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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종展 / LEESOONJONG / 李純鍾 / sculpture.installation   2022_0823 ▶ 2022_1023 / 월요일 휴관

이순종_나의 사랑 나의 몸_한지에 먹_35×50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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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강릉시_강릉문화재단 주최,기획 / 대추무파인아트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추무파인아트 Daechumoo Fine Art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소목길 18-21 Tel. +82.(0)33.642.6708 www.daechumoo.com @daechumoo

언제나 굳건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소중한 산림자원들이 홍수와 산불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일을 우리는 거의 매년 목격합니다. 특히 강릉을 포함한 영동 지방은 겨울철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크고 작은 산불 피해가 빈번합니다. 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는 나무들이 남김없이 타버리고 사라져 늙은 노인의 피부처럼 거칠고 황량한 살갗을 드러내 버립니다. 인간의 실수 혹은 부주의로 원치 않게 자신의 속살을 인간에게 내보인 산등성이를 바라보면 애처로움과 안쓰러움, 애잔함이 뒤섞여 느껴지기도 합니다. ●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산의 풍경에서 나무들의 뾰족한 가지에 찔려 아파하는 듯한 인간의 피부를 떠올리고 한편으로는 침으로 자연과 우주의 불균형을 치료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벌거벗은 사람, 벌거벗은 산이 단순히 에로스를 느끼는데 머물지 않고 산불로 인해 속살을 드러낸 풍경으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오만을 반성하고 자연의 피부가 인간의 피부와 다르지 않은 풍경의 에로티시즘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산불로 인해 자신의 속살을 인간에게 내보인 산, 겨울 산을 보며 푸석한 피부를 떠올리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인간으로 인해 나체를 보이게 된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또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설희경

이순종_나의 사랑 나의 몸_한지에 먹_35×50cm_2003
이순종_Gardening 가드닝_종이에 먹_47×70cm_2022
이순종_버선발_종이에 먹, 호분_43×20cm_2022
이순종_Hole 구멍_종이에 먹, 호분_75×46cm_2022
이순종_낭,돌_종이에 먹, 호분_50×37cm_2022
이순종_낭,돌_종이에 먹, 호분_50×37cm_2022

산불이 났다! 불이야! 불이야! ● 불은 바람을 일으키고 흙 위의 나무와 돌들은 비명을 지르며 탄다. 그리고 물로 끈다. ●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미친 듯이 날뛴다. 마치 자연의 격렬한 포르노그라피를 보는 듯 하다. ● 자연은 때때로 봄바람처럼 교태를 떨고, 가을 바람처럼 무뚝뚝하고, 봄비처럼 감미롭고, 소낙비처럼 화끈하고, 햇살처럼 사랑스럽고, 진눈깨비처럼 변덕스럽고, 함박눈처럼 포근하고 오두막처럼 초라하고 신전처럼 성스럽고, 폭풍처럼 잔인하고, 산불처럼 미친듯이 격렬하고...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양상들을 갖고 있다. ● 산불, 태풍, 가뭄, 홍수, 지진등을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 한다. 영어로는 Disaster, 그냥 재앙이다. 천재지변이란 하늘의 재앙이 땅을 변화 시킨다는 뜻이겠다. 하늘과 땅, 즉 양과 음의 맹렬한 작용이다. 거기에 사람이 낄 자리가 있다.

이순종_낭,재,돌_유리, 돌, 나무, 재_137×17×17cm_2022
이순종_전리품_노획물_합성수지에 침_가변설치_2018
이순종_전리품_Venus_인조 비단에 프린트, 연필, 침_200×80cm_2018
이순종_전리품_트로피_혼합재료_120×120×120cm_2018
이순종_계곡_인조 비단에 프린트, 연필, 침_205×53cm_2018
이순종_비무장지대_인조 비단에 프린트, 연필, 침_106×256cm_2018

천재지변은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고 인위적으로 땅을 조작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이 광대한 우주의 질서와 흐름속에 자연은 때때로 자기 존재를 예측불가능한 변태적 현상을 통해 드러내는 듯하다. ● 늘 고요하고 평온한 자연이란 없다. 물(物) 자체인 자연은 아름답거나, 선하거나, 영원하지 않다. 자연은 우주처럼 중립적이어서 음과 양의 균형을 이루는 작용은 때로 예측이 어려워 변태적으로 보이며, 변하여 달라지는 상태로 가는 과정은 격렬하고 파괴적이다. 자연은 음양의 중립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 자연의 몸부림을 제어할 수 있을까? 사람이 다 사라져 환경문제가 없어진다고 천재지변의 재앙이 사라질까? 지구는, 자연은, 우주는 계속 변하면서 상태를 바꿀 것이다. 음과 양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이순종_H.H.H_인조 비단에 프린트, 연필, 침_33×33cm_2022
이순종_유리여래좌상_유리, 인조 머리카락, 인조 눈썹, 인조 손톱_35×13×13cm_2022
이순종_유리여래입상_유리, 인조 머리카락, 인조 눈썹_60×16×16cm_2022
이순종_유리여래반가상_유리, 인조 머리카락, 인조 눈썹_37×19×19cm_2022
이순종_꿈꾸는 사람_유리, 인조 머리카락, 인조 눈썹_30×10×10cm_2001
이순종_Blank 빈 칸_액자에 먹_84×57_2022

그렇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러한 현상을 읽어주고 알아주는 것이다. 누군가가 관찰하고 있다는걸 자연이 알아차리면 자연은 관찰자를 인식하고 그 격렬함의 수위를 낮추어 사람에게 닥치는 피해를 줄여 주지 않을까? ● 고대인 처럼 사람이 영적 각성을 통해 자연을 물성(物性) 넘어 다른 차원으로 바라본다면 자연도 천재지변을 통한 물질 상태 변화가 아닌 다른 변화 방식을 찾지 않을까? 뽀르노가 아닌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수만년, 수억년 후의 일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리되지 않을까? ● 지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환경파괴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을 이해하고 관찰해 주는 관찰자가 되는 일이다. 고대인 처럼... 어떤 시선으로 관찰하느냐에 따라 자연은 응대할 것이다. 자연을 오직 객관화된 물질적 대상으로서가 아닌 소통할 수있는 거대한 인격체로 바라본다면 자연도 사람을 배려할 것이다 사람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변화시킬 것이다. ●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은 자연과 긴밀히 내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매우 속(俗)되지만 동시에 성(聖)스러움을 지향하는 인간은 음양의 흐름과 조화를 읽어 낼 수 있는 특별한 생명체이다. 그리고 자연의, 우주의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펼치는 연주자이다.

불이야! 불이야! // 듣는가 / 불타는 나무의 비명 소리를 / 깨지는 돌들의 울음 소리를 // 불이여! / 보아라 / 너의 격렬한 몸짓을 // 숨을 고르고 / 조금 우아하고 고상하게 / 몸짓을 보여줄 수는 없는가 불이여! // 맹렬한 불꽃이여! / 아름다운 화신(火神)이여! /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 자상한이여! // 나는 보았다 / 너의 매혹적인 자태를 / 너의 따스한 숨결을 / 너의 부드러운 터치를 // 없어질 것을 소멸시키고 / 있어야 할 것을 / 새롭게 소생시키는 / 창조의 힘이여 // 불이여! / 불멸의 여신이여! ■ 이순종

Vol.20220823h | 이순종展 / LEESOONJONG / 李純鍾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