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같은 사랑 Essential Love

오지은展 / OHJIEUN / 吳知垠 / painting   2022_0811 ▶ 2022_0908 / 일,월요일 휴관

오지은_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각자의 슬픔 Our own sadness that could never be understood_ 캔버스에 유채_97×97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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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인스타그램_@o.jieun903_art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드로잉룸 Drawingroom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 68-4 2층 Tel. +82.(0)2.794.3134 www.drawingroom.kr

쏟아지는 사랑의 미래 ● 그날의 분위기를 알고 있다. 손과 손의 살갗이 부대끼는 감촉과 온도, 노을이 비쳐 붉게 빛나던 당신의 눈동자, 습도 높은 공기에 섞여든 짙은 초록의 냄새, 시끌거리다 이내 잦아든 사람들의 목소리처럼 구체적 형상이 없는 것들. 형체 없는 사랑의 기억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 와인 얼룩이 남은 잔을 본다. 가득 차 있을 때는 기쁨이든 분노든 가득 찬 그것만 보였다. 한 잔 또 한 잔, 다시 한 잔, 마지막은 늘 그렇듯 원하지 않은 맛이었다. 그럼에도 남김없이 마셔야 해서 아팠다. 가득 차 있을 때는 색과 모양이 분명해 보였는데, 이제 얼룩 위에 얼룩이 겹쳐져 투명한 잔 위에 얇은 잔해만 남았다. 시간을 겪으며 감정을 부풀려왔지만 이제 납작해져 버린 우리의 모습 같다. 잔과 잔 사이를 흐르는 공기를 응시하며 빈 잔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깨닫는다. 이 공기에 사랑이 가득 스며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너밖에 없어'라는 말은 정말이지 얼마나 쓸모없는지. 주었던 마음을 거둬야 하는 일은 잔인하다. 사랑은 여러모로 지랄 맞다.

오지은_지겨울정도로 한 노래만 듣고_Repeating one song until feeling fed up with it_ 캔버스에 유채_50×50cm_2022
오지은_그렇게 사랑해왔다고_This is how I loved you_캔버스에 유채_60.6×80.3cm_2022
오지은_난 너밖에 없어라는 말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How useless the word 'you are my one and only' is_ 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2
오지은_이 밤을 너는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I wonder how you spend this night_ 캔버스에 유채_50×50cm_2022

가슴으로부터 ● 작가는 마음에 담은 감정의 모양을 언제 어떻게 꺼내야 할까. 오지은 작가의 전작은 대체로 기억을 정제한 뒤, 마치 지난 노래를 재생하듯 펼친 것들이었다. 그런데 마음은, 특히 사랑은 오늘의 색이 가장 진하다. 그 짙은 색 위로 온몸을 던져야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작가는 펄떡이는 오늘의 감정을 살려내기로 했다. ● 감정을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정리했다면 그것으로 작품의 역할은 다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시인 키츠(John Keats, b.1795)는 '밤새도록 격정을 불사르며 쓴 시를 새벽에 불태워도 좋다'고 했지만, 예술이 거기까지라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그렇다면 간밤의 격정을 담은 그림을 감정의 잿더미로부터 구해내 쓸모 있게 만드는 방법은 무얼까. 다름 아니라 지금의 색을 더없이 진하게 그려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일일 테다. 우리가 그림을 통해 가슴으로 맞닿을 때, 그것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일기가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 오지은 작가는 비어버린 것 사이를 흐르는 기억을 그리던 어제와 달리 이번엔 그것을 양분 삼아 자라나는 마음을 그렸다. 작가가 꺼낸 감정의 덩어리는 본인의 구체적 기억을 지나쳐 감각으로 치환되고 다시 붓질의 방향과 물감의 두께가 된다. 붓이 움직인 흔적은 빈 잔에 남은 얼룩처럼 캔버스 위에 켜켜이 가라앉는다. ● 더 무성히 자라나기 위해서는 더 농도 짙은 기억이 필요하다. 그러나 마음에 진득하게 들러붙은 늪지대 같은 기억에 잠시 주저앉을지언정 영원히 발목을 붙잡히진 않는다. 다시 일어나 어깨를 움직여 거침없이 붓을 휘두른다. 물감의 농도로 공기의 농도를 맞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웃음이 아니라 다 알면서도 여전히 해사한 웃음을 지켜내는 태도다. 뱃속에서부터 끌어 올린 물감 덩어리들, 감정의 잔해가 뒤엉킨듯한 붓의 자국이 여전히 살아있는 오늘을 말한다. 바로 지금이어야 할 수 있는 돌발적이고 우연적인 표현들이 이 회화를 클리셰로부터 벗어나게 만든다. ● 파울 클레(Paul Klee, b.1879)는,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 회화라고 했다. 형상이 뚜렷하지 않은 이 그림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본다. 붓질 사이로 흐르는 마음, 물감의 냄새보다 더 진한 초록의 냄새가 감각을 자극한다. 명명되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은, 오지은의 그림 앞에서 이끼가 가득 낀 숲의 냄새와 잔과 잔 사이를 휘돌며 흐르는 그날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건네받으며 형상을 획득한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 알지, 라는 속삭임이 오간다. 언젠가 이 그림을 끌어안고 울고 싶어지는 날이 올 거라는 예감은 나만의 복선이 아닐 테다. 그러니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는 것이 회화일지도 모른다고, 클레의 말에 덧붙이고 싶다.

오지은_분명해야 할 말이 있었는데 There was a word that should have been clear_ 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2
오지은_슬픔에 대처하는 자세 Attitude coping with sadness_ 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2
오지은_In my beautiful garden 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2

사랑을 통과하는 일 ● 그러고 보면 우리는 항상 마지막의 상처에 휘둘리느라 앞서 실존하던 진심을 잊는다. 관계의 끝에 해야 하는 것과 말아야 할 것이 무언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 잠시라도 진실하게 과정의 사이를 메웠던 마음들이고, 중요한 건 지난 실수의 잘잘못을 가리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내 삶이다. ● 그래서 작가는 오늘의 마음으로 붓을 든다. 손목이나 팔꿈치를 까딱이는 인사가 아니라, 어깨를 움직이며 거침없이 흔드는 손이다. 네가 언제 어디서 오든 나는 이렇게 두 팔을 들고 크게 손을 흔들어 맞이하겠다고, 혹시 내게서 등을 돌린다 할지라도 멀어지는 등을 향해 또 한 번 크게 손을 흔들겠다고, 그 어느 순간도 소홀히 넘기고 싶진 않다고 붓을 움직여 말한다. 그건 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내 사랑과 그 뒤를 지키는 내 삶에 대한 예의라고 말이다. ● 누군가 그런 사랑은 90년대에 끝난 전설 같은 거라고 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방 작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있다. 손바닥의 살갗에 따스하게 닿는 햇볕을 느끼며 다시 오늘을 살기로 한다. 크게 들이마신 숨으로 가슴을 부풀리며 다짐해본다. 전부를 주는 것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겠다고, 무엇이 와도 괜찮으니 가장 선명한 오늘의 마음을 맞이해보겠다고,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사랑해왔다고.

오지은_가까운 각자 Two individuals in close proximity_캔버스에 유채_53×53cm_2022
오지은_내겐 닿지 않을 90년대 사랑 90's love I can never reach_ 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22

다만 사랑을 통과하기 전과 후는 분명 다르다. 붙잡은 채 놓지 않으려고 하면 함께 뒤로 밀려나지만, 통과해낸다면 쉽게 밀리지 않고 제자리에 존재할 수 있다. 그곳에는 이전보다 유연한 몸과 단단한 마음이 남는다. 그늘에서 일어나 스스로 양지로 옮기는 발걸음, 손을 뒤집어 기어이 햇볕을 받아내는 용기, 거기서부터 다시 사랑이 자라난다. ● 강혜빈 시인은 산문 「사랑을 발명하는 사람」(『사랑에 대답하는 시』, 아침달, 2021)에서 "나는 사랑에 관해서라면 백 행을 쓸 수 있습니다. 언젠가 백 개의 시를 모으면, 비가 쏟아졌으면 좋겠어요. 장대같이. 억수같이. 벼락같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사랑이 불현듯 깨어나도록."이라고 썼다. 백 개의 시를, 백 장의 그림을 모아도 여전히 예고 없이 불현듯 쏟아지는 사랑을 막을 수 없다. 다만 빗속으로 뛰어들 뿐이다. 대체 사랑이 헤프지 않아야 한다면, 헤퍼야 할 것은 무엇일까. ● 지독했던 장마가 끝났다. 무거운 습기가 땅으로 내려앉았고 공기는 가벼워졌다. 수분을 품은 흙은 촉촉하고 폭신하다. 무언가 견디고 나면 새로운 것이 자라날 틈이 생긴다. 철이 없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이 또 사랑이라면 좋겠다. 솟아오르는 것을 저지하고 싶지 않다. 강혜빈 시인은 같은 글에서 "사랑의 미래는 시보다 이르게 도래"한다고 했다. 마음은, 글자를 새기고 붓을 휘두르는 손보다 속도가 빠르다. ● 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며 미래에 속도를 붙이는 그림이 있다. 비는 또다시 쏟아질 것이다. 그렇게 도래할 사랑의 미래를 기다린다. 빈 잔 사이를 휘감는 진한 농도의 공기와 비에 흠뻑 젖은 땅 위를 채우며 우거지는 초록, 풍성하게 피어나는 봄꽃 사이를 가르며 통과하는 사랑. 그러니까 여기, 이토록 뜨겁게 여전히 무성하게 자라나는 마음을. ■ 김지연

오지은_지랄맞은 사랑 Love full of shit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2
오지은_매미가 울기 시작하는 밤 The night when the cicada starts to cry_ 캔버스에 유채_53×53cm_2022
오지은_지독했던 장마도 시간이 흐르면 촉촉하게 기억되고 With time, the brutal rainy season would only be remembered to be moist_ 캔버스에 유채_60.6×80.3cm_2022

The Future of Love, Pouring ● I remember the air of the day. The texture and warmth of the skin of two hands touching each other, the sunset landing on your eyes, saturating them red, the scent of deep green melted into the humid breeze, things without concrete figures, like the loudness of people talking dimming. Where does the memory of figureless love go? ● I stare at the glass stained with wine. When full, I could only see what was filling it, whether it was happiness or anger. Glass after glass, and another glass of wine. As always, the last sip tasted like what I didn't want. Nevertheless, I had to finish it, and it hurt. The color and the shape looked obvious when it was full. Now only the stain, thin and layered on top of each other on clear glass, remains. We used to inflate our feelings with time but now are deflated flat like this stain. I watch the air flowing between two glasses while touching the empty glass, and I suddenly realize. This air used to be full of love. How useless the word "You are the only one" is. Withdrawing the heart I already gave is brutal. Love, in many ways, is full of shit.

From the Heart ● When should an artist pull out the shape of one's emotion from the heart? Artist Jieun Oh used to refine those memories and unraveled them as if turning the old music on in her past works. But the color of the heart, especially related to love, is saturated the most today, right at the moment. There are things we can learn only by throwing one's whole body into that deep color. The artist chose to save what she felt today in a raw, fluttering state. ● Some say that the artwork did its role if the artist could express and finalize one's feelings while making it. John Keats(b.1795) said, "I should write for the mere yearning and fondness I have for the beautiful, even if my night's labors should be burnt every morning and no eye shine upon them," but it saddens me to think that art ends there. How can an artist save a painting bearing the nightly passion from the ashes of emotions and make it useful? It could be done by painting it deeper, coloring it clearer to the extent that it touches someone else's heart. When the painting connects two hearts, it is no longer one person's diary but a path that bridges them. ● Unlike yesterday when she used to paint the memories between empty things, today Jieun Oh paints the heart that grows using them as fertilizers. The lumps of emotions the artist pulled out pass through concrete memories, transfer into feelings, and become the direction of the stroke and the thickness of the paint. The trace of the brush lands on the canvas layers by layers like stains on the glass. ● We need a thicker memory to grow fuller. We might be stopped by the memory that adhered to the heart like a sticky swamp, but the memory cannot hold us forever. The artist gets up again and wields the brush without hesitation. She matches the thickness of the air with the thickness of the paint. The laughter is not from naivety but an attitude she holds onto despite knowing the reality. Clumps of paint drawn from the gut and paint strokes cluttered with the debris of emotions depict the current moment that is still alive. Spontaneous and coincidental expressions that could only be done now allow the painting to be distinguished from cliche. ● Paul Klee(b.1879) said that painting is not a representation of what could be seen but an attempt to allow something invisible to be visible. From this nonfigurative painting, we see even more. The emotion between strokes and the scent of green, even stronger than the odor of the paint, stimulate the senses. Our ever unnamed heart obtains its figure in front of Jieun's painting by receiving the scent of a forest full of moss and the mood that flowed between wine glasses. The artist and the audience whisper to each other; "you know how I feel, though I don't say a word, right?" My hunch that one day in my life, I would wish to hold on to this painting and cry might not be limited to me but to others as well. Therefore I would like to add to Klee's word that maybe painting is not what we see with our eyes but with our hearts.

Passing Through Love ● When we think about it, we always forget the heart that preexisted as we are obsessed with the wound at the end of love. I still don't know what should and should not be done at the end of the relationship. What I do know is that what matters after the closure is the heart that filled the process with sincerity, even though it lasted briefly. What is important is my life today rather than telling who did wrong and who did right for the past mistake. ● That is why the artist picks up the brush with her heart. Not with an inadvertent flutter using the wrist or the elbow, but she waves wide using her shoulder. She promises to stretch her arms and wave big to welcome you whenever or wherever you come. Even when you turn your back and leave, she will wave again, just the same as before. She moves her brushes to say that she would never leave a second without care. And that politeness is not out of respect for you, but for her love and her life that lasts after the love. ● Some people say that that kind of love is like a myth that died in the 90s. But there's going to be a silver lining that seeps into the small window in a dark room. When the light touches the palm, warming the skin, it makes her want to live today. She breathes in, filling her chest with air, and makes a resolution. A resolution that she will not give up giving her entirety, no matter what comes it might be, to the heart from today with the crispest detail and face it. Just like the way she loved in the past and loves today. ● One thing is true: one is different before love and after passing through love. When one tries to hold on to love trying not to lose it, one gets pushed back with it. But when you pass through it, you can stay in the same place without easily being pushed. And there, where you stayed, remains a more flexible body and sturdier heart. Love grows again from the steps that move oneself from the shade to the lit, and the courage to catch the sunlight, flipping one's hand facing the palm to the sun. ● In the prose 「A Person Who Invents Love」(『Poetry Responding to Love』, Achimdal, 2021), the poet Hyebin Kang writes, "I can write a hundred lines about love. When I accumulate a hundred poems, I wish it would rain. I hope it pours. Like a storm. Like lightning. So that it can wake the love that has been hiding inside one's heart out of nowhere." Accumulating a hundred poems or a hundred paintings cannot stop an unexpected love that pours. What we can do is run into that rain. If love cannot be wasteful, what can? ● The relentlessly long rain season has ended. Heavy humidity has landed, and the air is lighter now. Earth that embraced water is now moist and soft. Tolerating something leaves some gaps that allow new things to grow. People might say I am naive, but I again wish it is love. I do not want to stop something from springing. Poet Hyebin Kang wrote that "the future of love arrives earlier than poetry" in the same prose. The heart is faster than the hand that writes and strikes the brush. ● And now, there is a painting that speeds up the future by making something invisible visible. Rain will pour again. That is how she waits for the love that will arrive in the future: the thick air swirling between wine glasses, the color green flourishing the earth saturated with rain water, the love passing through the abundance of spring flower blossoms, the heart that still grows hot and massively, just like this painting. ■

Vol.20220811d | 오지은展 / OHJIEUN / 吳知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