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개의 벡터 33 Vectors

최익진展 / CHOIEEKJIN / 崔益賑 / installation   2022_0714 ▶ 2022_0724 / 월요일 휴관

최익진_항해_패널에 먹과 염료, 고무 바_가변설치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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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진 인스타그램_www.instagram.com/eekjin.choi_

프리오픈 / 2022_0714_목요일_05:00pm

디피 / 연광헌(김보근 류형진 서재현 이대호 최익진) 촬영 / 포토룩 조영하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B1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공간을 뚫는 힘 ● 최익진의 작업은 감각적이다. 거대한 스펙터클이 눈 앞에 펼쳐지면서 무언가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듯하고, 나를 찌르려는 듯 다가오다가도 이내 쿰쿰한 냄새와 여운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먹, 염료, 목탄, 석회, 자연석, 무늬 목편, 고무판, 거울 조각 등과 같은 이질적인 재료들이 서로 뒤엉키고 서로를 밀쳐내는 그의 예술은 이렇게 우리의 감각을 곤두서게 한다. 관객의 심리적 안전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의 힘찬 '공간 속의 드로잉'은 우리의 공간을 점유하고, 그곳의 원래 성질을 재빠르게 훔쳐서 달아날 뿐이다. ● 엄밀히 말하자면, 그가 그리는 '선(線)'은 공간의 균열이다. 유리의 균열이 유리의 인식론적 성질을 바꾸듯이 그의 거칠고 날카로운 균열은 일상적 공간의 성질을 바꾼다. 그의 작업 앞에서 우리는 '느낌'의 대가로 현실을 도둑맞는 것이다. 감각적인 것을 이용해서 오히려 우리의 현실감각을 무력화하는 최익진의 조형능력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평면작업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보여주는 평면의 균열도 회화의 고정된 이차원성을 떠나 공간성을 획득한다. 균열들 중간마다 자리 잡은 흑경(黑鏡)도 우리의 세계를 반사하는 동시에 평면에 구멍처럼 비워진 공간으로 보이면서 우리를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인도한다. 공간주의자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가 이차원성과 삼차원성의 공존을 이룩했다면, 최익진은 우리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하며 전혀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연다.

최익진_뒤엉킨 여기 308_ 코르크에 무늬목 먹과 염료, 검은색 도장 유리_103×84cm_2018
최익진_당신은 어디에 1_패널에 한지 먹과 염료, 홀로그램 필름, 자개, 스팽글 체인, 무명실, 자연석_290.3×218.2×1012cm_2022

주름의 항해(航海) ● 최익진의 실재관은 '차이'에 대한 긍정으로부터 시작한다.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와 들뢰즈(Gilles Deleuze)도 '차이'를 긍정적인 것으로 다루었다. 들뢰즈는 미분과 극한의 철학자인 라이프니츠의 논의를 심화하여 주름이 가지는 존재론적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데,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1988)』에서 모나드(단자, Monad) 개념을 기초로 주름론을 펼치며 바로크 예술을 설명한다. '단순하다'는 원뜻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나드는 더는 나눌 수 없는 세계의 최소 단위이다. 물질과 다르게 무한히 변형되고 점진할 수 있는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만약 세계의 실체가 원자와 같이 유한한 물질로 구성되었다면, 그 실체는 무한한 분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한한 세계는 구성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실체는 비물질적이어야 한다. 원자론자들(절대적 견고성)과 데카르트(절대적 유체성)의 가정은 세계가 원자 같은 최소 단위로 이뤄져 있다는 생각에 기초했지만, 라이프니츠와 들뢰즈는 '분리될 수 있는' 데카르트의 최소 단위는 관념적 존재에 불과하다고 보고 '모나드'라는 형이상학적 원소를 사물 존재 방식으로 제안한다. 이것은 서로 성질이 다르고, 모양도 없으며 분리도 안 된다. 모나드는 실체를 이루는 점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주름으로 된 단순 실체이다. 모나드에게 잠재력이란 곧 그것에 담긴 주름이다. ● 주름에는 리좀(Rhizome)의 탈중심적 계열과 비선형적으로 증식하는 '정신적 물질들'로 가득하다. 명석·판명(clara et distincta, 데카르트)을 거부하고, 세계 안의 무모한 차이와 다양함을 탐닉하는 최익진의 예술도 이러한 세계이해에서 비롯하였다. 그의 예술은 항상적(恒常的)이고 정합적(整合的)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고 카오스적이다. 바로크의 힘이 차이의 무한한 발생에서 출현하듯이 최익진 예술의 힘도 '하나가 다른 하나 안으로 수렴하는 계열들의 이어짐 또는 계속(들뢰즈)'에서 나온다. 차이의 강도가 심할수록 더 큰 힘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하나가 다른 하나로 '수렴'되는 과정은 더욱 긴장되고 극적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항해, 2022」에서 능동적으로 발생하는 힘도 분열과 고립의 유혹을 뿌리치고, '무한'이라는 '변화의 통일'을 향해 나아간다. ■ 이재걸

최익진_푸른불꽃 어머니_ 패널에 캐슈와 잉크 자개, 유리에 밀러 잉크, 금강사_130.3×97cm_2021
최익진_당신은 어디에 2_패널에 한지 먹과 염료, 홀로그램 필름, 자개, 스팽글 원단, 자연석_290.3×218.2cm_2022
최익진_기원(祈願) 3_한지에 먹과 수비 안료, 자연석_가변설치_2022

이번 전시는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준 네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일종의 진혼제 성격의 작업이다. 이들은 짧게는 3년, 10년, 길게는 34년 전 유명을 달리했다. 이들 네 사람의 개별적인 관계에 대한 주제를 바닥 벽 천장의 기본적인 공간 구조를 (돌) 깔기, (끈) 잇기, (화면) 세우기라는 조형적 구성으로 연결하려 했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반추의 의미를 담은 조형적 시도를 통해서 그들의 존재가 잊히지 않고 영원히 되살아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 미술이라는 행위 역시 대상에서 발견한 여러 감정과 해석을 개인의 고유한 조형적 체계로 이해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인간이 현세에서의 삶을 마치면 혼(魂)과 백(魄)이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시신)은 땅속에 내려간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이러한 의미를 혼승백강(魂昇魄降)이라 불렀다. 하늘과 땅의 연결고리인 영매(신목, 세계수)는 샤머니즘에서 출발하여 여러 종교와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 주역에서는 이것을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리로 설명한다. 하늘. 땅. 인간의 생성 변화 원리를 음양으로 전개시킨 것을 줄여서 간지(干支)라 한다. 시간과 공간을 만남이 우주 아닌가?(上下四方曰宇 古今往來曰宙), 이렇게 우주의 여러 물질은 모두 음양의 변화로 생멸하고, 구체적으로는 사상(四象)으로 묘사한다. 이 사상에 토(土) 자리를 합하여 오행이라 하는데, 오행은 다섯 개의 기운이 오고 간다는 말로 우주의 운행 원리는 다섯 가지의 기본 요소인 오행을 하늘에서는 오운(五運)이라 하고, 땅에서는 육기(六氣)라 한다. 이 오운육기가 더욱 분화된 것이 십천간 십이지간이다. 십천간과 십이지간의 구조에서 그 사이를 잇는 매개로의 인간은 10과 12를 연결하는 숫자인 11로 말해 볼 수 있고 그래서 그 합인 33이 하늘. 인간. 땅이 서로에게 끊임없이 수렴하는 벡터의 구조로 맞닿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작업의 목표였다. ■ 최익진

The Energy Piercing a Space ● Choi, Eek-Jin's works are sensuous. When a massive spectacle is spread in front of my eyes, it seems like hearing a buzzing sound. Coming up to me just like poking me, it shortly disappears after leaving mold-like smells and afterglow. In his art, some different materials like ink, dye, charcoal, lime, natural stone, patterned wood, rubber plate, and pieces of mirror are mingled together and also push each other, which frays our senses. The viewers' psychological safety is not considered at all. His energetic 'drawing in the space' occupies our space and then runs away after quickly stealing the original nature of it. ● Strictly speaking, the 'line' drawn by him is the crack in the space. Just as the crack in a glass changes the epistemological nature of glass, his rough and sharp crack changes the nature of daily space. In front of his works, we have the reality stolen in return for 'sense'. Choi, Eek-Jin's formative ability to incapacitate our sense of reality by using something sensuous is fully demonstrated this time. It is also applied to his plane works. The cracks on the plane acquires the spatiality after getting out of the fixed two dimensionality of paintings. The black mirrors in the middle of cracks not only reflect our world, but also lead us to the world of other dimensions as they look like an empty space just like a hole in a plane. As a spatialist, Lucio Fontana( 1899-1968) achieved the coexistence of two dimensionality and three dimensionality, Choi, Eek-Jin opens a space of a totally-new dimension by confusing our senses. ● "The first use of glass in 1996 was my intention to show the 'bare skin of meanings'. My works originated from this intention have been changed as the meaning has been changed a bit for last 20 years."(Choi, Eek-Jin, 2014) ● The artist's 'new dimension' is unstable and nonlinear as the 'bare skin of meanings'. His repeated cracks just like complex folds are the process of growth and enhancement created by 'differences'. A living being is based on the process/principle of continuously creating differences just like the cell division in body. Therefore, the 'actual view' of the artist is the concept based on the epistemological basis asking about the existence.

The Voyage of Folds ● Choi, Eek-Jin's view of existence starts from the acknowledgement of 'difference'. Gottfried Wilhelm Leibniz and Gilles Deleuze also handled 'difference' as something positive. Deepening the discussion by Leibniz, a philosopher of differentiation and limit, Deleuze reminds us of the ontological meaning of folds. Revealing the theory of folds based on the concept of monad in the 『Fold, Leibniz, and Baroque(1988)』, the Baroque art is explained. Just as we can guess from the original meaning of 'simple', the monad is the smallest unit of the world that cannot be divided anymore. Contrary to substances, it creates the difference that could be infinitely transformed to forge ahead. According to Leibniz, if the truth of the world is composed of finite substances like atom, the truth cannot be infinitely divided, so that the infinite world cannot be composed. Thus, the truth should be immaterial. The supposition of atomists(absolute rigidity) and Descartes(absolute fluidity) was based on the thought that the world is composed of the smallest unit just like atom. However, Leibniz and Deleuze think that the 'separable' smallest unit of Descartes is no better than the ideological being, and they suggest the metaphysical element of 'monad' as the method of existence. It has the different nature to each other. It is inseparable with no shape. Monad is not a point composing the truth, but a simple truth composed of innumerable folds. The potential of monad is the fold in it. ● A fold is filled with 'psychological substances' proliferating non-linearly and the decentralized line of Rhizome. Choi, Eek-Jin's art indulging in the diversity and reckless differences in the world after refusing the lucidity/clarity(clara et distincta, Descartes) was also originated from this understanding of the world. His art is not homeostatic and conformable, but accidental and chaotic. Just as the energy of Baroque is originated from the infinite generation of differences, the energy of Choi, Eek-Jin's art is also originated from the continuity or succession(Deleuze) of lines in which 'one is gathered into another one'. When the intensity of difference is severe, a bigger energy is generated, and the process in which one is 'gathered' into another one is more thrilling and dramatic. In the 「Voyage Ⅲ(2018)」 as the representative work of this exhibition, the actively-generating energy moves toward the 'change and unification' of 'infinitude' after repelling the temptation of division and isolation. ■ 이재걸

Vol.20220717b | 최익진展 / CHOIEEKJIN / 崔益賑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