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a

명성교회 42주년 기념展   2022_0720 ▶ 2022_0813

1부 초대일시 / 2022_0720_수요일_02:30pm 2부 초대일시 / 2022_0730_토요일_07:00am

1부 / bara 기획展 2022_0720 ▶ 2022_0725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2층 제2전시장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2부 / 창립기념 정기展 2022_0730 ▶ 2022_0813

명성교회 Myungsung Church 서울 강동구 구천면로 452 예수살렘성전 B1 로비 Tel. +82.(0)2.440.9000 www.msch.or.kr

bara는 히브리어로 '창조하다'입니다. 명성교회 미술인 선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통하여 이 땅에 그리스도의 문화를 심으며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기독미술이 세상의 예술과 구별되어 아름답고 영화로운 예술의 조성과 함께 교회의 덕을 세우는 예술가들의 모임입니다.

강기호_연탄 불꽃, 연탄 눈물_시아노타입_50×50cm 김계신_어린 감람나무_캔버스에 유채_72.7×90.9cm
강상훈_Dillution of Satisfaction #1,#2_ 캔버스에 프린트, 아크릴채색_80.3×116.8cm×2
곽정희_시간의 무게가 꽃을 피우게 한다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80.3cm 곽정희_Always be happ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00cm
김명래_교회가 보이는 풍경_수채_91×116.8cm 김영숙_밤에도 나는 노래하리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90.9cm

Imago Dei 이마고 데이 ● 이마고 데이(Imago Dei)는 '하나님의 형상'의 라틴어로, 성경에서 첫 인간 아담이 창조될 때에 묘사되었다. 성경은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할 때 자신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지었다고 설명할 뿐 아니라 신이 만물의 존재 논리와 존재 사건이라는 형태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였다고 계속하여 언급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a 참조),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참조)) 창조주는 세계의 피조물을 통하여 자신이 보이도록 '계시'의 길을 연 것이다. 이렇게 신의 계시가 먼저 있었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계시들을 유비적으로 알아 가는 것이 인간의 추사유성(追思惟性)이다. 창조주가 피조물에 담아 놓은 '형상(Image)'은 미학적 수여성이라는 이름의 '신의 계시'이자 만물에게 안겨진 '존재 선물'이다.

김민주_춤추다-얼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2×112.1cm 김민주_정점 그리고 寂_캔버스에 혼합재료_168×160cm 김유영_Whitch apple do you have?_디지털 프린트_130.3×162.2cm
김신영_교회 가는 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 김신영_Togeth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4.6×56.7cm 김재경_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8×116.7cm
김예령_바람결 생명나무~일상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8×80.3cm 김예령_바람결 생명나무~겨자씨의 꿈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97cm 연위봉_바람이 불어오는 곳 a place where the wind blows_ 캔버스에 혼합재료_97×162cm
연위봉_임재 연습_캔버스에 혼합재료_31×152cm 김정숙_에덴동산_한지에 분채, 석채_91×116.8cm 김정숙_고향마을_한지에 분채, 석채_91×116.8cm

에버하드 융엘(Eberhard Jüngel)은 '계시란 그 정의에 있어서 일종의 미학적 사건'이라고 설명하였고, 자끄 마리땡(Jacques Maritain)은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넘어 만물의 존재의 아름다움 속에서 유비적으로 하나님을 감식하기에, 형상들의 아름다움은 창조주를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형상의 미(美)는 항상 자신을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키며, 영혼으로 하여금 피조물 너머 비가시의 세계를 보도록 한다.

에스더(손정은)_그날이 오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 이미라_행복조각 Ⅰ_소프트 파스텔, 유채_116.8×91cm 이미라_행복조각 Ⅱ_소프트 파스텔, 유채, 아크릴채색_116.8×91cm
윤호선_숨은 길 찾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2×65cm 윤호선_숨결_혼합재료_97×130cm
이승은_Song of jo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 이인경_샬롬(평안을 너에게 주노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5×72.5cm 故이태운_추수감사절_캔버스에 유채_130×162cm
이현재_토기장이 하나님_캔버스에 유채_91×72.7cm 이현재_오르골의 합창_캔버스에 유채_91×72.7cm
정인영_Recovery 회복_캔버스에 혼합재료_80.3×100cm 진혜윤_그 안에 거하다_수채_80.3×100cm

그러나 형태와 형식은 그 한계로 인하여, 내용과 본질 전체를 샅샅이 투영하고 대등하게 설명할 수 없다.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창조주로 등치될 수는 없는 이유이다. 보이는 형상이 보이지 않는 본질으로 등치될 수 없는 모순은 인간으로 하여금 언제나 교만과 좌절이라는 극단 사이를 무한 진자 운동하도록 속박하였다. '이마고 데이'가 내포한 이러한 양가성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우리. 인간 본연의 진정한 모습과 진리와 선이라는 신적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역사 한 가운데에 오늘도 서 있는 우리. 계시와 은폐의 줄다리기, 형상과 본질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역사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그 경기를 계속 진행하는 주체가 된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더욱 분명한 사실은 신 또한 이러한 역설 속에서 언제나 자신을 계시하기를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마고 데이(Imago Dei)! 하나님의 형상을 담지한 우리가, 가시적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어렴풋이 가리켜 볼 수 있도록, 다시금 형상들 안에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담아내었다. 이것은 '진정한 인간의 본질과 형태의 아름다움'을 망각하고 '아름다움이라는 우상(idolatry, 형상 숭배)'에 자신을 굴복시킨 개탄할 전복으로 인간의 삶을 오판하는 이 시대를 향하여 던지는 질문이다. ■ bara

Vol.20220720g | bara-명성교회 42주년 기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