으나 당연히 그 모든 방법을 탐색할 수는 없는 것이고, 다만 일상의 회화적 구현이라는 대 주제 아래 그때그때 당면한 현실과 과제를 가장 잘 드러낼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일정한 표현적 제한은 없다. 시간, 혹은 시대의 요구에 응하는 표현을 검토하고 시험해 봐야 한다.

황세준_여름의 철거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21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말을 좋아한다. 그 선언성도 맘에 들고 그것의 원대한 목표도 좋아한다. 단 그것은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어서 단숨에 도달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예술의 역사가 거의 완전히 단절 되다시피 한 나라의 문화 속에서 그것에 도달한다는 것은 사기이거나 순교이거나 일거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나 댐은 물 위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것이 아니고 수면 아래 수많은 돌과 구조물이 토대가 되어야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통한 삶의 고양은, 일상이라는 지루한 삶을 향한 예술의 (일종의)헌신이라는 토대가 있어야 실재적으로 꿈꿔볼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다. 삶이 더 넓은, 더 깊은, 혹은 더 높은 무언가로의 지향이라면 예술이야말로 당대의 삶을 정직하게 비추고, 그 비추인 상을 통해 자신을 재구축하는 작업이라는 것. 대체 당대의 삶의 정직함은 무엇이고,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구조, 그것을 망치는 구조는 무엇인가를 총체적으로 화면에 드러내는 것이 회화의 가치와 관심일 것이다.

황세준_지하철 풍경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22

도시는 특히 서울 같은 메가시티는 구조이고, 그 구조는 현 시대를, 그러니까 시간대를 공간적으로 구성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당대-21세기라는 이 혼란스럽고 위태위태한 동시대의 공간적 약도인 서울을 '회화'라는 평면에 어떻게 축약해서 보여줄 수 있을까, 그 회화의 구조는 무엇일까를 보다 더 깊이 탐색해야 한다.

황세준_콘크리트 블러드_캔버스 천에 유채_113×220cm_2021~2

이를테면 (『뉴욕타임스』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새로운 세기에 접어든지 20년도 안 되어 2017년에 쓴 기고문에서 대담하게 선언했다. "이번 세기는 고장 났다".「스케일이 전복된 세계, 에서 재인용」)고 했다고 한다. 뉴욕과 동시대 유사 공간인 서울의 세기도 고장 났다, 고 할 수 있으며 그렇다 고도 생각한다. 이 고장, 이랄지 난장亂場, 이랄지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덧붙여 회화는 그것을 할 수 있을까, 라는 회화 자체에 대한 전면적 방법론적 회의가 필요하다.

황세준_천천히 펑펑_캔버스에 유채_97×80cm_2006/2021

『다정하고 태연자약』展 은 우리시대의 공간적 지표인 메가시티 서울의 분열되면서 위계적인, 또한 위계적이고 조현증적 모습을 회화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시도, 라고 할 수도 있겠다. ■ 황세준

Vol.20220715e | 황세준展 / HWANGSEJUN / 黃世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