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spering Lines 소근대는 선

조동균展 / CHODONGKYUN / 趙東均 / mixed media   2022_0809 ▶ 2022_0904

조동균_Whispering Lines 22-4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3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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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신미선(김영모갤러리 관장)

관람시간 / 10:00am~06:00pm

김영모갤러리 KIMYOUNGMO GALLERY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설개로14번길 23 (시흥동 81-2번지)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실체적 본질이 '없음'이라는 존재에 '있음'을 강조하며 작품세계를 이어가고 있는 조동균 작가의 전시를 김영모갤러리 두 번째 기획으로 마련하였습니다. ● 우리는 흔히 '있음'이라고 하는 것을 인간의 눈에 맺혀진 가시적인지의 단계에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결정지으려 한다. 인간이 관계하고 있는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의 의미는 대상의 가시적 형태를 둘러싼 그 무엇인가의 존재, '없음'의 존재가 '있음'으로 해서 더 명확해 지고 실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대상을 해체해서 없음의 허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본질을 탐구하며 존재의 구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있다'라고 하는 것은 '없음'의 존재로 인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부각시키며 강조하고 있다. 평면 위에 보여지는 선들은 없어진 배경에서 탄생된 것들이다. 우리가 망각했던, 주목하지 않았던 '없음'의 존재들로 인해서 '있음'이 성립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동균_Whispering Lines 22-6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3cm_2022

세계가 지나온 거대한 시공간의 선상 위에서, 인간의 시각이 놓쳐버린 것은 무엇일까? 눈 앞에 펼쳐진 현란한 시각적 홀림에 가려져 마땅히 보고 주목해야 할 것들을 안타깝게도 잃어 버리지나 않았는지...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없음'의 선들이 속삭여주는 섬세한 소리들을 시각적 행간들의 여백에서 발견하시고 인간과 세계 속에서 실재하는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읽어내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 신미선

조동균_Absence of Lines 21-10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3cm_2021

예술은 과정에 대한 설정으로 태어난다. 게임판 위에서 규칙을 정하듯이, 자신 만의 놀이 규칙을 정하고.  그것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하는데서, 예술이 숨쉬고 생명력이 살아나는 것이다.   화면 위에서 나만의 놀이 규칙을 세우는 것. 나 만의 의미를 만드는 것이 그림 그리기의 시작이다. ● 성공적인 놀이규칙의 설정은 놀랍고 마법 같은 경험이다.  그것이 성공적인 추상을 가져다 준다. 성공한 추상은 정신과 물질의 완전한 합일이다.  물질에서 정신이 잉태하듯이 지상 최고의 선이 물질 속에 제모습으로 담겨진 것이 성공한 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조동균_Absence of Lines 21-12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3cm_2021

선의 부재 ● 부재는 부활을 잉태한 상태이다.  부재로 사망에 이르렀지만, 이는 부활을 통해서 존재를 증명하고, 부재와 존재의 변증법적 관계를 설명한다.   '선'이 나타나는 과정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고. '선'의 모양으로 남겨지는데. 이를 '형태와 배경'의 관점에서 보면 '선'은 배경의 중첩이 되고. '있음과 없음'으로 보면. 없음이 다시 최종적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조동균_Absence of Lines 21-13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3cm_2021

있음과 없음은 서로 양립하거나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없음이 있음의 결여 상태인 것이 아니다. 없음은 있음의 다른 양상일 뿐,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있음으로도 없음으로도 인식될 수 있는 동일체이다. 따라서 우리의 인식 속에서 한줌의 있음이 있기위해선 전 우주의 없음이 필요하다.  ● 있음과 없음은 함께하는 것이다.  선택되어 졌을 때 무엇으로 되고, 그 것이 지속되는 것 뿐이다.  선택되어지는 순간 불가역적으로 이 전의 상태로 돌아 갈 수 없다. 여기에서 시간이 생성되는 것이다.  모든 실존적 존재는 시간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 속에서 존재의 개별성을 얻게 된다. 시간 속에서 선택으로 인해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조동균_선의 부재 20-6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3cm_2020

시간과 공간이 대상을 인식하는 형식에 그치는 것이아니라, 사물 그 자체에 내포하고 있는 실체의 일부이며. 시간과 공간이 발현될 때 인간은 이를 있음으로 인식하고, 이 것들이 개입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은 이를 인식하는 주체의 다양한 조건이나 의지에 따라 요동치며, 대상을 흩으리기도 다시 조합하기도 하면서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 시간은 차원을 결정하고 유지하며 차원을 넘나드는 통로이다.  '시간 덩어리' 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 속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모든 시간으로 진입할 수 있다. 선택되지 않았던 시간을 복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간 덩어리'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그 속에서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해 내었다. '시간의 부활'을 꿈꾸고 '인버전'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흔히 일상 속에서 실재하는 대상을 기준으로 무언가를 이해하지만, 실재의 이면에는 그를 둘러싼 '없음'이라는 배경이 존재합니다. '있음'은 '없음'으로 인해 실재할 수 있음에도, 대부분 이면의 '없음'은 염두에 두지 않죠. 저는 제작 과정에서 그 '없음'에 주목 했어요." ● "오래전 길을 가다 우연히 찌그러진 깡통을 주운 적이 있어요. 녹슬고 납작해진 깡통이었는데, 분명 원기둥 형태였겠지만 결국은 하나의 선으로 남아버린 모습이 뇌리에 남았죠. 어떤 대상을 환원시켜간다면 최종적으로는 선의 형태가 아닐까? 그 선의 조합을 통해서 세상의 형상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형의 출발은 '점이고, 점이 이어져 선이 된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어쩌면 점 이전에 선이 있는 것이 아닌가. 선이란 눈에 보이는 조형적인 실재라기보다는 결국 궤적과 시간성으로 대변되는 '운동'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죠." ■ 조동균

Vol.20220809h | 조동균展 / CHODONGKYUN / 趙東均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