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속에서

이영숙展 / LEEYOUNGSOOK / 李英淑 / painting   2022_0722 ▶ 2022_0807 / 월요일 휴관

이영숙_엔트로피 속을 걷다_캔버스에 혼합재료_90.9×72.7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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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광주 드영미술관 De Young Art Museum 광주광역시 동구 성촌길 6 Tel. +82.(0)62.223.6515 deyoungmuseum.co.kr

엔트로피 숲에서 ● 우리는 가끔 꽃의 외형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움을 느낄 때가 있다. 전자가 꽃이라는 '존재자'의 형태를 지각하는 미의 체험이라면, 후자는 꽃이 '존재' 한다는 사실에 놀라는 숭고의 체험이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진리는 꽃이라는 존재자의 모사가 아니라 존재의 현시, 즉 '그것이 도대체 존재한다' 는 사실의 개시에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현대 예술의 주요한 미적 범주는 '미'가 아니며 '숭고'라고 바넷 뉴먼이 단언한 것이 1940년대이다.

이영숙_봄이 온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80.3cm×2_2021
이영숙_긍정에너지_캔버스에 혼합재료_90.9×72.7cm_2021

숭고는 크게 세가지로 분류되는데 창착미학적 관점에서 숭고의 부정적 묘사는 침묵, 비형상, 형태와 색채의 최소환원 등 방법 등이 있다. 작품 미학적 관점에서는 진리의 사건성의 체험인데 즉, 대상이 아니라 일어나는 존재의 체험이다. 이 체험을 뉴먼은 아방가르드의 정신으로 본다. 영향미학의 관점에서는 존재의 강화이다. 혼합감정을 사건성의 체험을 통해 존재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 그러나 리오타르는 "숭고는 예술자체에 있지 않고 예술에 대한 관조에 있다"라고 했다. 즉, 숭고는 작품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는 자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영숙_엔트로피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162.3cm_2021
이영숙_엔트로피 속에서 꿈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16.7cm_2021

이탈리아 작가 아다미의 경우에는 구상을 통해서 비구상적인(묘사할수 없는 것)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숭고는 더 이상 재현이나, 추상이냐 차이가 아니라 현전(presence)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러한 추세에서 나의 작업은 '엔트로피'라는 사건성을 통해 아다미처럼 구상을 통해서 비구상적인 것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영숙_엔트로피 of 엔트로피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106cm_2022
이영숙_엔트로피 of 엔트로피 Ⅰ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8×91.2cm_2022

예술분야에서는 선명하고 질서화된 작품이 의미정보가 크다고 보고 있고, 엔트로피처럼 무질서적인 것은 거의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미적 정보가 큰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작가는 미적정보가 큰 엔트로피적 회화표현 연구를 통해 물질세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도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물질 및 정신세계의 엔트로피(Entropy) 현상을 추상화하고 구체화 하는 것이다.

이영숙_엔트로피 of 엔트로피 Ⅱ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7×91cm_2022
이영숙_엔트로피 of 엔트로피 Ⅲ_캔버스에 혼합재료_91.2×116.8cm_2022

작업 유형은 첫 번째, 네그엔트로피와 엔트로피를 결합해 봄으로써 미적정보과 의미정보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연구하였다. 즉, 미적정보가 큰 무질서적인 것에 약간의 질서도를 가미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비구상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기호적인 것을 가미 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영숙_엔트로피 of 엔트로피 Ⅳ_캔버스에 혼합재료_73×91cm_2022
이영숙_엔트로피 of 엔트로피 Ⅴ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53cm_2022

두 번째는 베이컨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을 배경으로 추상적 표현을 하면서 자연의 모습이 은폐하고 있는 형상들을 열어보기 위해 구상과 비구상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였다. 방법으로는 대상적인 구상에 어우러지는 비구상 형상을 탄생시키고 반복해 나가면서 구상은 자연스럽게 파괴되었다.

이영숙_엔트로피 of 엔트로피 Ⅵ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53cm_2022
이영숙_엔트로피 of 엔트로피 Ⅶ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8×91.2cm_2022

세 번째는 무질서적이고 미적 정보가 많은 엔트로피를 높이기 위하여 대상의 무질서적인 원리의 관찰과 표현을 하였다. 강한 엔트로피는 어디서 느끼는가? 어디서든 수많은 돌들이 흐트러져 있는 곳, 만발한 동백꽃이 더 이상 완벽한 평형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진 곳, 예측하지 못한 소나기,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느낄 수 있다.

이영숙_수국정원_캔버스에 혼합재료_91×73cm_2022
이영숙_동백 엔트로피_캔버스에 혼합재료_60.6×72.7cm_2022
이영숙_해바라기 엔트로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2cm_2022

그것은 바로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삶이 변형되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 시간은 엔트로피적 시간이다. 그 시간은 하고 싶은 것을 즉흥적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엔트로피적이고 무질서적인 시간이 행복한 것은 바로 우리가 엔트로피 상태로 회귀하고픈 원리이다. 따라서 우리는 질서적인 삶 보다는 엔트로피적인 삶이 더 행복하고 아름답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을 통해 작가는 엔트로피적인 것을 작품에 반영하였다.

이영숙_Where am I_캔버스에 혼합재료_90.9×65.1cm_2022
이영숙_숲의 엔트로피_캔버스에 혼합재료_90.9×72.7cm_2022

작업방식으로는 재현을 포기함으로써 재현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드러내게 하는 시도를 하였다.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는 산포적으로 나타났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미적정보가 많은 엔트로피적 자연을 재해석 하고, 환원과 근원에 가까운 엔트로피를 추출하여 추상화 하였다. 마지막으로 색을 던지고 리얼리티를 해방함으로써 그로 인해 또다른 리얼리티를 재창조 하고자 하였다.

이영숙_눈 속의 파티 party in the snow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53cm_2021
이영숙_바람 불어 좋은 날 Good windy day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53cm_2022

재료에 있어서는 '새로움'과 미적 진보를 위하여 아직까지 시도하지 않은 돌과 한지, 모래를 이용하여 재료(Materie)와 처리(Vefahren)도 새롭게 시도하였다. 향후 작업에서는 묘사를 포기함으로써 이세상에 묘사할 수 없는 것의 존재함을 증언하며, 형과 색을 최소로 숭고를 위한 미니멀리즘을 실천해보고자 한다. ● 그러나 너무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한다. 엔트로피는 무지개와 같아서 너무 가까이 가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 이영숙

Vol.20220722e | 이영숙展 / LEEYOUNGSOOK / 李英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