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로망 쓰 WOLMIDO ROMANCE

고정남展 / KOJUNGNAM / 高正男 / photography   2022_0801 ▶ 2022_0814

ⓒ 고정남_월미도 로망 쓰#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5×89.5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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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남 홈페이지_www.kojungnam.com

초대일시 / 2022_0806_토요일_05:00pm

후원 / 인천광역시_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7:00pm

부연 婦椽 Buyeon 인천시 중구 개항로106번길 8 @buyeon.site

고정남의 월미도-징후 독해 혹은 징후 촬영1. 과거에 섬이었고, 지금은 섬이 아니지만, 여전히 월미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인천의 월미도는 내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의 장소이다. 우선 월미도에 처음 갔을 때의 놀라움, 당혹스러움이 그것이다. ● 월미도에 관한 내 인지지도 Image Mapping에는 6.25 전쟁 때 인천 상륙작전이 이루어진 곳이며 섬이라고 각인 되어 있었다. 하지만 처음 본 월미도는 섬도 아니었고, 전쟁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완전한 한국형 키치, 먹거리, 위락, 유흥의 집합소였다. 횟집을 비롯한 수많은 식당, 여관, 호텔, 놀이 공원, 여객선 유람선 선착장과 바다 같지 않은 바다가 거기에 있었다. ● 처음 찾아간 계기는 고정남처럼 그저 바다를 보고 싶어서였다. 1984년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다시 학생이 되어 서울에 기거하고 있을 때였다. 버스를 타고 서울역 광장을 지나다 아스팔트가 순간적으로 뻘밭으로 보이는 경험을 했다. 섬에서 태어나 평생 바다를 보고 자라고 살았기 때문에 몇 달 동안 바다를 보지 못하자 바다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서 일어난 환각이었을까? 그래서 다음 날 전철을 타고 인천 월미도에 갔다. 아마도 월미도가 섬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월미도는 대실망이었다. 섬도 바다도 아니었고 그저 유원지였다. ● 십여 년 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월미도에 다시 갔고 그때 몇 장의 사진들을 찍었다. 횟집, 주위의 주차장, 로터리 클럽인지 라이온스 클럽 인가가 세운 '조국의 미래 청년의 책임' 새겨진 이상한 조각상…등등 ● 그중 몇을 이용해 초기의 작품 몇 점을 만들었었다. 월미도는 내 인지지도 속에 유원지, 횟집, 선착장, 키치, 작업의 소재를 제공한 장소로 그려져 있다.

ⓒ 고정남_월미도 로망 쓰#0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6.5×99.5cm_2022

2. 고정남의 고풍스러운 제목 「월미도 로망 쓰」 라는 사진 작업은 어떨까? 그의 인지 지도 속의 월미도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고정남의 「월미도 로망 쓰」는 그의 「호남선」, 「수인선」 연작의 연장선에 있다. 그 두 작업에서 그의 의도는 철도 노선을 둘러싼 일제 강점기 이후의 역사, 흔적을 담는 것이었다. 그가 사진에 접근 자세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포복의 자세로 에둘러 가는 것이다. 일제, 역사라는 어휘가 주는 강박적인 규범의식이나 태도를 벗어나 있다. ● 예를 들면 호남선은 생뚱맞게도 김종태의 「노랑 저고리」라는 여인 초상을 사진으로 재구성한 작업으로 시작한다. 노랑 저고리를 입은 젊은 여성이 김종태의 그림과는 약간 다른 자세로 정면을 쳐다보고 있다. 뒤이어 이쾌대의 「봉숭아」와 고희동의 「자화상」을 재해석한 사진이 이어진다. 즉 그는 호남선이 건설될 때의 상황을 당시의 미술 작품을 통해 멀리 돌려 말한 셈이다. 그러므로 인물화의 사진화는 단순한 번안이나 재해석이 아니라 역사의 사진화인 셈이다. 고정남의 사진들은 이런 중층성 때문에 간단하게 읽히는 것을 거부한다. 겉보기에는 명료하고 별거 아니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 복잡한 관점들이 얽혀 있는 것이다. 이쾌대의 「봉숭아」는 일제 시절 만들어진 홍난파의 가곡 울 밑에선 「봉선화」와 겹치고, 「노랑 저고리」는 해방 후에 작곡된 길가의 「민들레」라는 동요와 오버 랩 된다. ● 그의 「호남선」을 이루는 다른 사진들 예를 들면 눈밭에 흩어져 있는 쌀알, 평야, 배추밭, 손질된 정원수, 일본식 가옥, 일제 시대의 인물 사진 등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고 제유법적 상징도를 이룬다. 그의 「호남선」은 철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실마리는 일제 강점기 철도 노선도를 제외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면 직접적 맥락과 지시가 제거되어 사라져버리는 사진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자기 감각에 따라 실천하고 한다고 할 수 있다. ● 고정남의 이런 작업에 대한 태도는 그의 다른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인선」에도 적산가옥과 오래된 철교, 들판, 거의 정물화 되어버린 사람들이 등장하여 「호남선」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가시나무처럼 얽혀 전체 구조를 만들어 낸다.

ⓒ 고정남_월미도 로망 쓰#0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6.5×99.5cm_2022

3. 최근작 「월미도 로망 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월미도는 역사적으로 외세가 강탈적 점유를 시작한 곳이라는 강력한 상징성과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 조선말 1882년 일본군이 석탄 저장소로 강점을 시작해서 91년 합법적 조치가 이루어지고, 1896년 러시아, 1895년 미국 스탠다드 오일사의 저유 탱크가 건립된다. 한일 강제 합병이 이후 1918년 이후 일제에 의해 인위적인 유원지로 탈바꿈한다. 6.25 전쟁 때는 인천 상륙 작전지로 선정되어 대대적 공습을 받았고, 민간인들의 희생 위에 미 해병대가 상륙한다. ● 간단히 살펴보아도 월미도의 역사적 운명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월미도에 이런 역사적 기구함, 고난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거의 없다. 고정남의 사진에서 보듯이 인천 상륙지라는 역사는 희미하게 돌에 새겨져 초라한 모습으로 군밤 가게 옆 공터 가운데 있다. 대신에 시간의 흐름 속에 최초 일제의 계획대로 유원지, 위락 공원, 때로는 불륜의 장소로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다.

ⓒ 고정남_월미도 로망 쓰#04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9.5×66.5cm_2021

역사는 책, 기록 속의 기억이 되고 침탈이 이루어진 상처들은 건물, 시설, 식물과 아스팔트로 덮이고, 사진가는 그것들을 찍을 수 있을 뿐이다. 고정남의 사진은 그저 키치로 뒤덮인 월미도를 키치적 분위기로 기록하고 대응한다. ● 고정남이 인식하는 바와 같이 키치는 우리 삶의 본질이고 형식이다. 월미도가 조선말 외세의 점령지에서 유원지로 변화는 과정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압축해 보여주는 일종의 표본인 셈이다. 고정남이 사진으로 기록하는 징표들은 월미도의 표면이다. 사진으로는 그 이상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고정남은 당연하다는 듯이 표면의 색, 사물들을 마치 그림책 읽듯 보여준다. ● 사진은 납작하고, 색채는 화사하게 들떠 있고, 시점은 무심하다. 마치 스쳐 지나가는 사물과 그에 대한 기억들이 그렇듯이. 고정남의 사진이 보여주는 매력은 거기에 있다. 그의 사진들이 초기와 달라진 것도 그 지점이다.

ⓒ 고정남_월미도 로망 쓰#0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0×60cm_2022

고정남의 초기 작업의 대상인 건축물들은 그것들을 돋보이게 하려고 길바닥에 있는 쓰레기나 공중을 가르는 전선들을 지워버린다. 일종의 디지털 클리닝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는 사진의 주제가 되는 대상만을 도드라지게 하고 다른 것들이 가지는 현실적 분위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이다. 흔히 디지털 기반의 사진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 그 이후 그의 사진은 그런 분위기에서 벗어나 외견상으로 가볍고 감각 중심의 경향을 보인다. 이 태도들은 호남선, 수인선과 같은 주제와 부딪힌다. 주제는 무겁지만 그를 대변하는 소재들은 무겁지 않고, 사진적 기법은 가볍다. 그의 작업이 흥미 있는 지점, 현실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무거운 역사는 배추밭과 교각과 벽화들 뒤에 있다. ● 사진은 뒤에 숨은 역사를 정면으로 드러내는 방법들을 모른다. 왜냐하면 역사는 문자로 이루어진 서술이자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사진은 늘 어떤 경우에도 시각적 파편이다. 이 때문에 역사처럼 서술할 수 없다는 것,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 고정남의 사진이 위치한다. 그는 사진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그 점들을 이용해 무거운 주제들에 접근한다. 이런 전략은 효과를 발휘해서 그의 사진들을 보면 일종의 점프 컷처럼 서술들이 이어진다. 물론 이 서술성은 명시적이 아니고 암시적이며, 행간에 수없는 상상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과 사진 사이의 행간에 찍히지 않은 혹은 말해지지 못한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고정남_월미도 로망 쓰#06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0×65cm_2022

4. 고정남의 「월미도 로망 쓰」는 이런 전술, 전략에서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 그가 보여주는 월미도 사진의 흐름은 화려한 색채, 과장된 일상성, 거의 정물 같은 태도의 인물 등의 기호를 이루어진다. 그 기호들은 불연속적이다. 그러나 서로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는다. ● 예를 들면 가짜 앵무새와 텅 빈 유람선 안의 두 사람, 바닷가에 서 있는 팬티만 입은 남자의 뒷모습, 하얀 제복을 입고 걸어가는 학생들, 가짜 야자수, 불란서 찐빵집의 붉은 색과 붉은 티셔츠, 달리는 남자, 화려한 색채의 놀이 시설들 사이에 숨은 장면들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그러니까 고정남의 사진은 그가 찍어서 보여주는 키치적 장면들이 아니라 사진과 사진들 사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는 연속적 장면들을 배치하는 동영상이나 영화와 다른 사진의 서술 방식이다. 사진은 과거에 가졌던 객관적 기록적 기능이라는 헤게모니는 동영상에 넘겨준 지 오래다. 대신에 사진의 가능성, 혹은 다른 기능들은 작가 혹은 사진가가 보여주는 장면들이 아니라 보여주지 않은, 생략해버린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 알튀세를 빌면 일종의 징후 독해 Symptomatic reading 이자 징후적 촬영Symptomatic shooting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징후 독해란 하나의 텍스트를 읽을 때 작가가 제기한 질문, 답변이 아닌 작가가 무시하거나, 무의식적으로 건너뛴 내용들을 찾아내어 그 이유를 탐색하는 독법이다. 예를 들면 『로빈슨 크루소』라는 소설 속에 작가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축, 거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질문, 상황들에서 무엇이 제거되고 무엇이 강조되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글을 쓴 작가의 정치적, 사회적 무의식과 당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방법이다.

ⓒ 고정남_월미도 로망 쓰#07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9.5×66.5cm_2022

사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많은 현실 가운데 어떤 것을 담았는지, 하나의 시리즈를 만들 때 무엇을 작품으로 규정하고 무엇을 배제했는지를 추적, 추정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드러나는 작가적 무의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캐어 묻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 사실 사진을 찍고, 고르고 연작으로 만드는 행위 자체는 끝없이 이미지들을 선택하고 버리는 것이다. 물론 버린 사진들은 제시된 사진과 사진들 사이에서 공백을 만들며 선택된 사진들을 더 흥미 있게 한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가는 현실이라는 텍스트를 징후 독해한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에 관한 질문들을 비롯해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 그러므로 징후 독해는 곧 징후 촬영이 되어 하나의 분리할 수 없는 짝이 된다. 이때 징후적 촬영과 독해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명백하게 눈에 읽히는 대상을 촬영 해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기에서 간과되고 결여 된 것을 뒤져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읽는 것이다.

ⓒ 고정남_월미도 로망 쓰#08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9.5×66.5cm_2022

역사적, 현실적 텍스트로서의 월미도는 일종의 역사적 트라우마의 집합체이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모든 것은 트라우마를 감추기 위한 장치이거나 혹은 감추기 실패한 결과물이다. 고정남의 사진들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중요하거나 결정적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사소한, 비결정적인 장면들로 구성된다. ● 고정남의 사진들에서 흥미를 끄는 것 중 하나는 인물들이다. 작품에서 나이 든 노인은 우유 통, 담배, 목 수건, 모자, 샌들, 백 팩을 소지하고 있다. 기묘하게도 그 사진 속에서 나는 노인이 느끼는 더위, 햇볕을 상상으로 체험한다. 배경의 자동차나 놀이 시설보다 주차장 바닥의 흙, 자갈의 질감이 인물과 결합한다. 유사한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다. ● 젊은 여성 둘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깨가 드러나는 원피스와 하늘거리는 투피스 흰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한껏 여성성을 과시하는 자세와 표정으로 서 있는 사진 역시 배경과 부딪히며 결합한다. 배경의 횟집, 부서진 모텔 간판 등은 두 여성과 직접적 관련이 없을 것임에도 여러 가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작품, 중년 남성의 팔짱을 끼고 크루즈 선착장을 향해 걸어가는 여성의 모습도 필연적으로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는 나만의 망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을 찍고, 보여주는 작가의 의식 또는 무의식은 앞서 언급한 징후적 촬영이자 독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 고정남_월미도 로망 쓰#09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0×60cm_2022

5. 사진은 역사가 되지 못한다. 늘 역사적 사료나 파편일 뿐이다. 사진가가 접근할 수 있는 현실 속의 이미지들은 과거, 역사를 덮고 있는 외피이다. 그 외피를 걷어 내고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정남도 마찬가지이다. 고정남이 선택, 기록한 월미도는 그가 찍은 사진에 등장하는 것처럼 산산이 박살 난 수박이다. 파편들로 나누어져 대강 접합할 수는 있지만, 결코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 고정남 작업에는 정물처럼 서 있는 인물들, 진달래를 비롯한 꽃 등 이른바 그의 일본 유학시절 스승이 언급했다는 「초평범」한 사물들은 그의 작업 속에 단골 배우처럼 등장한다. 이 패턴들과 색채와 시점이 맞물려 의도한 사진 전체를 지배해 왔다. 일제 시대의 레코드나 철도망 그림을 바닥에 놓아 현실과 이미지를 접합하는 방식도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충분한 효력을 발휘했다. ● 때문에 다소 염려도 된다. 이것들이 가진 기본적인 클리쉐적 성격이 지나치게 강화되는 경우 장소와 소재만 다르고 익숙함이 되풀이되는 사진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 고정남_월미도 로망 쓰#10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9.5×66.5cm_2022

고정남 자신도 이를 의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작가 노트에서 그는 "나의 사진적 행위 또한 월미도-키치의 일부가 되었다. '월미도에 가니 디스코팡팡도 있고 공연하는 사람도 있고 사진 찍는 사람도 있더라' 정도의 대등한 존재." 즉 고정남은 월미도의 경우 사진 찍는 행위 자체를 일종의 키치화해서 자신과 월미도의 모든 것을 동일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니까 얼른 보기에는 전작과 유사한 듯 하지만 월미도와 같은 눈 높이에서 사진을 찍고 작품도 그에 맞추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 내 경우에도 작가로서 찍은 사진들을 컴퓨터 모니터로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찍기 전, 혹은 찍는 동안에 내가 본 것은 사진 속에 담긴 것의 극히 일부에 불과 했구나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진은 늘 일부는 작가가 찍지만 나머지는 카메라와 그것을 작동시킨 사회, 정치, 문화, 산업적 시스템이 찍는 것이다. 물론 소비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고정남이 스스로 키치화 되는 방법을 택한 것은 아마도 월미도와 그것을 산출해 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야겠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 사진이 가진 힘은 다양하고, 아직 지평은 넓으며 보는 시선은 얼마든지 깊어질 수 있다. 고정남이 앞으로 놓는 사진 철도가 호남선, 수인선을 지나 인천과 월미도를 통과해 어디로 갈지 그 향방이 몹시 궁금해진다. ■ 강홍구

Vol.20220802b | 고정남展 / KOJUNGNAM / 高正男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