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열된 여행 풍경들 Travel landscapes on display

한윤희展 / HANYOONHEE / 韓允熙 / painting   2022_0719 ▶ 2022_0828 / 월요일 휴관

한윤희_환대의 문턱: 찰나의 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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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희 홈페이지_hanyoonhee.portfoliobox.net                   페이스북_www.facebook.com/yoonhee.han.96 인스타그램_@hanyoonhee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본 전시는 2022 전시공간 활성화 지원사업입니다.

주최 /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주관 / 복합문화지구 누에_한윤희(작가)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국민체육진흥공단 완주군_완주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복합문화지구 누에 OPEN SPACE NU-E 전북 완주군 용진읍 완주로 462-9 누에 아트홀 1,2 전시실 Tel. +82.(0)63.246.3953 nu-e.or.kr @openspace_nue

다시, 이방인 되기를 꿈꾸며 ● 2020년 상반기부터 근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최근 서서히 누그러드는 추세이다. 전 세계 국가들이 하나 둘 씩 방역 규정을 완화하면서 사람들이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되도록 먼저 찾아가지 않고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새로운 미덕으로 여겨졌고 자발적인 여행은 일종의 민폐 행위로 눈흘김 당해 왔다. 그러나 이제 권력의 규제와 타자의 시선에 의해 억눌려왔던 여행 욕구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한윤희_오! 나의 벗 여행자들이여, 여행자란 없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1
한윤희_환대의 문턱: 천사와의 머묾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1

여행이란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낯선 장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낯선 장소에 들어갈 땐 필연적으로 낯익음과 낯섦의 문턱을 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낯선 장소의 주인으로부터 환대를 받을 수도 있고 적대를 당할 수도 있다. 이방인 되기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문턱을 넘는 경험을 하고자 한다. 타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꼭 경험하고 싶어하는 소망의 실현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나와 타자와의 진정한 소통 체험이다.

한윤희_환대의 문턱: 아토포스 Atopo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65.1cm_2021
한윤희_환대의 문턱: 날갯짓을 멈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65.1cm_2021

이번 전시에서 이방인으로서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여행 풍경' 그림들을 선보이는 한윤희 작가는 대학 졸업 이후 지금까지 근 15년간 꾸준히 회화 작업을 해 온 화가이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구상회화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작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불현듯 마주치는 낯섦을 포착하여 그려내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홍익대 회화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대학원 과정 중에 정신분석학과 후기구조주의 담론에 심취하였고 이는 상징계 질서 속에 난입한 실재와의 만남을 시각화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한윤희의 작품은 일견 명쾌하게 그려진 구상회화 같지만 사실 그 표면 아래에는 여러 증상과 징후와 알레고리들이 겹쳐져 존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주요 모티프로 자주 등장하는 에스컬레이터는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모순적 상황에 처한 현대인을 가리키는 알레고리이다. 작가는 이렇게 산책자이자 방랑자로서의 분열적 주체 의식을 자주 드러내왔다.

한윤희_오! 나의 벗 여행자들이여, 여행자란 없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53cm_2021
한윤희_환대의 문턱: 보이지 않는 철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5.5cm_2021

한윤희 작가는 밀레니얼 세대 답게 디지털 이미지를 다루는데 능숙하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이미지를 구하고 그것을 작품 제작의 원료로 삼는데 스스럼이 없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 상당수는 수집한 디지털 이미지들을 파편적으로 펼쳐 중첩시킨 후 회화 표면에서 재매개한 형식을 띠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여행 중에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종종 작품의 모티프로 활용된다. 그러나 과거에 찍은 여행 사진에 작가가 새로운 방점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부터이다.

한윤희_오! 나의 벗 여행자들이여, 여행자란 없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21
한윤희_오! 나의 벗 여행자들이여, 여행자란 없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21

팬데믹 기간 동안 생활 공간 겸 작업 공간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작가는 문득 과거의 여행 사진들을 들춰보다가 사진을 찍던 순간에 체험했던 실재와의 만남을 떠올리게 된다. 몇 년 전의 태국 여행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물놀이를 하던 작가는 어느 순간 자신의 바로 옆에 천사가 있는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작가는 이 경험을 태국이라는 낯선 장소가 자신을 지극히 환대하고 있음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고립된 상황에서 작가는 그 당시 느꼈던 '환대받는 경험'을 떠올렸고 이 경험을 작품화했는데 이것이 2021년 제작한 「환대의 문턱」 연작이다. 이 작품은 관광객들이 물놀이 하고 있는 평화로운 계곡 풍경에 불현듯 천사 조각상이 솟구쳐 오르듯이 나타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휴대폰에 남은 사적인 여행 사진이 주관적 해석과 그리기라는 과정을 통과하여 결국은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귀결된 것인데 그만큼 타자로부터 받는 조건없는 환대는 현실을 뛰어넘어 성스럽기까지 한 체험이라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

한윤희_Kanchanaburi Erawan National Park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0.9cm_2021
한윤희_Pompidou Center Escalato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5.5cm_2019

작가는 2017년에 필자와 함께 런던과 파리를 여행했다. 이 여행을 모티프로 한 작품 11점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여행 당시 전세계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조직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었는데, 특히 유럽은 테러에 대한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던 시기였다. 파리 시내 주요 관광지 주변에 총을 맨 경찰들이 순찰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이방인을 위축시키는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도 한윤희 작가와 필자는 주요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 관광명소를 돌아다니는 여행객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숙소에서 나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건물 입구로 들어갈 때나 출구로 나올 때 자연스럽게 수많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되었는데 이때마다 작가는 사진을 찍어 이동하는 풍경을 이미지로 저장했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을 낯선 장소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회화 작품으로 변환시켰다.

한윤희_Cathédrale Notre-Dame, Derrière la croix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45.5cm_2019
한윤희_London King's Cross Station Escalato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45.5cm_2019

급격하게 기울어지는 선 원근법의 구도 안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는 무표정한 군중의 모습은 극복할 수 없는 나와 타자와의 거리를 상기시킨다. 「개와 늑대의 시간」과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 역 에스컬레이터」에 등장하는 점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은 바로 작가 바로 앞에 서 있었던 필자의 모습이다. 필자의 뒷모습은 필자 자신마저도 낯설게 느껴질 만큼 타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볼 수 없는 내 뒷모습, 내 앞에 서 있는 동료의 무표정한 뒷모습은 낯선 타자로 다가온다. 한편 「여행자로 머무를 권리」에서 에스컬레이터 입구의 소실점을 가리고 서 있는 빨간 머리의 여행객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행자로서의 주체 의식을 가지고 낯선 스펙터클을 내려다 보고 있다.

한윤희_Tokyo Disneyland Parad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45.5cm_2019
한윤희_환대: 에스컬레이터들의 교차로_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45.5cm_2020

팬데믹 이후 한윤희 작가는 과거의 여행 경험을 떠올리면서 '환대'의 개념을 성찰하게 되었다. 그 계기는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인종차별과 각종 적대 행위 사건들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전세계적으로 기후, 안보, 경제적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면서 적대적 분위기가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이방인 되기를 꿈꾸지만 타자로부터 환대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방인이 환대의 문턱을 넘으려면 누군가는 주인으로서 그 문턱을 낮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윤희_Pompidou Center Escalato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53cm_2019
한윤희_With the Portrait of Sigismondo Pandolfo Malatesta 시지스몬도 판돌포 말라테스타의 초상화와 함께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21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가 신의 저주를 받아 부친살해와 근친상간의 죄를 짓고 고국에서 쫓겨나 떠돌다가 콜로노스에 머물기를 청했을 때 조건없이 그를 환대해 주었다. 게다가 그 곳에 묻히고 싶다는 오이디푸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테베 군대와 싸우고 무덤의 장소를 평생 비밀로 간직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타자를 환대하는 것은 그저 손쉽게 자비를 베푸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방어벽을 허물고 자신을 타자에게 내어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한윤희_La Cathédrale Notre-Dam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65.1cm_2021
한윤희_Mori Art Museum Escalato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80.3cm_2020
한윤희_Le Centre Pompidou Escalator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18

전세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이방인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환대 받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옛날 기억에서처럼 다시 이방인이 될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 김정은

Vol.20220719e | 한윤희展 / HANYOONHEE / 韓允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