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마주하다

홍영훈展 / HONGYOUNGHUN / 洪永訓 / painting   2022_0818 ▶ 2022_0824 / 일,월요일 휴관

홍영훈_코뿔소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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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테이블 / 2022_0818_목요일_03:00pm

발제자 / 임종은_이동엽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월요일 휴관

라흰갤러리 LAHEEN GALLERY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0길 38-7 Tel. +82.(0)2.534.2033 laheengallery.com @laheen_gallery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 홍영훈 작가의 작품에 대한 원고를 제안을 받을 때 작가의 작업 *조력자인 노세환 작가로부터 작품에 대한 설명을 직접 홍영훈에게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부터 듣게 되었다. 대개 전시나 작품에 대한 글을 쓸 때나 리서치 할 때 작가와의 인터뷰가 중요한 자료가 되고 만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있어도 작가가 직접 쓴 글이나 인터뷰, 비평문 등을 대신하여 도움을 받게 된다. 작가와의 직간접적인 소통이 어렵다는 것이 우려가 되었지만, 글을 쓰면서 이것을 계기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가가 작업에 대한 과정이나 의견을 직접 표현할 수 없다면, 작품에 대한 의도를 결국 충분히 알 수 없을까? 작품에 대한 이해나 깊은 접근이 얼마나 가능할까? 또 이것을 나는 얼마나 사람들에게 전달 할 수 있을까? 등의 생각을 가지고 작가가 작업을 하는 곳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 * 조력자는 자신들을 '작업자의 눈치를 보고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노세환 작가와 함께, 김태협 작가도 홍영훈 작가를 조력하고 있었고 함께 진행을 돕는 이도 이 과정을 함께 하고 있다. ● 작가와 조력자들의 공동작업실을 방문했고, 작가와 짧은 인사는 사실상 형식적이었다. 작가의 작업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조력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시 계획이나 작업 진행 사항에 관한 설명과 함께 그들은 자신들의 도움이 과연 작가가 자신만의 작품을 구상하고 만드는 과정을 온전하게 조력'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 고민의 원인은 외부 시선이 장애인 작가, 특히 자폐를 가진 작가의 작업 개념이나 구상 그리고 기획력의 순도와 능력을 의심하리라는 것 때문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리게 되었다. 또한 현대미술작가로 활동하는 그들의 자기검열이기도 했다. 그리고 중요한 요구사항도 있었다. 홍영훈 작가의 작품을 단순하게 자폐의 징후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전에 유사한 프로젝트에 개입된 적이 없는 필자의 경험을 높이(?) 평가했고, 장애에 대한 선입관 없이 작가의 작업을 읽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작품에만 집중하는 홍영훈 작가 옆에서 필자와 조력자의 대화는 이어졌고, 작가의 명백한 특성, 작업과정의 특수성을 염두 하지 않은 채 작품을 이해하고 글로 전달 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정답 없는 질문을 이어갔다. ● 우리는 작품을 통해 작가만의 생각과 의도를 온전하게 표현했다고 여겨서 흥미로운 작품을 감상하게 되면 작가의 생각을 더욱 알고 싶어 한다. 작품이 주는 어떤 느낌과 감각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주고, 이것은 대개 작가가 자기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의도로 해석되고 연결되어 관객들에게 수신되기 마련이다. 미술을 대할 때 작가의 창작 의도에 대한 독창성, 독립성, 개성에 대한 존중과 과장이 혼재하고는 한다. 다른 관습들처럼.

홍영훈_늑대_캔버스에 오일파스텔_90.9×72.7cm_2021
홍영훈_치타_캔버스에 오일파스텔_90.9×72.7cm_2021

작업실에서 내가 봤던 작품은 홍영훈 작가가 당시 작업실에서 열심히 그리던 사자, 작업실 벽에 붙어있던 이전 전시 홍보 인쇄물이었던 이국적인 열대지방의 동식물 그리고 포장재에 덮여 있거나 큰 화판에 걸려 있던 것이었다. 나머지 작품들은 예상보다 작업 크기가 컸고, 개별 포장이 되어 있어 소재나 크기 등과 관계와 구분 없이 순서 없이 하나씩 보게 되었다. 작품은 여러 장의 강아지 그림이 있었고 그사이에 코끼리, 늑대, 치타 등의 야생 동물을 그린 작업이었다. ● 작업실에서 가정 먼저 본 작품인 사자 그림은 제작 중이었는데, 이것을 그리며 털을 하나하나 심듯 묘사하는 작가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작품의 감상, 비평 등을 위한 거리감이 사라지고 그가 얼마나 집중해서 동물을 묘사하고 완성해 가는지 그냥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도 하나씩 보면서 점점 더 그의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묘사와 완성도 등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 홍영훈은 하나의 작품을 시작할 때 큼직한 흰 화면에서 밑그림 없이 바로 그리면서 작업을 완성해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에는 작은 사이즈로 그렸지만, 작업실을 넓은 곳으로 옮기면서 작가는 큰 작품 제작을 선호한다고 한다.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오일파스텔로 스케치부터 정밀한 묘사를 하는데, 강하게 힘을 주고 여러 번 겹쳐 칠하면서 윤곽과 형태뿐만 아니라 동물의 털, 깃털 같은 것들까지 밀도감 있게 꼼꼼하게 완성해 간다. 홍영훈은 화판 옆에 사진 이미지를 자신이 본 그대로 모사하고자 하는 듯 보였다. 작품 과정을 실제로 보면 털 한 오라기도 놓치고 싶지 않은지, 아니면 그린다는 것에 지극한 즐거움을 만끽하는지 힘을 주어 꾹꾹 하나씩 큰 화면에 가득 심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곧 정밀하고 밀도가 높고 기법이나 형식이 비슷해 보였던 강아지를 그린 그림, 사자나 치타 그림, 문어나 새를 그린 그림에서 대상에 따라 보는 사람들에게 다른 정서를 전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 작가가 강아지를 정말 좋아하고 연민의 감정을 깊이 느낀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림 속 강아지들의 눈망울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사랑스러움과 애처로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가가 작업실 방문 당시 그리던 사자 그림은 용맹한 전사의 인물화처럼 보였고, 상상력을 조금 더 보태면 작가의 자화상같이 보였는데, 다른 야생 동물 그림도 마치 인물화의 당당하고 의연하고 혹은 쓸쓸하거나 외로운 주인공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문어나 홍학은 이들의 이국적인 환경을 대변하는 모델 같은 아우라를 풍겼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이러한 대비와 유사성은 어떻게 봐야 할까?

홍영훈_새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22

조력자들과 함께 그림을 실제로 여러 주제의 작품을 느꼈던 감상 즉, 소재마다 분위기가 확연한 차이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들도 여기에 공감했다. 왜 그렇게 그렸을까? 혹은 왜 그렇게 보일까? 생각해보며 작업 과정을 묻게 되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과 노력처럼 홍영훈 작가의 작품을 만들고 이어 나가는 실제 제작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당연히 작가의 작품에 대한 생각, 감정, 감각을 작품을 보는 사람 관점에서 충분히 상상하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짐작만 할 수 있는 그의 마음을 작업 과정을 통해 구체화하고 그려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것은 작품의 과정을 함께한 조력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답변이나 이해하는 상태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작가의 모든 생각이 작품에 대한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종종 무관하다.) 작품을 감상할 때도 그러하고, 어쩌면 창작을 할 때도 그러할 것이다. 다만 작품을 통해 찾은 것을 알아차리고 창작자 감상자 모두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동물을 왜 그러한 방식으로 그리는지 묻고 듣는 것을 분명한 표현으로 만들어낸 작품을 통해 그 과정과 연결해 보기로 했다. ● 그림을 소재나 대상을 정하고 완성해가는 '창작의 과정'에 대한 조력의 범위를 묻게 되었다. 예를 들면 강아지를 그릴 때는 조력자들이 유기견의 입양을 위해 사진을 찍어서 공개하는 이미지를 주로 수집했다고 한다. 이미 그 사진의 피사체 강아지들은 입양을 위해 최대한 귀엽고 사랑스럽고 안쓰럽게 포착된 것이다. 다른 동물의 경우도 인터넷 등에서 찾게 되는데 이 사진들은 주로 전문 사진사들이 야생으로 가서 동물의 모습을 연출하듯,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이 그려내어 포착된 것이다.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을 배경으로 바람에 멋진 갈기를 날리며 초원의 외로운 전사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국적인 정글이나 바닷 속 동물 사진 역시 자연환경이나 독특한 동식물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된 이미지이다. 조력자들이 이렇게 많은 이미지 자료를 모아서 작가에게 제공하면 그는 그중에 그리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홍영훈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과연 스스로 찾아낸 것이 아닐까 묻기 전에 이미 사진 자료는 조력자의 어떤 의도와 관계없이 우리가 미디어에서 소비하는 동물 이미지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 우리는 작가가 그것을 얼마나 감각적으로, 정치적으로 잘 표현했고, 전달했는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 이미지를 소비하는 태도,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의 의도, 각각의 동물들에게 우리가 이입하는 감정과 선입관 등을 작품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홍영훈_푸들_캔버스에 오일파스텔_90.9×72.7cm_2022
홍영훈_북극곰_캔버스에 오일파스텔_91×116.8cm_2021

글을 쓰며 조력자의 역할에 대한 입장을 그 이후 몇 번 더 나누게 되었는데, 홍영훈 작가는 미술 선생님이자 미술계 선배이기도 하고 또 작업하고 전시하고, 홍보하며, 작품과 작가가 시장에 이르게 하는 등 창작의 선순환 과정을 다른 작가들처럼 노세환, 김태협 작가와 함께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그림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나 지속하는 것이 다른 작가들의 사례와 다를 수는 있지만 서로가 협력하고 의지한다는 것만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 앞에서 떠오른 느낌과 생각에 대한 충분한 음미를 기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유연한 생각과 상상력으로 창작과 소통의 과정을 확장하고 수행되길 기대해 보게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도울 때 각자의 창작이 더욱 빛날 것이다. ● 글을 통해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는 것, 작가의 의도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했던 자문은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어떻게 그것들을 여기는가, 무엇을 느끼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도달했고 홍영훈 작가의 멋진 동물그림 작업 앞으로 돌아와 마무리하고자 한다. ■ 임종은

Vol.20220818j | 홍영훈展 / HONGYOUNGHUN / 洪永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