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테로토피아 공간 Heterotopia Space

어계원展 / EOGYEWON / 魚桂源 / painting.installation   2022_0816 ▶ 2022_0823 / 월요일 휴관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展_어계원 갤러리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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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충청북도_충청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어계원 갤러리 EOGYEWON GALLERY 충북 청주시 흥덕구 흥덕로127번길 14 (운천동 848번지) 1층 Tel. +82.(0)43.232.8622 blog.naver.com/qualifier

이번 전시에서 명시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공간'은 프랑스 푸아티에서 출생한 교수이자 철학자인 미셀푸코(1926-1984)에 의해 탄생한 개념이다. 헤테로토피아는 그리스어로 '다른' 이라는 뜻의 'Heteros' 와 '장소' 를 뜻하는 'topia'를 합쳐 만든 신조어로 '다른 장소'를 의미한다. 단어의 어원을 통해 헤테로토피아는 비현실적인 장소인 유토피아와는 다른 실제로 존재하는 유토피아인 일종의 반(反)공간(Counter-espace)으로 헤테로토피아를 설명한다. 헤테로토피아는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 즉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장소이다.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6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22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1

20세기 초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예술가들은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유토피아의 세계를 작품으로 제시하면서 불안전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특히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정신적 고찰을 통해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예술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유토피아의 표현법은 점차 미래도시를 제안하는 방법 등 미래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가 막을 내리면서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도 위기를 맞게 되었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것이다. 대신 동시대 작가들은 현실적인 장소, 존재하는 우리 일상의 공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은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을둔 비가시적인 유토피아의 세계를 가시적으로 실현하고, 현대 미술가들의 임무 중 하나가 실현에 대한 사물화된 인식을 부단히 새롭게 이의제기(contestations)를 하기 때문이다.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1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1

최근 작업은 푸코의 이론에서 개폐성과 기능성의 헤테로토피아로 일상적인 공간에서 공간이 가지는 여러 기능성에 대해 고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즉 환상(Illusion)의 공간을 만들어 내거나 또는 다른 현실 공간을 만들어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유토피아에서 헤테로토피아로의 전환은 현대미술의 현장, 특히 설치미술의 공간의 개념과 의미, 그리고 공간 확장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려고 한다. ● 따라서 헤테로토피아는 고착되고 정형화된 실체에 대해 낯설게 보기를 시도하고 타인 또는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일상의 장소에서 더 나아가 비일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을 작품 속에서 새롭게 인식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나는 작품을 통해 유토피아는 작가가 꿈꾸는 이상향으로서의 유토피아가 아닌 새로운 삶, 다른 삶의 기능성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_2021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8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22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우리는 순백의 중립적인 공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밝고 어두운 면이 있고 저마다 높이가 다르며 계단처럼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 움푹패고 불룩 튀어나온 구역과, 단단하거나 또는 무르고 스며들기 쉬우며 구멍이 숭숭난 지대가 있는, 사각으로 경계지어지고 이리저리 잘려졌으며 얼룩덜룩한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스쳐지나가는 통로가 있고, 거리가 있고, 지하철이 있고, 기차가 있다. 영화관, 카페, 해변, 호텔과 같이 잠시 멈춰 쉬는 열린 구역이 있고, 휴식을 위한 자기 집이라는 닫힌 구역도 있다. 이번 전시는 고립의 시간, 플레이그라운드, 거울의 방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섹션1 고립의 시간의 키워드는 외로움과 고독이다. 섹션2에서는 거울을 설치하여 환상의 공간, 또는 다른 현실공간을 만들어 표현하고 섹션3 플레이그라운드에서는 관객 참여 형태로 전시하고자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展 섹션1_어계원 갤러리_2022
어계원_집, 안락하지만 고립의 공간_캔버스에 유채_130×162.2cm_2022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7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22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10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22

section1: 고립의 시간 a time of isolation - 외로움, 고독 ● 닫힌 구역에서 고립의 시간을 보내면서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 나의 삶에 개입되기 시작했고, 캔버스 위에 온갖 다양한 신형상의 사물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초창기 작품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들의 기묘한 나열에서 비롯되었다. 매일 접하는 익숙하고 평범한 것들이 갑자기 특별하거나 비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때 그 장소라든가 사물들을 포착해서 더 예민하게 감각하고 사진을 찍어 오브제로 남기고, 익숙한 대상을 재발견하여 그 대상과 어울리지 않는 단순화된 사물들을 캔버스 위에 얼기설기 배치하여 헤테로토피아를 구현한 평면작업을 배치하였다. 섹션1의 고립의 시간은 개인의 고립에서 시작된 작업이지만 개인의 사건에 그치지않고 코로나 팬데믹(pandemic)으로 고립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과 사유하고자 한다.

어계원_고립낙원2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22
어계원_고립낙원4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22

section2: 일탈의 시간 - 거울의 방 hall of mirrors ● 푸코는 거울을 유토피아라고 보았다. 거울 속의 장소는 장소 없는 장소, 존재하지않는 가상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울 안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유토피아라고 할 수 없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현실적인 공간이며 그 공간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과 연결되어 있기에 유토피아와는 절대적으로 다른 배치들이다. 즉 혼합된 중간의 경험인 헤테로토피아이다. 다시 말해 거울은 유토피아이지만 거울에 비치고 있는 것들은 혼합된 헤테로토피아인 것이다. 전시실 공간을 어둡게 하고 조각난 거울을 벽면에 설치하고 밤하늘의 별의 형상을 제작하여 둠으로 마치 밤하늘 속에 있는 느낌,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환상적인 공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거울 속에 투영되고 있는 이미지는 환영의 공간이고, 감상자와 거울자체가 놓여있는 공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거울이 비추고 있는 거울의 표면의 공간은 또 다른 하나의 실재로서의 가상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왜곡되고 조각난 현상은 헤테로토피아로 인식할 수 있다. 상상세계가 일시적으로 구현되는 유토피아와 달리 실제로 존재하고 활성화된 대항-현장이면서 환상의 공간인 헤테로토피아를 구현해 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거울은 헤테로토피아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거울 속의 물체를 바라보는 순간 차지하고 있는 이 장소를 둘러싼 모든 공간들과 연결된 절대적 현실이자 저편이라는 가상의 지점을 통과해야만 인식될 수 있는 절대적 비현실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어계원_헤테로토피아 공간展 섹션3_어계원 갤러리_2022
어계원_Playground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22

section3: 놀이터 playground - 관람객 참여형태 ● 전시실 바닥과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오브제의 다면체들의 다양한 색상과 모양으로 전시장 전체를 물들여 놓았다. 나는 평면작업에 그치지않고 무한정으로 확장된 공간을 보여주고자 한다. 바닥과 벽 뿐 아니라 감상자들까지 물들여 감상자가 작품 속의 일부임을 인지하게 하려 한다. 바닥에 오브제들은 고정시키지 않고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이동시켜 시시때때로 변화하도록 하였다. 섹션2 플레이그라운드는 감상자가 전시 중에만 느낄 수 있는 한시적인 공간, 헤테로토피아의 재현이라고 볼 수 있는 공간이다.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가장 큰 담론은 설치미술(Installation Art)이다. 고대 미술로부터 오늘날 까지 설치미술은 꾸준히 자취를 남겼지만, 설치미술이라는 개념어는 1970년대 중반 이후로 본격적이고 광범위하게 사용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헤테로토피아 공간을 표현한 설치미술에 집중하였다. 나는 일상에서 인식하기 어려운 헤테로토피아 공간을 보다 쉽게 지각할 수 있도록 작업하였고, 향후 헤테로토피아의 공간은 미디어아트나 퍼포먼스 인공지능을 이용한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전통적인 미술이 2차원적인 평면에 대한 담론이었다면, 설치미술은 그 외연이 확대되어 4차원적 공간의 담론으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이 설치되는 3차원의 공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어 설치 작품에서의 장소라는 개념이 단순히 전시환경이라는 소극적인 장소의 개념에서 벗어나 정치 사회 문화 역사적인 공간으로 발전시켜 보다 많은 대중들과 소통하기를 희망한다. ■ 어계원

Vol.20220816b | 어계원展 / EOGYEWON / 魚桂源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