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산

우석 최규명展 / CHOIGYUMYOUNG / 又石 崔圭明 / calligraphy.painting   2022_0824 ▶ 2022_0907 / 일요일 휴관

우석 최규명_山山山 산산산_종이에 먹_125×63cm

초대일시 / 2022_0824_수요일_05:00pm

후원 / (주)아트레온 주최 / 아트레온 갤러리_우석뮤지엄 기획 / 우석뮤지엄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레온 갤러리 Artreon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129 (창천동 20-25번지) B1,2 Tel. +82.(0)2.364.8900 www.artreon.co.kr

우석 최규명의 '꿈틀대는 산'-한국추상의 본질과 서(書)의 미래를 중심으로1. 한국의 20세기는 식민지植民地와 6.25전쟁戰爭이 말해주듯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서구화西歐化가 집중적으로 전개된 시기이다. 예술藝術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전통적으로 동원同源 일체一體의 서화書畵는 서구미술의 도입으로 서書와 화畵로 철저히 나누어졌고, 화畵는 미술에 편입되었으나 서書는 미술에서 배제된 채로 2022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점은 한국의 현대예술에 대한 척도가 기본적으로 서구잣대에 맞춰진 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산업화産業化 민주화民主化 시대를 지나 기계機械시대 한가운데를 사는 지금은 점점 더 강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데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서書에만 국한해서 보더라도 식민지 서구화로 점철된 20세기 한국미술에서 서書는 그 존재조차 미미해졌고, 한국화/동양화 역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존재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현대미술을 서화에서 미술로, 글씨에서 그림으로 대 전환된 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서화중심의 한국미술의 잣대로 보면 진보나 도약이 아니라 후퇴와 퇴보임이 자명하다. 진정한 한국현대미술의 도약과 진보를 도모한다면 내재적內在的인 서화書畵를 토대와 근간으로 서구외래의 미술을 재해석하고 녹여내는 국가와 공공차원의 예술교육과 행정제도는 물론 예술시장과 같은 인프라가 주체적인 입장에서 혁명적으로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우석 최규명_樂山 요산_종이에 먹, 채색_125×63cm

이러한 맥락에서 우석 최규명(又石 崔圭明, 1919~1999)의 예술은 향후 한국의 서화미술의 인프라 구축 향방을 가늠하는데 있어 등불과 같은 존재가 된다. 또 이번의 특별전 『꿈틀대는 산 - 우석 최규명』에서 '서있는 산' '꿈틀대는 산' '산이 된 우석' '우는 산'을 오르내리면서 한국추상의 본질과 서書의 미래를 발굴해내기 이전에 2022년도 기계시대 한가운데 한국 서書의 실상과 위치를 먼저 살펴볼 필요성과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한국 서書는 100년 동안 성장을 멈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후퇴/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 서예가와 화가의 숫자나 작품의 수준은 물론이지만 교육 정책 시장 등 인프라 측면에서 사실상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로 예술의 운동장이 한쪽으로 기울어 졌다. 이유는 식민지 서구화 과정에서 문명개화文明開化를 이유로 우리의 역사전통을 우리 스스로 내다 버렸기 때문이다. '서는 미술도 아니다. 그래서 예술도 아니다'라는 식민지 시대 일본화된 서구미술 척도가 우리 서화書畵를 재면서 서書는 100여년 동안 미술에서 내쳐졌다. 전통시대 시서화일체詩書畵一體, 서화동원書畵同源으로 서書와 화畵는 한 몸이었지만 20세기에 들어 분리되어 화는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된 채로 미술에 편입되어 지금까지 왔다. 실제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1회부터 10회까지 1부 서양화, 2부 동양화, 3부 서예가 있었으나 11회부터 서예는 폐지되고 공예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초중고 미술교과서 역시 미술이 7할이라면 동양화는 2할, 서예는 1할도 될까 말까하는 비중으로 편재되었고, 그것마저도 서書는 실제 미술시간에서 수업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지난 30여 년간 전국 5개 사립대학에서 서예학과가 개설되었지만 2022년도 현재 사실상 모두 폐과가 되거나 통폐합된 상태이다. 대학 동양화과에서 조차 서예과목을 필수로 이수하는 곳이 없을 정도다. ● 일상의 문자생활 또한 붓글씨/펜글씨 '쓰기'에서 키보드 '치기'로 대 전환되면서 사실상 서書는 죽었고, 우리는 서맹書盲의 시대에 살고 있다. 미술시장은 이러한 서書의 죽음시대를 적나라하게 반증한다. 생존 작가가 경매에 나온 경우는 없고, 작고作故 작가역시 A급의 경우 미술작품이 10억 대이라면, 서는 100만 원 대 정도다. 사실상 서書 언어자체가 우리시대 예술의 기억 몸 유전인자遺傳因子속에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석 최규명_山 산_종이에 먹_125×63cm

2. 이러한 서書에 대한 열악한 시대와 사회적인 환경에서 공교육이나 제도의 뒷받침 없이 우석과 같은 독보적인 성취의 작가가 존재하였다는 것은 사실상 평지돌출平地突出과 같은 경우가 아니고는 해명할 길이 없다. 우석의 경우 서화에서 서구미술로 가는 한국현대예술의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앞서 본대로 서書는 서書, 미술은 미술로 나누어 질 때 철저하게 서書의 입장에서 미술을 수용/소화하면서 일치시켜냈다. 그 결과 현실 예술 판/마당에서는 우석이라는 존재는 서예도 미술도 모두 외면하였다. 아니 우석 스스로 전통과 현대, 내재와 외래의 이분법적인 편가르기 판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옳다. 우석은 철저하게 내재적인 전통의 서書와 전각篆刻을 토대로 서구외래의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미술을 도입, 재해석하고 소화해 냈다. 한글 한자漢字 상형문자象形文字는 물론 지필묵紙筆墨과 유화油畵에 이르기 까지 모든 문자와 도구, 재료를 가리지 않았다. 우석은 전통서예와 전각에 두루 정통하면서도, 특히 갑골문자甲骨文字 종정문자鐘鼎文字의 재해석을 통해 전통서화와 현대미술언어와의 일체를 실천해 낸 작가임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우석에게는 글씨자체가 단순한 서예를 넘어선 '글씨그림'이고 '그림글씨'이다.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입장에서 보면 전통서화와 현대미술이 일체가 되어 제3의 새로운 서화미술이 우석의 예술이다.

우석 최규명_山高水長 산고수장 1,2_종이에 먹, 채색_125×63cm×2

이번 전시「꿈틀대는 산」에서 선보이는 「산고수장山高水長」(63x125cm, 종이에 먹, 색, 1990년 전후), 「요산樂山」(63x125cm 종이에 먹, 색, 1990년 전후), 「산山」( 63x125cm 종이에 먹, 1990년 전후) 등 대부분의 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먼저 우석의 「산고수장山高水長1,2」를 보자. 「산고수장山高水長1」은 초서草書의 '山' '高' '水' '長' 네 글자의 리드미컬한 필획筆劃이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금강산 만폭동 계곡물과 같이 유장하게 흘러내린다. 그런가 하면 '만수산 드렁 칡과 같이 얽히고 설켜 전혀 다른 하나의 새로운 글자조합/이미지를 창출해낸다. 「산고수장山高水長2」는 그림형상의 '山'에서부터 해서 행초서 '高' '水' '長'을 2단으로 기하학적으로 배치하여 「산고수장山高水長1」과는 전혀 다른 문자조형과 구조/게슈탈트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산고수장山高水長'은 송나라 엄자릉의 높은 지조志操에서 유래한다. 이런 경우는 「요산樂山」 「산홍산山虹山」 「백두산한라산白頭山漢拏山」 「금강산金剛山」은 물론 「인내천人乃天」 「인내천人乃天 천내심天乃心」 등 거의 모든 작품에 해당된다. ● 그렇다면 여기서 좀 더 구체적으로 우석작품의 내용과 작서 태도를 보면서 얼마나 주체적으로 열린 자세/태도로 서구외래를 내것으로 만들어 내는지를 보자. 앞서 본 우석의 「산고수장山高水長」 「요산樂山」 「산홍산山虹山」 「백두산한라산白頭山漢拏山」 「금강산金剛山」 「인내천人乃天」 「인내천人乃天 천내심天乃心」 등 우석의 '일자서' '대자서'의 텍스트는 활자 상태로는 구조적으로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한 글자는 물론 두자, 서너 자의 텍스트일지라도 우석의 생각/정신/마음으로부터 온 몸을 통한 필획筆劃을 거치면 영락없이 기존활자와 전혀 다른 기운氣韻을 가진 글자구조와 서체의 일자서一字書 대자서大字書로 제 각각 재탄생된다.

우석 최규명_邙山 망산_종이에 먹_65×32cm

먼저 우석은 갑골문과 종정문과 같은 고대문자 상형문자象形文字의 필획筆劃과 구조構造를 행초行草로 전환시켜 낸다. 그 다음 필획/필묵의 태세太細 곡직曲直 질삽(疾澁: 매끄러운 획과 까칠한 획) 관계는 물론 장법章法에 가서 글자의 대소大小관계와 상하上下의 위치, 더 나아가서는 주종主從 관계까지 뒤집어버린다. 여기서 우석의 경학經學과 고문자학古文字學, 전각篆刻과 서예는 물론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학예일치學藝一致의 경지를 읽어낼 수 있다. 내용은 모두 노장老莊과 논어 맹자는 물론 불경과 성경을 토대로 작가가 살아가는 현실사회문제를 반추하면서 추출해 낸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은 언어다. 우석은 이것을 가지고 텍스트, 즉 내용을 넘어 다시 이미지, 즉 조형적으로 재구성하거나 심지어는 전복顚覆해 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추상표현주의나 액션페인팅을 방불케 하는 필획筆劃으로 문자文字의 구조構造 자체를 전복적顚覆的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 내면서 처절한 실존에서 초현실의 필묵문자세계를 열어젖히고 있다. 여기에다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역시 동아시아 서書에서 배태된 것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우석예술의 이러한 성취는 동시대 어느 작가와 비교해도 독보적獨步的임을 간파할 수 있다. 그래서 세계의 현대미술흐름에서 보아도 보편성普遍性과 독자성을 띠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우석의 서書에는 추사秋史와 왕희지王羲之도 있고, 이노우에 유이치(井上有一 ,1916 ~1985)와 로버트 머더웰(Robert Motherwell, 1915 ~ 1991), 폴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 ~ 1956)도 있다.

우석 최규명_高山流水 고산유수_종이에 먹_125×63cm

이런 맥락에서 우석 서書의 미학적/조형적인 성격 또한 추사의 괴怪의 아름다움과 서구의 추醜의 미학을 복합적으로 통찰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석의 서書와 각刻에 있어 일자서와 대자서 구조의 혁명성과 두드러지는 질삽의 미학은 현대미학의 핵심화두인 괴怪와 추醜로 서로 상통한다. 서구에서 고대와 현대의 타협할 수 없는 상이성相異性은 기존의 고전적인 미美의 개념과 달리 추醜마저도 미美가 된다는 사실이다. 『추醜의 미학』에서 로젠 크란츠가 이미 19세기 중반에 무정형無定形의 몰형식성沒形式性과 골계미滑稽美의 원천으로서 부정확성不正確性, 그리고 기형奇形, 즉 형태의 왜곡歪曲과 같은 추醜를 현대미학의 특질로 꼽고 있음이 그 단적인 사례다. 이것은 바로 서구미술에서의 큐비즘이나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의 조형미학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석의 문자조형/게슈탈트 역시 로젠 크란츠의 통찰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 결과 우석예술은 당연히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나 일본 전위서도前衛書道와 같은 외래적인 요소를 내재적인 전통으로 소화消化 극복克復해내는 지점에서 발견된다. ● 여기서 우리는 우석 서書의 '괴怪'의 미학이 서구현대 미학의 '추醜'와 같으면서도 다른 좋은 대비까지 읽어낸다. 우석미학의 현대성은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현대서화미술의 향방을 가늠하는 한 가지 중요한 척도가 된다. 더 본질적으로는 우석의 필묵이 상형문자象形文字와 같이 그림 글씨가 하나 된 신화神話시대 동아시아 서書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여하히 현대적으로, 심지어는 오늘날 문자영상시대文字映像時代 언어로 까지 호출해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더욱이 이런 우석의 독보적인 전위와 실험의 필획/구조에다 분단의 고통과 통일統一의 열망이라는 우리민족/우리사회의 실존문제가 제대로 녹아나 있다는 점에서 현실 도피적으로 오인되는 순수추상純粹抽象과도 완전히 차별적이다.

우석 최규명_南山壽 남산수_종이에 먹_30×129cm

3. 기실 추상抽象이라는 것은 20세기 초 서구현대미술의 발명품으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와 같은 고대는 물론 신神중심으로 그려진 중세는 물론 인간의 시대인 근대의 19세기까지도 현실現實이나 외물外物의 대상재현對象再現 일변도 그림과는 정반대로 추상은 색채色彩와 점點 선線 면面으로만 이루어진 형태들 간의 구성compostion만을 순수하게 문제 삼는다. 이런 맥락에서 그간 한국미술에서 추상은 서구의 큐비즘에서 배태된 칸딘스키나 몬드리안, 말레비치와 같은 계열의 추상이나 다다(DADA), 로버트 마더웰과 잭슨폴록과 같은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를 전부인양 생각해왔다. 즉, 추상이란 기본적으로 대상이나 형체가 없는, 대상/형체의 본질과 원형을 오직 색과 점, 선, 면 만으로 느낌을 표출하거나(뜨거운 추상의 칸딘스키), 이것과는 정 반대의 인간의 감정을 완전하게 죽인 수직 수평과 빨강 파랑 노랑의 극도로 절제된 색 만으로 대상의 본질을 그려내는 것(차가운 추상의 몬드리안)으로 대별해 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추상미술은 서구추상 잣대로 잰 나머지 자생적自生的인 추상 언어는 사실상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왔던 것이다. ● 하지만 추상의 척도를 한국미술, 더 구체적으로 전통서화를 잣대로 들이대면 기존 우리가 서구중심으로 이해하고 생각해온 추상미술과는 본질적으로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앞서 제시한 우석의 일자서/대자서를 문자구조의 전복顚覆/파괴와 필획筆劃/스트록Stroke의 관점에서 보면 추상에 대한 통념내지는 고정관념은 여지없이 파괴된다. 특히 우석은 동시대 일본의 전위서도前衛書道나 서구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미술을 직시하면서도 문자文字의 경계境界를 극한極限에서 지켜내면서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외래의 그것들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필획筆劃을 넘어 구조構造 문제까지 전복顚覆시켜내고 있는 것이다. 서와 미술의 불이의 경지, 즉 주체적인 언예일치言藝一致의 우석식 사례를 여기서 본다. ● 사실 추상抽象언어에 관한한 그 기원과 분포는 서구추상의 발명이전에 이미 역사시대만 하더라도 한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서書가 그 전부를 차지하다시피 한다. 서書가 일상의 문자생활이자 예술의 궁극이었다. 요컨대 서書라는 추상예술이 일상인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시서화일체詩書畵一體나 서화동원書畵同源, 사여불사似如(不似가 말하듯 동아시아에서는 추상과 구상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고,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이런 입장에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내면의 표출로서 추상충동抽象衝動내지는 추상욕구抽象欲求는 뜨겁든지 차갑든지 간에 곡직曲直의 필획筆劃을 칼 부리듯 하는 서書 행위로 다 채우고도 남는 것이었다. 서구미술에서 서書를 문자文字에 구속拘束된 모방模倣만 일삼는 글씨쓰기 기술技術로 오해하면서 서를 미술도 예술도 아니라고 취급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근본 서구미술에서 서書라는 장르나 서언어書言語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물론 타이포그라피typography나 문자디자인은 동아시아 서書와는 질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히려 언어와 예술의 일체라는 동서를 넘은 인류차원의 제3의 조형언어/예술언어 창출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서書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미래형이 된다.

우석 최규명_金剛山 금강산_종이에 먹_125×63cm

재론하자면 100여 년 전 서양화 도입 이래 지금까지 한국에서 그림은 구상과 추상으로 의례히 대별해왔다. 전자가 대상의 재현이고, 후자는 내면의 표출로 이분법적二分法的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대상재현과 내면표출은 본래 둘이 아니다. 이번 전시『꿈틀대는 산』에서 내보이는 우석의 일련의 『산』시리즈 작품만 보아도 글씨와 그림, 내면의 표출로서 추상과 대상의 재현으로서 구상이 혼재되어 있다. 그래서 우석의 '그림글씨' 내지는 '글씨그림'에는 추상과 구상이 따로 없이 해독된다. 구상 안에 추상을 보고, 추상 안에 구상을 봐야 그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난다. 내재적인 형임形臨 의임意臨 배임背臨의 서적書的 필획筆劃/스트록만으로 서구외래의 추상과 구상을 용해시켜 제3의 우석만의 조형언어를 창출해낸 것이다. 우석은 쌍구가묵雙鉤加墨을 통한 형임形臨과 같은 전통서예의 따라 쓰기부터 의임意臨에 해당하는 재해석과 원본/원형을 무화/형해화시키는 배임背臨에 이르기까지 텍스트 하나를 잡으면 그야말로 360도로 모두 요리하고 소화해내고 만다. 그래서 완벽하게 내 예술의 신神 기氣 골骨 육肉 혈血이 되도록 해버리는 것이다. 우석의 이러한 극공極工의 실천과 통령通靈에 이르는 성취는 우리시대 서가書家는 물론 미술작가들은 더더욱 쉽게 감행하고 성취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 그래서 서구 현대추상 일변도의 잣대만으로는 우석의 작품은 제대로 척도 되지 않는 지점에 위치한다. 오히려 더 본원적으로 돌아가 자연물과 같은 대상재현과 인간의 내면표출은 근본 하나의 맥락으로 간주한 서구 고대의 '미메시스mimesis' 척도로 보면 내면과 대상의 본질이 표출과 재현으로 중첩되어 드러나는 우석추상은 윤곽이 보여 진다. 플라톤이 자연물은 이데아의 모조模造이고, 이 개념을 계승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를 인간의 본디 마음이라고 통찰해낸 것이 그 증거이다. 이러한 인류공통의 추상 언어는 더 근본적인 지점에 가서는 역사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수한 선사시대 문양과 그 이전의 단계 이전까지 거슬러 간다. 이런 맥락에서 우석의 전위/실험 작품은 지금까지 본대로 그냥 외래모방을 일삼는 전위/실험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조형과 내용, 즉 이미지와 텍스트가 양 측면에서 하나로 통하는 깊은 서언어와 문양과 같은 그 이전의 역사전통의 조형언어 체득, 그리고 작가가 처한 남북분단이라는 실존문제 해결을 대전제로 필획되고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우석 최규명_白頭山 漢拏山 백두산 한라산_종이에 먹_126×64cm

4.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우석의 예술에는 전쟁의 아픔과 분단의 비극내지는 통일열망까지 녹아져 있다는 점이다. 이점에서 기존의 서가書家들이나 순수추상작가들과 다른 궤적을 가고 있는 것이 우석의 필획이고, 그 결과 순수예술로 치부된 서예나 추상미술을 진한 사회참여 예술로 까지 확장시켜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석작품의 문제의식은 나치의 전쟁만행을 고발한 독일의 판화작가 케테 슈미트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 ~ 1945)와 오버랩 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보월步月」은 달 월月자를 상형문자象形文字로 휘호한 다음 먹물로 붓을 대신하여 작가 자신의 족적足跡을 화면에 직접 걸어가며 찍었다. 통일을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엄혹한 시대, 달밤을 걸으며 통일을 염念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말할 수 없는 고뇌가 찍혀 있다. 족적은 서書 문명 내지는 문자文字 문명의 시작이기도 하다. 「산홍산山虹山」은 7m광목에 필묵筆墨으로 '백두산'과 '한라산'을 그림문자로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무지개로 연결시키면서 남북통일을 열망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산山」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의 산山의 이미지를 무쇠작대기보다 더한 육중한 필획筆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에게 '남북통일南北統一'이란 작품 「산」과 같이 물러 설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절대명제絶對命題임이 여기서는 이렇게 형상화된다.

우석 최규명_人乃天 天乃心 인내천 천내심_나무에 아크릴채색_200×110cm

예술은 작가가 살아가는 시대사회의 실존문제를 여하히 형상화 해내는가가 궁극적인 과제이고 존재 이유다. 우리의 절대 절명의 과제는 통일統一이다. 우석又石의 서업書業 성취는 한마디로 통일統一을 화두로 식민지 서구화 100년을 지나면서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서예 전각 언어를 현대미술 언어로 해체/전복/치환하여 호출 해내고 있는 점에 있다. 철저하게 내재적인 전통의 서書와 전각篆刻을 토대로 서구외래의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미술을 도입 재해석하고 소화해 냈다. 더욱이 한글 한자漢字상형문자象形文字는 물론 지필묵紙筆墨과 유화油畵에 이르기 까지 모든 문자와 도구재료를 소화해냈다. 전술한 바대로 우석은 서예 전각에 두루 정통하면서도 특히 갑골문자甲骨文字 종정문자鐘鼎文字의 재해석을 통해 서화는 물론 미술과의 일체를 실천해낸 작가다. 이런 맥락에서 우석에게는 글씨자체가 서書를 넘어선 그림이다. 미술에서 말하는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입장에서 보면 전통서화와 현대미술이 하나로 서화미술이 되는 경우가 우석의 사례다. 일자서一字書 대자서大字書 파체서破體書에서 독보적獨步的인 성취를 이루어 낸 우석은 1992년 동경 전시 때 KBS 이일화 특파원에게 작품 「주主」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갑골문자甲骨文字의 주主문자를 소재로 해서 (작품을 하였다), 우리민족의 주체성主體性, 주체主體가 우리민족의 생명生命이요, 우리민족을 절대명제絶對命題로 생각하고 (작품을 하였다)" ● 여기서 주목되는 최규명의 언설은 '주체성主體性'이다. 그런 만큼 최규명은 작품의 현대적인 필획과 조형성 못지않게 분단의 아픔과 남북통일南北統一을 주제로 한 텍스트 자체의 내용이 중요하게 와 닿는다. 「보월步月」 「백두산한라산白頭山漢拏山」 「주체主體」 「반핵反核」 「금강산金剛山」 「고려高麗」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런 사회참여적인 작가의 태도는 기존의 서가書家들에게 잘 찾아 볼 수 없는 경우다. 여기에서 보듯 최규명은 추상표현주의를 방불케 하는 필획筆劃으로 문자文字의 구조構造 자체를 전복顚覆的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 내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서있는 산' '꿈틀대는 산' '산이 된 우석' '우는 산', 이 모든 산이 우석의 미래 한국과 동아시아 현대 서書에 대한 제안이자 장차 다가올 남북통일 열망의 결정들이라는 점에서 우석의 필획은 우리가 뒤따라 가야 할 등불이 된다. ■ 이동국

Vol.20220824c | 우석 최규명展 / CHOIGYUMYOUNG / 又石 崔圭明 / calligraphy.painting