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적 시간

김이훈展 / KIMLEEHOON / 金利勳 / painting   2022_0730 ▶ 2022_0811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1_캔버스에 수채, 아크릴채색_181.8×227.3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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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훈 블로그_blog.naver.com/leehoonlee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5:00pm

세종아트갤러리 SEJONG ART GALLERY 서울 광진구 능동로 209 세종대학교 광개토관 B1 Tel. +82.(0)2.3408.4164 www.sejong.ac.kr

김이훈의 회화 ● 하늘, 노아의 홍수 이전부터 나를 부르러 오는 소리   바람의 풍경(2011). 잃어버린 하늘(2015). 노아의 바다_하늘길을 걷다(2018). 세 개의 시간이 흐르는 반송리 아침(2019). 하늘의 노래(2020). 바람에 서다(2021).   그동안 작가가 전시에 붙인 주제들이다. 그전에도 전시가 있었지만, 작가가 비교적 일관된 주제 의식을 견지하고 있는 경우를 중심으로 추려본 것이다. 순차적인 그리고 별개의 경우로서보다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간혹 타이틀이 다른 전시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그런 만큼 평소 작가의 창작에 대한 이유와 인문학적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주제들이다. 흔히 추상미술에서 보듯 주제와 그림이 별반 상관이 없는 때도 있지만, 작가의 그림(혹은 그림에 대한 태도)에서처럼 의미가 강하고 메시지가 강한 경우에 주제는 그림의 성격을 함축할 수 있고, 그런 만큼 주제 분석이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가 있을 것이다.   ● 먼저, 작가의 그림에는 바람이 분다(바람의 풍경. 바람에 서다). 그림 속에 부는 바람은 세풍에 해당하고, 세파에 해당한다. 그동안 작가가 살아오면서 맞섰을 거센 바람을 상징하고, 드센 파도를 상징한다. 그 바람 앞에 작가가 홀로 서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하늘 아래 내가 제일 귀하다는 자존감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하늘 아래 오직 나밖에 없다는 외로움과 존재론적 고독을 표현한 말일 수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가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미 결정된 세상에 던져진다고 했다(세계 내 존재). 그래서 존재는 태생적으로 고독하다. 그렇게 나는 저 홀로 바람에 맞서면서 서 있다. 여기에는 예술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결의가 느껴지고, 자발적으로 가난한 예술가(혹은 예술가 신화)의 결기가 느껴진다. 그렇게 세상에 맞서는 작가의 태도에도, 작가의 분신인 그림 속에도 바람이 분다.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2_캔버스에 수채, 아크릴채색_181.8×227.3cm_2022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한개의 바람_캔버스에 수채, 아크릴채색_227.3×363.6cm_2022
김이훈_흐르는 것은 흐르지 않는 것들의 명제이다(29)_캔버스에 수채, 아크릴채색_53×45cm_2022

그리고 하늘이 있다(잃어버린 하늘. 노아의 바다_하늘길을 걷다. 하늘의 노래). 작가는 하늘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잃어버린 하늘을 상상으로 그린다. 무슨 말인가. 신께서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창1;7)는 창세 신화에서 보듯 노아의 홍수 이전에 하늘은 지상의 물 그러므로 바다와는 또 다른 물이었다. 각각 하늘 물과 바닷물이 서로 반영하고 반영되는, 그렇게 일체를 이룬 풍경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궁창의 창이 열리면서 갇혀있던 물이 쏟아져 내려 지상에 홍수가 났고, 이로써 세상이 한 차례 격변을 맞게 된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러므로 지금의 하늘은 어쩌면 물이 빠져나간 빈 하늘인 셈이다. 다시, 그러므로 지금의 빈 하늘은 원래 물로 가득했을 하늘, 그러므로 어쩌면 하늘의 하늘, 원형적 하늘을 반영하고 있고, 작가는 그 잃어버린 하늘이며 원형적인 하늘을 되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어떻게 잃어버린 하늘을 되불러올 것인가. 그리고 상실된 하늘을 다시금 소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신화와 문명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칼 융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서는 아득한 기억, 그러므로 어쩌면 존재론적 기억을 집단무의식이라고 했고, 그 집단무의식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상징 그러므로 반복 상징을 원형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하늘은 어쩌면 이런 반복 상징이고 원형일 수 있다. 지금의 하늘이 유래했고, 그리고 여기에 어쩌면 자신마저 유래했을 존재론적 원형일 수 있다. 작가는 바로 이 존재론적 원형을, 그 원형적 풍경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어떻게 그 일은 가능한가. 작가가 그린 하늘이 어떻게 다름 아닌 원형적 하늘이고 풍경임을 알 수가 있는가.  

김이훈_노송의 하늘바라기_캔버스에 수채, 아크릴채색_100×80cm_2021
김이훈_작업실 창문밖으로 보이는 풍경2_캔버스에 수채, 아크릴채색_130×97cm_2021
김이훈_작업실 창문밖으로 보이는 풍경1_캔버스에 수채, 아크릴채색_100×80cm_2021
김이훈_흐르는 것은 흐르지 않는 것들의 명제이다(1)_캔버스에 수채, 아크릴채색_73×60cm_2020

플라톤은 상기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본다. 감각적 실재 자체는 의미가 없지만, 감각적 실재가 관념적 실재를 상기시킬 때 감각적 실재는 의미가 있고 예술의 존재 이유가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관념적 실재를 상기시키지 못하는 예술은 단순한 모방의 차원으로 전락 되고 말며, 그런 만큼 그 존재 이유가 없다. 앞서 지금의 하늘은 하늘의 하늘을, 원형적 하늘을 반영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작가는 어쩌면 지금의 하늘을 매개로 그때의 하늘을 상기시키고, 현실의 하늘을 통해 관념적 하늘을 본다(그리고 보여준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다시, 그러므로 작가의 그림에는 사실은 지금의 하늘과 그때의 하늘이, 현실의 하늘과 관념적 하늘이 하나의 층위로 중첩돼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렇듯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하늘을 통해 자기가 유래하고 존재가 유래했을 원형적 장소, 그러므로 어쩌면 우주적 자궁을 그려놓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서 하늘은 태초의 물(생명의 원소? 영적인 기운? 원초적 에너지?)을 머금은 관념적인(그러므로 어쩌면 이상적인) 공간인 만큼 그 외양이 강이나 바다와도 다르지 않다. 작가가 보기에 강도 물이고 바다도 물이고 하늘도 물이고 존재가 물이다. 거저 물이라기보다는 모든 존재가 영적인 기운에 감싸여 있고, 원초적인 에너지를 매개로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보면 되겠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작가의 고백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즉, 창밖으로 무심히 늘 보던 장면이 무한한 우주 에너지의 결과물로 보이기 시작했고, 붓으로 다시 그 에너지를 모아 놓는 작업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무심한 장면 특히 하늘이 그런데, 감각적 하늘을 통해 어느 날 문득 그 이면의 관념적 하늘이, 우주적 에너지가, 영적 기운이 겹쳐 보였다는 증언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에너지는 항상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작가는 하늘을 매개로, 풍경을 매개로, 사실은 존재를 감싸고 우주를 감싸며 흐르는 에너지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그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움직이는 에너지가 파문을 그리고 파장을 일으키고 파동을 불러온다. 작가의 그림으로 치자면 빛살과 물결이 그렇다. 강이나 바다에 물결이 일 듯 하늘에도 물결이 있는데 빛살이 그렇다. 작가의 그림에는 온통 이런 빛살과 물결로, 우주적 에너지 그러므로 영적 기운이 그리는 파장과 파문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그림 속에서 빛살과 물결이 서로 희롱하면서 하나가 되고, 하늘과 바다가 경계를 허물고 해체되면서 유기적인 전체를 이룬다. ● 그리고 바다에도 길이 있고 하늘에도 길이 있다. 에너지가 움직이면서 길을 내는 것인데, 길은 일정한 방향을 따라 흐르기도 하고, 블랙홀이나 화이트홀처럼 휘돌면서 어딘가로(존재의 원천? 우주적 자궁?) 빨려 들어가기도 하고, 그저 종잡을 수 없는 가변적이고 비정형적인 길을 내기도 한다. 작가는 그 하늘길을 원래 아침에 지저귀는 참새 소리에 착상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길에서는 리듬이 운율이 느껴지는데, 실제로도 작가는 이 일련의 그림들을 「하늘의 노래」라고 부른다. 존재를 감싸고 우주를 감싸며 흐르는 에너지 그러므로 영적인 존재가 부르는 노래로, 궁극적인 존재가 존재에 분유하는 선한 기운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자연에 교감하는 작은 감동이 우주적 기운에 공명하는 것으로 그 차원이며 경지가 확장되고 심화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그저 자연 친화적인 태도를 넘어, 그 자체 물질주의가 팽배한 시절에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영성주의를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그렇게 작가에게 하늘은, 풍경은, 존재는 이중적이다. 감각적 실재이면서 동시에 관념적 실재이기도 한 것. 그 두 실재가 상호 간섭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내포하고 내포되면서 하나의 층위로 포개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에게 시간도 그리고 공간도 이중적(그리고 다중적)이다. 예컨대 「세 개의 시간이 흐르는 반송리 아침」에서 보면 저기 멀리 노아의 홍수 이전부터 나를 깨우러 오는 하늘(원형적 하늘)의 시간(그러므로 각성의 시간)이 있고, 칠흑 같은 밤에 잠든 세상의 시간(세속적인 그러므로 욕망의 시간)이 있고, 새벽과 밤사이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미몽의 시간이 있다. 작가가 보는 하늘엔, 풍경엔, 그리고 존재엔 언제나 이처럼 각성의 시간과 욕망의 시간 그리고 미몽의 시간(그러므로 어쩌면 가능성의 시간)이 하나로 흐른다. 그렇게 작가는 각성의 시간과 욕망의 시간 사이, 그러므로 어쩌면 신의 시간과 세속적인 시간 사이에, 미처 잠을 덜 깬 미몽의 시간, 가능성의 시간 위에 서게 만든다. ● 작가는 흐르는 것은 흐르지 않는 것들의 명제라고 했다. 플라톤으로 치자면 감각적 실재는 관념적 실재의 모상이라는 의미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서정적인 자연풍경을 대상으로 한 작가의 그림에서는 이처럼 흐르는 것이 흐르지 않는 것을 반영하고, 변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을 반영한다. 그렇게 자연풍경 속에 숨은 신의 손길로 이끌고, 그 숨결을 호흡하게 만든다. ■ 고충환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김이훈_존재론적 시간展_세종아트갤러리_2022

Lee Hoon Kim's painting - Heaven, the voice calling me from before Noah's flood ● Landscape of the Wind (2011). Lost Sky (2015). Noah's Sea_Walking on the Sky Road (2018). A morning in Bansong-ri where three times flow (2019). Heaven's Song (2020). Standing in the Wind (2021). These are the themes the artist has attached to the exhibition. Although there have been exhibitions before, we have focused on cases in which the artist maintains a relatively consistent theme. Rather than sequential and separate cases, it shows an organic relationship by moving ahead and behind each other. Sometimes the title can also be applied to other exhibitions, so it reflects the artist's reason for creation and humanities interests. are themes Often, as in abstract art, the subject and the painting have little to do with each other, but as in the artist's painting (or attitude toward painting), when the meaning and message are strong, the subject can imply the nature of the painting, and as such, the subject analysis It may serve as a guide for understanding th is artist's work. ● First, the wind blows in the artist's paintings (a landscape of wind, standing in the wind). The wind blowing in the picture corresponds to three winds and three waves. It symbolizes the strong wind that the artist must have faced during his lifetime, and it symbolizes the strong waves. The artist stands alone in front of the wind. Heavenly and Heavenly Infant Toddler Zone. It is an expression of self-esteem that I am the most precious under the sky, but at the same time, it can be an expression of loneliness and existential loneliness that there is only me under the sky. According to Heidegger, being is thrown into a world that has already been decided independently of one's will (being in the world). So existence is inherently lonely. So I stand alone against the wind. The artist's determination not to compromise with the world for the sake of art is felt here, and the spirit of a voluntarily poor artist (or artist Shinhwa) is felt. The wind blows in the artist's attitude toward the world and also in the painting that is the artist's alter ego. ● And there is the sky (The Lost Sky. Noah's Sea_Walking the Sky Road. Heaven's Song). The artist lost the sky. So he imagines the lost sky. What do you mean? God made a firmament in the midst of the waters to divide the waters from the waters, and to divide the water under the firmament and the water above the firmament, and it was so (Genesis 1:7). was another water. Can it be said that it was a landscape that formed one body like that, where the sky water and sea water reflected and reflected each other? And as the window of the firmament opened, the trapped water poured out and flooded the earth, and it is well known that the world suffered a cataclysmic upheaval. Therefore, the present sky is probably an empty sky from which the water has drained. Again, therefore, the present empty sky reflects the sky that was originally filled with water, and therefore perhaps the heavenly sky, the original sky, and the artist is recalling the lost sky and the original sky. ● As such, in the artist's paintings, the sky is an ideological (and perhaps ideal) space containing the waters of the beginning (element of life? In the artist's view, the river is water, the sea is water, the sky is water, and existence is water. Rather than free water, all beings are surrounded by spiritual energy and are connected to one another through primordial energy. Here, the confession of the following author comes to me in a meaningful way. In other words, the scene that I always looked out of the window began to appear as a result of infinite cosmic energy, and it would disappear unless the work of collecting that energy again with a brush is performed. It can be understood as a testimony that one day, through the sensuous sky, the conceptual sky, the cosmic energy, and the spiritual energy overlapped. ● And, as we know, energy is constantly moving. Therefore, the artist draws the energy flowing through the sky and the landscape as a medium, and the energy that flows and moves around the universe. The energy that moves like that creates ripples, waves, and waves. In terms of the artist's paintings, the rays of light and waves are the same. Just as there are waves in a river or the sea, there are waves in the sky, just like the rays of light. The artist's paintings are full of these rays and waves, the waves and ripples drawn by the cosmic energy and therefore the spiritual energy. In this way, the rays of light and waves flirt with each other and become one, and the sky and the sea break down boundaries and disintegrate to form an organic whole. ● And there is a way in the sea and there is a way in the sky. Energy creates a path as it moves, and the path sometimes flows in a certain direction, swirls like a black hole or white hole, and is sucked into somewhere (source of existence? cosmic womb?), and is just an unpredictable, variable and atypical path. also bet The artist said that the sky road was originally conceived of the sound of sparrows chirping in the morning. Maybe that's why the rhythm feels rhyme on the sky road, but in reality, the artist calls this series of paintings 「Songs of the Sky」. Energy that surrounds existence and flows around the universe. Therefore, it would be better to understand it as a song sung by a spiritual being, as a good energy that the ultimate being pours into existence. It can be seen as a case in which a small feeling of communion with nature resonates with the cosmic energy, and the realm is expanded and deepened. Beyond a mere nature-friendly attitude, it is more meaningful because it exemplifies the spiritualism that is gaining attention again in the era of materialism itself. ● Thus, for the artist, the sky, the landscape, and existence are twofold. It is a sensuous reality and an ideal reality at the same time. The two realities are superimposed on one layer by interfering with each other, influencing each other, and interfering with each other. Thus, time and space are dual (and multiple) to the artist. For example, in 「Bangsan-ri morning where three hours flow」, there is a time in the sky (the archetypal sky) that has come to wake me up from far away before Noah's flood (hence the time of awakening), and the time of the world sleeping on a pitch-black night (secular world). Therefore, there is a time of desire), and there is a time of nightmares from which we did not wake up between dawn and night. The time of awakening, the time of desire, and the time of nightmares (and possibly the time of possibility) flow as one in the sky, the landscape, and the existence that the artist sees. In this way, the artist makes us stand on the time of possibility, between the time of awakening and the time of desire, and therefore perhaps between the time of God and the time of worldly time, a time of nightmares that have not yet awoke. ● The artist said that what flows is a proposition of things that do not flow. In terms of Plato, sensual reality can be understood in the sense that it is the image of ideal reality. In the artist's paintings of lyrical natural landscapes, the flowing reflects the non-flowing and the changing reflects the unchanging. It leads to the divine touch hidden in the natural landscape, and makes the breath breathe. ■ Kho Chunghwan

Vol.20220731a | 김이훈展 / KIMLEEHOON / 金利勳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